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위해 길을 나서다

 

2014년 7월 22일, 1일차

약간은 설레기도 걱정스럽기도 한 박자세 서호주 탐사여행길에 오른다. 미리 계획했던 일들을 과감하게 취소하고 마치 사명 받은 자처럼 아침부터 심호흡을 단단히 하고 길을 나선다.

 

오후 4시 25분에 쿠알라룸퍼에서 나를 제외한 18명의 박자세 대원들과 2명의 EBS분들과 합류했다. 반겨주고 격려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뭔지 모를 이 무게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김현미 선생님이 선물이라며 제 12차 박자세 해외학습탐사 책자를 건네주신다.  내 이름 석자가 가운데 붙어있다. 덧붙여 박사님께서 책자 135쪽 EPGGT지층구조, 121쪽 마블바 여섯 포인트 그리고 123쪽에서 125쪽 암석 결정구조식을 호주 도착하기 전 비행기 안에서 통째 외우라고 하신다.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모두 전설 속의 인물들 같아 보인다. 사전학습도 사전지식도 부족한 나에겐 특히 암석 결정식은 외계의 언어다. 들은 것도 본 것도 없다. 외우는 건 둘째 문제고 잘 읽혀지지도 않는다. 무게감은 물먹은 솜처럼 내 깊은 감정에 메달려온다. 이제 무섭기까지 하다

 



2014년 7월 23일, 2일차 00시

우리를 실은 비행기가 퍼스공항에 터치 다운한다. 게이트5번  두 번째 회전 컨베이어에서 모든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향한다. 최소한의로 줄였다는 짐들이 이렇게 많을 수가, 믿을 수가 없다. 짐을 다시 꾸리고 무게를 맞춰서 브룸행 비행기에 싣고 나니 모두 벌써 지친 모양이다. 기내에선 박사님과 몇 명의 대원들만이 독서를 하고 계시고 그 외엔 다들 잠들은 것 같다. 나는 누군가 아침일출에 감동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름답다 그러나 아직 현실감이 없다.

 

브룸공항은 동네 비행장 사이즈다. 원활한 탐사를 위해 필요한 역할 분담을 하는 동안 박사님의 호주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호주 고고학 책은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다. 제랄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의 한 챕터속에  호주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호주에는 농경, 목축, 활, 금속, 추장이 없는 부족사회였다. 완벽한 수렵채취(석기날, 땟목,손잡이 돌도끼)를 했다. 서남방지역에서 촌락과 뱀장어 양식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만2천년 전 토레스해협을 통해 호주, 파푸아어군 인구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 B형 피를 가진 원주민을 발견할 수 없다. 인구 밀도가 인류점멸을 가져올 수 있다. 농사를 못 지어서가 아니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어서 다른 생존방법을 사용했다는 것. 문화를 단선적으로 보지 말 것. 문명을 보는 눈이 유연해야 한다는 점까지 듣고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러 학습장을 빠져 나왔다.

 

나는 그룹여행 경험이 없다.  캠핑도 처음이다. 이런 미숙한 나에게 21명의 먹거리 곳간을 책임지라고 한다.  막막하다. 양에 대한 기준도 내용도 모르겠다.  일단 주어진 일은 무조건 해낸다는 생각으로 수퍼에가서 당장 필요한 5일분의 식료품을 구입한 후 탐사 첫날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다. '내가 왜 여길 왔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얇은 막 구조를 뚫고 튀어나온다. 그냥 부딪히기로 겉도는 마음을 무시해보자.

 

공항 벤치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 후 다섯 대의 사륜구동 차량 중 나는 2호 차에 몸을 실었다. 브룸공항에서 샌드파이어 로드하우스까지 가는 동안 동승한 대원들과 가까워졌다. 다들 학습탐사 선배들로서 여러 가지 충고들을 아끼지 않고 나눔 해주셨다.

파두로드하우스 근처에서 첫 캠핑을 한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첫경험들을 할 수도 있을까. 첫 캠핑에, 첫 비박에, 처음 보는 은하수에, 처음 덮어보는 별 이불이다. 이유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걸까! 그냥 굵은 침만 계속 삼키게 된다.

 

파두 로드하우스에서의 박자세법칙:

1.목소리를 낮추라

2.공부에 집중하라 38억년~29억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2014년 7월 24일, 3일차

밤하늘이 설명이 안 된다. 밤사이 두어 번 눈을 떴더니 별들이 이동을 했다. 새벽 5시 반 박사님의 새벽강의를 듣고 별들이 1시간에 15도씩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 둘러 보이는 하늘이 지구의 반이니 속도는 30도씩 바뀌는 건가, 미친 속도다.

