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돌 넣고 모래 넣어야 빈틈 없듯…‘핵심개념’ 먼저 채워라
 
▲  일러스트 = 송재우 기자 jaewoo@

박문호의 뇌과학 이야기 - ⑤ 효과적인 뇌 기반 학습법

새로운 공부 내용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효과적인 학습 순서가 있다. 공부법은 항아리에 모래와 자갈과 큰 돌을 가능한 한 많이 넣는 방법과 같다. 모래를 먼저 담으면 자갈과 큰 돌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지지만 반대로 큰 돌부터 먼저 넣으면 큰 돌 사이에 자갈이 잘 들어가고, 모래는 자갈 사이의 조그마한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다. 바로 이런 방식이 지식을 저장하는 좋은 비유가 된다. 지식의 큰 돌은 각 학문 분야의 기본 개념이며, 자갈과 모래는 핵심 내용과 세부 지식이 된다. 뇌 기능과 구조 공부에도 이 방식을 적용해 보면 신경세포, 수상돌기, 수초화, 스파인, 시냅스가 핵심 개념이며 핵심 개념에 대한 철저한 학습이 선행돼야만 뇌과학 지식을 깊게 확장할 수 있다. 수초화를 통해 무수신경과 유수신경 차이를 이해하게 되고, 스파인과 시냅스 구조에 대한 공부는 단백질과 유전자에 대한 이해로 확장된다. 

물리, 생물, 지구과학의 핵심 개념들은 공통의 특징이 있다. 첫째, 핵심 개념은 그 분야의 모든 정보와 연결된다. 그래서 핵심 정보만으로도 그 분야를 재구성해낼 수 있으며 그 분야의 구조가 명확해진다. 둘째, 핵심 개념은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되며 심지어 핵심 단어로 표현될 수 있어 생각의 바탕이 된다. 셋째, 핵심 개념의 반복은 어느 순간 다른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과학의 역사에서 지동설, 관성의 법칙, 팽창하는 우주, 불확정성 원리, 광속불변 원칙, 대륙이동, 진화론, 세포공생설처럼 기본 핵심 개념들은 새로운 과학 분야의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분야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핵심 개념은 처음 생겨났을 때는 생소하고 확실한 모습이 아니지만 그 개념이 자연현상 전반에 적용되는 보편성과 핵심적인 적용과정에서 서서히 자라나게 된다. 핵심 개념은 보편성과 구체성을 띠기 때문에 그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 뇌과학에서도 수상돌기, 스파인, 시냅스 같은 핵심 개념은 활성전위, 신경전달물질, 이온채널과 같은 지식으로 체계적으로 확장돼 상호연관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먼저 공부하는 톱다운식 공부법은 핵심 개념을 바탕으로 전체 그림에 대한 윤곽을 파악한 후 세부 사항을 공부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세부 내용에서 전체 의미로 나아가는 보텀업 방식은 분산되기 쉽고 특이한 세부 사항을 처리하다 지칠 수 있다. 말단을 따라가지 말고 확장성이 큰 핵심 개념에 전념하면 세부 사항 공부는 핵심 개념의 응용으로 쉽게 된다. 뇌과학 공부에서 세부 정보는 개별 감각 처리 과정, 지각에서 기억이 생성되는 과정, 운동 출력 생성 등이다. 세부 정보를 순서 없이 대략적으로 공부하면 기억하기 어렵지만 핵심 개념을 적용해 범주화된 지식으로 기억하면 많은 세부 지식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도 그 분야의 핵심 개념을 찾아내 이를 철저히 체득하면 파생되는 많은 새로운 응용을 발견할 수 있다. 핵심 개념이라는 큰 돌을 항아리에 넣으면 자갈과 모래가 스스로 제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핵심 개념은 그 주변에 많은 여유 공간을 만들어 내 세부 지식이 핵심 개념 주변에 달라붙게 한다. 핵심 개념의 확장성과 응집력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핵심 개념을 키워 왔는가에 비례한다. 핵심 개념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되고, 몸이 돼 우리가 핵심 개념 그 자체가 된다면 공부와 내가 한 몸이 된다. 뇌과학 공부의 지름길도 핵심 개념인 ‘감각과 운동’을 통해 뇌의 구조와 작용을 공부하면 스스로 체계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뇌과학 공부의 핵심 개념인 감각과 운동은 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세포 수준부터 시작된다. 동물은 감각 입력에 반사적으로 반응하지만 인간은 감각 입력에 기억을 반영해 행동을 선택한다. 동물은 감각에서 운동이 출력되며 인간은 지각에서 행동이 나온다. 감각 자극으로 촉발된 지각 과정은 행동을 유발하고 생존에 중요한 지각 결과는 기억으로 저장돼 나중에 유사한 상황에서 행동 선택의 근거가 된다. 환경 자극의 일부가 감각기관을 통해 신체에 입력되고 신체 표면, 근육, 관절, 내부 장기에서 감각 입력에 대한 운동 반응이 생성되며, 중추신경계에서 감각 입력이 기억으로 전환돼 꿈과 생각에 지속적으로 반영된다. 뇌과학자 이나스에 따르면 물리적 세계에 대한 제한된 에너지 입력으로 뇌와 신체가 생성하는 반응인 운동과 꿈 그리고 생각은 사전에 형성된 ‘과잉생산체계’다. 운동, 생각, 꿈은 대뇌 연합피질에 저장된 기억 간의 활성화된 상호 연결의 결과물로, 기억에 의해 미리 과잉으로 생성되며 감각 입력의 촉발로 한 동작, 한 생각, 한 장면의 꿈으로 선택된다. 기억의 연결회로는 관련된 신경세포 집단들 사이에 동시 흥분 상태의 회로망을 생성하는 활발한 작용이 항상 요동치고 있고, 이러한 신경회로의 활성 패턴과 감각 입력 처리 과정이 결합해 감각에 대한 지각적 반응이 생성된다.

