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박문호 이사장                                                               

 등록 :2019-02-07 18:10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박자세) 이사장 박문호 박사. 인터뷰 도중 기자는 박 이사장의 말을 몇 차례 끊어야 했다. 그의 입에서 쉴 새 없이 과학 이야기가 흘러 나와서다. 가르치는 것을 진정으로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난 뒤 박자세가 왜 잘 나가는 지 얼핏 알 것 같았다.                               강성만 선임기자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박자세) 이사장 박문호 박사. 인터뷰 도중 기자는 박 이사장의 말을 몇 차례 끊어야 했다. 그의 입에서 쉴 새 없이 과학 이야기가 흘러 나와서다. 가르치는 것을 진정으로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난 뒤 박자세가 왜 잘 나가는 지 얼핏 알 것 같았다. 강성만 선임기자


“대전 집에 있는 책 7천 권 가운데 2천 권이 대학 교재로 쓰이는 과학 교과서입니다.”


‘대중의 과학화’를 목표로 13년째 시민학습모임을 이끄는 박문호 박사 말이다. 그가 이사장을 맡은 사단법인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은 회원이 8천 명이다. 이 단체의 모태는 2007년 시작한 천문우주 모임이다. 2009년과 2010년엔 ‘137억 년 우주의 진화’와 ‘특별한 뇌과학’ 특강을 대학 강의실을 빌려 시작했다. 그간 각각 130회와 74회를 해온 두 강좌엔 매번 100여 명의 수강생이 참석했다. 제주도, 진도에서 오는 수강생도 있었단다. 최근 강의록을 정리해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김영사)를 펴낸 박 이사장을 30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1월부터 3월까진 과학리딩 모임을 합니다. 과학을 깊이 공부하고 싶은 회원들 모임이죠.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가 주로 강의를 합니다. 50명 정도 참석해요.” 과학리딩모임은 올해가 4년째다. 앞서는 주로 뇌를 공부했고 지금은 지질학 공부를 하고 있단다.


이번에 낸 책을 보니 대학 교재 못지않게 건조하다. 낯선 과학 용어와 개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지간한 과학 지식이 있더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누굴 겨냥해 썼는지 물었다. “많은 사람이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생명의 두 기둥은 광합성과 호흡이죠. 우리는 다 세포에서 옵니다.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나 인간이나 다 마찬가지죠.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호흡과 엽록체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을 알면 생명 공부는 끝이죠.”


2년 전에도 강의록을 모아 <박문호 박사의 뇌 과학 공부>란 책을 냈다. 난이도도 이번 책과 비슷하다. 그래도 6천 권이나 나갔단다. “과학책들을 보면 어려운 부분은 생략해요. 읽든 안 읽든 누군가는 어려운 내용이 담긴 책 한 권은 써야 합니다. 공부를 피하지 않아야죠.”


그가 보기에 ‘과학 공부가 어렵다’는 인식은 편향적인 인문학 공부의 결과이다. “공부를 안 하고선 어렵다고 해요. 사회가 너무 인문학 위주로 흐르니 자연과학을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거죠. 주기율표(원소를 구분하기 쉽게 성질에 따라 배열한 표)나 양자역학 용어 정도는 알아야죠. 그래야 합리적인 사회가 되죠. 철학 공부를 했단 사람들도 아미노산이나 단백질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몰라요. 이건 세종대왕을 고구려 시대 인물로 아는 것과 같아요.”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표지.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표지.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을 알려면 먼저 동물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천만 종 생명체 가운데 하나죠. 물론 유니크(독특)하죠. 인문학은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잖아요. 이는 인간이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학문이 아니죠. 학문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죠. 인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살피는 지혜와 같은 것이죠.”

‘문과라 죄송하다’는 말이 나온 지도 꽤 됐다? “한국 사회가 압축 성장하면서 공학은 발달했어요. 하지만 자연과학은 아닙니다.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이 약해요. 너무 감성적이고 추상적이죠.”


그는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접촉 지향적’이라면서 이게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 한 요인이란 말도 했다. “우린 만져야 직성이 풀리죠. 접촉 지향적 문화죠. 이집트유물 전 같은 곳에 가면 만져야 느낌이 온다고 꼭 작품을 만집니다. 만지는 순간 대상은 사라지고 관찰되지 않아요. 감정은 풍부하지만 객관적 사고가 힘들어요. 객관적 사고는 거리를 두고 면밀히 관찰해야 생깁니다. 그래야 기하학적 사고가 들어가죠. 우린 논리성이 부족해요. 한국인의 인간관계가 너무 밀접하고 변화무쌍한 것도 것도 과학적 사고엔 부정적이죠.”


