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 박사는 경북대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재직 중에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전자공학 전공자가 왜 자연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고지식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런 우리에게 박문호 박사는 일상과 자연과학의 관계성을 보여주었다.


인터뷰-사진홈페이지-업로드용.png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Q. 박사님의 전공인 전자공학과 다른 분야를 공부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전자공학 이외의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한 게 가깝게는 10년, 길게는 대학 졸업하고 30년 정도 됐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전공 공부하기 바빴고, 유학 다녀와서 박사학위 받고 본격적으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뇌 과학이나 우주론을 공부하긴 어렵지만 전자공학을 공부한 사람은 수학이나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접근이 쉬웠습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듯이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널목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보는데, 그 정도 집중력으로 공부를 하면 10년 내로 두세 군데 전문가가 되겠죠. 스마트폰만 안 봐도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나요? 저는 그 사소한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습니다. 제가 관심을 쏟은 학문은 신경해부학을 포함해 약 5가지 분야가 있어요. 꾸준히 하다 보니 뇌 과학, 우주론, 암석학 등 많은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죠.

 

Q. 오랜 시간 꾸준히 공부하신 박사님만의 특별한 공부법이 있으신가요?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저는 대부분 전자공학과 우주론같이 서로 관계가 없는 학문을 공부해요. 관계없는 분야는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분야에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죠 . 우 리 가 ‘ A , B , C ’를 배울 때 이 해하고 배우지 않죠? 어떤 학문이든 알파벳 배우듯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부하자마자 이해하기를 원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해를 강요합니다. 제가 강의를 길게 하는 편인데, 처음 오는 회원들은 4시간 수업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해되는 것이 없어 어렵다고 해요. 결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니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 이해하지 마세요. 어렵다는 개념도 사라질 겁니다. 이해는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는 겁니다. 물리학이 이해하고 싶다고 이해되는 학문인가요? 이해하고 싶은데 안 되면 반대로 이해의 손을 놔버리면 됩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기억하세요. 이해는 내가 기본지식을 기억할 때, 기억이 형성될 때 창문에 바람이 들어오듯이 우리한테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해보단 기억이 먼저인거죠.

 

Q. 우리가 평소 들어온 ‘이해하면서 공부해라’라는 말과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기억이 먼저다”라는 말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다른 건 몰라도 기억은 외주를 주면 안 됩니다. 한 나라의 국방을 외주를 주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로마제국이 용병한테 국방을 맡겨서 망한 것처럼 인간도 기억을 다른 데 맡기면 안 돼요. 기억은 곧 감정이라, 감정이없으면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요. 만약 여러분들이 입자물리학의 전자나 양성자, 구성요소와 입자의 속성을 10가지만 암기한다고 하면 물리학이 금방 좋아 질 겁니다. 또 당장 시를 300편 암송하면 시인이 되지 말라고 해도 시인이 되겠죠. 기억과 감정은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겨 붙어있습니다. 제가 자연과학을 특별하게 다루는 것도 다 이 분야에 대한 기억 때문이죠.

 

Q. 자연과학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공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에 대해 직접 연구하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연구하거나 논문을 쓰는 일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몫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건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거예요. 특히 뇌 과학에 대한 논문은 아주 많이 무료로 게재되어 있습니다. 근데 아무도 보지 않죠. 제가 수십 편의 논문을 쓰는 것보다, 많은 논문을 읽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더 중요한 일입니다. 구슬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구슬로 목걸이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역할이 분명히 다르죠. 근데 99%의 사람들이 구슬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슬을 가지고 목걸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그런데 저는 목걸이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에요.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Q.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이하 박자세)의 철학은 무엇인 가요?

