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부터 버스는 내리막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높다란 산은 장관을 이루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는 다른 아름다운 풍광에 입이 다물리지 않았다. 저 멀리 바라보고 사물을 응시하는 것은 곧 사유로 뻗어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창공을 날던 독수리가 땅 위의 타르바(청솔모처럼 생긴 쥐)를 날카로운 부리로 낚아 채 먹잇감으로 삼고, 죽은 동물의 살점을 들짐승과 나란히 뜯는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응시하게 되는 것.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듯했다.


전날 습지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산자락에 피어 있는 에델바이스를 보았으며 그렇게 걷기 싫어하는 내가 그것도 서울의 남산 자락이 아닌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의 몽골 2000고지의 산을 탔을까. 몽골에서 돌아와 사람들에게 흥분해서 처음 꺼낸 말이 아르항가이의 트렉킹을 꼽았다. 그만큼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높은 고지의 산악지대여서 야크떼가 참 많았다. 등에서 길게 자라 내려온 털이 땅바닥까지 닿을 듯 말 듯했다. 무슨 숫사자의 갈기를 보는 것처럼 야크의 품새는 위용을 자랑할 만했다. 어떤 야크는 버스가 이상한 물체로 보였는지 한참동안 눈을 떼지 않고 차가 멀어질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았다.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야크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높은 산록에서 풀이나 뜯어 먹으며 콧바람이나 풀풀 일으켰을 야크가 버스 볼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그건 게르에 사는 몽골인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정차한 곳은 몇 개의 게르가 있는 너른 벌판이었다. 유로님 덕분에 우리는 게르 체험을 이곳에서 하게 되었다.


게르에는 조 별로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여기저기 살폈다. 게르 옆에는 짚차가 있었고 어린 소년은 춥지도 않은지 얇은 반팔 옷차림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년 주위를 둘러싸고 도끼질 할 때마다 작은 탄성을 냈다. 그때 어떤 분이 앞으로 나서 도끼로 나무를 내려쳤지만 한 번에 갈라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옅은 미소를 띤 소년은 의기양양해서 더 힘껏 도끼를 내리쳤다. 순박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게르 지붕에는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 하나 있었다. 누렇게 생긴 큼지막한 고무풍선 같은 게 올려져 있었다. 그게 염소의 위라는 사실은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징키스칸 시대에 병사들이 굶주리지 않고 전장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던 것은 치즈 등 유제품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바로 염소나 양의 위에 담았다고 했다. 쌀 10 킬로그램은 거뜬히 들어갈 만한 부피였다.


이러저러한 게르의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특히 이날 게르에서의 김현미 이사의 시 낭송은 빅 이벤트였다. 몽골인의 영혼이 깃든 우보를 보는 것보다 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몽골인들은 손님에게 귀한 술을 내주는 게 풍습이라고 했다. 소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맑은 술이었다. 맛을 보라 권해서 나도 몇 모금 마셔 보았는데 수태차 고유의 풍미가 있는 독특한 맛이었다. 김현미 이사도 잔을 받쳐 들고 몽골의 유명 시인인 나착도르지의 ‘나의 고향’이란 시를 천천히 또박또박 읊어 내려갔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에 아름다운 싯구가 하나하나 녹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둥근 천장이 반쯤 열려 파란 하늘을 번갈아 올려다보며 나는 시를 음미했다. 그러다 뭔지 몰라도 헝겊 타는 냄새가 나서 고개를 떨궈 보니, 내 옷이 연통에 닿아 눌어붙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어딜 가나 칠칠치 못한 나. 어휴~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게르에 사는 몽골 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헤어졌다. 그들도 버스를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 깊은 산중에 버스가 오리란 건 짐작도 못한 일이라고 했단다. 아마 우리들을 신기하게 볼만도 했겠다싶다.

계속 버스는 달렸고 몇 호차인지 계곡물에 빠지는 바람에 신발을 들고 개울물을 건너는 불상사도 있었다. 박사님은  쉬어 가는 시간에도 지질의 형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숙영지로 지목된 곳은 절반은 양지이고 절반은 음지였다. 산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그늘을 만들어 냈던 것. 저녁 식후에는 별 자리 공부가 본격적으로 있었다. 침낭을 둘러쓰고 강의를 들은 우리와는 달리 박문호 박사는 프로젝터를 켜놓고 춥지도 않으신지 목소리가 높았다. 주계열성 별자리는 물론이고 온도와 태양의 밝기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낸 HR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었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 그림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