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0만년 전 ‘공룡들의 낙원’서 1m 어깨뼈를 찾다


등록 :2016-08-29 14:03수정 :2016-08-29 15:50
[미래]커버스토리 

고비사막 화석 발굴 현장
기자가 뛰어든 공룡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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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공룡은 2억45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까지 약 1억8000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동물이었다. 지금까지 공룡학자들이 발견한 종은 1000종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한 마리의 전체 뼈가 박물관에서 보듯 고스란히 묻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흩어진 뼈에서 살아있는 공룡의 비밀을 추적하는 탐사에 참여했다.

몽골의 평원을 횡단 중인 탐사대. 권오성 기자
몽골의 평원을 횡단 중인 탐사대. 권오성 기자
몽골 청년들이 벌이는 춤 대결에 몰은 떠나갈 듯이 시끄러웠다. 지난 20일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의 한 대형 쇼핑몰 한쪽을 차지한 무대에선 젊은이들의 비보잉(힙합댄스)이 한창이었다. 주말 나들이에 나선 울란바타르 시민들이 무대를 둘러싸고 관람에 열중이었다. 이들 가운데 한 무리의 낯선 이들이 있었다. 정글 탐사대 차림의 한국인 8명이다. 구경꾼들과 달리 이들의 시선은 다른 쪽을 향해 있었다. 천장까지 뻥 뚫린 몰의 중앙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뼈만 남은 거대한 공룡이다. 탐사대장인 이항재 지질박물관 연구원은 “아시아의 티라노사우루스라고 불리는 타르보사우루스 뼈네요”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행은 요란한 음악 소리에 놓칠세라 그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웠다. 호모 사피엔스(인간)가 건설한 신식 상업공간 안에서 이들과 공룡만은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묘한 장면을 연출했다. 바탕에는 지난 5박6일 동안의 인연이 있었다. 공룡 화석을 찾아 황야를 벗삼아 지낸 탐사의 기간이다. <한겨레>는 지난 14~19일 몽골 동고비사막에서 진행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주최 ‘몽골 공룡탐사 체험단’에 동행 취재를 했다.

공룡 연구자들의 천국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이항재 연구원과 7명의 일반인 참가자는 지난 13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울란바타르로 날아갔다. 국내 대표적 ‘공룡 학자’인 이융남 교수는 지질박물관장 시절 이 체험단을 처음 기획하고 지난해까지 인솔했는데 서울대로 옮긴 올해는 고문 격으로 참여했다. 이 체험단은 일반인에게 전문 공룡 화석 발굴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꾸려졌다. 일행은 울란바타르에서 하루를 묵고 14일 아침 지체없이 탐사 장소인 동고비사막을 향해 출발했다. 몽골과 중국을 잇는 고속도로를 따라 관문 도시 사인샨드까지 달린 초반 길은 덥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하지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야영지인 바양긴시리까지 사막 70㎞가량을 달린 후반은 만만찮았다. 굴곡이 심해 차가 뒤집어질 듯한 길을 몽골 탐사대원은 능숙하게 몰아 나아갔다. 여정 중간에 고바야시 요시쓰구 홋카이도대학 교수(척추고생물학)가 이끄는 일본 쪽 참가자 8명과 만나 인사도 나누었다. 여기에 몽골 고생물학센터 소속 몽골 직원 10여명까지 합해 30여명이 이번 기간 한솥밥을 먹은 ‘한-몽-일 탐사대’를 구성했다.

15일, 드디어 탐사의 날이 밝았다. 영국의 의사였던 기드온 맨텔이 공사장에서 나온 한 기묘한 이빨에 ‘이구아노돈’이라는 이름을 붙여 처음으로 공룡 화석으로서 발견한 것이 1822년이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200년 가까이 되도록 화석 발굴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이 산과 들에서 직접 찾는 것이다. 이융남 교수는 “지피아르(GPR·지표투과레이더) 탑재 차량이나 위성을 이용한 탐색 방법이 있지만 비용과 정확도 면에서 실용성이 떨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눈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 때문에 고생물학은 아마추어 과학자의 기여가 중요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고비사우루스, 타르보사우루스…
공룡 연구의 보고 ‘아시아메리카'
6500만년 뒤 망치 들고 서다

