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공간에 물들어 산다. 선택 중에 최고의 선택은 공간의 선택이다. 생각이 내가 결정하는 것보다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택은 나를 바꾸지 못한다. 지속적으로 자극을 줄 수 없음이 그 이유다. 사람도, 물건도, 환경도 공간에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다면 그 사람을 새로운 공간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공간은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극을 준다. 그 자극에 내가 바뀐다.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를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 세상을 만나게 하는데 있다. 자연과학 공부는 아름답다.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이 어떻게 거기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이유로 박자세 해외학습탐사는 아름답다. 새로운 공간을 선택하고, 학습을 통해 배경으로 머물던 자연을 내 안에 채울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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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영지 뒤에 옛 거란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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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옛 성터 앞에 숙영지 뒤로 비너스벨트가 놓여 있다.

 

해외 학습탐사에서 여러 번 박문호 박사와 함께 숙영지를 찾으러 간 적이 있다. 언제나 내려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차를 타고 눈으로 보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눈으로 들어오는 공간을 몸으로 확인할 때까지 계속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주변을 살피며, 웅크리고 앉아 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는다. 소리를 듣고,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기도 한다. 몸에 들어오는 모든 감각을 열어 정보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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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고 테르힝 국립공원 산이 둘러 쌓여 있어 아늑하고 푸근한 숙영지 

박문호 박사는 숙영지를 선정하는 원칙이 있다. 그 근간은 시공의 사유이다 

편안하고 아늑할 것, 시야가 확보되어 천측 관찰과 주변을 알 수 있을 것, 새벽에 일어나 등산 등의 활동을 통한 사색이 가능할 것, 후각과 시각 등의 마이크로 환경을 생각할 것 등이다 

겉보기에 좋은 풍경이 있다. 특히 몽골에 가면 그런 풍경은 널리고 널렸다. 언덕에 푸른 풀잎이 있고, 야생화가 피어 있는 그런 장소이다. 그러나 그런 곳은 이미 가축이 차지해서 똥과 오물, 그 위를 서식하는 벌레로 가득하다 

몽골 학습탐사의 최고 숙영지 중 하나는 호르고 테르킨 국립공원에 초원이다. 2012 8 13일 오후 6 20분에 출르트 협곡에 도착하여 깎아지는 계곡의 절경과 들판의 야생화를 둘러 보았다. 보라색 엉겅퀴, 키 낮은 지보라색 용담, 진분홍색 패랭이꽃, 솜다리, 구절초가 피어 있었다. 계곡의 양쪽으로 절벽이 둘러쳐지며 물살이 협곡을 치고 있는 곳이다 

바위에는 각양 각색의 지의류가 있었고, 온몸을 비틀며 시간의 억눌림을 소나무가 표현하고 있는 선경이었다. 그곳에서 숙영을 하자는 제안에 꽃 위에 어떻게 텐트를 치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그 뒷 배경에는  물 흐르는 소리와 바로 옆의 비포장 길이 있어서이다. 소리와 자동차의 불빛이 천문 관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은 숙영지는 기억에 내내 남는 공간이 되었다 뒤로는 산이 가로막아 편안하고 아늑했으며, 앞으로는 시야가 확보되어 모닥불에 솟은 불꽃 끝자락에 별을 볼 수 있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 쌓여 몇몇의 탐사대원은 아침 등산을 하였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 벌레를 날려 보내는 그런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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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위의 숙영지와 산책하는 탐사 대원

숙영지 선택의 뒤에 자리잡은 배려는 하나 더 숨어 있다. 바로 새벽에 있는 새벽 강의이다. 몽골 학습탐사 책자에 있는 담시 박성용 대원의 일지에 새벽 강의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초원에서의 둘 째날 새벽, 낯선 곳 낯선 질량과 밀도의 잠에 푹 젖어 있는데 꿈결인 듯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양자중성자…” 그것이 새벽 강의라는 것도 미처 인식하기 전에 비몽사몽에서 들은 그 음성과 단어들은 충격이었다. 부리나케 침낭을 벗고 나와 본 풍경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화인이 되었다.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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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강의를 듣는 박자세 회원 뒤로 일출이 시작되고 아직 지지 않은 오리온 자리가 머리 위에 놓여 있다.

