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땅 호주 2007-10-0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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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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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땅 호주
 
외국 여행이 처음인 나로서는 설레임과 긴장감이 없을 수 없었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모어(母語)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서 언어의 소통 문제가 없을 수 없는 낯선 땅에 첫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므로 당연히 생기는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호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느껴졌다. 국제공항이다 보니 이미 한국 같지가 않았다. 저녁 식사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햄버거, 콜라등 패스트 푸드로 대신하였으니 이미 새로운 문명과의 조우가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친절한 스튜어디스와 함께 한 약 10시간 동안의 항공기 속에서도 옆자리에 평소 보기 드물던 다국적 사람들과 바로 옆에서 같이 밥을 먹는 동안 그 신기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은 계속되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다국적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길! 저기 충청남도의 시골 구석에서 자라 이미 십수년전에 폐교가 된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하여 좁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해 온 나에게는 정말로 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지구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식습관이나 생활은 이미 우리나라도 많은 부분에서 서구 사회화 되었기 때문에 내 새로운 인식의 전환점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평소보다 머리 노랗고 코가 큰 사람들을 조금 더 자주 그리고 가까이서 함께 했다는 사실에 대한 새로움 그 자체였을 뿐이다.
 
시드니에 도착한 후, 처음 나의 시선을 잡는 것은 외국어 표지 간판들과 수많은 외국인들 이었다. 사실 이제는 내가 외국인이 되어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좀 쌀쌀한 기온 때문인지 내가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했다. 한국에서 9월 4일 출국하여 9월 5일에 도착하였는데 아직 9월초 였기에 상당히 더운 날씨였고 바람이 잘 통하는 반팔 등산복 상의를 입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호주에서의 9월은 우리나라의 2~3월에 해당한다고 한다. 처음 시드니에 도착하여 신기한 것도 금새, 역시 사람 사는 동네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좀 안통할 뿐! 역시 도시는 도시일 뿐 회색 건물에 검은 아스팔트 도로, 북적거리는 사람들 어디가든 비슷하다. 인천국제공항이나 시드니 공항이나.
 
우리 일정이 호주 서부지역과 중부지역을 탐사를 목적으로 하였기에 퍼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퍼스로 향하였다. 약 3~4시간 걸리는 거리이다. 동부에서 서부에서 넘어가기에 약 한시간 정도를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래서 3시간으로 계산해야 하는지 4시간으로 계산해야 하는지 좀 헷갈린다. 실제 몸으로 느끼는 시간은 4시간 정도 인데 현지 시간으로 따지자면 3시간 정도 걸리는 것이다. 퍼스에 도착하여 자동차를 렌트하고 혼자 따로 온 김영철 대원과 합류하기 위에 좀 돌아다녔을 때 낯선 길에 좀 헤메기도 하였기에 앞으로 제대로 탐사할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던게 사실이다. 퍼스는 그래도 서부지역이라 그런지 시드니 같은 대도시 보다는 상당히 이국적이다. 유클립스 나무와 더불어 도심이지만 넓은 지평에 세워진 건물들이 호주 대륙의 광활함을 감출 수는 없었던 듯 넓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한 공기는 차지만 태양과 하늘은 우리나라 가을 날씨보다 더 환하고 밝게 빛나고 있어 마치 여름의 태양인데 기온만 낮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빛이 환하게 밝고 가벼운 빛이었다.
 
퍼스에서 앞으로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퍼스 외곽지역으로 빠져 나가면서 드디어 호주 서부지역의 광활함이 눈에 들어온다. 맨 뒷자리 좌석에 짐들과 함께한 나는 열리지 않는 조그만 창을 통하여 지평선과 석양 그리고 지평선 바로 위부터 떠 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계속 날씨가 좋았고 인적이 드문 광활한 서부지역을 탐사하였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매일같이 넓게 펼쳐진 지평선과 하늘의 별 그리고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한다면 별로 실감하지 못할 것 같다.
 
