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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주 북부 킴버리 지역의 바오밥나무와 은하수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밤하늘 보여주는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별자리 여행

“100%다. 퍼펙트한 밤하늘을 내가 장담한다.” “퍼펙트? 믿을 수 없다. 과학자가 100%란 말을 쉽게 할 수 있나?” “흠, 맑지 않을 확률을 굳이 따지자면, 한 0.1%쯤 될까?” “….”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지역으로 별 구경 떠나기 직전, 사전 모임의 대화 중 한토막이다. 일반인 자연과학 학습모임 ‘박자세’(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운영자 박문호(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사와 권오철 천체사진 전문작가가 날이 흐릴 것을 대비해 캠핑 일수를 늘릴지 여부를 논의했던 자리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은 눈을 별처럼 크게 반짝이며 확신했던 박 박사 말이 100% 적중했다.

뉴먼~카리지니~마블바~브룸

이어지는 오프로드 여정

은하수와 별떼 가득

서오스트레일리아(서호주) 북서부. 뉴먼에서 카리지니국립공원과 마블바를 거쳐 브룸까지, 수백㎞씩 흙먼짓길을 이동하며 만난 밤하늘은 매번 새롭고 놀라웠다. 완벽한 어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원시의 하늘이 거기 있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 아래서 자주 눈앞이 캄캄해져야 했다. “당신은 누군가?” 차갑고 깊고 어두운 저 아득한 공간에서, 알몸의 언어로 말 걸어오는 빛화살들. 때 묻고 옷 껴입은 몸, 먹고사느라 흐려진 눈과 더러워진 입, 부질없이 휘둘러온 지루하고 장황한 혀로, 저 간결 영롱한 물음에 무어라 답할 것인가. 별가루에 휩싸인 유칼립투스 나무 밑 커다란 흰개미집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별을 보고 또 나를 들여다보았다. 몸과 마음 속속들이 파고들며 반짝거려서 무엇 하나 답할 것도, 어디 하나 숨을 곳도 없었다. 바라보고 바라봐도 늘 새로 고쳐 반짝이는 붉고 푸르고 노란 별별별들. 하늘 전체가 생각과 생각의 씨앗까지 온통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아, 아름답구나!” 찬 땅에 등을 대고 누웠다. 둥근 밤하늘과 밤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우거진 은하수의 무성한 별떼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늘이 이토록 넓다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별이었다.

“지구상 최고의 밤하늘이 바로 이거요!” 서호주의 밤하늘 탐방이 다섯번째인, 세계 곳곳의 밤하늘을 관찰해온 박 박사가 어둠 속에서 감동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미국 서부, 몽골 사막, 남태평양 섬, 히말라야 등 내가 경험한 곳 중 가장 멋지고 완벽한 별빛을 보여주는 곳”이라며 “워낙 넓고 건조한 사막 지역이어서 사철 깨끗한 밤하늘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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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바 디그레이 강변 캠핑 때 만난 은하수

그가 본격적으로 별과 별자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우주엔 약 수십억~수천억개의 별을 거느린, 최소 1000억개 이상의 갤럭시(은하)가 있지요.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는 4%에 불과합니다.”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의 수는, 1~6등성까지 약 6000개 정도로 적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모든 별을 다 볼 수는 없다. 관측 가능한 별들 중 절반은 두개의 별이 서로의 질량에 끌려 회전하는 쌍성이다.

별 관찰의 기본은 별자리다. 약 5000년 전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별자리들이 점술이나 항해 등에 이용돼 왔다. 현재는 국제천문연맹이 공인한 88개의 별자리(서양식)가 통용되고 있다. 이 중 한국에선 60여개를 볼 수 있고, 시야가 넓은 서호주 북부 밤하늘에선 80개 안팎의 별자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천문연맹 공인 별자리 88개

서호주에서 80여개 보여

한국에선 60개 관측 가능

남반구의 밤하늘에서 만나는 천체 중 흥미로운 것이 남동쪽 은하수 띠 옆에 작은 구름 조각처럼 거리를 두고 떠 있는 대마젤란·소마젤란은하다. 각각 우리 은하에서 16만광년, 20만광년 거리에 있는 두 은하는 우리 은하계와 가장 가까운 은하들에 속한다. “대마젤란은하의 별 중 하나가 폭발하는 모습이 1987년 관찰됐지요. 16만년 전에 폭발한 겁니다.”

남쪽 하늘 은하수에 걸친 네개의 별인 남십자성, 태양 지름의 700~800배 크기에 밝기는 태양의 1만배라는 전갈자리의 안타레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제주도 남쪽 하늘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는 용골자리의 카노푸스(노인성)도 또렷이 보인다. 노인성은,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전하는 별로 ‘노인성 보기 계모임’까지 있다고 한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항성)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1.5등성)를 꼽지만, 새벽에 북동쪽 하늘에서 만난 우리 태양계의 행성인 화성(1등성)과 토성(0.8등성)도 밝아 보였다. 감동적인 건 별의 똥이었다. 별똥별(유성). 빛의 거대한 구렁텅이에 빠져 별과 별 사이를 헤매고 있을 때, 느닷없이 나타나 현실과 꿈의 경계선을 딱 그어주는 그것. 유성은 여행자를 한 꿈에서 깨어나게 하면서 즉시 또다른 꿈으로 이끌어주는 안내자이기도 했다. 사흘 밤 동안 길고 짧은 별똥별 10여개를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유성은 실제 크기가 손톱 크기도 안 되는 것들이라고 한다.

서호주 북부 내륙(필바라 지역 등)에서, 이처럼 유난히 많은 별들이 또렷하게 반짝이는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가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온전한 별빛은 온전한 어둠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80도 트인 시야, 사철 건조한 사막기후, 그리고 주변에 인공적인 빛을 내는 도시가 전혀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직 별빛만 빛인 완벽한 어둠이 여기에선 가능했다.

별 구경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박 박사가 말했다. “별도 아는 만큼 보이지요. 공부가 필요합니다. 감동이 그만큼 커지니까요.” 비행기에서 잠들며 별 꿈을 청했으나 별은 나타나지 않았다. 깨어나 창밖을 보니 커다란 별 하나가 내려다보였다. 비행기가 태양계의 세번째 행성 위를 낮게 날고 있었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제공 권오철 천체사진가(천문우주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