바람이 불고, 짙게 두른 구름이 몰려 옵니다. 거리에 다니던 차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 있었고,

그 공간에 넓은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뒹굽니다.

 

내가 기다리던 마을버스는 마을버스 어플이 알려준 그 시간에 도착합니다.

 

조금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순서를 가지고 일어났습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삶의 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인과의 삶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원인을 찾고, 결과를 찾아

그것의 관계를 증명하려 비교합니다.

 

그래서 늘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삶은 이런 질문이 철학적 질문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철학적 질문이 왜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 혹은

쓸데없는 이야기로 취급되어 버렸는가 입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상적 삶에 도움이 되지 않고 생각해 보았자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냐 입니다.

 

몽골을 24인승 버스에 타고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왜 길이 구불 구불 생긴것일까를

생각한 것은 단지 길이 구불 구불해서가 아닙니다.

 

이유 때문이었지요. 4일만에 머리를 감던 개울물도 구불 구불, 울퉁불퉁 달리는 길도

구불 구불, 내 인생도 구불 구불 돌아 박자세를 만났습니다.

 

왜 나는 인과의 법칙을 찾고 억지스레 구분짓고 있는가였습니다.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에 주인공인 침팬치 '시저'는 실험에 의해 놀라운 지능을

갖게 됩니다.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인간의 삶 속에 영위합니다.

 

그러던 '시저'가 갑자기 질문을 던집니다.

 

' 난 누구인가?'입니다.

 

출근하여 같이 만난 심리치료사와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습니다.

 

친분이 두터운 관계여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간은 어쩌면 의미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인지도 몰라?'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답을 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좋니. 누군가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주는 것이 말이다.  맘이 편해지잖아.

종교의 역할도 대부분이 이것일껄.'이라고 말입니다.

 

몽골의 자연을 만나고, 허물어진 성터에서 역사를 더듬고, 한 밤 중에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 별을 보았습니다.

 

자연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인과의 법칙에 살아가는 우리네가 거기에 놓여

인과를 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길이 구불 구불한 것, 냇가가 구불 구불한 것, 구름이 넘실 넘실 흐르는 것,

별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것, 내가 보고 온 몽골은 단지 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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