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바닥이 차가워서 보일러를 틀고 이불을 두 겹이나 덮은 채 딸아이의 보드라운 인형까지 껴안고 누웠습니다. 그런데 몸을 뒤척이는 순간 찬기운이 조금 새어들고 잠이 확 깨어버렸습니다. 오늘 밤 목격한 사고가 생각나서입니다. 박자세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김현미 선생님과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즐거운 얘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버릇처럼 길을 또 잘못 듭니다. 수원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안양 가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유턴하는 곳을 찾다가 4차선 대로의 중앙 분리선 영역에서 휘청거리는 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취해 보이는 그 옆에 승용차 2대가 있었고 그 차가 일행인지 신호를 받아 서 있는 것인지 무단횡단을 한 그 사람에 놀라서 급정거를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구, 저기 저러고 있으면 위험한데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지나쳤습니다.  



  차를 돌려서 오는 길 김현미 선생님이 갑자기 외칩니다.

" 어머, 어째, 저 사람 아까 그 사람이잖아. 많이 다쳤나봐. "

저는 길눈도 어두운데다 운전하면서 주위를 많이 살피지 못하는 편이라 무슨 말인지 파악하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한 쪽에 세운 뒤 내렸습니다. 사고 현장 어디나 그렇듯이 렉카가 제일 먼저 두 대나 와 있었고 중앙 분리대 부근 도로에 누워 있는 그를 둘러싼 세 사람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길 한 편에서는 다른 젊은 남자분이 전화를 하고 있었고, 저는 그에게 다가가 뭐 도울 일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 분은 경찰에 신고했고 119가 출동했다고 합니다. 길에 누워있는 그를 보며 제가 말합니다. "어딜 다쳤는지 모르니 함부로 옮기지 않는 게 낫겠지요? "

그 분도 그게 좋겠다고 합니다. 저는 망설이며 말합니다.

" 아까 본 사람 같아요. 무단횡단을 하는 것 같았는데...... "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사고 차량은 저기 앞에 있어요. "



  저만큼의 거리에서 여전히 그가 쓰러져 있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몸을 외투로 덮어 주었는데 고개를 조금 움직입니다. 그걸 보니 무척 춥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차에 작은 담요라도 가지고 다닐 걸 싶으면서도 제 옷을 벗어줄 엄두가 나질 않아 잠시 서 있다 그냥 차로 돌아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저 뒤쪽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립니다.  피를 많이 흘린 것 같다고 김현미 선생님이 말합니다. 젊은 사람인데 어떡하면 좋으냐고. 제가 버벅거리며 말합니다.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돕는 것도 필요한 일인데 누워 있는 그 사람한테 가서 뭐라고 말을 좀 해줘야 했어요. 저는 일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생각이 나고 후회를 해요. "


 

  오늘 회의 전 이진홍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공교롭게도 미러뉴런(Mirror Neuron)에 관한 겁니다. 우리가 타인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미러뉴런 때문이며 그런 면에서 모든 존재, 특히 인간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마더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은 '내 안에 너 있다'와 같은 미러 뉴런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무얼 보고 거울로 삼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겠네 했습니다.



  오늘 어두운 도로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 그를 돕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향적인 우리의 습관이 일을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과정에서 중요한 걸 놓쳐 버린 것은 없었나 후회가 됩니다. 미러뉴런 이야기도 그렇고, 마음도 근육이라는데 제 근육과 미러뉴런에는 아직 섬세함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잠자리에 눕자 차가운 시멘트 위의 그 젊은이가 생각났습니다. 두려움 없이 5미터를 더 걸어가서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해 주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도와주고 함께 있을 겁니다. 구급차도 오고 있어요.

괜찮아질테니 조금만 참아요.”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듣고 싶은 말을 그에게도 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