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자세를 통해 미국을 다녀왔고, 몽골, 베트남, 서호주를 다녀왔다. 서호주 책자에 참여했고, 몽골 책자에 몇 챕터를 맡았으며, 미국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박자세 책자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을 받을 때이다. 책쓰는 혹은 박자세 활동을 하면서 정작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하는 순간 답을 하는데 망설여 진다. 10초내외로 답을 못하면 모르고 있다고 한다. 질문에 답을 하는데 망설임이 있는 이유가 있다. 

3가지 이유이다. 첫째, 묻는 사람의 의도를 생각해서이다. 둘째, 보고 듣고 배운 내용의 방대함이다. 셋째, 함께 박자세 활동을 함께 한 사람과 앞으로 참여할 사람을 생각해서 그러하다. 자꾸 생각만 하다가 내 자신에게 대답도 못하고 망설인다.

정확하게 무엇이 좋았고, 싫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말로 할 수가 없다. 학습탐사을 다녀오고 책을 쓰는 행위를 하고 있어도 표현할 방법을 모르고 있다. 특히 학습탐사를 하며 느낀 감정을 담을 단어를 못찾고 있다가 정확하다. 표현하면 사라질 것 같아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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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바에 고인 물 위로 파문이 일고 있다.

캐년랜드, 그랜드 캐년의 색색이 덮인 지층, 데스벨리에서 본 사막의 모래 사이로 지나가던 도마뱀 , 몽골 초원의 가득 찬 풀잎을 눕히는 바람, 서호주 마블바에 홀로 울던 맹꽁이 울음에서 느낀 내 감정이 사라질 것 같아 말을 아끼게 된다. 

 

그래서 탐사대원은 학습탐사 내내 침묵을 즐긴다.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이 줄어드는 자연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풍경에 익숙해진 탓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가 자연이 주는 풍광보다 더 익숙하다. 텔레비젼 속 드라마 품평은 몇 시간동안도 가능하지만 발에 치이는 돌멩이 하나에 들어찬 드라마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니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다.


학습탐사 하는 동안 매일 다른 풍경을 만난다. 침묵하지 않으면 새로운 풍경은 조각이 날 것 같다.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처럼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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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바 산상수훈, 저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학습탐사에서 보는 풍광은 묘한 매력이 있다. 우르릉 소리에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에서 이미 익숙한 공간이 아님을 몸소 느낀다. 삶을 살아오며 경험한 그대로 자연에 내 행동을 내어 놓으면 내어 놓은 족족 부딪히는 내가 있게 된다. 자연은 그대로 있는데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은 사람뿐이라 멈춰있는 자연은 오간 데 없고 사람만 눈에 띈다.

이런 와중에 곁에 항상 있었지만 발견 못한 소리를 만나게 된다. 내가 멈추고 내게 나는 소리를 닫는 순간 우리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백색 소음이라고 했던가. 소리가 없으면 잠이 들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냉장고 소리, 자동차 소리,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처럼 언제나 내 주변에는 소리가 함께 살았다. 학습탐사 특히 몽골이나 서호주를 가면 익숙한 백색 소음이 없다. 대신 그 자리를 풀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멀리서 들리는 구름의 웅성거림을 듣는다. 도시에서 함께하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엉뚱한 소리만 크게 들린다. 잠에 들려 하는 순간 침낭을 스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옆사람의 숨소리, 코고는 소리, 텐트의 안과 밖에 껍질이 부비는 소리가 내 귀에 가득찬다. 

학습탐사를 다녀오고 나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인물열전이라 표현을 통해 누구 하나같지 않은 인적 구성에서 다양한 삶과 사람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반면에 학습탐사 동안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또다시 사람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민감하고 세심하며 극도로 곤두선 감각의 소유자들도 있다. 그 사람은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간에 놓여 새로움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민감하여 상처받은 자신을 재발견하고 올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 민감한 사람마저 만족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침묵이다 침묵은 웬만한데 두어도 어울린다. 이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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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강의를 준비하는 박문호 박사와 강의 청강을 준비하는 법념 스님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소음에서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만나게 되는 자연의 위대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감한 것이 중요하다 아니다의 가치 판단이 아니다. 그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무드가 침묵을 통해 조성되기 때문이다.

