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의주 팀의 '호박집'  배재근 선생님께서 쓰신 은퇴 베이비부머의 선택이란 글을 

보자마자 책장을 뒤졌다.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2013. 도서출판 이와우)

(부재: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 인생 보고서)



‘56년 잔나비띠인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교수는

2012년 늦가을 저녁 서울시청 옆 먹자골목 대학 동기모임에서 술 한잔 하고 

집에 가려고 부른자신의 회색 오피러스를 운전하러 온 ‘58년 개띠 대리기사와

서초동 검찰청사 앞 호프집에서 밤 늦도록 우울한 酬酌을 하였다.

대리기사와 손님으로 만난 두 베이비부머는 동 세대의 짭쪼롬한 동질의 경험을 안주삼아 호프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송호근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원으로서의 연대감과 사회학자로서 직업근성이 발동하여 연구하고 글을 써서 펴낸 것이 바로 위 책이다

 

5563 베이비부머!

한국 근현대사 桎梏의 변곡점을 맨 몸으로 통과한 세대를 일컫는 별칭이다.

이들에게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단어가 있다. 架橋세대 bridge generation. (누구는 낀 세대라고도 한다.) 송교수가 정리한 가교세대의 의미를 그대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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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교세대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면서도 농업세대‘IT세대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았다. 베이비부머는 농촌 공동체의 문화적 유전자가 흐르는 마지막 세대이자 유교 전통을 계승한 막내 세대다.

 

둘째, 근대와 현대 사이에 가교를 놓았다.

1960년대를 근대의 끝자락이라고 한다면(근대적 풍경이 196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현대가 시작되는 초입인 1970년대에 베이비부머는 이른바 신문명의 담지자가 되었고(예컨대 신교육이 시작되었고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운동권 세대’, 1990년대 탐닉 세대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즉 베이비부머는 근대가 끝나는 절벽에서 현대로 나아갈 수 있는 교량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스스로 몸을 누이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에 유행한 사이먼&가펑클의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베이비부머의 운명이 되었다. (https://youtu.be/jjNgn4r6SOA)

 

베이비부머들은 반문한다.

그런데, 누가 이제 직장에서 떠나는 자신들의 다리가 되어줄 것인가?

(위 책, 프롤로그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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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을 놓는 베이비부머들이 1년에 50만명 이상 길바닥에 쏟아져 나온단다.

오라는 곳이 없으니 갈 곳도 없다. 그래도 집을 나서야 한다. 문밖에 서서 처음 겪는,  '갈 곳 없는 어른'의 황당한 시추에이션. 그러니 이들이 걷는 길은 방향도 없고 목적지도 없다. 다시 돌아가야할 도착지만 있을 뿐이다.

 

보통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움직이는 서울 9개 노선 심야버스(일명 n-bus, night bus)의 승객 80%는 뚫어져라 코박고 쳐다보는 핸드폰을 손에 쥔 대리기사들이다.  내가 매일 밤 목도하는 광경이다이들 반수이상이 베이비부머다.


같은 세대인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리고 몸짓과 걸음걸이에는 당황스러움, 안타까움, 서글픔이 진하게 베어난다. 가난과 빈곤을 목격하고 겪어낸 베이비부머(우리는 초등학교 1학년때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죽을 먹었고,  3학년까지는 옥수수빵을 배급받아 먹었다)는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 개인적 자아실현보다는 사회적 자아로서의 의무이행이  우선이었다


사회적 자아의 다른 말은 道理이다.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즉, 부모봉양과 자식양육의 인륜적 대명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이제 막 시작된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허벌나게 뛰어야 했다.


그러나 어느새 인생의 마루턱에 힘겹게 올라 이제 좀 쉬나 싶었는데, 곧 바로 내려가야 하는 길이 너무 멀고 가파르니 당황스럽고, 아직 효도라는 말을 풀어보지도 못했는데 부모님은 기다려주질 않고 자식에게는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으니 안타깝고, 이 답답한 가슴을 열어 보이지도 못하니 서글픈 것이다(불효자는 웁니다. 진방남 작사, 김영일 작곡, 김정호 노래 https://youtu.be/xzNXQmuG2uU)


그래도, 이들은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들은 친구들끼리 만나면 서로 격려하며 이런 말을 나눈다.


뒈지지도 못하고 90, 100살까지 살려면 건강해야돼!

그리고 우리 가끔씩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려면 돈도 좀 있어야 해!

맨 날 먹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거리도 있어야 해!”


엊그제, 한 달에 두 번 뵙는, 낼모레 90을 바라보는 선생님을 뵈었다.


만나면 그 동안 지낸 얘기를 나눈다. 박자세에 올린 글을 보여드렸더니 말없이 일어나셔서 당신 책상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오셨다.  A4용지 한 장 가득한 글이었는데 제목이 나의 넋두리. 선생님 허락을 얻어 거의 그대로 옮겨놓는다. 한자, 띄어쓰기 등 읽기 불편한 부분이 많지만 선생님의 호흡을 그대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다. 글 쓰신 그 때 그 자리의 현장성을 공감하려면  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려보라.

폭염이 지나가는 長夏의 도심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스러지는 햇살에 기대어

황혼의 인생을 반추하며 

그래도 정신 줄 놓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90세 노인의 모습을.