화석 발견으로 충분치 않다
무슨 공룡인지, 지질적 의미를
잘 판단해 발굴해야 한다

<아기공룡 둘리> 등으로 공룡을 비교적 친숙하게 느끼는 우리나라지만 공룡 화석은 여전히 낯선 게 사실이다. 과거에 공룡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72년 경남 하동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뒤, 각종 흔적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주요 화석지는 고성, 화성, 보성, 여수, 화순, 해남 등이다. 그런데 발자국과 알 등이 대부분이며 개체를 구성할 정도로 뼈가 발견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난 15일 탐사 첫날, 공룡 화석을 찾아 앞장 서고 있는 이항재 지질박물관 연구원. 권오성 기자
지난 15일 탐사 첫날, 공룡 화석을 찾아 앞장 서고 있는 이항재 지질박물관 연구원. 권오성 기자

반면 이곳은 공룡 연구자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몽골은 북미 대륙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공룡 화석 산지이다. 1억~6600만년 전 공룡들이 크게 번성했던 후기 백악기에 북미와 동아시아는 하나로 붙어 ‘아시아메리카’라는 거대한 섬이었는데, 이곳은 공룡들의 낙원이었다. 당시 이곳은 대체로 공룡들이 좋아하는 습지였지만 지금과 같은 모래사막과 큰 강까지 다양한 지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곳은 북미와 비교해 화석이 더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높다. 지금까지 사막으로 변화해온 건조한 이 지역의 기후는 화석 보존에 유리했다. 이 교수는 “몽골 고비사막은 바람 등으로 지속적으로 지층이 깎이면서 공룡이 살던 시대 지층이 지표면에 드러나기 때문에 세계 공룡 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첫날 탐사를 통해 중요한 화석과 비교적 덜 중요한 화석을 구분하는 기본적인 눈을 익힐 수 있었다. 기준은 ‘무슨 공룡인지’와 ‘묻히던 당시를 설명할 실마리가 되느냐’였다. 예컨대 갈비뼈는 여러 공룡들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그다지 연구에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두개골은 무슨 공룡인지 거의 명확히 말해주기 때문에 가치가 가장 높다. 또 모래 위에 놓여 있는 뼈보다 암석에 박혀 있는 뼈가 가치가 높다. 흘러 다니는 뼈는 어느 시대에 묻혔다가 무슨 과정을 거쳐 여기 놓였는지 가능성이 너무 많지만, 박혀 있는 뼈는 묻힌 시기 지층이 특정되고 주변을 파보면 한 공룡의 다른 뼈들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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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되는 용각류의 뼈

캠프 주변에서 크게 흥미로운 뼈를 발견하지 못한 탐사대는 16일 차로 20분쯤 거리에 있는 부르칸트 지역으로 진출하기로 했다. 한·일 참가자들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서 뿔뿔이 흩어져 ‘보물찾기’에 나섰다. 2시간가량 지난 뒤 일본의 한 참가자가 얕은 둔덕에서 튀어나온 작은 뼈 끝을 발견했다. 이후 일본팀과 한국팀 전원이 번갈아 가며 발굴에 달라붙었다. 뼈를 건드리는 섬세한 작업은 이 교수와 이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 참가자들이 붙었고, 기자는 땅을 파들어갈수록 쌓이는 흙들을 멀리 빼는 일을 맡았다. 이 교수는 “발굴의 기본은 두번 손 안 가게 흙을 멀리 버리는 것”이라며 웃었다.

공룡 발굴에 쓰이는 특별한 도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을 부술 망치, 단단한 지면을 뚫을 송곳, 흙을 털어낼 붓 등이면 된다. 이런 단순한 준비물은 고비사막의 또다른 혜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단단한 암석층이 많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전동드릴 같은 억센 장비가 필요하다.