 

하늘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단단한 어둠이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별이 빛난다. 침낭을 나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밀도 높은 고요 속에 강의가 시작된다. 태초의 시작된 빅뱅에서부터 나에게 이르는 이야기가 공간을 잠식한다 

리얼 시스템의 확인은 단순히 어떤 장소를 방문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몽골 평원에서의 새벽강의는 빅뱅에서 초원을 가득 메운 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담는다. 그래서 담시 박성용 선생의 일지에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운동에너지는 빅뱅 이후의 에너지가 지속이 되고 있는 것이며 가속팽창과 암흑에너지에 대한 과학적 사실에 대해 구체적 수치와 근거를 가진 것만 골라서 얘기하는 것도 들리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무수한 유목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몽골의 역사가 편하고 순한 양처럼 다가오는 것이었다. 행성지구와 인간의 역사를 포함한 인간현상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있었다. ‘

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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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바 뒤 산에서 새벽 강의가 진행되고 그 뒤로 강과 계곡이 보인다.

지금도 여러 사람이 아쉬워하며 그리워하기까지 한 마블바에서의 산상수훈도 이 뒷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마블바 주변으로 35억 년을 인내한 자스파가 있고, 그 주변을 강물이 흐른다. 흐르는 강물에 퇴적된 모래 사장 위로 블랙 스완이 노닐고, 휘어진 강물 사이에 머문 물 웅덩이에는 맹꽁이가 새벽을 깨운다. 마블바 뒷 편으로 올라서자 넓게 퍼진 마운트 에드가 돔(Mount Edgar Dome)을 둘러 싼 그린스톤벨트가 눈에 들어온다 

그 공간에서 새벽강의가 시작되었다. 35억 년 지층을 만든 지금과 다른 맨틀구조와 산소와 만난 철이 쏟아져 내리며 탄생한 밴디드 아이언 포메이션, 주변을 둘러싼 그린스톤벨트의 생성조건, 산소를 만든 스트로톨마라이트의 생성을 통한 샤크베이에서 마블바를 잇는 이야기들은 주변의 소리를 사라지게 한다 

창백한 푸른 별 지구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대기에서 숨쉬며 땅 위를 밟으며 듣는 강의는 몸에 새겨진다. 학습감화력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학습 분위기의 50% 이상을 좌우 하는 것이 숙영지의 선택이라고 박문호 박사는 말한다. 시공의 사유에 대한 철학이 여기에 있다. 학습 감화력을 극대화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장소를 기억에 고착시키고 변하지 않는 기억을 선물한다.

 

한번쯤 생각해보는 단어가 있다. 민감함이다. 이 단어와 비슷한 속성의 단어는 섬세함, 세심함, 꼼꼼함, 신중함, 세밀함, 상세함, 치밀함, 등이다.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민감은 반응하기는 하되 구분되지 않는 지각현상이며, 셈세는 구분되고 지각되어 기억과 기억을 비교하는 인지 현상이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박자세라는 공간으로 나를 옮겼기 때문이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아침 다음에 점심 그리고 저녘 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다.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 그리고 돌고 돈다. ,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순환 속에 우리는 놓여 있다

시간은 맴돌고 우리는 그 공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 간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두 가지이다. 공간을 벗어나거나 공간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것 외에는 없다. 두 번째는 어렵고 힘들다. 아무리 보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보통은 공간의 선택을 통해 사람은 바뀌어 간다. 고향, 강가, , 초원, 절벽, 바다, 교회, , 도서관, 학교, 직장, 술집, 노래방, 모두가 공간이다. 새로운 변화를 찾고 그리워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그 일상은 공간에서 일어나 공간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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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회 몽골 학습탐사 마지막 날 바위로 둘러 쌓인 숙영지 

숙영지의 선택은 분명 시공의 사유의 체험이며 실습이다. 시공의 사유 너머에는 배려라 불리는 섬세한 정신이 맴돌고 있다.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잇는 공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새벽강의에 내가 있는 공간까지 포함하고 채득하여 느낌 가득하게 하는 세밀함은 깊은 배려이다. 파스칼의 섬세의 정신과 데카르트의 기하학적 정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학습탐사이다.

