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장희 박사님의 강의가 잠깐 있었다. 오디오를 켜면 나타나는 주파수 표시를 예로 들어 프리에 이론을 쉽게 설명해 주셨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 학생이 천 명 있다고 가정했을 경우, 1미터부터 180미터까지 학생들을 키 큰 순서대로 보고싶다 하자. 이것을 시간의 함수를 분석하여 스펙트럼으로 만들어 체계화 시킨다. 머리를 찍으면 파동으로 나타나는 데 1차원 시간부터 3차원까지 시간과 주파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뇌 속을 찍어 나타난 것이 엠알아이라고 한다.


먼저 귀국하실 분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어디쯤에선가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랜만에 보는 풍족한 물이었다. 나는 서슴없이 양말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다음 개울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차긴 하였지만 샴푸를 꺼내 머리를 감았다. 두 번 정도 비누칠을 하니 그제서야 거품이 나왔다. 머리를 감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날 먹은 점심은 꿀맛이었다.


아르항가이 산맥에 오르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 것 같았다. 높은 고산지대에 산다는 야크가 눈에 띠게 많이 나타났다. 고기맛이 질기다는 유로님의 설명이 있었지만 야크에서 얻는 치즈는 맛이 괜찮았다. 한참 잘 가던 선두 차량이 멈춘 곳은 산에 사이프러스 나무로 보이는 숲이었다. 뒤를 이은 버스는 잠시 뒤에 시동을 아예 꺼 두었다. 산을 넘고 물을 가르며 오른 산길이었기 때문에 좀 기다리다 보면 버스가 출발하겠지, 생각했다. 깊은 계곡물이 버스 차량의 내부를 통해 몇 차례 흘러들어왔고 출입문턱에는 물이 고여 있기도 했다. 자갈돌을 헤치며 울퉁불퉁한 산악을 타고 올랐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 탈이 없으리라 여겼다. 다만 지체하는 시간이 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마도 서너 시간 이상 발이 묶인 채로 있던 것 같다.


차 안의 사람들을 다 내리게 하고 남자들은 앞선 차로 옮겨 가기도 했다. 차의 뒷꽁무니를 밀고 제법 기다란 나무기둥을 옮겨다 지렛대로 써보기도 하였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각 흩어져 사진을 찍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좁은 개울가를 걸었다.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는데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차량들은 움직일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도 어떻게 되겠지 했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웬만해선 어렵다 말하지 않는 박사님이 이번에 달랐다. 사태가 심각하다, 어렵게 됐다고 말하는 박문호 박사의 근심어린 표정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습지에 빠진 버스를 밀어올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체체를렉에서 장을 보면서 일행이 먹을 식자재가 너무 무거웠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습지인 진흙탕에 차 바퀴가 쳐박혀서 꼼짝달싹 하지 않으니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버스에서 각종 장비들을 숙영지까지 직접 손으로 옮겨 놔야했다. 손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집이 그리웠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온 게 엄청 후회되었다. 그러나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시린 손으로 텐트를 치고 모자를 더 눌러썼다. 어차피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참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 텐트를 치고 있는 데 저녁 준비를 하는 곳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세상에나 그렇게 달달한 김치찌개 냄새는 처음 맡아 본 것 같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옷이란 옷은 다 껴입었다. 누군가 모닥불을 한쪽에 피워 놨다.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고 불가에 갔다. 따뜻한 온기가 좋았고 장작타는 소리가 위안이 되었다. 그날은 너무 추워서 하늘의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