발굴한 뼈를 석고로 감싸기에 앞서 꼼꼼하게 기록 중인 대원들. 권오성 기자
발굴한 뼈를 석고로 감싸기에 앞서 꼼꼼하게 기록 중인 대원들. 권오성 기자
모두 올해가 첫 탐사인 한국팀과 달리 일본팀은 한·일 공동탐사에 앞서 올해 20년째 탐사를 진행해왔는데 참가자 가운데에는 20년을 지속해 참여한 이도 있었다. 그만큼 노련했다. 노출된 조그만 뼈 부분을 중심으로 마치 자신의 안방을 쓸듯 세심하게 주변 흙을 치워냈다. 혹시 다른 뼈 부분이 발견됐을 때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또 일본팀이 특히 중시한 것은 기록이었다. 각자 자신만의 축적된 노하우로 화석이 발견될 때 형태를 그리고 방위와 위도, 경도를 표시하는 등 세밀하게 주변 상황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심지어 탐사 중 나온 독수리나 박쥐 사체 같은 무관한 대상도 꼼꼼히 적었다. 고바야시 교수는 “아마추어 과학자의 활동도 과학 발전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매해 자신이 적은 기록을 정리해 탐사가 끝나면 보내주는 참가자가 있는데 전문가인 나도 참조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틀을 작업해 둔덕 하나를 파헤치자 용각류의 상완골(어깨와 아래팔을 연결하는 뼈)이 드러났다. 1m쯤 되는 길이는 이 부류가 지구상에 살았던 가장 거대한 육상동물이었다는 설명을 실감케 했다. 공룡 하면 보통 많이 떠올리는 것이 긴 목에 유유자적 풀을 뜯어 먹는 거대한 초식공룡과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주인공들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랩터’ 같은 육식공룡류이다. 초식공룡은 학문적 분류 체계에서 용각류에 속한다. 랩터 같은 육식공룡들은 수각류로 분류된다. 여기에 온몸에 갑옷을 두른 듯한 모습의 안킬로사우루스류, 멋진 뿔의 트리케라톱스로 알려진 각룡류(케라톱시아) 등이 있는데 모두 이 지역에서 두루 발굴된다.

뼈의 모양이 드러나고 주변이 정리되고 나면 뼈를 석고로 감싸는 과정이 이어진다. 물에 석고를 풀고 뻣뻣한 천을 석고에 적셔 뼈를 덮는다. 이때 석고가 뼈와 바로 붙지 않도록 사이에 물에 적신 휴지를 발라준다. 이런 과정은 우리가 뼈가 부러졌을 때 움직이지 않도록 석고붕대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일본, 몽골 참가자들과 함께 화석에 석고를 바르며 “무사히 몸의 다른 뼈들과 만나 현세에 살아나길” 하고 되뇌었다. 석고가 마르면 화석이 고정된 암석의 밑동을 끊어서 한꺼번에 가져간다. 이를 ‘석고 재킷’이라고 이르는데 연구실에서 드릴 등으로 조심스럽게 해체한 뒤 조합·분석을 하게 된다.

공룡 뼈를 석고로 덮어 운반 중에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는 기자(앞쪽). 김기상씨 제공
공룡 뼈를 석고로 덮어 운반 중에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는 기자(앞쪽). 김기상씨 제공

미스터리의 데이노케이루스

공룡 연구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꼭 떠나는 마지막날에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꼬박 이틀째 용각류의 석고 재키팅을 마치고 떠나기 하루 전인 18일, 지명도 없는 새로운 지역 탐사에 나섰다가 이 연구원이 5개의 공룡알 둥지가 모여 있는 지역을 찾았다. 이융남 교수는 “하나가 아닌 여러 종류의 공룡 둥지가 함께 모여 있다. 보통 한 곳에는 한 종의 둥지만 발견되는데, 다른 종이 뒤섞여 알을 낳았다면 과연 이유가 무엇일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탐사 마지막날 발견한 공룡 알 둥지의 부서진 알 화석 조각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오른쪽)와 고바야시 요시쓰구 홋카이도대 척추고생물학 교수(왼쪽). 권오성 기자
탐사 마지막날 발견한 공룡 알 둥지의 부서진 알 화석 조각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오른쪽)와 고바야시 요시쓰구 홋카이도대 척추고생물학 교수(왼쪽). 권오성 기자
참가자들은 모을 수 있는 지표의 조각들만 수집하고, 비닐로 덮어 훼손을 막은 뒤 나머지 부분에 대한 연구는 다음 방문 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화석 발굴은 이런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예컨대 이 교수는 2014년 데이노케이루스라는 공룡의 전체 모습을 밝혀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했는데 이 작업에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데이노케이루스는 50년 전에 사람을 움켜쥘 정도로 큰 앞발 화석만 발견되고 이후 두개골 등 다른 부분이 의문에 싸여 있어 ‘미스터리 공룡’으로 불려왔던 종이다. 이렇게 사막에서 뼈를 수집하고 연구실에서 수많은 가능한 수를 고려해 퍼즐처럼 맞추는 고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한 마리의 공룡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세계 어디에도 공룡을 싫어하는 사람, 특히 어린이는 없다. 이렇게 시작된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은 공룡 연구로도 이어지지만 다른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공룡 연구는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이런 측면의 가치도 높다”고 말했다.

바양긴시리(몽골)/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