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 (금) 4일차 

마블바에서 새벽 별 강의와 명상.

Chainaman's Creek, 마블바 촬영, 4.8 스토마톨라이트 찾기

 

새벽3시. 눈을 뜨니 별들이 아우성이다. 마침 그믐께라 달빛도 잘 보이지 않은데다 건조한 사막기후라 구름 한 점 없다. 앞은 트여있어 저 앞산에 은하수가 걸려 있다. 플레아데스 성단이 신비롭게 반짝이고 오리온좌 삼태성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뭔가 말을 건네는 두근거림이 있다. 겨울 파카를 입었음에도 몸이 떨려온다. 커피를 한 잔 끓이고 음악을 듣는다. “눈물 방울이 맺혀 흔들리는 미소는 태초에 생겨난 세계의 약속/ 지금은 혼자지만 함께 했던 어제로부터 오늘은 태어나 빛나지요. 처음 만난 그날처럼. / 추억속에 당신은 없어요. 산들바람이 되어 볼을 어루만져요. /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쏱아지는 오후, 이별한 후에도 결코 끝나지 않는 세계의 약속/지금은 혼자라해도 무한한 내일이 있어요. 당신이 가르쳐 주었던 밤이 품고 있는 온화함. ...

 

태초의 약속이란 곡을 듣는다. 이상하게 별과 밤이 품어주는 이 온화함과 너무 잘 어울린다. 나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 누군가와 세계의 약속을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 동이 터올 때 대원들이 주섬주섬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새벽 박사님의 별강의는 노인성 카노프스가 주역이었다. 이후 잠깐의 명상, 사위가 고요해지자 내가 이 땅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고원 주위를 둘러싼 초록색의 평원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 슬슬 밤의 커튼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박사님은 별의 중력에 대해 이야기 하시다가 문득 중력을 이기는 물질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어찌보면 인간도 중력에 저항해 수직으로 서 있는 물기둥이라고 하시는데... 그 말은 그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고독과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죽음을 연상하게 했다.


아침을 먹고 다시 탐사가 시작되었다. 차이나맨스 크릭에서 35억년 전, 시아노박테리아 화석을 찾기로 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그리고 스피니팩스전. 30분 예정했던 찾기는 두 시간이 넘어서도 찾지 못해 돌아오는 길, 오른손이 온통 가시투성이가 되었다. 바쁘게 쫓아가려고 가시를 손바닥에 꾹꾹 집어넣었다. 참, 아직도 박힌 가시를 빼지 못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 마블바에서 탐사대원 인터뷰를 하는데 다들 말하는 게... 역시 박자세다 싶다. 뭔 과학하는 사람들이 죄다 철학자냐 싶다. 생각해보니 나자신도 자연과학으로서 배우고 싶은 마음보다 철학으로서 공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다시 탐사를 시작해 4.8지역에서 스토마톨라이트 찾기를 했다. 나는 아침 탐사에 너무 힘을 뺀데다 더 이상 움직이면 무리다 싶어 마음을 접고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과 길, 하다못해 타고온 차마저도 세월을 저만치 돌린 브라운 색 천지다. 하나 둘,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시간이 길어져 2시간이 또 넘어가는데 대원들이 판상으로 된 돌조각들을 주워왔다. 손바닥에 놓인 산처럼 굽이친 판상 조각이 맘에 들었다. 선뜻 선물로 준 대원에게 감사드린다. 취재팀과 박사님이 오시고 흥분한 모습이 역력하다. 오늘은 탐사 성공 축하로 닭도리탕이란 말에 다들 흥분.

 

마블바, 칙체스트 레인지 정리 :

마운틴 에드가와 코로나 다운스 사이에 위치한 마블바는 대리석이 강을 막았다는 이름과 달리 퇴적암인 처트로 이루어졌다. 33억년 된 이곳은 실리콘 유기 퇴적물속에 화석들이 분자적으로 남아있다 하는데 소고기의 마블처럼 붉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다 잘 보면 녹색도 있고 황색도 주황색도 있는데 붉은 색은 철이 산화된 것이고 흰색과 기타색은 처트. 참고로 처트는 바다 플랑크톤의 사체와 해양퇴적층인 석회적연리 규질연리 점토가 쌓여 된 것으로 처트는 플랑크톤의 세포벽인 Sio2가 성분.

칙체스트 레인지는 TTG 돔 주위를 빙둘려 현무암 범람으로 생김. 27억년전 화산폭발로 퇴적된 현무암임.

 



7/26 (토) 5일차 마블바 지역 3일째, 

3지구 탐사와 광산개발자 작업실 방문

3지구 기차가 있는 곳을 찾다가 편경소리가 나는 붉은 색 편암을 가지고 놀았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일까. 실리콘이 풍부한 처트 밴드로 된 편암 지구에서 흡사 칼처럼 생긴 그것을 들고 슬쩍 칼싸움 놀이를 했다. 하지만 소리는 잘 안난다. 철이 산화된 듯 보이지만 퇴적암이 처트와 실리콘 성분이 있어서일 듯.


