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틑날 아침, 어젯밤의 노란 달이 하얗게 변해 남쪽 하늘에 떠 있었다. 동쪽에는 태양이 서쪽에는 달이, 동시에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몽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리라. 야트막한 동산 위에는 사람들 몇몇이 서 있었다. 가까운 게르에서 올라온 몽골 사람들이 산책하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위에서 무엇을 하였는지는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텐트에서 지낸 김혜수님이 풀밭에서 걷다 주웠다며 내 앞에 디민 지폐가 있었다. 밤이슬이 묻었는지 지폐는 잔 흙이 묻어 있었고 약간 축축했다. 나는 신기하게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실수로 떨어뜨려서 잃어버린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김혜수님은 그게 아닌 것 같다고 추측했다. 가이드인 유로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여기 사는 사람들이 복을 빌며 바람에 날린 거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김혜수는 그제서야 그 지폐를 다시 풀밭에 던져두고 왔다고 했다. 광활한 초원에서 사는 몽골 유목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박문호 박사의 아침 강의는 유목국가에 관한 거였다. 유로님이 지도를 펼쳐 놓고 앞으로 가게 될 행선지를 설명했다. 오르콘강이 어디 있고 사람들이 어디에 모여 도시를 이루며 살았는가를 어눌하지만 한국 말씨로 또박또박 전달했다. 또한 돌궐문자가 중요한 이유는 문헌은 없고 비문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위그르족은 문자가 있었으며 정주민이 있어서 성터가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유목민족의 본령은 원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인데 흉노족은 무덤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BC1000년 이후에 유목이 발생하였으며 이들은 농경생활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가뭄으로 인해 소와 양 등을 키우며 목축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유목국가들은 한반도의 상고사와 밀접하게 역사적 맥락을 같이한다.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그르, 키르키즈 , 거란, 몽골 여진. 박사님은 특유의 암기법으로 리드미컬하게 유목국가들을 암기하게 만들었다. 몽골의 학습 탐사는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역사와 종교, 지질, 기후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강의가 이루어졌다. 나의 경우, 역사는 관심이 덜하였지만 몽골에 온 이상 몇 가지는 꼭 알아야했다. 외웠다가 까먹을망정 연대기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우리의 역사도 바로 잡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각자 정해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가는 길에 우리 탐사 차량이 멈춰 선 곳은 모래알이 고운 사막지대였다. 다른 여행객들도 그 앞을 지나다니는지 어린 소년들이 낙타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낙타를 타도록 권유했다. 우리 일행 중의 몇몇 사람은 낙타에 오르기도 했다. 앞 다리의 관절을 굽혀 몸통을 낮춘 낙타 등에는 두 개의 육봉이 솟아 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에 걸터앉는다. 낙타는 길이 잘 들여진 것 같았다. 누구는 낙타를 타고 모래 둔덕까지 올랐다. 생김새가 꼭 올리브나무같은 자작나무 주변을 나는 어슬렁거리며 살피고 모래 위를 거닐었다. 보라색 엉겅퀴꽃이 군데군데 나 있기도 했다.


그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초원에 자리를 폈다. 점심식사는 간단한 샌드위치였다. 몽골 초원 특유의 허브향이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 주위를 감쌌다. 이날 경험한 사막풀의 따가움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