 

학습탐사를 하며 매 번 수천 킬로미터의 공간을 가로 질렀다. 비행기로 태평양, 인도양을 넘고, 자동차를 몰고 대륙을 가르는 도로를 지났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튕겨지며 초원을 지났다. 길이 사라지고 강물이 들어찬 길을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며 건넜다. 내 눈이 끝간 데 까지 가득 채운 부추 밭을 보았고, 모래로 채워진 사막, 35억 년 전의 지층, 산소의 기원을 품은 샤크베이, 시간이 파내어 놓은 캐년랜드, 그랜드 캐년, 사라진 인디언의 고대도시를 돌았다.

 

이 모든 장소와 공간의 이미지가 내게 남겨졌을까를 생각해 본다. 사실기억만이 남는다. 사람과 나눈 이야기, 공간을 담은 망막, 별을 보며 감탄한 느낌은 모두 뉘앙스로 사라진다. 그리고 외우고 암기한 사실기억만이 남겨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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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 게르 옆에 숙영하였다. 저 멀리 몽골의 마을이 구름에 쌓여 있다.  

학습탐사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아늑한 공간과 감화된 내 감각 위에 사실 기억이 쌓인다. 어제는 미토콘드리아 책을 보다가 몽골 초원이 내 기억의 이미지 위에 올라섰다. 나무보다 풀이 더 복잡한 광합성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대목이다.

다음 문장이었다 

내 생각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나무가 풀보다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광합성 조직만 따지면 풀이 훨씬 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다.

순식간에 나는 싱가폴을 거쳐 서호주 퍼스를 지나 서호주의 붉은 땅을 가르고 샤크베이에서 스트로톨마라이트를 보고 있게 된다. 마블바, 밴디드 아이언 포메이션이 가득한 카리지니 국립공원을 떠올린다. 속씨 식물에서 진화하여 한해 살이 풀까지의 진화과정이 스치며 몽골 초원에 놓이게 된다. 공간을 주름잡는 캥거루와 시간을 주름 잡는 식물의 씨앗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학습탐사에서 배우고 익히고 확인한 리얼시스템은 학습이라는 기능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린다. 공간이 가진 이야기는 대부분 뉘앙스가 된다. 그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사람은 만나거나,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올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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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 켜진 텐트 위로 별이 쏟아 진다.

 여기에 내가 학습탐사를 선택하고 찾으며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얻고 그 안에서 움트는 공간을 간직하고픈 바램에서 이다. 꿈 속에서 조차 풍부한 이미지에 노출될 수 있는 기쁨, 학습탐사에서 받은 공간의 선물이다. 이 현상이 나를 다시 학습탐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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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강의가 끝나고 마블바 뒷산에서 내려가는 탐사 대원

 

 

 

 

 

 

 

 

 

 

 

 

 

 

 

 

 

 

 

 

 

 

 

 

 

 

 

 

 

숙영지와 새벽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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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벨리 캠프장 뒤의 민둥산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붉게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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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za - Borrego State Park 캠핑장에 박자세 학습탐사 텐트, 주변에 보이는 민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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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후 텐트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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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 위의 숙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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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차 몽골 해외 학습탐사 첫 날 숙영지로 정한 거란 옛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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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차 미국 남서부 학습탐사 숙영지에 밤 새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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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차 서호주 학습탐사에서 텐트를 치는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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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치고 야간 강의를 준비하는 박자세 해외 학습탐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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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영지 앞의 마을 뒤의 4,000미터 알타이 산맥에 구름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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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차 서호주 해외학습탐사 야간 강의가 끝난 후

dceaa440e9b46208a56828f3d05d66ff.PNG 제 8차 몽골 학습탐사에서 숙영지에 벌레를 쫒기 위해 말 똥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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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차 미국 남서 해외 학습 탐사 마지막 숙영지 데쓰벨리 주변에 산이 둘러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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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몽골 학습탐사대 텐트와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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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몽골 학습탐사대 텐트와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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