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일을 조금 더 써야겠다. 습지에 갇혀 발이 묶인 최악의 상황을 맞은 날이라선지 저녁 강의도 생략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조 별로 정해진 텐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찌감치 들어가 배낭을 푼 것 같았다. 두런두런 나지막한 대화가 오갈만도 했지만 이날은 기분이 영 아니어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소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타닥타닥, 깊은 고산지 밤의 적요를 깨고도 남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시끄러운 문명의 소리가 들렸다. 산정까지 버스를 끌어다 놓을 렉카차가 어느새 올라온 것이다. 무슨 탱크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텐트 주위를 돌았다. 그 바람에 장작타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이어, 텐트 밖에서 또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이 흘러 나왔다. 좀도둑이 있어요. 중요물품 잘 챙기세요. 아니 세상에 이 깊은 산중에 무슨 도둑이 있다는 것인지 속으로 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가깝게 마을이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이틑날 아침 누구에게 듣긴 하였다. 렉카차가 빠른 시간에 도착할 정도면 마을이 가까운 건 사실일 터. 아무튼 남자대원 몇 사람이 밤을 꼬박 새며 불침번을 섰다는 박문호 박사의 말씀을 듣고 참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누룽지를 먹었다. 산중에서 먹는 음식은 참 맛있었다. 버스는 이미 산꼭대기에 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모두 걸어서 올라가야했다. 박문호 박사가 앞장을 섰고 차례차례 뒤를 따랐다. 나도 발을 떼었다. 숙영지가 습지라는 것을 알고 있긴 했다. 그러나 잡풀이 우거진 너른 벌판에 물이 가득할 줄은 미쳐 깨닫지 못했다. 습지의 진면목을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바싹 마른풀들 같은데 발 디뎌보면 물이 운동화의 발등까지 차올랐다. 앞서 가는 사람들의 등 뒤를 망연자실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등을 약간 숙인 채 일정한 발걸음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른 땅을 밟고 가는 것인지 물에 젖은 발을 이끌고 가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한참동안 한 자리에 서서 울긋불긋한 아웃도어 옷 색깔을 하나둘 눈으로 가려내고 있었다. 내가 봐도 참 한심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처럼 능선자락의 중턱쯤엔 이르러 가야할 나였으나 이미 끝을 놓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다 숙영지에서 뒤늦게 출발한 몇몇 사람들과 걷는 속도가 비슷해졌고 등산화를 신은 남자분의 뒤를 따를 요량으로 함께 온 두 사람 뒤에 따라붙었다. 앞서 걷던 사람도 별로 좋은 자리를 내디디지 못하고 있었다.


발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발을 떼었다. 마른 잡풀이 꺾이고 뉘어지기는 했으나 바닥에는 시커멓게 보이는 물이 흥건했다. 한순간 발바닥을 차갑게 적시는 물의 존재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내 운동화는 발등쪽에 구멍이 숭숭 뚫린 매쉬 조깅화였기 때문에 물이 쉽게 스며들었다. 발바닥으로 전해 온 싸한 차가운 물의 느낌은 너무나 강렬해서 뭐라 표현하기가 참 애매하다. 그 또한 감각의 영역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발가락 끝에 당도한 차디찬 물의 느낌을 아마도 몸의 세포는 기억하리라는 것. 쨍하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전날에 이어 또 한 번의 후회가 거듭되려는 순간 발생한 일이라 더 또렷한 것 같다.


참 돌이켜 보면 그날 아침의 트랙킹은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왜냐면 나는 걷는 것 자체를 워낙 싫어해서 산행도 안하고 산책도 즐기지 않던 터라 더하다. 하지만 산길을 오르며 한 번씩 뒤를 내려다본 아르항가이 산맥의 그 부드러운 능선은 내 눈 속에 박혀 있다. 맑은 하늘과 나무와 바람과 아침 햇살에 빛나던 에델바이스의 몸짓까지....

산정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박사님을 중심으로 둘러 서 있었다. 하지만 난 좀 지치기도 해서 버스 안에서 쉬었다. 운동화를 벗어보니 새로 사간 하얀 양말이 황토물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젖은 양말은 버려졌지만 젖은 순간의 발가락 느낌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억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