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후회.


학습 탐사를 다녀온 뒤 심하게 앓았다. 쳬력은 약한 편이어도 근기가 있어서 크게 아프지 않는 편이라고 자신하고 살았는데 이번은 좀 달랐다. 밀린 일에 바빴고, 한 풀 물러간 더위에 방심하여 환절기 복병인 감기 몸살을 만났다. 몸 따라 마음도 약해지니 실크로드 탐사에 참여한 기쁨보다는 결실의 빈약함에 대한 자기비판이 이어졌고, 그걸 틈타서 몸이 더 축났다. 그러나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나의 공부에 대한 자세의 문제였다. 결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할만큼 일이 바쁘다는 외부적 요소도 원인이 된다.하지만 1차적으로는 내게 지식의 플랫폼이 되는 개념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좀 익숙히 들어서 아는 느낌만 있을 뿐 나의 언어로 정확하게 풀이해본 적이 없는 인문학적 지식들을 나는 그간 ‘내가 좀 안다’고 자만했다. 그리고 실크로드와 관련한 학습탐사의 전체 틀이 한 쾌에 잡히질 않은 채 출발했다.

 


 

중국사와 불교사, 문화교류의 양상 등을 강의로 들을 적엔 알겠는데 돌아서면 모르겠고, 책을 보면 알겠는데 고개를 들면 사라져 버렸다. 박물관의 유물을 보아도 어느 영역에 넣어서 무엇과 연관시켜야할지 감흥이 부족했다. 안타까운 것은 능력이 요만큼인데도 기대치는 저만큼 높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바 적다고 해서 이것들이 지니는 의미가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더 괴로웠다.


 

 

단적인 예로 나는 시안 박물관에서 주어진 3시간여의 관람 시간을 다 채우질 못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1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방문자가 많아서 가이드도 놓치고 박사님도 놓쳤다. 가뜩이나 아는 것도 없는데 설명을 들을 기회마저 없으니 전시된 유물이 낡은 그릇과 색이 바랜 그림 이상으로 해석이 되질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지당한 원칙에 따라 내 눈엔 보이는 게 별로 없었다. 다른 대원들은 시간이 부족할 정도라며 감동적인 표정들로 나타났는데 공부가 부족한 나는 각 전시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보고 또 봐도 비슷한 유물에 앞뒤로 밀리는 사람들 틈에서 다리만 아파오니 국수발 삼키듯 전시물을 후루룩 들이키며 돌아 나왔다. 남는 시간을 구석진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중국사 연대표라도 외워보자 하였으나 그런 나한테 부아가 나고 후회가 밀려왔다. 씹지 않고 삼켜서 내 것이 되지 못한 지식이 개 머루 먹은 꼴로 겉돌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식을 대하는 이 느슨한 태도는 오래된 습관이라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확실하게 후회를 했다.

 


 

학습탐사는 일반 여행이 아니다. 관광은 더욱 아니다. 철저히 공부에만 몰두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탐사 전에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발표하여 중요한 개념을 익히는 것은 필수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현장에서 더욱 분발하여 공부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탐사 이틀째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으니 남은 며칠은 바꿔 보기로 한다. 그래서 다음날부턴 박사님과 2미터 유지하기, 수시로 하는 강의에 오감을 열고 적극 동참하기, 더 공부한 대원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등의 원칙을 세우고 지켜 나갔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돌아와서 채우고 공부하기로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해보니 탐사가 더욱 값지고 드문 경험이 되었다.


 

 

이번 탐사는 세 끼 좋은 음식을 먹고 집보다 좋은 호텔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때 되면 간식까지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러니 탐사 대원은 공부만 하면 된다. 버스에서 공부한 내용을 현장에 내려서 눈으로 보아 확인하고, 그곳에서 다시 짧은 강의가 반복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처럼 학습 탐사란 일상의 모든 의무와 잡념에서 벗어나 마음껏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최고의 학습 환경이다.

 


 

물론 40도가 넘는 더위와 장시간 이동은 몸을 고되게 한다. 예기치 못한 불상사도 생긴다. 사고로 버스 탑승 시간이 더 길어지거나 계획했던 박물관 관람이 갑자기 불가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앞일을 예견할 수는 없지만 닥친 상황에 대한 해석과 대응은 가능하다. 버스에서 지연되는 시간동안 박사님은 법성게와 반야심경을 다시 풀이하고 낭독했으며, 막히는 고속도로변에 잠시 정차한 틈을 타서 대원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몸은 좀 힘들지만 탐사 중에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이란 없다. 박자세는 무료하고 무의미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열렬한 학습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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