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제일태극도(第一太極圖)
지난번 ‘태일생수(太一生水)’를 소개 한 적이 있다. 최소 2300년 전에도 중국에 살던 사람은 우주발생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우리나라 이야기이지만 아쉽게도 그 뿌리는 중국에 있다.
성학십도(聖學十圖)는 16세기 중엽 이황이 선조에게 군왕(郡王)의 도(道)를 설명 한 것이라 한다. (본인은 조선의 유학에 대한 것은 잘 모르지만) 성학십도의 열 개의 그림 중에 제일의 것이 “태극도” 인 것이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소개 한다.
원시유학부터 성리학에 이르기까지 중국 유학에 정통한것으로 평가되는 퇴계 이황(1501-1570)은 '군왕의 도'를 설명 할 때 '우주'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 '군왕의 도'가 그러하다면, 공부하는 선비 모두가 그 가르침을 따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학십도(聖學十圖)
제일 태극도(第一太極圖) : 태극도설(太極圖說)
제일 태극도(第一太極圖) : 태극도설(太極圖說)
태극도’에 대해서도 깊은 이치는 잘 모르나, 그와 관련된 자료를 일부 소개 하면, ‘태극도’는 중국 북송(960-1127)사람으로, 성리학의 기초를 닦고, 존칭하여 주자(周子)라고도 불리우는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 또는 주염계(周濂溪)가 그렸다 전해진다..... 태극도에 글로 설명을 붙인 것이 “태극도설(太極圖說)”이다. 태극도설에는 무극과 태극, 음양, 오행, 인간에 대한 요약된 설명이 있다(위에 소개한 그림의 한자를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설명 내용의 범주는 우리가 "박자세"에서 공부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아 보임이 흥미롭다. --- 우주와 인간 : 자연 이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위키백과 등등 내용 편집]
: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도 불리우며. 성리학(주자학)을 창시한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① 주돈이(주렴계) : 주자(周子), 정호. 정이 형제 : 정자*(程子) 등 이전 송학의 흐름을 이어받아 이를 집대성하고..... ② 윤리 규범을 강조하던 것에 그쳤던 기존의 유교가 불교.도교에 비해 사상적인 약점이었던, 이론적 결여를 보완하는 우주론적 인간론적 형이상학을 수립하게 된다..... 이로써 한.당의 '훈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윤리학으로서의 본래성을 되찾는 한편, 그것을 우주론적인 체계 속에 자리잡게 하고자 했다..... 이후 주자의 철학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주도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편집 끝]
성리학(주자학) ! .... 이 이념은 중국에선 무려 900년에 가깝고, 한반도의 '조선'에선 건국이념, 통치이념으로 600년을 이어 왔고, 그 사상의 일부는 현재까지도 우리민족 뼛속까지 배어있으리라 여겨진다. 공자의 유학과 주자의 유학{특히 4서 大學, 中庸, 論語, 孟子를 중요시 함}은 차이가 있음을 유념 할 필요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공자'가 진정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공자의 유학은 무엇이었을까? 당나라는 (외래 문화였던) 불교 중심 국가 였다. 그리고 당을 이은 송나라는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화북을 빼앗기게되는, 북송.남송 교체기를 격게 된다. 이 시기에 남송 땅에 살던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주자학(성리학)은, (시대적?) 어떤 필요성에 의해 공자 이후의 유학을 재 해석 한 것이지만, 주자의 해석이 그의 해석 이후부터 900년을 유지하며, 중국의 중심사상으로 자리 매김 된 근본 원동력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황'은 위대한 성리학자기는하지만, 겸양을 미덕으로 여기는 유학자, 자신이 요약해 올린 요약집에 성학(聖學) 이란 제목을 붙인점은, 여러 측면에서 곰곰히 생각해 볼 점이 있어 보인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대가되는 올해의 "137억년의 우주진화 강의"가 기다려진다. 요즘 틈틈이 시간이 내어 지난 동영상 강의를 공부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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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헷갈리던 것 중,
이 글을 쓰면서 이해 한 것과 새로이 궁금해 진 것
시 대 |
계보[인물] |
유가사상 |
특 징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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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 (三皇五帝) |
요(堯)↓ |
원시유학(原始儒學) |
고복격양(鼓腹擊壤) 선양(禪讓) |
단군조선(檀君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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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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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 |
우(禹)↓ |
걸주(桀紂)의주지육림(酒池肉林) 탕(湯)의 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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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殷) |
탕(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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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 |
문왕(文王)↓ |
무왕(武王)의 혁명 봉건제(封建制)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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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武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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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周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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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春秋) |
공자(孔子)↓ |
제자백가(諸子百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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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戰國) |
맹자(孟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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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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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
분서갱유(焚書坑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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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 |
동중서(董仲舒) |
훈고학(訓言古學) |
유학 이념화 |
삼국시대(三國時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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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당(唐) |
한유(韓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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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도교 성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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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 |
정자(程子)↓ |
성리학(性理學) |
관념론적 철학 |
고려(高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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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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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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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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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 |
왕수인(王守仁) |
양명학(陽明學) |
지행합일(知行合一) |
조선(朝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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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 |
고염무(顧炎武) |
고증학(考證學) |
복고주의(復古主義)실학(實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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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 家 思 想 의 계보
: 주공, 공자, 정자*, 주자, 그리고 성리학의 위치를 찾아 볼 수 있다.
