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차 서 호주 학습탐사 일지 2013. 6. 8

 

일어나 보니 엊저녁에 구름에 가쳤던 하늘이 조금 열려있다. 아침 6시이다. 일찍 마블 바에 다시 오니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뒤로 보이는 산에는 이원구님이 벌써 산 정상에 올라가 있고 박사님을 비롯해 여러 대원들이 산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나는 35억년이나 된 바위위에 앉아 그동안에 느꼈던 일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앉아 있으니 강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어젠 맹꽁이 소리만 크게 들리더니.....

 

엊저녁에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건민님 차례가 오자 그전에 박사님께 쌓였던 이야기를 하자 이내 “미안하다!”고 하며 진지하게 사과했다. 아마도 쌓였던 응어리가 풀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금 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제일 귀여운 발언은 엄마와 함께 온 17살 민시우가“어른들과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탐사에는 심하게 어른들이 와서 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여고생다운 말이라 모두들 크게 웃겼다. 그 후로 “심하게”라는 말이 유행처럼 우스개로 쓰이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 다시 마블 바를 보니 바위 틈새에 풀도, 꽃도, 나무도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바위 사이사이에 동물들이 눈 똥도 있는데 모양도 크기도 달랐다. 더불어 산다더니 동식물이 서로 공존하는 모습을 이 공간 속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모처럼 가지는 시간의 여유라 강가로 내려가서 산책을 즐겼다. 하얀 고니 한 쌍이 한가로이 노닐고 유카리스는 햇살을 받아 나무 등걸이 더 하얗게 보인다. 건너편에 있는 유카리스는 큰물이 쓸고 갔는지 오른쪽으로 모두 기울어져 있고 뿌리가 뒤집힌 것도 보인다. 사방은 그린스톤 벨트가 야트막하게 연이어져 있어 포근한 감이 든다.

 

자연과학 공부를 하다 보면 모래 한 알, 흙 한줌이 여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지구상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내 한 몸과 같이 느껴져서 지금 앉아 있는 바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 자신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배워서 익힌 덕분이다. 자연과학 공부는 특히 스님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도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지구상에 동식물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박사님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강물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일 년에 50mm정도의 강우량인데 이 물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우리가 지나 왔던 Fortescue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까? 새들의 지저귐도 들린다.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 7시까지 자유시간이라 산에 간 대원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산 정상에 대원들이 죽 오래 서 있는 걸 보아 강의를 하고 있는 듯했다. 식사당번인 김수현님, 신윤상님만 남아서 식사준비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이다. 특히 신윤상님은 헌신적으로 식사 도우미를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든든한 느낌을 갖게 했다.

마블 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오고 싶었던가! 박사님이 먼저 한 겨레 신문사 초청으로 다녀온 뒤 우리 회원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약속을 실행한 것이다. 35억년이나 된 땅! 직접 밟아보고 서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역사의 흐름은 그만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르침이 큰 것 같다. 이계기로 좀 더 낮은 자세로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산에서 내려 온 박사님이 강에 블랙 스완 이 있다는 소리에 급히 달려갔으나 바위 뒤로 날아가는 모습만 보았다. 아쉬움에 돌아서는데 뒤늦게 김종광님이 와서 물었다. 때는 늦었다. 뭐든 그 시간을 잘 맞춰야 되는 것 같다. 공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식사하세요!” 라는 김수현님의 목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메뉴는 빵, 블랙베리 쨈, 단 호박 스프, 사과였다. 빙 둘러 앉아 먹는 사이에도 강의를 했다. “ 이것 보세요! 이게 화강암입니다. 푸석푸석하죠. 무른 돌이라 빨리 부식합니다.”라며 화강암을 들고 박사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흙이 검은 것은 흙속에 들은 유기물 때문이고, 화강암의 갈색이나 주황색을 띤 장석이 녹아 유기물과 섞여서 흙이 됩니다.”라며 땅바닥의 흙을 가리켰다. 참으로 생생한 학습방법이었다.

 

마블 바를 떠나기 전, 이경님의 구령에 맞춰 아침체조를 했다. 하나, 둘, 셋 흥겨운 목소리와 함께 신이 났다. 9시 30분경, 아침모임에서 “행선지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라”고. 또 초기 원시성까지의 거리가 100AU인데, 1AU의 거리는 태양에서 토성까지의 거리가 9,5AU니까 대략 10AU라고 본다면 얼마나 먼 거리인가 짐작이 간다. 참고로 1AU는 1,5곱하기 10의 8승Km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먼 거리는 PC(파섹)이다. 1PC는 206,265AU라니 상상도 안 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켄타우리 알파인데 1PC 떨어져 있고, 북반구에서는 시리우스가 제일 가깝다고 했다. 초기단계의 원시성은 4분의1AU부터라고도 했다.

