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소확행을 박살내고 있다. 모두들 압수당한 소확행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망연자실 중이랄까? 마스크 없이 외출하고 이물감 없이 숨 쉬던 편안한 날들은 어디로 갔나. 우리는 지금 그것들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체감하는 중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들, 소확행의 부재에 어쩔 줄 모른다.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을 줄 알았다.

 

1년에도 두 세 곳 정도 직장을 옮겨야 하는 일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눈여겨보는 것이 힐링길 찾기였다. 그리곤 그 구간은 내려서 걷는다. 그런 길은 언제나 호젓하고 오붓하다. 때로는 바닷가 둑방길 같은 행운도 만난다. 철렁철렁 밀물이 가득 들어와 물새들도 분주히 난다. 이런 길을 걸으면 너무 행복하다. 그것도 이른 아침 출근길에.

 

퇴근길엔 시간 제약이 없으니 마냥 느긋할 수 있다. 둑방에 앉아 해풍에 실려 오는 바닷내음과 함께 한껏 시간을 보낸다. 어떤 명상의 시간이 이 보다 좋으랴. 힐링길은 어디든 찾아보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내려서 걷는다. 대중교통은 이런 점이 참 좋다. 자동차 간수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까.

 

문밖에 봄이 가득 와 있다.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봄이 되었다. 소확행은 늘 우리 곁에 말없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우린 그 고마움에 사무치지를 못했다. 햇볕 좋은 봄길, 꽃향기 날리는 식물원, 공원길이나 낙엽 쏟아지는 서늘한 가을길도 무척 좋았다. 기분 좋을 정도로 쌀쌀한 11월의 빈 들길은 또 어떤가.

 

소복소복 이밥이 차려져 있는, 하얀 꽃 이팝나무길도 좋다. 사각사각 빛 바스러지는 하늘을 홀로 즐기며 살랑대는 바람에 가만히 얼굴을 대어보면, 이 오롯함은 전율하도록 맛나다.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이 저절로 읊조려지는 그 숱한 눈부신 날들! 확실히 행성지구는 과분하도록 아름답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을 모르듯, 무상으로 무제한 열려있는 법열 같은 소확행의 호사를 우린 진정 알았을까? 이제야 소스라치며 떠올리는 건 '호사다마(好事多魔)'. 우리들의 이 소확행 보물을 무척이나 탐내고 시샘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시기심에 속을 끓이다 마침내 바이러스로 나타난 그 무엇이 있었던 거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린 철도 없이 의기양양 맘껏 자랑했다. 너무 행복한 티를 내면 안 되는 거였다. 깜빡했다. 노여움이나 슬픔만 참을 줄 아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무제한이고 무상이지만 그것을 누릴 줄 모르는 아귀 같은 무엇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아귀는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한데 배는 산처럼 크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굶주려 헐떡거린단다. 이런 눈에 안 보이는 존재들이 아예 바이러스로 나타나 훼방 놓을 수도 있다는 걸 예견하고 배려했더라면 어땠을까.

 

음식물 건더기를 마구 버려 물을 오염시키고, 편리함만 추구하느라 쓰레기를 양산했다. 자연의 다양한 존재들에게 위해를 가하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너무 으스댔나 보다. 절제와 겸허와 감사를 까마득히 잊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