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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도 넘은 시점이었을 것으로 기억되는데 전라남도 해남, 강진을 여행하다 보면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를 옆에 끼고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이런 여행을 학습탐사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학습탐사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요즘 지하철을 타다보면 북유럽의 절경을 멋진 화보와 함께 소개해 놓은 광고를 접하게 된다. 일상의 모든 걸 내려놓고 가보고 싶은 맘이 절로 생긴다. 아마 마음 굳게 먹고 떠날지라도 아름다운 천혜의 절경을 마음 편하게만 접할 생각이 아니라면 사전에 그 지역에 대한 학습을 충분히 하고 가면 훨씬 많은 것을 얻고 올 것이다. 유홍준 선생이 말했듯이 문화유산 뿐만 아니라 자연도 아는 만큼 느끼고 감동을 받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른바 오지나 다큐에서나 볼 만한 극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지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이 중간의 여행이 있다면 바로 학습탐사가 아닐까 싶다. 주변에서 간간히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유럽의 박물관을 섭렵한다든지 유서 깊은 카톨릭 성당을 답사한다든지 말이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실크로드의 루트인 당나라의 수도 시안(西安), 감숙성의 성도 란조우(蘭州), 석굴로 유명한 툰황(敦煌), 서역의 경계 우루무치(烏魯木齊),사막위에 유적지 투르판까지 갔다 온 적이 있었다. 돈황의 불교 유적지에 가장 많이 오는 여행객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자신들 문화의 뿌리를 찾아오는 그들의 열정이 참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평소 기생관광의 이미지로만 박혀있던 무리가 있는 반면 이런 탐구열의 수가 훨씬 많으리란 민족적 열패감이 솟구쳐 올랐을런지 모르겠다. 다수의 일본인들은 몰려다닌다. 그럼에도 여행지에 탐사서 하나씩은 끼고 다니고 가이드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오다쿠적 기질은 아마도 오늘의 일본의 성장의 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는 한국에 이런 여행을 소개한 책자가 전무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여행지의 일본 관광객에게 사정하여 책을 얻어 더듬더듬 읽으면서 답사지를 순회했던 기억이 난다. 옛적 비둘기호를 연상시키는 기차를 타고 몇날 몇일을 가다가 창 밖에 눈을 돌리면 시커먼 땅덩어리 사막밖엔 아무것도 없다. 고비사막을 지날 즈음 왼쪽 창문 멀리 천산산맥이 보인다. 오랜 세월에 쌓인 설원이 녹아 흘러내려오는 황톳물은 황하의 발원이 된다. 오래전 KBS에서 일요일 새벽에 방영된 NHK가 제작한 그 실크로드를 직접 답사한 여행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주변의 경험이든 나의 경험이든 위에서 언급한 여행은 따지고 보면 인문학적 소양의 확장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깊은 자연과학적 소양이 필요로 하다.137억년 우주의 진화부터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의 지식 없이 여행을 떠나본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황량한 벌판에서 느끼는 것은 지루함 뿐일 것이다. 아마 며칠 다니다보면 돌아오고픈 심정만 일 테니까. 지구에 생명체를 탄생 시켰던 산소는 박테리아로 부터였다. 바로 시아노박테리아 칭하는 놈이다. 지구의 환경이 변하여 이제는 죽은 화석으로만 확인되는 이 주인공의 살아있는 모습은 유일하게 서호주에서만 볼 수 있다. 살아있는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란 존재로 말이다. 켜켜이 쌓인 붉은 철광지층의 구조, 생물 진화사의 의미가 깊은 포유류의 제일 맏형격인 유대류와 남반구의 하늘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남십자성과 마젤란 성운을 꿰뚫 수 있는 지식의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서호주를 접한다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지구의 오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황량함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호주에 관광을 다녀오는 한국인이 아마도 1년에 몇 만 명을 될 것이다. 개중에 별을 관측하는 마니아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드니나 멜버른, 골드코스트 정도를 다녀올 것이다.

 

책 소개를 잠깐 하자면 올 칼라로 A5 판형이다.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도 22,000원 가격이면 책이 가진 질에 비해 결코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다. 생생한 칼라 사진과 넘치도록 디테인한 지도, 서호주의 기후, 남반구의 별자리, 고립된 대륙에서 진화된 서호주 생물들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자연과학 탐사서 이긴 하나 서호주의 오래된 주인인 에보리진이란 인간이 살아왔던 흔적도 외면하지 않는다. 이 책은 특정 필자가 쓴 것이 아니라 탐사를 다녀온 아마추어들이 쓴 것이라 밝힌다. 그럼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이런 경지에 오를 정도이면 꽤나 열정을 쏟았을 법하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거의 3년 이상을 공부 한 사람들이라 한다. 그 진지함과 열정이 부럽다. 탐사대원을 이끌고 간 박문호 대장은 2년 전 뇌과학 공부의 선풍을 일으킨 ‘뇌 생각의 출현’을 쓴 저자이다. ‘시공의 사유’ , ‘기원의 추적’, ‘패턴의 발견’ 이라는 학습 공식이 서호주 책을 관통하고 있다.

 

"아마 지상에서 해 볼만 한 것 몇 가지가 있다면 , 서호주 그것도 울루루 바위 부근 아영하다 새벽 혼자 우두커니 하얀 손수건 같은 우주 하나를 만나 볼 일이다" 라고 서문에 밝혔다. 일생에 한번 이라도 우주와 혼연일체의 경험을 느끼고 싶다면 서호주로 가라. 이 책은 빼놓을 수 동반자 일 것이다. 왜냐면 현지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자연의 정보는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 있기 때문이다. 서호주 탐사에 관한 유일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자연과학의 언어는 만국의 공통어이니 번역되어 해외에 보급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