 

아침학습: 35억년 전 12km 와라우나층, 33억 5천만년 전 맨틀 플룸으로 그 위에 8km 현무암, 그린벨트 층, 녹리석, 녹염석.  TTG층 다이포틱 되면서 침식됨, 6개의 TTG돔 개당 20km 지름. 방사선 동위원소에 의해 부분멜팅 시작, 용골지괴 가볍고 단단한 화강암석이 붙어서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다. 27억년 전 치체스터 레인지 치체스트 범람. 블랙 다이크 레인지, 하루 종일 EPTTG를 주문처럼 외워라. 이곳이 1500m 바닷속이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해가 뜨고 3호 차에서 모차르트의 39번 곡이 흘러나온다. 아침이 더 아름다워졌다. 행복하다.

 

오후학습: 나무의 껍질은 코르크다. 빗물이 들어가 화강암성분이 녹아서 장석이 되고 그 후에 고령토가 된다. 박자세는 일반 보편적인 물리학, 생물학 입장에서 지질학에 접근한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훨씬 엄밀히 공부하는 것이다. 탐사자료책자의 화학식을 다 외우게 되면 좋다.

읽혀지지도 않는데 외운다?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럼 어찌해서든 외워지겠지...걱정이다.

 

마블바에 도착할 때까지 백악기 때의 선상지와 화석에 관한 얘기를 듣고 읽고, 시생대 33억년 전 냇가를 걷기도 하고, 이번 탐사의 주요자료로 사용된 마틴 박사의 디스커버리 Trails to Early Earth에서 소개된 무칸돔과 마운트 에드가 사이에서 1m를 사이에 두고 현무암과 화강암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린벨트에 대해 반복해서 듣는다. 마틴 박사가 포즈를 취한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EBS가 촬영할 동안 대원들끼리 자유시간을 갖기도 했다.

 

저녁공부시간엔 쏟아지는 별 아래서 암석강의를 들었다. 그런 우리를 EBS 카메라 감독님께서 멋지게 촬영해주셨다. 우리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보는 것은 새로운 자극이고 또 다른 자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멋진 팀과 함께 공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선택 받은 사람이다. 별이 나를 불러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르는 착각을 해본다.

 


2014년 7월 25일, 4일차

새벽 4시 반에 기상, 돌산을 오른다. 비너스벨트를 처음 봤다. 아니다, 전엔 보고도 뭔지 몰랐다. 세상에 모든 것은 이름으로 불려져서야 존재한다.  오늘 처음으로 비너스벨트가 내가 다가왔다. 미리 깨우친 대원들은 밤새 별들과 교류했는지 이 높은 꼭대기에서 밤을 보낸 것 같다. 안 해봤으니 알 순 없지만 뭔가 있을 것 같아 자꾸 묻고 싶어진다. 그런 날이 내게도 올 것이라 믿고 침묵하는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박사님께 달이 왜 저렇게 게으르게 뜨는지 물었더니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로 순서대로 보이고 뜨는 시간대도 바뀐다고 하셨다. 아직까지 별자리강의는 어느 별이 어느 별인지 구별이 가지 않지만 남반구에서 가장 밝은 별은 시리우스고 노인성으로 불리는 카노프스와 만나는 행운, 그리고 국기에서만 봤던 남십자성과 그 옆의 석탄 주머니와도 인사를 나눴다. 덤으로 제주도에서는 카노프스를 보면 장수한다고 효도관광용으로 제주도 관광청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기도 한다는 사실.  참, 대마젤린, 소마젤린도 어렴풋이 본 것 같다. 금성은 지평선 위로 40도 이상 오르지 않는단다. 새벽금성은 계명성, 저녁금성은 태백성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태양의 온도는 6000, 붉은 별은 3000, 노란색 별은 만도 이상이라고!!

 

하산한 후 바라본 마블바는 정말 고기덩어리처럼 보였다.  35억년 전 조상 위에 선 느낌이 고작 고기덩어리라니! 감동하는 선배 대원들의 감동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앎의 무게가 부럽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직 박자세가 깃발을 꽂지 못한 차이나맨 크릭의 시아노박테리아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아픔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는다. 우린 스피니펙스와 열열히 연애를 했다. 박순천 선생님의 엉덩이는 벌써 고슴도치를 닮았다.

 

점심은 마블바 로드하우스에서 샌드위치로.  곡간에 구멍이 뚫려서 필요한 식품을 구입하고 고기종류가 음료수보다 저렴해 오늘 저녁은 닭도리탕으로 준비를 해본다. 몇 일 만에 비누로 하는 세수도 이번 여행의 재미 중 하나다.