그린스톤 벨트와 칙체스트 레인지는 7억년 차이라 말씀하신다. 광산을 찾다가 결국은 마틴 박사의 친구인 광산개발자 작업장을 방문하여 각종 암석을 보았다. 그중에서 나는 악마의 주사위라는 유혹적인 사각의 철덩어리. 금, 그리고 그것을 보게되었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화석, 스토마톨라이트! 까마득한 세월을 거슬러 내 앞에 선보인 그것은 황토색의 원시 문양 같은데 어쩐지 끌어당기는 것 같다. 범박한 돌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스토마톨라이트는 시원의 얘기를 내게 풀어놓을 것 같아보인다. 아직 이른 저녁, 마블바 로드 하우스에 들렀을 때는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벌써 3일째 슬슬 다음 일정이 궁금해진다. 앞으로도 들려야 할 곳이 많을 텐데 다 돌아볼 수 있을까. 박사님께서 감기에 걸리셨다. 다른 때 같으면 체력이 소진되어 바닥을 보일 텐데 이상하다. 나는 예상 외로 너무 잘 달리고 샤워를 못한 지 꽤 되었다. 양치하는 물도 아끼고 세수는 황송할 정도다. 로드하우스만 보면 세수하고 이빨 닦고 머리도 감는다. 오랜만에 발도 닦아보는 기쁨도 누려보았다. 아웃백 생활이 힘들지만 나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이토록 소중할 줄 몰랐다. 마블바 로드하우스 맞은편에는 전쟁기념비가 있다. 철로 만들어진 평화란 글자, 그 말이 이밤 가슴에 들어왔다.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7/27 (일) 6일차

카리니지 데일스 협곡, 서큘러 풀

오늘은 도시락을 싸서 카리니지 서큘러 풀 트래킹을 하는 날. 왠지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다.  왈루라는 거대한 뱀이 인도양에서 올라와 붉은 땅을 헤집으며 지나간 자리라는 원주민 전설이 서린 곳. 카리니지에는 헤머즐리, 핸콕, 조프리, 레드, 데일스, 위스, 녹스 등 9개의 협곡이 있는데 오늘은 서큘러 풀이 있는 데일스 협곡을 답사한다.  


별 기대는 없었다. 협곡 입구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하지만 계곡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상하게 시간을 되돌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쇠로 만들어진 붉은 책장들이 켜켜이 쌓여서 때로는 세워지고 누워있는 데 각각이 신의 장인들이 문양을 새겨놓은 듯하다. 시원의 지구의 모습이 갈피마다 묻어서 세월의 이야기와 정보를 담고 있는 듯 그저 자연은 아무 말이 없었다. 소리가 나는 것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 뿐이다. 이 곳은 바다 밑바닥. 35억년 얕은 바다의 뜨거운 물질 속에서도 말없이 거품을 내품으며 광합성을 했을 수많은 시아노박테리아를 생각해보라. 박사님은 말씀하셨다. 붉은 빛 자철석 적철석들이 함유된 붉은 색이 켜켜이 교란이 없이 판상으로 나타난 것은 교란이 없었다는 것, 다시말해 태고의 바다 밑이었다는 증거라 말씀하셨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모뉴멘트 벨 리가 신생대 지하수와 바람의 조각이라면 이곳은 26억년 전의 산화철과 바다의 소리없는 조각인가 싶다. 


카리니지 하얀색과 붉은 색의 비밀은 산소농도가 쥐고 있다. 산소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함유된 철이온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산화철이 되고, 산소농도가 일정 이하가 되면 산화를 멈추고 대신 점토나 부유물 모래가 퇴적되어 2cm 쌓이는데 1000년, 200m 쌓이는데 1억년이 걸린다. 다시말해 산소 농도에 따라 산화철의 적갈색 층과 백색계열 퇴적이 번갈아 이루어진 해저지층인 것이다. 


재밌는 것은 호상철광층에는 현재 대기중 산소 농도보다 산소양이 20배 정도라는 것. 그럼 어떻게 산소가 많아진 걸까? 35억년 바다는 온통 광합성을 통한 탄소동화 작용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의 세상이었던 것. 앞으로 다가올 미래 지구의 꿈을 꾸며 하나의 박테리아가 지구를 송두리째 바꾼 사건 같았다. 박사님은 지구 대륙과 대기 그리고 생명체가 공진화한 흔적을 보여주는 곳이라며 우리는 산소의 기원, 생명의 뿌리 그 현장에 와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우리는 26억년 된 절벽아래 화상철광층의 호수, 그 심연으로 들어갔다. 언제 들어가 볼 수 있으랴. 그 태초의 땅에. 대원들도 하나 둘, 들어가 몸을 담그고 나는 세상의 때가 조금씩 씻기기를 바랐다. 아마도 나에게는 최고의 답사지였던 것. 저녁을 먹고 잠을 자기 위해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오고 가는 것은 없다


운석이 충돌하여 

별들이 지구를 만든 것도 

27억년 적막한 바다속, 

시아노박테리아의 생멸도 

아무 의미없이 반복되는 거품질도

지구의 산소를 채우고

광활한 협곡을  

생명의 뿌리를 뻗어나가게 했다. 


시간의 물레를 돌려보면 

지구라는 별의 탄생에서 

생명을 지닌 암석에서

억겁의 시간이 지나 

당신에게 이르렀다는 것.

나란 의미, 당신이란 의미를 위해 

생물과 세균 암석까지 

그 누군가 

세월을 바퀴를 굴리고 있었음을 

기억하라 


삶이 한없이 작아질 때

기억하라

내 곁에 존재하는 그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님을.

하늘에 흐르는 구름도 바람도

별도 그냥 빛나는 것이 아님을, 

발 끝에 채이는 돌도 

우릴 숨쉬게 하는 산소도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도 

벌레와 세균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그 삶의 퇴적물이 켜켜히 쌓여 

별빛과 물결을 담아 돌에 새긴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이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아름다움 일 수 있음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음을 

기억하라

 

뿌리없이 떠도는 생명은 기억하라

그냥 오고 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