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오늘 박문호 박사님의 '137억년 우주의 진화' 강연 뒷풀이시 들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척 인상적인 말씀였습니다. [ 배울 때는 일단 무조건 엎어져 따르라. 배울때는 비판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배움의 순서이다. -박문호박사- ] 암것도 모르는 저, 이제 첫발을 내딛은 저는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암요, 그래야하고 말구요. ^^
의심을 갖고 공부하라는 것은 공부할 때(특히 자연과학 공부할 때) 항상 "왜"라는 생각을 갖고 공부하라는 뜻일 겁니다. 데이타와 그 것의 해석을 갖고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라(일정 수준이 아닌 이상) 교과서에 나온 사실이 왜 그렇게 나왔을까를 '생각'해보라는 뜻일 겁니다. 의심이라는 말이 두가지로 나눠 쓰였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이 도출된 것 같습니다.
탄도리님이 말씀, 너무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문제는 열정어린 강의와 감동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폄하하기 위해
아주 비꼬는 투로 의심이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동을 가지고 공부하면 호기심이란 아주 긍정적인 의심이 지속적으로 발동된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조상들이 평생을 걸었던 지식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 더욱 옳은 자세일 거 같습니다.
물런 신비주의같은 날지식(?)들은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자세는 당연할 것입니다. ㅎㅎ
공부에 감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더욱 절실한 공부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자세와 이런 학습의 강도를 하기 힘든 사람들이 의심이란 단어를 학습에 그럴듯하게
채용하면서 비꼬고 시기하는 순수하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에..
제가 이 글을 썼습니다. ㅎㅎ
상대주의의 입장에서는 어떤 말도 문맥을 잘 따르면 옳은 말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전제 위에서, 이상적인 논쟁은,
논쟁 대상을 발언자가 아니라, 말 - 말의 용례, 발언의 문맥을 찾아 이해하기-
로 한정할 수만 있다면
끝이 좋은 논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때가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그래서, 감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이니,
내 놓은 말들을 다른 경우에 맞게 이해한다는게,
참 쉽(지 않)죠~
^^
보수적인 사람은 편도체가 우세고,
진보적인 사람은 전두엽이 우세일 것 같아요
보수적으로 확고한 사람들의 강함은
허약한 내면의 무의식적 두려움이 일으키는 의식적인 방어기제.
공부가 깊고, 속이 강한 사람들이 득세해서,
지혜로 다같이 행복한 세상 꿈꿔 봅니다.
박박사님과 여러분들에게서
공부 자극 받으면서
좋고, 고맙습니다.
^^
공부를 함에 있어서 의심과 질문을 가지라는 말은 단어의 어감과 방향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의심과 비판을 하면서 공부하라고 함은 통상적으로 책에 쓰인 글의 데이터와 과정과 결론에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행여 그글에 나타난 지식에 오류가 있는지 세심히 살피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라고 해석합니다.
반면 질문의 마음을 가지고 공부를 하라고 함은 탄두리님의 말씀대로 항상 왜?라는 단어와 기원과 근원은?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지속적인 지적탐구를 하는 자세를 유지하며 공부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양자는 잘 구분이 가지 않는 듯 보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어느 분야를 처음 공부하는 초보자의 경우에 이 둘의 개념을 혼동하여 적용할 경우에 치명적인 어려움에 빠져 좌절을 할 가능성이 높거나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 수준에 있는 대가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의심과 비판을 항시 마음에 품고 공부를 하여야 하겠지요. 하나 초보자가 이런 자세를 유지하며 공부를 하는 것은 조금은 어리석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지식의 깊이가 낮은 초보자가 정말 그런 방식의 공부가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초보자 본인의 착각일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보자가 생각하는 의심과 비판은 나중에 일정수준의 지식이 쌓이면 자신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밝혀지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의 마음을 가지고 지적탐구를 하는 자세로 공부하는 것은 대가는 물론이요 초보자에게는 더 없이 효과적인 공부의 방법이고 , 집중적으로 일정수준에 이르는 좋은 공부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세는 모듈화된 지식을 암기하는 것 못지않게 지식간의 연결고리를 만들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의심과 비판의 자세를 유지하고 공부하는 경우에는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상대성이론이 오류일거라는 가정아래 비판적이고 의심어린 태도로 자신이 그 오류를 수정하고 새로운 이론을 밝히는 데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공부의 역량과 시간을 그곳에 집중하는 자세로 공부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왜?라는 질문과 기원을 추적하는 자세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사고속으로 들어가 상대성이론의 지식이 가지는 기원과 의미를 추적하며 주변의 폭넓은 지식의 섭렵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초보자의 경우는 이마져도 힘들어 그 분야의 전문가를 멘토로 삼아 가이드를 받아서 접근하는게 효율적입니다.
그간 평생독서를 많이 하고 책읽기에 달통하신 분들마져도 이런 개념구분의 오류에 빠져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몇몇분들이 그들이 가진 오류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여 마치 공부의 모범답안인양 초보자들을 유혹하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유혹받은 초보자들이 마치 제대로 된 공부의 길을 찾은 양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오류에 대해서 감히 이야기 해줄 수 없는 그 어떤 분위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먼발치서 그냥 바라만 보아야 했습니다.
저는 매일 책을 펼치거나 공부할 때에 제생각이 의심과 비판의 삼천포로 빠지는 순간을 항시 경계합니다.
의심과 질문의 경계에서 항상 예의주시합니다.
의심과 비판의 단초가 끼어드는 것은 초보자의 공부에 독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저함이 없이 과감하게 의심과 비판의 싹을 제거하기 위하여 교과서란 보험을 들고 공부합니다.
최소한 학부와 대학원 수준의 각 분야의 자연과학 교과서에 있는 지식들을 완벽하게 체화한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이런 공부자세를 유지할려고 합니다.
공감합니다.
의심을 하며 토론을 하는 수준은 그 분야의 대가들이나 가능하죠.
한자의 부수 획수도 다 알기전에 한시나 한문을 의심하고 토론하며 공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느껴집니다.
먼저 의심이나 토론을 할 지식의 기반을 축적하는 단계의 공부가 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과학과 수학은 인간이 경험과 감각과 감성을 배제한 채로 객관적인 이성을 통하여
우주와 자연의 진리를 밝히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전세계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린 과학과 수학의 지식이라는 것들은
수백년간 수천명이상의 대가들의 논쟁과 토론과 비판을 이겨낸 검증된 사실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식조차도 무장하지도 않은 채로 의심과 토론과 논쟁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생각입니다.
공부를 시작하는 초보자가 그런 방식을 택함은 삼천포로 빠지거나 좌절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모두가 빨리 의심하고 토론할 수 있는 경지로 발돋움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