안정된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을 만나며 하모니 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 박자세 학습탐사의 목적이다. 학습이라는 공통 목표를 추구하여 '행성 지구에서의 인간이라는 현상'에 집중하고자 하는 바람이 들어 있다.

박자세 아니면 겪을 수 없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원초적 자연을 만난다. 그리고 그 피할 수 없는 맞닥뜨림에서오롯이 느끼는 자연의 동화되는 흐름을 선사하고 싶은 것이 학습탐사의 목적이며 의미이다

박문호 박사의 주장이 이것이다. 침묵의 에너지가 잉태하고 있는 의미가 다가설 때 비로소 소리의 음가가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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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크베이에서 스트로톨마라이트의 기포 소리를 듣는다.

 

박자세 학습탐사에서 지양하고 있는 현상이 수다이다. 실제로는 일상용어의 지양이 맞을 것이다. 이야기 사이와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을 통해 자연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샤크베이에서 박문호 박사는 설명 도중 말을 멈추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고 이내 집중하기 시작했다. 샤크베이가 갖는 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말과 말 사이에 침묵이 존재하고, 그 침묵에서 말이 시작된다.

 

샤크베이는 서호주에 있는 그저 그런 관광지가 아니다. 세상을 만든 이야기가 맴도는 곳이다. 35억년에 가까운 세월 이전에 산소를 내 품은 성지이다. 그 장소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 박문호 박사는 순간 태고에서 나에게 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침묵으로 설명하며 숙연하게 하였다.

 

광합성이라는 현상, 산소와 동반된 생명현상의 위대한 기록을 설명 함에 있어 침묵하여 침잠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붉게 오른 눈시울에 담긴 물방울은 많은 의미를 순식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요히 발걸음을 옮겨 스트로톨마라이트를 바라보았다. 가장 나이 어린 시우 학생마저도 그 침묵으로 다가섰으리라. 자연과 더불어 한 울림이 되어 태고의 말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현상은 내면을 변화 시킨다.

 

일상용어 사용를 자제하고 학습탐사의 기본 능력인 침묵에 동참할 것 당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민감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사람이 만든 공간에 살아가기 때문에 민감함은 늘 흐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사실 이런 사람을 위해 박자세 학습탐사가 있다. 박자세가 침묵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침묵 또한 말이다. 언어의 수단이며 도구이다. 일상적 단어로 버무려진 말은 일상을 벗어나고 자연을 만나는 순간 소음이 된다. 그러나 침묵은 원초적 자연의 모습에서 음가를 발휘하며 사물이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아가게 한다.

익숙한 언어는 익숙한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머물며 일상용어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공간을 익숙한 공간으로 끄집어 들이는 행위일 뿐이다. 언어가 가진 머무르려는 속성이 그대로 들어나면 나는 더 이상 새로워질 수 없다

_IGP4091.JPG 마블바 트레일 3에서 박문호 박사 

침묵에 머물며 침묵을 생각함은 침묵의 방에 시간과 공간을 담는 작업이 된다. 그래서 어떤 여행이나 탐사보다 홀로 공간을 적시는 걸음을 하는 사람이 박자세 학습탐사에는 많다.

 

침묵의 밀도가 다른 공간이 있다. 사막에서 뉘엿뉘엿 해가 저물면 숨겨져 있던 소리가 살아 난다. 붉은 태양 아래로 사막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면 바람에 몸을 비비는 모래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협곡에 들어서고 자동차의 시동을 끄면 협곡을 가득 메운 고요를 만나게 된다. 서호주의 붉은 땅에 놓인 붉은 흰개미집 너머로 비너스벨트가 스쳐가면 그 적막이 들린다.