주공(周公) - 주문공(周文公 : 기원전 11세기 경?)은 주나라(周)의 정치가로,
주 문왕(周文王)의 아들이자, 주 무왕(周武王)의 동생이다.
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이며, 노(魯)나라의 공(公)으로 봉해졌다.
주로 통칭은 주공 단 이라고 불린다
공자(孔子) 또는 공부자(孔夫子: 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
- 노(魯)나라 사람으로 주나라 주공(周公)의 정치 철학을 지향했다.
주자(周子) - 주돈이(周敦頤: 1017년 ~ 1073년) 또는 주염계(周濂溪)는 북송 유학자
성리학의 기초, 태극도설
정자*(程子) 또는 이정자(二程子) 는 북송 유학자
정호(程顥 : 1032~1085), 정이(程頤 : 1033~1107)의
두 형제를 통칭하는 존칭어이다.
주자(朱子) -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남송의 유학자
성리학(주자학)의 집대성,
조선의 유생에게는목숨을 걸어야 주자의 해석을 부정 할 수 있었다.
즉, 주자의 유학 해석은 오느날 헌법적인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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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의 불교 vs 달마의 불교 대략 1천년의 차이
예수의 기독교 vs 바울의 기독교 동시대 : 이 두분은 서로 만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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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유학 vs 주자의 유학 대략 1천 칠백년의 차이
소크라테스 철학 vs ???????? 철학
정확히 일주일전 일요일 위글을 올리고, 나의 글을 여러번 다시 읽게 보게 된다.
그냥 머리 속에서 막연히 알고 있던 내용을 여기에 올리고 보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 틀림이 없었나, 신경도 쓰이고, 자꾸 확인 해 보게 된다.
대학시절 "교양 철학"을 배운 내용이 기억 난다.
한 학기 쯤 배웠었는데, 그 때 철학과 노교수님이 교과를 담당 했었었다.
배운 범주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다.
그 이후 서양 철학은
이 3인의 철학이 계속 재구성 된 것에 불과 하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
그 때 교양철학의 핵심이었다.
나는 서양철학은 이렇게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나마 배웠으나,
동양철학에 관하여 아는게 너무 없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는 있었으나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어째든 윗글을 올리고
서양의 소크라테스 전후 시기에 신기하게도 거의 동시대에 해당되는
동양의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의 대표적인 몇 인물에 대한 자료를 좀 찾아 보았다.
유.불.선 = 유.불.도 : 유가의 '공자', 도가의 '노자'에 대해선 그래도 어렴풋하게라도 알지만
앞으로 혹시? 시간이 난다면, 관심있게 공부해 볼 사람은 누군가 하는 마음이다.
유가(공자. 맹자. 순자), 도가(노자. 장자), 묵가(묵자), 법가(한비자) 등이 그에 해당 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도를 설파 한 것이라면
'묵자'는 백성의 입장에서 그의 주장을 편 인물이다.
'묵자'가 (공자 시절의)유가를 비판 한 내용이 인상 적이다.
유가는 하늘과 귀신을 믿지 않는다. (죽으면 그만인데 착한 삶을 살아야할까? --- 이런 뜻인 듯)
유가는 장사를 너무 후하게, 즉 비용이 많이 들게 치른다.
유가는 소수 귀족이나 즐길수 있는, 음악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다.
유가는 숙명론을 주장하여, 민중의 나태와 운명에 순종하게 한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으론, 공자가 돌아가실 때 그는
공자 사후 2500년이란 그 긴긴 세월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해 줄거라곤 상상치 못 했을 것이라 한다.
그 당시 '유가'는 제자백가 중의 하나의 학파였을 뿐이었다.
유가의 사상은 수많은 학파중에서,
후세에 누군가의 필요성에 의해 선택 되었다 봐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신차리고 다시 "137억년 --- 동영상"으로 돌아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