 

9시50분 출발, 10시경 어제 들렀던 로드하우스에서 기름을 채우고 10시 45분 다시 출발했다. 출발 전,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6대의 차가 가지도 않고 서서 우왕좌왕하니까 경찰이 나타나 도와주었다. 이제 길을 바로 들어선 듯싶다. 10시 52분 카룬디 다운스(Carundy Downs)라는 팻말이 붙은 곳을 지나면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지금부터 58Km나 달려야 하는 붉은 황톳길이 계속되는 가운데 1호차에서 길가에 소를 조심하라는 무전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내가 탄 6호차를 운전하던 박종환님이 “ 자나 깨나 소 조심! 자는 소도 다시 보자”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한참을 달리다 첫 번째 내린 곳은 박사님이 최근 입수한 책 속의 사진과 똑 같은 곳에 내렸다. 서로 대조해 보고 “똑같아! 똑같아!”를 연발하며 박사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그린스톤 벨트 위로 보이는 초콜릿 빛 조립현무암, 풀이 반쯤은 시들어 흰색으로 변해버린 들판이지만, 분명히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사진과 하나도 틀림없었다. 정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내린 곳은 마운트 에드가 돔(Mt Edgar Dome)의 와라우나(Warrawoona) 향사구조가 있는 곳이다. 그린스톤 벨트에 마그마가 올라와 말려 들어가서 암석 모양이 사선으로 되어있는 곳이다. 옆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암석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세 번째는 거의 직선에 가까운 편암이 있는 곳에 내렸다. 조금 올라가자 삐쭉삐쭉하게 솟아 있는 무더기를 볼 수 있었다. 수직방향으로 서있는 암석 무더기는 오래 된 나무 그루터기를 연상시켰다. 책 속의 사진과 똑 같은 모양이었다. 변성암은 모래로 된 퇴적암이 압력을 받아 이루어진 암석이다. 모래가 모여 사암이 되고 사암이 압력을 받으면 규암이 되는데 사암은 퇴적암이고 규암은 변성암이다. 편암을 갈면 진흙이 되는데, 이 진흙이 물러지면 세일이 된다고 한다. 편암은 나중에 편마암이 되는데 호상편마암, 안구상편마암, 화강편마암, 흑운모 편마암이 있다. 그중에 흑운모편마암은 우리나라에 가장 많다고 한다. 군데군데 보이는 다크 부라운(dark brown)색의 암석은 울트라 마픽 성분으로 마그마가 심성암에서 융기할 때 분출한 것이다

 

네 번째 내린 곳은 공항 활주로이다. 지금은 버려져 있지만, 2차 대전 때 미국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세운 곳이다. 카룬디 다운스(Carundy Downs)는 TTG성분이라 지반이 단단하므로 그것을 이용해 활주로를 닦았다고 한다. 활주로의 길이는 60km로 380 미군항공대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일본기지를 습격하기 위해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는 이름의 군용기를 숨겨 둔 비밀요새였다는 박사님의 설명이었다. 솔다렐라님은 “이곳에서 비박을 했으면 정말 끝내주었을 텐데” 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12시 50분에 활주로를 벗어났다.

 

다섯 번째는 크고 넓은 바위가 있는 곳에 내렸다. 사방 20m가 족히 되는 그라나이트 돔(Granite Dome)이다. TTG로 구성되어있는 화강암이다. 가는 곳마다 스피니 펙스라는 가시풀이 많은데 이곳은 유달리 많아“앗! 따가워”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여섯 번째 내린 곳은 다크 부라운 색의 바위가 많이 있는 곳이다. 300m 높이의 낮은 산봉우리가 온통 짙은 갈색의 돌무더기이다. 암석의 크기가 큰것은 큰 바윗돌 보다 더 큰 것도 있다. 바위투성이라 올라가는데 힘이 들었지만 올라가서 앉아있으니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반려반암이 모인 곳으로 디딜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이것과 비슷하지만 미국의 캐년 랜드나 그랜드 캐년에서 본 붉은 바위는 휘석(FeSiO3)이다. 쇼 돔(Shaw Dome)에는 다크 부라운색의 암석이 많다고 하며 이런 암석이 많은 곳을 블랙 레인지 다이크(Black Range Dyke)라 한다고 했다. 바위산정에서 임지용님이 기념촬영을 해주었다. 무거운 장비를 끌고 올라와 찍어주어 정말 고마웠다.

