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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뉴먼~카리지니국립공원~마블바~브룸까지 1500㎞를 달린 서호주 캠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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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지니국립공원
35억년 전 원시 박테리아가 만든
웅장한 지층 협곡

낮에는 붉은 흙먼지
밤에는 쏟아지는 별빛으로 샤워
안먹고 안씻어도 배부른 황홀경

서호주 북서부 지역은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여행지다. 개발의 삽질이 닿지 않은 35억년 전의 원초적인 지구 속살(지층)과 구름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자극적인 밤하늘을 함께 만나게 되는 곳이다. 지난 7월7~14일 5박8일의 서호주 여행 중 3박4일을 북서부 필바라와 킴벌리 지역 일부의 포장·비포장길을 이동하며, 척박하나 생명력 넘치는 ‘아웃백’과 깨끗한 밤하늘을 즐겼다. 뉴먼~카리지니국립공원~마블바~브룸으로 이어진 1500㎞. 길을 잃거나 연료 주입을 위해 이동한 거리까지 보태면 2000㎞쯤 된다. 일행 5명이 미쓰비시 파제로 5인승 4륜구동 차량을 이용했다.

■ 첫날(뉴먼~카리지니국립공원 250여㎞)

서호주 퍼스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 광산도시 뉴먼에 도착했다. 구름 한점 없는 짙푸른 하늘이 인상적이다. 화창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 카인은 “며칠 전 카리지니의 밤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뉴먼에서 카리지니국립공원에 이르는 2차로 포장길 이동은 대형 컨테이너를 3~4개씩 연결한, 위협적인 ‘로드 트레인’을 제외하면 무난했다. 제한속도 110㎞. 일직선으로 뻗어 곧장 지평선에서 사라지는 도로 좌우로 온통 깔린 건 ‘스피니펙스’라 불리는, 날카로운 침들을 숨긴 풀과 유칼립투스 나무, 그리고 황토 움집을 연상케 하는 2m 안팎 높이의 흰개미(바퀴벌레의 일종) 집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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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지니 국립공원의 녹스 고지(협곡).
카리지니국립공원 방문자센터에 들러 35억년 전 지층 형성 과정과 광산개발 역사·유물을 둘러본 뒤 협곡들의 전망대를 순례하며, 웅장한 협곡 일부를 감상했다. 카리지니국립공원 볼거리의 핵심이 바로 공원 북부지역의 9개나 되는 비좁은 고지(협곡)들이다. 산화철 성분으로 이뤄진 지층이 수십 수백만권의 붉은 책들처럼 쌓인 평지 협곡들이다. 35억년 전 바다에 번성하던 원시 박테리아인 시아노박테리아(남조류)가 지구에 처음으로 산소를 만들어내면서 산화된 철 성분이 수억년 동안 바다 밑에 쌓여 이뤄진 지층이라고 한다. 육지가 된 땅에 침식작용으로 협곡이 생기면서, 옛 지층의 속살이 드러난 것이다.

기온이 급강하해, 야영을 포기하고 친환경 리조트인 ‘에코 리트리트’의 5인용 간이침대만 있는 고정식 텐트에서 묵었다. 밤하늘은 참으로 눈부셨다. 본격적인 별 감상을 새벽으로 미루고 텐트로 들었다. 철 성분 땅이어서 급속히 차가워진다는 가이드의 말이 실감났다.

■ 둘쨋날(카리지니 협곡 트레킹)

4시45분에 일어나 새벽 하늘의 별떼를 감상했다. 유칼립투스 나무 위로 반달이 떴지만 장엄한 밤하늘은 변함이 없었다. 황도(태양계 행성의 공전궤도)를 따라 늘어선 토성·화성이 크게 빛나 보였다. 일행은 아침으로 햄·야채를 밀전병에 말아 먹었다. 점심에 야채·햄을 밀전병에 돌돌 말아 먹은 뒤, 저녁엔 특별히 햄과 야채를 듬뿍 넣어 둘둘 말아 먹었다.

아침부터 일정이 꼬였다. ‘지구의 중심’이라 불리는, 가장 깊고 험하고 유명한 핸콕 협곡을 8시간에 걸쳐 탐방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일정과 이동시간 등을 고려해 포기했다. 아쉬움 속에, 협곡 탐방 전문가 피터가 “매력적인 협곡”이라며 녹스 협곡으로 안내했다. 깊이 40여m의 협곡 밑 물길·숲길을 따라 걸으며, 35억년 전 지층이 드러내는 붉고 웅장한 절벽 경관을 감상하는 3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다. 무수하게 겹쳐진, 산화된 철판들의 전시장이었다. 붉은 철판들 사이에선 간혹, 부드럽게 휘거나 뭉쳐진 흰 띠가 눈에 띄었다. 바다에 살던 단세포생물 규조류의 투명한 껍질층이 가라앉아 쌓여 형성된 지층(처트층)이다. 서호주 지역에서만 산화철 층과 처트 층이 함께 나타난다고 한다.