 
지평선 위에

점퍼의 지퍼인양

지구의 붉은 외피에 얹혀진 길

수 백 km 일직선으로 펼쳐져

망막으로 통하는 길이 생기는 듯

시력의 한계를 느끼며 보이는 소실점

아득한,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 끝 태양

일출 전 여명인가

일몰 시 노을인가

여명과 노을이
 
무대 배경으로 장식하는 곳
 
해가 진 후,
 
바로 옆 키 작은 수풀 너머
 
지평선까지 검은 바다가 되어
 
그 바다를 별로 가득 채워 놓을 듯
 
밤 하늘의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며
 
생명의 근원지를 찾아
 
망망대해 항해하는 엔터프라이즈 호
 
(우리가 빌린 “도요타 타라고” 차를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 호라고 불렀다.)

 
호주를 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호주의 큰 특징 세 가지가 떠오른다.
 
붉은 땅, 별, 길
 
그 끝없이 이어진 길을 달려 우리가 탐사한 샤크베이, 울프 크레이터
박문호 박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더욱 더 별과 시아노박테리아 그리고 호주의 붉은 땅 그리고 인간이 별개의 것이 아닌 서로의 상호작용에 한 연관적 싸이클(순환)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고 이 때 수소 가스가 구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수소구름은 중력에 의해 수축하게 되고 핵반응에 의해 별이 탄생하게 되어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별이 초신성이 되어 별의 수억 톤이나 되는 물질들이 우주로 쏘아지게 되고 이 물질들은 새로운 별에 흡수되어 생명이 싹틀 수 있는 기본 구성 물질이 되는 것이다. 수소 구름이 지구를 만들고 생명의 뼈를 구성하는 칼슘등도 별의 내부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모든 물질, 그 물질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은 별의 내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결국 수소는 물에 해당하고 핵융합은 불에 해당하니 물과 불에 의해서 생명체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주 공간에 흩어진 초신성의 잔해가 전 우주에 걸쳐 다음 세대의 별에 흡수되면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아노박테리아!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의 초창기에 만들어진 미생물로 지구에 산소를 농축시킨 장본인이다. 이 시아노박테리아 또한 별에 의해 탄생한 것이고 한 때는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든 산소가 생명체의 재해가 되었지만 산소로 인하여 생물이 급진적으로 진화 발달되어 현재의 동식물에 이르게 된 것을 우리는 <지구 생명 35억년>에서 보았다. 또한 호주가 붉은 땅을 가진 것은 땅속에 철분이 많은 것인데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든 산소에 의해 산화되었기 때문에 붉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 몸속의 붉은 피도 철분이 들어 있기에 산화된 것임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조상 시아노박테리아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운석이 지구의 표면에 상처를 내 놓은 울프 크레이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구가 우주 속에 있는 하나의 행성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 운석은 초신성의 잔해였을까? 지구의 대기권으로 들어와 충돌한 것이 마치 지구가 필요한 물질을 위해 그 운석을 흡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인화하여 상상을 해본다. 그것은 울프 크레이터 중심에 더욱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 마치 우주의 잔해가 좋은 토양분을 제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우주 속의 별, 샤크베이의 시아노박테리아 그리고 울프 크레이터를 보면서 박문호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우주적 존재인 인간이고 특별한 존재임을 동시에 느끼면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찾아 간 순례 여행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지구라는 행성의 사건은 우주 속에서 매 순간 어느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하나의 행성이면서도 특별한 존재이기도 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단지 대한민국에서 호주로의 공간의 여행이 아니라 빅뱅이 후 지구 생명 35억년이라는 시간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우리와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앞으로 하늘의 별, 시아노박테리아, 운석구덩이를 보지 않고 호주의 붉은 땅을 생각만 해도 별의 생성과 소멸, 시아노박테리아의 산소 그리고 우리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저절로 연상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