 

일곱 번째, 길옆에 직선으로 서 있는 편암이 있는 곳에 내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초록색이 나는 감람석을 박혜진님과 내가 발견했다. 박사님에게 보이니 맞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자세히 살피면 이 돌을 찾기 쉽다고 하며, 이곳은 카룬디 돔(Carundy Dome)과 에드가 돔(Edgar Dome)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14시37분, 마블 바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가는 도중 산의 곡선이 아름다운 지점에서 김태호님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다들 그냥 지나쳤을거야! 이런 좋은 풍경을 놓치다니!”라고 박종환님이 한 마디 했다.

 

여덟 번째 간곳은 금광박물관이다. 15시 16분이었다. 지금은 폐광이 된 곳으로 금을 채굴했던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여러 종류의 암석들이 많아 견학하면서 박사님의 설명을 들었다. 일인당 3$이라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엽서라도 사려고 보니 너무 조잡해서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있어 며칠 만에 얼굴을 씻고 삭발을 하니 시원했다. 여기에서 각 차로 점심을 배분하고 가는 차안에서 해결하라고 해서 적당히 먹었다. 메뉴라야 매일 거의 같은 것이었다. 16시 3분에 금광을 벗어났다. 비포장 길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캥거루가 보인다는 무전연락을 받고 곧바로 내렸으나 캥거루는 떠나고 발자국만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일 뒤에 따라 왔으니 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 못 본 것이 더욱 아쉬웠다. 로드 킬로 인해 죽은 사체는 많이 보았지만, 호주에서 실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 참! 멀리 보이는 캥거루 새끼는 본 적이 있다.

 

아홉 번째 들린 곳은 27억 년 전 바다였다는 곳에 내렸다. 박사님이 가진 책을 가지고 그 지점을 찾은 것이다. 27억 년 전에 형성된 지층이 가로로 얇은 층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와 진흙이 번갈아 쌓인 지층으로 눈에 뜨이게 잘 드러나 있었고 지질학자들이 조사하느라고 뚫어놓은 구멍이 군데군데 보였다. 잘 살펴보니 물결무늬가 새겨진 얇은 암석들이 몇 개 보였다. 이 지역은 헤머즐리 레인지(Hemersley Range) 그룹이라고 했다.

 

“벌써 다섯 시에요. 야영할 자리를 찾아야 해요.”라며 김현미님이 박사님을 재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쇼우 돔 입구에 내려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나 글로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저 가슴 속에 담아가야겠다. 구름이 살짝 가린 하늘에 펼쳐진 노을 빛! 자연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달리는 차안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다. 17시 25분이었다. 블랙 레인지 다이크가 이어지는데 길이가 500km에 달한다고 했다. 계속 달려서 숙영지에 도착한 시각은 18시 40분이었다.

 

저녁으로 고향생각이 나는 된장국과 햇반, 김, 단무지, 고추장 등이 제공되었다. 누구 솜씨인지 된장국이 일미였다. 속이 확 풀어지는 듯했다. 술 한 잔 한 뒷날, 해장국을 먹은 듯 시원했다. 화기애애한 식사 도중에 김태호님의 자작시 낭송이 있었다.

찔려보면 안다. 스피니 팩스

앉아보면 안다. 조립현무암

말 안 해보면 안다. 묵언의 참된 의미를!

부산 사나이의 멋진 시였다. 본 대로 느낀 대로이다.

 

나는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네 가지라는 것을 패러디해서 박사님 흉내를 냈다. 아침에 잠깐 시간이 나서 한마디 했더니 해보라는 성화에 용기를 내어 해보았다.

박사님은 왜 공부 이외의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가!

박사님은 왜 공부할 때 졸지 말라고 야단치는가!

특히 왜 나만 지적하는가!

라고 했더니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박사님은 저녁을 먹으며“우리 대원들은 낮에는 27억 년이나 된 바닷가에서 노닐다가 저녁은 33억 년이나 된 쇼우 돔에서 먹으면서 머리에는 십자성을 이고 있으니 최고의 만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박종환님도 차타고 오는 도중에 우리처럼 대자연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강의가 시작되었다. 21시 20분부터 한 시간 했다. 거의 낮에 본 것들을 복습하고 나서 별자리 공부를 했다. 일직선으로 등 간격을 두고 제일 밑에 용골자리 카노프스 , 그 위에 아케르나르, 제일 위에 남쪽물고기자리 포말하우트가 일등성별답게 밤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이 별자리 셋만 익혀도 학습탐사의 본전은 뽑은 거라고 자위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