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박자세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15일 과학리딩 모임에서 3명의 발표자가 모두 새내기였다. 발표는 보통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공부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모두 완전한 초짜였다.
박문호 박사님의 척수 단면과 소뇌로(전정소뇌로, 척수소뇌로, 대뇌소뇌로)에 대한 그림 강의와 설명이 끝나고 발표가 이어졌다.
맨 처음 발표에 나선 새내기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반장이다. 박사님의 ‘지시’에 의해 어느날 갑자기, 어쩔 수 없이 반장이 되어 ‘어쩌다 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반장은 <brainstem-뒷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특별한 일이 없어 열심히 그림을 그린 탓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림 전체를 통째로 암기했다. 20여번 그림을 그리니 몸에 익숙해졌다.(아! 그런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자기가 발표한 이야기를 본인이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순간, 나는 영 어색하다. 쑥스럽다.)
때론 그림이 이해가 되지 않아 박사님의 저서인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 중에서 108~112페이지까지 여러차례 읽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여튼 그럭저럭 <brainstem-뒷면>을 마무리했다.
다음 발표자는 매주 토요일 카카오톡을 통해 <Love brain>이라는 짧은 뇌과학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승주 회원이다. 지난주에도 그는 어김없이 뇌과학과 관련된 단편을 전했다. 말이 나왔으니 이번 기회를 빌어 그의 메시지를 소개해 본다.
“뇌는 단조로운 환경을 싫어한다.”
이 회원도 역시 <brainstem-뒷면>을 그렸다. 그는 회사 업무로 바빠서 여러번 연습을 하지 못했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발표는 잘했다. 박자세에 나온지는 좀 지났는데 이번에 처음 발표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좀 더 일찍 발표를 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사람은 장경란 회원. 그는 <brainstem-앞면>을 준비해서 그리려고 했는데 실제 암기한 그림은 <brainstem-뒷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틈틈이 공부를 해서 <brainstem-앞면>을 발표했다. 뇌과학을 처음 공부하는 새내기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장 회원의 임기응변식 암기와 발표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왜 저렇지 순발력있게 하지 못할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박문호 박사님은 새내기들의 발표 후 “<brainstem-뒷면>을 완벽히 외우니까 아주 짧은 시간에 <brainstem-앞면>도 발표할 수 있는 것”이라며 “누구나 집중을 통해 발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3년동안 열공한 한 회원도 “이번 새내기들의 발표를 통해 ‘박자세 공부는 어려워 초보자는 하기 어렵다’라는 편견을 깼다”면서 “새내기들이 적극적으로 공부해 박자세에 활력이 돋는다”고 긍정 평가했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15일 과학리딩을 보고 성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떠올렸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박희준 시집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중에서
두 번째 발표하신 반장님, 그리고 처음 발표하신 이승주, 장경란 회원님의 얼굴을 보며 문득 박희준님의 하늘 냄새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처음 과학리딩 모임에 참석하신 날은 조금은 낯설고 긴장되어 굳어진 표정들이셨는데 발표를 마치고 난 뒤의 표정은 너무나도 환해져 보는 제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박자세의 공식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나옵니다. "오 마이 사이언스!~"
우연한 기회에 박자세학습에 참가하고 나서도 제 스스로가 정말 제대로 잘 버텨낼 수 있을지, 뭔가를 계속 할 수는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어디가서 '나 자연과학 공부하러 다닌다' 라고 말하기가 두렵기도 했습니다. 작심삼일이 될까 조심스러운 우려의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다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박자세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번 한번의 학습에 참가하면서 느껴지는 생각은 '공짜는 없다' 입니다. 하루를 공부하면 하루만큼의, 일년을 공부하면 일년만큼의 기억이 나에게 쌓여 아는만큼 보이고, 하는 만큼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오랜 경력의 회원들이 능숙하게 공부해 나가는 것을 보고, 그저 놀랍고 부럽기만 했고, 왜 나는 진작 안했을까? 언제 저 경지에 이르지? 이런 마음이었는데 이제 점차 한알의 콩알을 심는 마음이 됩니다. 한알을 심으면 싹이 하나 날것이고, 그 싹이 잎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척수 단면을 보고 나는 오늘 이만큼 알고, 이만큼 배우고, 이만큼만 감동받지만, 내년이 되면 조금 더 알게 되고, 조금 더 많은 지식들과 연결하며, 아주 더 많이 감동받고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모임에 참가하셨던 배재석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꾸준히,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것. 그게 바로 배움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 드네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해지기 위해 지치지 말고 묵묵히 걸어가야겠습니다. 든든한 박자세가 앞서니 천군만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