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 21

 

 

 

 

베트남 호치민 국제공항을 나오자 후끈 달아오른 공기가 피부를 압박해온다. 겨울 바람에 노출되었던 피부는 금새 따뜻한 공기를 맞이하며 모공을 열고 있다. 택시를 타기 위해 환전을 하고 공항을 나오면 잔뜩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 택시 승강장을 찾았다.

 

 택시를 타고 약속된 장소를 향한다. 여기 저기에서 갖가지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초원을 덮치고 있는 메뚜기 때를 만난 것 같다. 공항 톨게이트를 나서자마자 택시 주위를 금새 오토바이가 감싼다. 흐르는 강물처럼 오토바이가 흐르고 있다. 큰 교차로를 만나도 신호등이 없는 곳임에도 오토바이와 승용차는 막힘 없이 흘러간다.

 

임동수 총무로부터 카톡이 도착한다. 숙소로 택시를 타고 오라는 문자이다. 20여분을 호치민의 신도심 푸미흥을 향해 달린다. 저녘 11시를 넘기는 시간이라 오토바이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우르릉 거리는 소리는 대단하다. 푸미흥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김기성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호치민 경영대학에서 강의가 끝난 박문호 박사님과 회원이 늦은 시각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다리를 두 개 지나 시내를 향한다.

 

 

PC120909.jpg : 우릉거리는 베트남 2

  빈탄시장 앞을 지키는 쩐응웬한 장군 동상, 명나라의 침공을 막아낸 장군이다.

 

호치민 빈탄 시장에 도착한다. 빈탄 시장 앞으로 쩐 응웬한 장군의 동상 앞으로 오토바이 무리가 시간을 가르며 지나간다.

베트남 역사 공부를 한 보람이 있다. 1407에서 1427년까지 명나라 침략시기에 1425년부터 1427년까지 독립전쟁을 이끈 장수가 쩐응웬한 장군이다. 전쟁 이후 모략가와 반대 세력에 의해 모함을 당하자 물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그 이후에 레왕조에 의해 명예 복권되었고, 그 이후 호치민 빈탄시장 앞에 동상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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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탄시장 근체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과 만나 숙소인 Crescent Residence로 향한다.

 

 

 

10 22

 

아침부터 서두른다. 오늘은 메콩델타 탐사가 있다. 시내에 있는 여행사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거리인 메콩델타가 있는 미토를 갈 예정이다. 7 30분에 호텔 로비에서 출발한다. 호치민 시내 여행사 앞에서 메콩강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샌드위치와 베트남 아이스 커피로 아침을 먹는다. 샌드위치 안에 갖가지 종류의 야채와 햄이 들어있다. 바삭거리는 빵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바삭거림과 식감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로 있으면서 발달한 문화 중에 하나가 빵에 대한 음식문화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밤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게 된다. 오토바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박문호 박사님은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가 떠오른다고 하신다. 나도 그랬다. ~~~~웅하고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메뚜기 떼처럼 온통 색깔이 다른 소리를 내며 주변을 감싸 앉는다. 공간이 좁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르릉, 그르릉, 부릉 부릉, 쿠릉 쿠릉, 콰르릉, 우당탕탕…….소리가 섞이며 공간을 빈틈없이 점령한다.

 

 여행사 앞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썬글라스, 라이터, 부채, 심지어는 해먹을 파는 사람까지 돌아다닌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박종환 선생님 이시다. 분명히 뇌과학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실험은 간단하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인지 아니면 물건이 행동을 선택하는 지를 관찰하면 된다. 오늘도 어김이 없다. 임동수 선생님이 실험의 대상이 된다. 잡화를 파는 베트남 상인이 우리 앞을 지나가며 옛날 부싯돌 방식의 라이터를 켜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담배도 피지 않고 평소에 필요도 없는 라이터의 가격을 묻고 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보더니 빙그레 웃더니 비싸다며 실험에서 벗어난다. 옆을 보니 어느새 이경 선생님께서 부채를 고르고 있다.

 현대버스를 타고 호치민을 떠나 메콩강을 향한다. 가이드가 영어로 호치민과 오토바이를 설명한다. 우스개 소리도 던진다. ‘ 오토바이가 하나면 여자친구가 한명이 있다. 오토바이가 없으면 여자친구도 없다. 그런데 자기는 오토바이가 세 대라고 한다. ‘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오토바이가 많은만큼 사고도 많다고 한다. 버스가 메콩강을 가는 동안 창밖에 보이는 장면에 눈을 돌린다. 호치민에서 계속해서 집이 늘어져 있다. 호치민의 인구가 공식적으로는 600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1,000만 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단다. 아마도 비공식 집계가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1시간이 넘게 달리고 있는데도 집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버스 옆 좌석의 송경석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박자세는 이래서 다르다. 베트남의 역사와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 무릎 위에 베트남 탐방 책자가 놓여있다.

 

중간에 휴게실을 들르고, 다시 메콩강을 향한다. 메콩강에서는 배를 타고 주변에 있는 카카오 농장과 밀림을 둘러 보게 된다. 베트남은 대표적 삼각지가 두 개이다. 하나는 북쪽의 홍강 삼각지이고 남부는 메콩강 삼각지 이다. 메콩강은 9개의 지류로 나뉘고 이것을 구룡이라고 부른다. 강이 나눈 경계가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경계가 된다. 과거에는 크메르족이 사는 크메르와 현재 베트남의 참파 왕국이 전쟁을 하면서 국가의 경계가 한 때는 크메르로 또 다른 한 때는 참파왕국으로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메콩강은 거의 바다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양의 물줄기를 자랑한다. 메콩강에 지나는 배의 크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대형 선박과 모래와 건축물자를 실은 배가 지나다닌다.