감각 입력과 운동 출력 사이의 연결은 각자의 생존 과정에서 축적된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고유한 많은 연결방식이 존재하며, 기억은 개인마다 다른 개성과 자아의 바탕이 된다. 감각과 운동의 연결에서 의식은 운동 선택 과정을 비추는 순간적인 조명 불빛 같은 역할을 한다. 의식의 조명하에 환경 입력의 맥락에 따라 행동이 선택되고 출력된다. 따라서 의식의 조명하에 환경에 대한 이미지가 생성되고 하나의 운동 출력이 만들어지면 의식은 또 다른 감각 입력에 주목, 지각 처리 과정으로 진행되게 해 또 하나의 운동 출력을 낳게 한다. 운동 선택의 연쇄는 우리의 행동이 된다. 시각, 청각, 촉각의 감각 정보는 해마에서 맥락적 기억으로 전환되고 대뇌 피질에 전달돼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대뇌 전전두엽이 현재 입력되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인 운동 계획 과정에서 감각연합피질에 저장된 장기기억이 회상돼 행동 선택에 반영된다. 구체적인 감각 입력이 범주화된 사물로 전환하는 뇌의 정보처리가 바로 지각 과정이며 범주화는 지각의 산물이다. 대뇌 감각연합피질에 의한 ‘지각의 범주화’ 과정이 형성되면 개별 ‘범주화된 지각 장면’들 사이의 관계인 개념이 출현해 ‘개념의 범주화’가 대뇌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에서 진행된다. 즉 개념은 지각 범주의 ‘재범주화 과정’이다.  

감각 자극이 촉발한 지각 과정의 한 형태가 기억이며 지각의 결과는 행동으로 출력된다. 감각, 지각, 생각은 상호 연관된 일련의 뇌 정보처리 과정의 단계별 구분이며, 출발점은 감각이다. 감각이 지각을 촉발하고 지각된 정보를 주목하면 기억이 된다. 그리고 운동 출력을 하기 전에 기억을 바탕으로 운동을 계획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결국 감각에서 운동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뇌 정보처리의 전체 내용이며 인간 대뇌 세포의 90%는 감각뉴런과 운동뉴런을 연결하는 중개 뉴런이다.


생각이 기억의 맥락적 연결 현상이라면 상상, 꿈, 환각은 모두 기억의 비맥락적 돌출 과정이다. 그래서 생각은 현실 문제에 대한 뇌의 반응이고 상상, 꿈, 환각은 뇌가 현실에서 자유로워져 스스로 활성화되는 현상이다. 현실이 꿈과 상상이 아닌 ‘현실적’이 되는 이유는 꿈과 상상은 그 내용이 매번 바뀌지만, 현실은 반복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시간과 공간에서 매일 반복되는 사건이며 우리의 일상이 바로 현실이다. 꿈의 내용처럼 반복되지 않은 사건을 ‘비현실적’이라고 하며 반복되지 않기에 예측하기 어렵다. 반면에 일상처럼 매일 ‘반복되는 현실’은 예측 가능하며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 알 수 있는 환경이 자연과 구분되는 인간의 생존 공간이다. 감각과 운동이란 핵심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생각을 전개하면 감각 자극의 처리 과정에서 지각과 기억 그리고 행동이라는 뇌과학의 핵심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꿈과 현실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이 생겨날 수 있다.  

이처럼 대규모의 정보를 분류하고 저장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핵심 개념을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새로운 시선이 가능해지는 창의적인 공부법이 된다. 과학의 역사는 핵심 개념이 생겨나고 자라고 성숙해간 역사이다. (문화일보 2016년 12월 16일자 26면 4회 참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