 

화강암 돔 사이의 그린벨트가 압력을 받아 붕괴되면서 만들어낸 꼿꼿이 서있는 편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돌과 나누는 대화가 조금은 익숙하다, 우리 대원들은 시간만 나면 산책을 하며 돌을 찾는다, 어쩌면 돌이 우릴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철과 응애암이 뭉쳐진 돌, 철이 붙으면 마그네타이트 아니면 적철석이다. 전세계 철의 44%가 필바다에서 나온단다. 같은 부피의 돌을 들어 무게를 확인하면 철이 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카리지니로 이동하는 사이에 27억년 전의 스트로마토라이토 화석을 발견했다.  기대한 것 보다 수확이 큰가 보다, 한동안 박사님 얼굴이 크게 넓어져 더 동그래졌다. 이미 익숙해진 스피니펙스를 뚫고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마틴 박사의 책 속에 실린 다양한 모양의 스트로마토라이트를 찾아 다녔다. 나도 신났다.  지질학 공부를 이렇게 신나게 할 수 있다니....

 

저녁 학습: 별은 원자력발전소와 같다, 끈임 없이 융합과 분열을 한다. 수소 75%, 헬륨 5%, 메탈 2%. 질량에너지 등가의 원리, 중력가속도 등가의 원리, 일반상대성 원리, 특수 상대성 이론 E=MC, 규산염 암석이 주성분으로 만들어진 수금지화는 지구형 행성, 수소나 헬륨 등의 기체가 주성분으로 이루어진 목금토천해는 목성형 행성. 목성의 위성은 이오, 유로카, 가니메데, 카리스토.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대기가 있어 생명가능성 있다.

 



2014년 7월 26일, 5일차

새벽 5.30 별 공부, 아침으로 저녁에 먹고 남은 닭으로 끊인 맛있는 닭죽을 먹었다. 잘 먹으니 좋다.

 

아침 공부: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이 암석 속에 다 들어있다. 산소, 나트륨, 칼슘, 칼륨 마그네슘, 철.  주기율표가 뭐냐? 암석 속에 있다. 자연은 90%가 원소로 구성, 생명현상도 암석에서 왔다. 척추-칼슘:태고 바닷속 대륙의 칼슘이 빗물에 씻겨 들어감.  식물-엽록소-마그네슘, 적혈구-철.  화강암 속 장석이 녹아 흙/고령토가 됨: 나트륨 장석, 칼슘 장석, 칼륨 장석.  전기를 띄는 입자들이 원래 암석에 있었다. 죽고 난 후 칼슘, 칼륨들로 흙이 되어 다시 암석이 된다. 전지구적 사이클 속에 스며들어 지질학적 현상으로 남는다. 암석과 우리는 동일한 존재다. 러시아 지질학자가 말하길 생명현상은 위대한 지질학적 현상이라고 했다. 시아노박테리아 산소발행 후 암석이 3배나 늘었다. 암석과 생명은 동전의 양면, 같은 현상의 다른 이름이다.

 

지구산소 대 급증으로 Fe2가 산화철이 된다.  석영 결정석은 금, 편암에 실리콘 함량이 높으면 편종소리가 난다. 광산을 찾으려다  운 좋게 David이라는 오래된 광산을 인수한 지질학자를 만났다. 이미 박사님은 그분과 암석에 대한 애정을 교환한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지금까지 공부한 거의 모든 돌들이 집 앞 바위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질문을 던졌다 박사님께 혼난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운 좋게 코마트라이트와 다이아몬드의 모암인 킴벌라이트와 금이 스며있는 암석, 주사위 모양의 황철석도 보았다. David은 마틴 박사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를 환영해준 인사로 구운 김을 드렸다. 입에 맞길 바란다.

 

토요일이라 주유소도 일찍 문을 닫았다. 먹거리가 부족하다, 곡간에 양식이 떨어지고 있다. 카르지니 가까운 곳에 가려다 밤 9시쯤 길을 잃었다. 부분 도로 공사를 하는 관계로 GPS가 정확한 정보수신을 못하고 있다. 결국 로드트레인이 지나다니는 길가 옆 공터에서 야영을 한다. 정말 시끄러웠지만 다들 꿈쩍도 없이 자고 있다. 비박으로 몸 컨디션이 좋지 못한 대원들이 생겨난 후 텐트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는데도 나는 아침에 몸이 별로 좋지 않다. 여러 가지로 겉도는 숫자들과 화학기호들이 아직도 내겐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