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은 감각을 통해 세계를 본다. 자연과 인문은 근본걱으로 제한요소가 따르며 같을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이다. 그러니까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천체망원경을 발견한 400년 전 이후로부터 뉴턴의 만유인력 발견까지는 그야말로 고전물리학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자연과학이 크게 발전한 근대 과학의 역사는 300년 남짓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그렇게 감각의 영역을 벗어나면서 상대적 제한이 따랐다. 박문호 박사는 아침 강의 시간에 자연과학을 대하는 접근 방식은 ‘의지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세계를 관통하는 수식이 따른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감각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생각의 영역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뚝이란 곧 기억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의식의 영역이 긴장상태이어야 하고 셀프 중심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감각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저멀리‘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모든 움직임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천문학 강의는 이동 중 초원에서 쉬는 동안에도 계속 되었다. 별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전반적인 큰 축을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혜성이 모두가 실은 별이라는 점이다. 메시아의 M을 붙인 은하가 110개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깐 딴생각을 했다. M83 이라는 밴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이지만 'Starwaves'란 곡을 반복 재생 시켜 놓고 글을 쓸 만큼 좋아했다. M81은 지금 살아있는 블랙홀이란 박문호 박사의 말에 M83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M31, 안드로메다는 3000억 개의 별과 2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더 재밌는 이야기는 지구의 온도가 30억 년이 지난 후에 3000도가 된다는 것이다. 별은 수소, 헬륨, 카본, 철 등의 융합을 한다. 수소 융합을 하는 태양의 코아는 70퍼센트가 양성자이다. 양성자가 수소헬륨 융합 과정에서 복사에너지가 나오는데 코아가 핵융합을 멈추게 되면 이때는 복사에너지가 나오지 않게 된다. 중력만 남고 코아가 탄소로 변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백색왜성 즉, 다이아몬드로 변하는 것이다.


천문학 강의를 듣고 초원을 산책했다. 소와 말, 양떼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사람들이 하나둘 가까이 다가서자 가축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어머니로 보이는 몽골여인과 두 남매가 풀밭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난 발걸음을 옮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몽골말로 여인이 내게 말을 했고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뗄감으로 쓸 나무를 캐고 게르로 돌아가는 중간에 풀밭에서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쪽에 잔 나뭇가지 한 더미가 수북하게 있었다. 내가 줄 것이라고는 가방에 든 군것질거리였다. 말총머리를 한 어린 남자애와 누이는 좋아라 한다.


김현미 이사의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났고 사람들은 다시 한 곳에 모였다. 야크 치즈를 내놓았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치즈맛이 괜찮았다. 풀밭에서 주운 돌을 들여다보고 박사님은 돌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그 다음 차로 이동해서 간 장소는 흉노 무덤지와 암각화였다. 유로님은 너른 초원 들판에 우리 모두를 풀어 놓고 여기 어딘가에 사슴 암각화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딱히 어딘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한다는 것. 신양수님이 망원경으로 금방 찾아냈다는 말이 전달됐다. 참 재미있는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사슴 암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바위를 덮은 노란색 지의류가 먼저 눈에 띄었고 그 위에 벽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잘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난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솔직히 나 혼자 떨어져 집결 장소로 가려고 했다. 에둘러 걷더라도 벼랑 끝까지 올라가는 건 자신이 없었다. 앞서 걷던 나였지만 금세 쳐졌고 일행 대부분 사람들이 이미 꼭대기까지 가 있었다. 김현미 이사가 내 이름을 부르며 힘내라고 했지만 진짜 힘이 많이 들었다. 한 이년 전에 골절상을 입어서 왼쪽 발목이 시원찮기도 했다. 다리에 힘주어 디디려니 발짝이 떼지지 않았다. 그때 누군지 모르겠지만 손을 잡아 줘서 쉽게 올라갔다. 하지만 워낙 긴장하고 오른 탓에 사슴암각화는 못 봤다. 정상 위에 올라서서 사람들에게 묻자 바위 타고 올라오다 보면 중간에 있었다는 것. 아뿔사! 인생이란 어떤 경우 묘하게 꼬일 때가 있다. 기껏 힘들여서 올라왔는데 이미 지나쳤다니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흉노의 무덤과 암각화는 이날 탐사에서 백미였다. 적색목곽분의 무덤에서 위그르나 돌궐에는 없었던 부장품들이 발견된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이 있던 것으로 간주된다. 이날 무덤들을 둘러보고 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없는 지평선과 능선이 가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내리막길에서 몬 말머리뼈는 또 어떠했나. 죽은 고사목의 잔가지처럼 여기저기 아무렇게 굴러다니는 동물의 뼈들도 야생화나 바람 같은 존재로 남는 곳이 몽골의 초원이다.


바람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한 것은 저녁 텐트를 치면서였다. 조장희 박사님을 비롯해서 최진석 교수님 등 선발로 먼저 출국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마지막날 저녁이었다. 유로님과 기사님들이 한쪽에서 양고기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고 우린 조 별로 텐트를 쳤다. 저쪽에서 먹장구름이 비바람을 몰고 왔다. 우리 조의 텐트는 출입구 쪽의 지퍼가 올라가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는데 엄청난 폭우가 불어닥쳤다. 손을 쓸 수 없었다. 어찌나 바람이 세던지 우리 조 대원들은 각자 서 있던 자리에서 텐트를 붙들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때 저절로 ‘탱그리!’라는 말이 나왔다. 왜 이 몽골 땅의 사람들이 샤머니즘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강짐작이 갔다. 비가 지난 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쌍무지개가 걸리고 코발트 블루의 하늘이 열렸다. 자연은 잔인하다. 늦은 저녁으로 먹은 양고기 요리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