 

서호주의 망막을 꿰뚫는 별을 바라볼 때 박사님의 목소리만 공간을 감쌀 때가 있다. 그 시간에 박사님은 조용히 설명을 멈춘다. 때론 침묵이 더 큰 의미로 다가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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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 놓인 커다란 바위 위에 양겸 학생과 박문호 박사, 커다란 소를 닮은 바위에 앉아 있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침묵은 제 8차 몽골 학습탐사에서 양겸 학생과 박문호 박사가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던 장면이다. 그렇게 불던 바람은 멈춰 있었고, 커다란 바위가 놓인 장소는 아늑하기 그지 없었다. 석양이 내리기 시작했다. 땅에 걸려있던 빛 알갱이 끌어모아 태양이 저 너머로 사라질 때 함께 공간을 메우던 두 사람은 침묵만 남겨 두고 사라졌다.

 

어둠과 나 사이에 오롯이 남은 침묵의 그림자를 따라 별이 올라서고 있었다. 저 멀리서 전갈자리 안타레스가 검은 공간을 붉은 빛으로 채웠다. 별이 아름다운건 분명 내게 보이는 모든 공간을 차지한 검은 하늘 위에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도 강물은 젖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공기는 부풀지 않으며, 침묵이 쏟아져도 고요는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채우고 있는 많은 것은 그렇게 보이지 않고, 맡아지지 않으며,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9회 박자세 해외 학습탐사의 최고 장면 중 하나를 트레일 3에서 올라간 조립현무암을 든다. 그 때를 표현한 김태호 선생의 시는 지금도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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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군 비행장 활주로

 

오래된 공군 비행장을 지나 앞에 나타난 조립현무암을 보고 박문호 박사는 차를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대원들을 이끌고 조립현무암을 향해 올라갔다. 부드러울 것 같은 스피니펙스는 옷을 뚫고 살갛에 상채기를 줄 정도였다. 누군가는 캥거루가 두 발로 뛰는 이유가 날카로운 스피니펙스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발을 딛는 조립현무암은 전체 모양이 아이스크림 위에 올려진 초콜릿 블록처럼 생겼다. 그러나 밟는 순간 단단함이 전해져 왔다. 한 발 한 발 올라갈 때 현무암 특유가 거친 표면으로 올라가기가 매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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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바 트레일 3의 조립현무암 앞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그린스톤벨트가 보인다.

조립현무암의 봉우리 정도에 올라가자 박문호 박사는 햇살을 피해 그늘에 앉자고 하였다. 모두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현무암이구나를 외쳤고, 그 기분에 너나 할 것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도요타 랜드크루져 6대가 줄줄이 서있고, 그 너머에 그린스톤 벨트를 따라 평원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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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3에 조립현무암 위에서

 

그러다 바람이 한 줄기 불었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 소리가 사라졌다. 바람이 소리를 가져간 것이라도 한 것일까 소리마저 놀라 고요한 시간 위에 멍하니 있던 공간이 불쑥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침묵의 소리에 놀라 몇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조용하니까 너무 좋다하고 말 하였다. 그 때 박문호 박사가 이런 말을 하였다.

“ 말을 멈추는 순간 배경으로 있던 침묵이 들어나죠.”

놀라운 설득이었다. 그렇게 10여 분을 침묵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왔다.

찔려보면 안다. 스피니팩스

앉아보면 안다. 조립현무암

입을 다물어보면 안다 침묵하는 자연의 소리를..

이 때를 반추하며 쓴 김태호 대원의 시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팔닥거리는 싱싱한 공기가 초원을 감쌀 때에도, 35억년의 억눌린 그리움이 바위에서 터져나올 때에도 샤크베이의 스트로톨마라이트의 작은 물방울을 느끼는 것은 모두 무엇때문인가.

수 많은 공간을 보고 느끼고 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엇이 남았겠는가.

시간과 공간이 익숙한 언어에 머무는 순간 새로움은 사라진다.

침묵하는 자연을 올곧이 받아들이는 노력 그 안에 자연이 담긴다. 이것이 내가 바라 본 박자세의 배경음악 침묵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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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바의 35억년 지층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 박자세 탐사 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