메콩강에 처음 도착한 장소는 카카오 농장이다. 카카오 야자수를 깨고 그 속에 하얀 야자를 긁어내어 불을 때어 녹인다. 그리고 액체가 줄어들면 젤리형태가 된다. 이 젤리를 식혀 사탕형태로 가공한다. 바나나를 말려서 구운 것, 여러가지 과일을 사탕으로 제조하여 판매를 하고 있다. 배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밀림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밀림을 배를 타고 가기도 하고 베트남 전통악기의 연주를 들었다.

 티벳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여기까지 흘러와 바다와 섞인다. 그래서 과거의 베트남의 지질을 살펴보면 바다 식물이 자라나며 군락을 형성하였다. 바다 식물이 자라고 이것을 먹기 위해 갈매기등의 조류와 물고기가 서식하게 된다. 그 위에 생태계가 번성한다. 인류의 역사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수상식물의 번식이 인간의 문화에 영향을 끼칠만큼 영향을 미친다. 남부 베트남은 초기에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었다. 밀림으로 우거져 있어 사람이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 점령기에 개척이 되었다고 한다.

 오후 4시에 버스를 타고 호치민으로 돌아왔다. 호치민에서 김기성 선생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치민 최고의 식당이라는 nha hang ngon을 갔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람이 부쩍거렸다. 그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서울 강남에 내어 놓아도 충분한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식탁을 가득채운 베트남 음식에 서로가 말을 잊었다. 더 놀라운 것은 거기에 있는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이다. 쌀로 만든 음료수와 젤리, 쌀의 바삭거림과 고기의 쫄깃함, 코끝을 스치는 향신료의 적당한 향기는 계속해서 식감을 자극했다.

 

식사 후에 호치민 시내 투어를 하였다. 노틀담 성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호치민 노틀담 성당, 에펠이 디자인했다고 하는 호치민 중앙 우체국을 볼 수 있었다.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하는 다이아몬드 백화점과 그 옆의 아시아나 빌딩을 보았다. 시내를 관통하며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 호텔을 지나 호치민 오페라 하우스를 지났다. 그리고 사이공 강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사이공강 앞에 우뚝 서있는 쩐흥따오 장군의 동상을 보았다.

 

숙소로 돌아온 9 30분부터 베트남 역사를 공부하였다. 박문호 박사는 쩐흥따오 장군의 이야기로 역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쿠빌라이는 그의 아들 토앗 호안의 지휘아래 50만 대군을 급하하였다. 이를 맞이한 장군의 이름이 쩐흥따오이다. 몽골은 참파를 침략하기 위해 다이비엣이 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하였고 1284년 말에는 국경을 넘었다. 20만에 가까운 베트남의 군사들은 첫 맹습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쩐 흥 다오(Tran Hung Dao)는 수도에 대피령을 내렸고 왕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적들이 너무 강력하여 이러한 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불러올 것이다. 우리의 무장을 해제하고 국민들을 구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이에 장군은 “전하의 고귀한 뜻은 이해하오나 우리 조상들이 지켜준 땅과 그들을 모신 사원들은 어찌합니까. 만일 항복을 원한다면 저의 목을 먼저 잘라주십시오.”라고 답하여, 왕은 안도하였다. 또한 장군은 그의 장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군사전략을 담은 책을 펴냈고, 그의 연설은 너무나 호소력 있어서 많은 군사들이 “몽골에게 죽음을”이라는 문구를 팔에 새길 정도였다. 마을에서는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적에게 저항 하고 만일의 경우 숲이나 산 속에 은신하였다가 다시 공격할 것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세워졌다.

 

쩐흥따오 장군의 이야기는 단순히 원나라의 침략을 막았다는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항운동은 호치민의 프랑스 독립운동까지 흐름을 만든다. 최고 강대국인 원나라를 몰아내었고, 1970년도에는 미국의 월남전쟁에서 몰아내었다. 이것의 저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국호를 다이코 비엣에서 다이 비엣으로 바꾼 이야기가 1054년 게자리 성운에서 폭발한 슈퍼노바 메시아 넘버 1A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베트남 관광청에서 배포한 자료에는 1054년에 눈부시게 밝은 별 하나가 여러 날 동안 하늘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 이를 계기로 리씨 왕(King Ly)은 나라의 이름을 다이 비엣(Dai Viet)이라 바꾸게 되고, 이 명칭은 쩐왕조(Tran Dynasty, 1126-1400)까지 지속되었다. 레왕조(Le Dynasty, 1428-1788)와 떠이썬왕조(Tay Son Dynasty, 1788-1802)에도 이 이름이 다시 일컬어졌다.라고 써있었다.

 

저녘 11시에 베트남 역사에 대한 공부가 끝나고 모두들 잠이 들었다. 꿈에 쩐흥따오가 나타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02 23

 

빈탄 시장에서 사온 과일의 종류만 10가지에 가깝다. 색깔이 빨강색, 노랑색, 녹색, 주황색, 등등으로 천연의 색이 가득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려 방문을 열어 두었더니 과일향이 호텔 전체를 덮치고 있었다. 열대 과일에 왕이라고 하는 두리안이 등장하니 그 냄새가 대단하다. 아침부터 엄청난 양의 과일을 맛을 본다. 과일을 먹으면서 저녘에 마치지 못한 공부를 하였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오늘은 베트남 교민을 대상으로 박문호 박사님의 강의가 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호치민 국립대학에서 문화 인류학 교수의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