13년째 ‘대중 과학화’ 학습모임 이끌어
회원 8천명 대부분 30~70대 직장인
서호주·몽골 등 해외학습탐사 19차례
“과학 논문 공부하는 일반인 모임 목표

과학적 가치 확산해야 합리적 사회 돼


최근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내


지난 5년 동안 ‘뇌 특강’ 교재는 전공 논문이었단다. “처음엔 과학 교과서를 읽었고 그 뒤론 논문으로 했어요. 우린 과학 논문으로 공부하는 세계 유일의 시민학습 모임입니다.”


지난 학습모임 활동을 두고 박 이사장은 ‘과학문화운동’이란 표현을 썼다. “우린 지금 너무 정치와 종교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사회과학적 담론이 팽배하죠. 과학 교과서나 논문엔 관심이 없어요. 우리 운동은 과학 교과서 읽기에서 시작했어요. 일반인이 과학 논문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수준을 높이는 게 목표입니다. 회원 중 최소 20여 명이 뇌 분야에서 그런 수준에 올랐어요.” 일반 회원들이 직접 발표하는 모임도 2007년 이후 100차례 이상 꾸렸단다 “50회 이상 발표한 분이 20여 명이나 됩니다.”


운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더 좋은 증거가 나오면 기존의 신념을 바꾼다는 것, 그게 바로 학습기억이고 과학적 세계관이죠. 과학적 세계관을 확산해 합리적 사회를 이루는 게 목표입니다.”


그는 지난해 8월 30년 이상 근무해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퇴직했다. 정년을 3년가량 앞두고 나왔다. 왜? “2007년부터 회원들과 19차례 해외학습 탐사를 갔어요. 이 가운데 4번은 <교육방송> 전파를 탔죠. 작년 1월 방영된 칠레 편 탐사 땐 20일가량 휴가를 냈어요. 1년에 두 번은 회원들과 해외 탐사를 갑니다. 회사 일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간 서호주 사막을 6번, 몽골 고비 사막을 5번 갔단다. “앞으로 사하라 사막과 아이슬란드도 가려고요. 최근 서호주 탐사 땐 30명이 갔고, 몽골엔 60명이 가기도 했어요.” 그가 이끄는 탐사 팀은 3개월 전부터 참가자들이 조를 나눠 공부하고 탐사 뒤에는 그 결과물을 책으로 내왔다. 왜 서호주를 6번이나? “별 보기론 세계 최고의 장소죠. 야영하면서 별을 봅니다. 낮엔 제가 지질이나 암석학 강의를 하고 밤엔 별을 보면서 천문학 강의를 하죠. 35억 년 전 시아노박테리아가 물분해 광합성으로 산소를 내뿜으면서 생명이 탄생했잖아요. 그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박문호 이사장이 세계 지도를 그리고 있다.
박문호 이사장이 세계 지도를 그리고 있다.


수강생 대부분은 30~70대 직장인이란다. “퇴직한 분도 계시죠. 다양한 단체를 거치며 철학 인문학 종교학 등을 공부하고 허전함을 느낀 분들이 많아요. (인문학은) 추상적 사고를 많이 하잖아요. 물리적 기반이 약하죠. (회원들은) 뭔가를 분명히 알고 싶어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야 예측 가능성이 커지죠. 저는 강의를 할 때 ‘그냥 하자’ ‘그냥 풀자’고 합니다. 주기율표만 30시간을 강의하기도 해요.”


서울 연구실은 6년 전에 마련했다. 상근자도 2명 두고 있다. “운영비의 70%는 후원금, 30%는 제가 하는 특강 강의료 등으로 충당합니다. 매년 300만원씩 고액 후원하는 분들도 5분 정도 됩니다.”


그의 공부 원칙은 독특하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반복 암기하자. 토론은 공부에 방해된다. 그림이나 도표 암기가 공부의 핵심이다.’ 그에게 2년 새 나온 책 두 권에 담긴 세부 내용과 그림을 다 외울 수 있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자 “외우고 싶은 열망과 욕구” 때문이란다. “저는 강의 때 단 한 번도 파워포인트 문서를 띄워 본 적이 없어요. 화이트보드에 직접 그림과 도표를 그리면서 가르치죠.”