나는 선생님의 글을 소리내 읽으면서 울다가 마지막에 선생님과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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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넋두리


철 없을 때는 倭政下에 살면서도 壓迫이 뭣인지? 愛國이 뭣인지도 모르고 자라면서 오직 嚴親 膝下에서 忠誠과 孝道만을 强要받으면서 工夫도 하고 農事일손도 도우며 그저 앞만 보고 걸어 오면서 將次 나도 잘 살아 보겠지하고 살아 왔고,


한참 成長하는 철 없든 나이에 解放을 맞아 政治的 混亂期를 거쳐 北傀의 南侵이란 慘酷한 戰亂속에 군생활을 하다가 남의 甘言利說에속아 豫編後 辛苦辛苦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挫折하지 않고 삶을 支撑하면서 希望을 안고 살아 왔는데


~ 어느 덧 해는 西山에 기울고 칼바람 눈발도 날리는 구나.


돌아보면 구비구비 아득한 길, 疊疊이 쌓인 높고 낮은 山, 그 고개를, 그 山허리를 어떻게 넘으며 살아 왔을까? 하는 感懷 자못 깊기만 하다.

끈질긴 生命力이 참으로 대견하기도 하지만 가슴에 치미는 悔恨은 너무도 크지 않는가.


이제는 늙었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後悔. 나의 人生對照表가 너무나도 초라하지않는가. 유턴도 없는 삶을 누가 대신 살아 주는 人生도 아닌데 마냥 歲月이야 가는 것이겠지 하며 살아만 온 것이 아니겠는가?


해마다 이때쯤이면 後悔하며 가슴을 쳐 보지만 무슨 所用이 있는가?

勞力도 없는데 무슨 놈의 所得, 무슨 열매, 무슨 좋은 結果가 있을 것인가?


더구나 이제 몸이 어제와 다르고 또 來日이 달라지는 現實이라 눈도 어둡고 齒牙도 不實하고 말 마져 語訥할 뿐만 아니라 서 있음이 不便하니 자꾸만 앉고만 싶고 눕고만 싶고 쉬고만 싶구나.


希望도 熱情도 식고 팔 다리에 힘도 빠진다. 더욱이 記憶力도 衰殘해져서 今時 生覺했던 것을 잊고 허둥대기 일수이고 甚할 때는 孫子 이름까지도 잊기도 한다.


더욱이 今年(2016)7月初부터는 突發性 難聽으로 귀 마져 먹통에 가까우니 TV나 레디오 소리도 듣지를 못하고 옆에서 對話하는 사람의 말도 間間이 놓쳐 겉은 멀쩡한 듯 하면서도 內心으로는 唐慌 서럽고 當惑感을 禁하기 어려우며 나 自身 바보가 된 感으로 옆 사람의 눈치도 살피게 되니 이것 어쩌면 좋을는지


腎腸이 虛弱해서 오는 病이라고는 하지만, 腎腸을 補 하는 음식을 먹으면 좋아지겠지 하는 期待가 헛되지 말기를 懇求할 뿐이다.


~~歲月은 마치 구름처럼 흘러가듯이 이렇게 무덥던 여름도 가고 가을과 겨울도 지나 또 봄은 온다지만 또 물같이 구름처럼 흘러갈 것이 아닌가.


生 死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浮雲

 

그러니 心機一轉하여 卒壽를 目前에 둔 이 나이지만 아랫목만 지키고 앉아만 있어서는 끝장이 아닌가. 至今부터라도 떨치고 일어나 하나뿐인 나의 人生을 야무지게 마무리를 지어야만 하지 않겠는가….하는 虛勢라도 부려 봐야만 하지 않겠는가, 이 사람 동재!

 

나에게도 어찌 가 보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저것 한 번 해 봤으면 하는 것이 왜 없단 말인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고, 꿈이든 理想이든 가슴에 안고 남은 마지막 남은 黃昏길 빨갛게 불태워 봄이 어떠할는지?


뭐 늙었다고….? 보기에 주책스럽다고….?  實은 나이가 問題가 아니지 않는가? 孔子께서도 古稀不踰秬라고 했으니 問題는 環境과 形便과 熱情이 아닌가?

그러나 勇氣百倍하여 아직도 할 수 있다는 自信感, 스스로 해 보려는 決心과 勞力이 優先이 아니겠는가?

恒常 肯定的이고 웃으며 젊은 마음으로 한 번 살아 봄이 어떨는지ㅎㅎㅎㅎ!

2016 8월 暴炎속에서 몇字 적어본다………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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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卒壽의 인생도 존재의 힘을 다한다. 

 


박자세는 길이다.

 

제대로 걷는 길은 방향이 있고 목적지가 있다. 목적지가 또 새로운 출발지이기도 하지만.


서래마을의 호모박자쿠스들은 그 길을 같이 걷는다.

엄지 발가락은 같은 곳을 향해 열려 있고

모두가 어깨를 활짝 열어 젖히고 23각으로 걷는다

도종환의 담쟁이처럼.

 

길 위의 사람들이니 道人들이고

그 무리들을 일컬어 道伴이라고 한다.



박자세는 우리가 걷는 행복한 길이다


(사족 - 사실은 짤막한 댓글 달려고 자판을 두드렸는데, 우리 호박집 선생님과 같은 베이비부머라는 연대의식이 가슴을 휘휘 저으며 머리 속을 막 누비는 바람에 숨이 길어져 할 수 없이 따로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 글은 전적으로 배재근 회원님의 글에 대한 댓글이고, 또 감사의 답글이다. 그리고 인용한 동재 선생님의 글을 그대로 타이핑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옮긴 글이 한자도 있고 좀 길어서 불편했을 것이다. 저물어 가는 인생도 자신의 삶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아직 걸을 수 있는 힘이 충분한 우리가 더 분발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서 폐끼침을 무릅쓴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를 구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