박자세의 철학은 마라톤에서 개념을 얻었습니다. 마라톤은 힘들어도 지금까지 수십만 명의 사람이 뛰었죠. ‘힘든 마라톤 도 끝까지 완주하는데, 왜 공부를 마라톤처럼 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학습 마라톤’이라는 개념을 만 들었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7~8년 정도 독서운동을 했는데, 그곳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서 15시간씩 공부하는 걸 시도했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전 주로 연속강의를 하는데, 강의하기 전에 몇 가지 스스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강의를 할 때 파워포인트 대신 4시간 강의를 다 암기해 판서를하고, 매년 강의의 50%이상은 작년과 다른 새로운 주제로 강의하는 겁니다. 10년동안 이 원칙을 지키면서 저도 매년 마라톤을 하고, 따라오는 사람들도 헉헉거리지만 함께 달리고 있는 거죠. 이건 마치 길을 내는 것과 같아요. 누군가는 길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들어오니까요. 이런식으로 수많은 자연과학의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Q. 박자세는 각종 심포지엄, 국내외 탐사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과학 리딩모임’은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과학 리딩모임은 기본적으로 3주간 이론적인 강의를 하고, 한주는 지질답사를 나가서 현장을 연구하는 활동입니다. 이 과학 리딩모임이 지질학자가 하는 지질답사와 다른 점은 현장으로 나가서 식물학, 암석학, 생화학을 강의한다는 겁니다. 과학리딩모임은 자연의 모든 것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게 특별한 거죠. 모두가 자연과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연은 분리된 것이 아닌데, 분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어릴 때 광합성과 호흡을 다른 단락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두 가지의 결합관계를 잘 알지 못합니다. 광합성과 호흡을 분자식으로 보면 순서만 바뀌었지 완전히 대칭이에요. 여러분들이 어딜가든 항상 있는 게 있습니다. 공기 같은 절대적인 건 빼고, 극단적인 환경에 가도 있는 건 바로 ‘돌’이에요. 서울의 빌딩 벽, 집, 화장실, 목욕탕, 지하철 등 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산소가 어디에 가장 많나요? 공기 나 물속을 떠올리겠지만, 그건 지구가 가진 산소 중에 0.1%도 안 돼요. 99%가 암석 속에 있습니다. 그걸 분자식으로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르는 겁니다. 이런 개념들을 시험 문제나 교과서에서만 보는 것이 문제이죠. 그걸 자연 속에서 터득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겁니다. 여러분들 풀에 손 베인적 있죠? 풀을 돋보기로 확대하면 풀 끝에 유리가 보여요. 그게 바로 SiO2(이산화규소), 바로 ‘돌’이에요. 제가 주장하는 게 바로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겁니다. 사실상 자연을 가장 빨리 만나는 방법은 서울의 빌딩에서 석회암, 대리석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Q. 최근 박자세에서는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 강의도 시작했는데, 주로 어떤 주제로 강의 하시나요?

해외학습 탐사를 주로 서호주 사막, 몽골 고비사막으로 19번 정도 다녀왔습니다. 몽골의 흉노, 선비, 돌궐, 거란 부족들의 유적지를 찾아가서 조사하는 거죠. 이런게 바로 역사입니다. 올해 처음 공식적으로 세계사를 4시간 동안 강의했습니다. 제가 하는 세계사는 역사학자들이 접근하는 방식과는 달라요.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건 잉여생산물이 있어야 하죠? 잉여생산물은 결국 토양과 관계가 있습니다. 토양은 지질이고, 지질과 암석을 해양이나 기후 관점에서 보는 거예요. 만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서해가 없었습니다. 빙하기의 해양, 기후, 지질을 모르고는 이제 점점 역사도 어려운 상황이 될 겁니다. 그래서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은 세계사를 더 넓게 접근하는 거죠. 저는 자연과학을 토대로 한 세계사를 강의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사진.png

 

대중 과학화, 그 끝은 어디인가

Q.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학의 대중화’라고 말하는데, 박사님께서는 ‘대중 과학화’를 주장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위장에 탈 난 사람은 죽을 먹는데, 그 사람이 일년내내 죽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치아가 약해지겠죠.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대중은 대부분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과학운동은 과학이 대중에게 내려오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과학한테 대중 의 눈높이를 맞추라고 요구하죠. 그것이 흔히 얘기하는 ‘과학 의 대중화’입니다. 과학은 ‘미분’, ‘적분’과 같은 어려운 기호를 쓸 수밖에 없는 굉장히 어렵고 함축적인 학문입니다. 그런데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과학의 수준을 낮춰버린다면, 중요한 핵심이 다 빠져나가는 거죠. 과학은 너무 어려우니 쉽고 재밌게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거밖에 안 됩니다. 좀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과학은말그대로 쉽지않은 부분이 있어요. 예를들어, 깜깜한 밤에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가로등 밑, 자기가 보이는 쪽만 보는 것과 같은 겁니다. 랜턴을 들고 이곳 저곳 다 비춰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과학이 대중화하면 안 되는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자연과학을 공부하셨는데, 일상 속 에서 과학의 성취감을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서울 곳곳에 있는 대리석 속에서 암모나이트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전 그걸 직접 발견 했고, 그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제대로 과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서 느낍니다. 서울의 지하철이나 고급빌딩에 있는 대리석에서 중생대 바다를 느낀다는 것이 바로 진정한 과학입니다. 그 바다를 직접 찾아 갔을 때 느끼는 것 보다 몇 배 이상의 감동이 오는 것 이죠. 그 래서 전 도시 속에서 암석학을 하고 싶습니다. 그걸 이해해야 완전히 자연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때부터가 진정한 과학의 시작입니다. 과학지식이 많은 것과 과학적인 건 다릅니다. 과학적인 건 과학지식이 없어도 가능해요. 하지만 과학자는 많아도 과학적인 사람은 드물어요. 저는 그 중 과학적인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