“토론은 자연과학 공부에 비효율적
그림 도표 활용, 뇌 친화적 학습법

과학 부작용은 100분의1도 안 돼”


공부에서 그림과 도표의 중요성을 깨친 계기는 미국에서 박사 논문을 쓸 때라고 했다. 그는 1991년 미국 텍사스 A&M대로 유학을 가 6년 동안 공부했다. 전자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문학과 뇌 과학에 심취한 게 바로 유학 시절이란다. “실험 결과가 담긴 도표 하나를 풀어쓴 게 박사 논문입니다. 도표만 기억하면 그 논문을 통째로 알 수 있어요. 도표는 또 대칭 구조라 텍스트보다 더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죠. 도표는 순서도 있고 단위별로 모듈화되어 있어요. 주기율표도 그래요. 그런데 모든 몸의 설계가 다 이래요. 완벽한 대칭과 순서, 모듈화가 바로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가 그림과 도표로 하는 공부를 뇌 친화적 학습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세포 공부도 세포 그리기에서 시작합니다. 일주일 잡아 세포 모습을 한 10번 정도 자세히 반복해 그리면 그게 장기기억으로 연결돼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하면 10년 간 세포 공부가 편해지죠. 도표를 그리지 않는 공부는 공부가 아닙니다. 당의정 같은 것이죠.”


창의성 훈련의 출발도 생각을 그림을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뇌가 기억하고 있는 시각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고정하고 그 각각의 이미지 연결 순서를 목적 지향적으로 바꾸는 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제가 화학과 생물학을 15년 정도 공부하니 패턴이 보여 그걸 편집한 게 이번에 나온 책입니다. 기억은 세 단계가 있어요. 10년은 축적 단계이고 5년은 활용 단계이죠. 그다음이 기억의 편집단계입니다. 15년 정도 해야 자기 이론이 나옵니다. 그게 창의성이죠.”


특강은 보통 4시간을 한다. 중간에 10분 정도 쉴 뿐 토론은 없다. 질문도 받지 않는다. “토론은 공부에 방해됩니다. 자연과학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죠. 토론은 전문가가 하는 것이죠. 가장 논란이 적은 지식의 총체가 자연과학입니다. 토론하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죠. 우리 단체는 게시판에서도 토론을 못 하게 했어요. 미국식 공학교육도 한국 학원과 비슷해요. 예전에 제가 관여했던 공부 단체를 보더라도 토론하다 감정싸움으로 이어져 판이 깨지더군요. 논리적 사고가 붕괴하죠. 토론은 아예 안 하는 게 좋아요. 술 마시는 것처럼요. 우리 단체는 해외 탐사를 가도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질문까지 받지 않는 것은 심한 것 아닌가? “질문은 학문의 가장 큰 원동력이죠. 제 생각은 질문은 바깥으로 보내지 말고 품어서 스스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답을 찾아라, 내가 소스는 가르쳐준다’고 수강생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는 질문이 너무 많아요. 질문은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최고의 공부란 말도 했다. “먼저 이해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커지죠. 훈련의 강도로 반복적으로 암기하면 애매한 게 사라지고 공통 패턴이 추출됩니다. 그 결과 기억이 커집니다.” 왜 기억이 중요한가? “맛의 50%는 기억이죠. 기억을 통해 행동을 선택합니다. 기억해야 뭔가를 하고 싶어지죠.”


박문호 이사장.
박문호 이사장.


세계사 공부도 지도 그리기에서 시작하는 게 효율적이란다. 세계지도 얘기를 꺼내자 그는 화이트보드에 바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6년 전 세계사를 강의할 때 지도 그리기를 익혔단다. “투자 대비 결과를 생각했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바로 세계사잖아요. 지도를 그릴 수 있으면 50%는 파악할 수 있죠. 지도나 주기율표는 부산항만의 기간시설과 같아요. 그게 없으면 컨테이너선이 하역할 수 없어요.”


과학은 100% 좋은 것인가? “식물이나 동물의 생리를 알아야 동물을 가축으로 키우거나 야생식물 재배가 가능하잖아요. 농업혁명도 과학 때문에 가능했죠. 자외선이나 방사선을 알지 못하면 우주로 나갈 수도 없어요. 우리나라 한해 출국자 수가 2600만 명을 넘어요. (해외여행도) 항공기나 여러 안전 시스템이 있어 가능하죠.” 미세먼지나 온난화 문제는 어떤가? “과학의 부작용은 100분의 1도 되지 않아요. 시간이 걸리면 다 해결됩니다. 석유산업 없이 연탄만 땠다면 공해가 상상을 초월했겠죠. 미세먼지도 30년 안에 해결책을 찾을 겁니다. 지구온난화는 조금 복잡하죠.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죠.”


현재는 어떤 공부를? “제가 뇌는 15년, 우주론은 10년, 지질학이나 암석학은 5년 이상 공부했어요. 지금은 전체를 모으고 있죠. 대기와 대륙과 대양의 지난 45억년 순환 과정에서 일어난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가 제 공부의 큰 줄기입니다. 공진화를 통해 생물체가 출현했거든요. 그러니 광물학도 공부해야죠.”


그는 인터뷰 전날도 서점을 찾아 화학사 책 한 권을 샀다고 했다. “지난 30년 동안 안 바뀐 것은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사는 일입니다. 최근 서점에서 주기율표를 다룬 책 5권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812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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