데일스고지, 서큘러 풀, 옥서 전망대 등 서너 곳의 협곡 전망대를 탐방한 뒤, 밤엔 공원에서 진행하는 별자리 탐방에 참여했다. 남십자성 아래 남극점(별은 없는)과 별자리들을 확인하고 10인치 반사망원경으로 은하들과 행성 등을 관찰했다. 텐트로 돌아와 다시 눈부신 밤하늘을 넋을 잃고 쳐다보며 별 사진을 찍었다.

■ 셋쨋날(카리지니~마블바 600여㎞)

새벽 별잔치를 감상한 뒤 다시 밀전병을 둘둘 말아 먹고 마블바로 서둘러 출발했다. 저물기 전에 캠핑 장소를 물색하고 텐트를 쳐야 했다. 가도 가도, 지평선 끝 소실점으로 향하는 붉은 황톳길이 이어졌다. 카인과 교대로 운전대를 잡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거칠지만 곧은 흙길을 달렸다. 보이는 거라곤 구름 한조각 없는 짙푸른 하늘과 차량 한대 없는 붉은 길. 뜻밖의 ‘로드킬’을 체험했다. 떼지어 지나던 작은 새들 중 서너 마리가 차량 옆구리에 ‘따다닥’ 충돌했다. 카인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그는 길에 나온 뱀도 피하고, 캥거루도 피하고, 새떼도 피하며 시속 120㎞로 소실점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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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바 가는 길에 애버리진 암각화를 찾기 위해 잠시 차를 멈춘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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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애버리진이 새긴 암각화.
원주민 애버리진의 1만7000년 전 유적인 암각화를 찾기 위해 차를 멈췄다. 안내책자에 표시된 장소 주변의 바위 무리를 1시간가량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호주 대륙은 유럽인들이 불과 몇백년 전 처음 방문할 때까지, 수만년 동안 애버리지니의 땅이었다. 그들은 5만년 전쯤 이집트를 거쳐 아프리카에서 나와 인도~말레이반도와 섬들을 통해 호주 대륙으로 이동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저물 무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덥다는 고장(최고기온 49.3도 기록) 마블바에 닿았다. 주민 200명이 사는 작은 광산 마을이다. 카인이 숙소 겸 식당 겸 술집 아이언클래드 호텔에 들어가 캠핑할 장소와 함께 책자에 없던 새로운 암각화 위치를 알아냈다. 어둠이 깃든 디그레이 강변에 텐트를 쳤다. 엄청난 은하수 폭포가 쏟아지는 남반구의 하늘 밑에서 경험하는 강변 캠핑은 감동적이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강물을 퍼다 끓였다. 컵 수프와 봉지 카레를 데워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별은 줄곧 빛났고, 잠은 오지 않았다.

■ 넷쨋날(마블바~브룸 620여㎞)

이른아침 디그레이 강변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울창한 숲을 이룬 나무들과, 폭우 때 물살에 쓰러진 고목들, 물을 찾아 날아드는 흑고니 등 조류들이 아침 햇살 속에 매혹적인 풍경을 펼쳐 보였다. 애버리지니 마을 야리에로 드는 흙길 옆에서 암각화가 새겨진 거대한 바위무리를 찾아냈다. 다양한 기호와 뱀을 연상시키는 음각 무늬들이다. 뱀은 애버리지니가 물을 끌고 다닌다고 믿으며 신성시한 동물이라고 한다. 암각화는 바위무리 거의 전체에 새겨진 듯하나 대부분 바위 표면이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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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야영을 했던 마블바의 디그레이강.
다시 한없는 흙길을 달려 브룸으로 향했다. 달려도 또 달려도, 오는 차 한대 없고 가는 구름 한쪽 없는 흙먼짓길이 이어졌다. 이리저리 뻗은 작은 산맥을 연상시키는 바위줄기들이 지평선 앞으로 다가왔다. 박문호 박사는 “바다 밑에서 옛 지층을 뚫고 솟은 용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붉은 바위 산맥들은 흰 스피니펙스 풀들이 가득 깔린 광활한 벌판 위로 끝없이 줄달음쳐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군가 구름이다! 하고 외쳤다. 나흘 만에 만나는 구름. 손수건만한 구름이 하늘 한쪽에 꺼질 듯이 떠 있었다.

마침내 흙길을 벗어나 포장된 2차선 해안도로로 들어섰다. 샌드파이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잠시 쉬며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온몸에 붉은 황토를 뒤집어쓴 채 제대로 씻지도 못했지만, 3박4일 하루하루가 색다른 경험으로 가득 찬 여정이었다. 이제 320㎞만 가면 목적지인 소도시 브룸이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아늑한 숙소에 짐을 푼 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이를 닦고 까슬까슬한 타월을 쓸 것이다. 깨끗한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서호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