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오전,

뜬금없이 아내가 오늘 일하지 말고 하루종일 영화보며 지내자고 했다. 

얼떨결에 이화여대에 있는 작은 영화관으로 향했다.

전날 밤 잠을 설쳐서 멍한 상태에다 점심을 먹고나니 영화보는 중에 졸음이 올까봐, 

평소 안마시는 커피 한모금으로 처방을 하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들어선 영화관에는 우리를 포함해서 관객6명이 전부였다. 

아무리 커피로 처방을 했다지만, 관객 수를 보아선 틀림없이 졸음이 쏟아질 거라고 예상했다.


이윽고 영화가 상영되고, 이내 3D용 안경의 어색함이 사라지고 영화의 장면에 몰입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피나 바우쉬라는 21세기 최고의 현대무용가의 대표적인 작품 4편을 3D영상으로 편집한 작품이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현대무용수들의 춤과 몸짓만 화면에 가득했고, 

언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무성영화에 가까웠다. 


그간 춤이라는 단어가 가진 일상적인 선입관을 철저히 깨뜨리는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그 어떤 영화나 연극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철학적, 뇌과학적 메시지를 전달했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넘쳐났다.


피나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피나의 작품들은 행성지구에서 인간의 섬세하고 파격적인 몸움직임을 통해 

인간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특히 다른 동물이나 사물의 움직임과는 차별화된 인간의 몸짓을 예술적으로 완벽에 가깝도록 표현을 해냈다.

이러한 인간의 상징적 예술적 춤은 인간이 지구의 중력을 이기고 

정교한 몸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느껴지며 감동이 밀려왔다.

춤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여 정교한 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지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을 의미하는 듯했다. 

  

특히 피나의 작품들은 노래와 언어를 배제한 채로, 철저하게 인간의 원초적인 몸짓을 통한

교감과 소통이야말로 근원적인 교감을 얻을 수 있는 거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피나는 상징화된 언어의 개입이야말로 근본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인식하는 듯 했다. 

하지만 상징의 몸짓을 통한 소통을 강조할수록 정교한 소통을 위한

언어와 문자의 위대함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피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감동적이고 격정적인 춤동작 하나하나를 말로 주절주절 표현하고

해석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일 것 같다.

이 영화를 내 생애에 최고의 영화라고 손꼽는다.

뇌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행성지구에서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원초적인 인간현상을 예술적 철학적 뇌과학적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단연코 이 영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