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행(3차 학습 탐사 1부) 2009-02-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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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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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글을 쓰기 위해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평생 되도록 아주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글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라 경험의 산물임으로..

그 구절을 읽으면서 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어쩜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행복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예감하곤

작은 흥분에 휩싸였던 순간을 기억한다..

어쩌면 모든 것이 일천한 나마저도 나이를, 세월을 이유로 한편의 글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제야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내 온몸을 휘감고 도는 순간을 맞이했다.

가슴 절이도록 아름답고 너무나 행복해서 그 감정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 인생의 기적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100북스 3차 학습 탐험이다..

해서, 이번 탐사시간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과, 맞이한 순간순간의 작은 단상들을

여기 옮기려 한다..

내 감정의 생생함이 식어 버리기 전에...

 

첫날이다..

대전 팀들은 함께 모여 같은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총 24명의 탐사대원들..

일전에 사전 MT때 한번 인사를 나눈 것이 고작일 뿐 아는 사람이라곤 없다..

어쩌면 이번 탐사를 신청한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체력적인 면에서도,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사회적 지능 면에서도 모두 모자란 내가

이번 탐사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왠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일단 환승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안, 사람들이 저 마다 책을 보며 공부가 한창이다.

어제밤, 급하게 공부한 별자리들이 기억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겐 평생 처음 만나는 천문학인데..

나도 급히 책을 꺼낸다..

제발 읽었던 것만이라도 기억 나주렴..

 

비 때문에 밖으로 나갈 계힉을 접고 5시간여에 걸친 일본 공항에서의 대기상태..

어떻게 지루한 시간을 보낼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의 휴식을 끝으로 우리 모두는 공항 대합실 바닥에 모여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박문호 박사님의 강의..

큰일이다.. 박사님이 요구하는 것은 내가 공부한 방향과는 다른 것 같다..

던지는 질문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일갈을 던지신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겁니다."

부끄럽다..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지만 부끄러워 미칠 정도다

어쩌면 정통 문과적 기질을 가진 내가 이 생소한 천문 우주탐사에 참여한 것이

애시당초 잘못이지도 모른다..

 

드디어 호놀룰루에 도착 아리조나 박물관, 비숍 박물관을 견학하고 다시 비행기로

빅 아일랜드의 코나 공항에 도착하니 어느 새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렌트카를 빌리러 간 사람들을 기다리며 길에 서있는데 누군가가 소리친다.

"어, 오리온 자리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 내가 책에서 본 별자리들이 나타났다..

내겐 그저 '별'로만 통칭되던 저 많은 별들 중에 드디어 내가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특별한 별들이 생긴 것이다..

시리우스, 리겔. 베텔기우스. 프로키온....하나씩 소리내어 불러본다..

일순, 김춘수님의 시가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의미가 된다고 했던가..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읖조려가고 있을 때

난 그들이 내 마음속에 의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젠 아주 친숙함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을때

이미 그들은 예전의 무수히 많은 하늘의 별들의 하나라는 무의미함이 아니라

이젠 그 별빛을 음미하고 교감할 수 있는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 이런거구나!! 아!! 이런거였던 거구나!!"

 

밤늦게 해번가에 자리잡은 일행들..

하루를 기내에서 자고 도 다음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난 후에야 맞이하는 잠자리..

밤새 파도소리만이 유일하게 정적을 깬다..

다음날 .. 난생 처음 해본 침낭 속 캠핑에 두통도 찾아오고 몸의 컨디션은 엉망이다..

사우스비치를 지나, 블랙 샌드비치에 도착..

차에서 그냥 하릴없이 누워만 있고 싶은데 전원이 나와야 한다며 부러 나를 부르러온다..

그래.. 단체 생활에서 누가 될 수는 없다..

간신히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본 순간, 일순 숨이 막힌다..

남태평양의 밝은 햇살과 야자수..

여태껏 본 적 없는 검은 모래가 해안가를 따라 펼쳐져 있고,

하와이 원주민 뿐 아니라 백인들도 해변가에서 삼삼오오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가 모래위에 떡하니 올라와 엎드려 있는 바다 거북이 하나..

마치 저도 일광욕을 즐기는 듯, 사람들이 아무리 몰려들어도 개의치 않고

요동조차 하지 않는다..

녀석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작은 신뢰 하나에 내 가슴에선 물결이 친다..

여기저기서 원주민 특유의 명랑한 웃음이 보인다..

삶에 대한 긍정성과 낙천성..

그것만이 우리네 삶의 진정한 가치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너무나 찬란한 남국의 태양..

갑자기 두 천재가 떠올랐다..

니이체와 고호..

언제나 남국의 태양이 그립다 말했던 니이체가 이곳에 왔었다면,

이 찬란한 남국의 태양아래 저 출렁이는 남태평양의 바다를 마주하고 섰었다면

그래도 그렇게 혼자 쓸쓸히 죽어갔을 것인가..

타이티로 떠난 벗, 고갱과 함께 이곳의 햇살과 풍경속으로 들어왔다면

그래도 고호는 자기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과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끝내 치닫고 말게 되었을것인가..

세월을 다시 돌려 그네들을 이 땅위에, 이 풍경 속으로 데려오고 싶다..

하여,

이곳에서 부활한 그들에게 단 한번일지라도 고단했던 그네들의 옇혼에  휴식을 주고 싶었다..

 

남국의 햇살에 다시금 기를 얻고 화산지대 탐사..

거대한 분화구..불의 여신 펠레의 분노가 보이는 듯 하다..

한시간이 넘는 트래킹..

잰걸음으로 앞서 가는 박사님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누군가는 뛰기도 한다..

나도 서둘러야 한다.. 놓치고 싶지 않다..

 

밤늦게서야 야영장에 도착

탐사내내 유일한 정식 야영장에서의 캠핑이다..

유칼립스 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있다..

피곤에 지쳐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밤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슬라이드는 호텔 침대 시트 카버..

재치덩어리 김영이 총무의 작품이다..

거기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번 탐사의 압권이지만 여기서는 생략해야겠다....

아모커나,

순간순간의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은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나의 일상은 온통 실수투성이다..

나처럼 언제나 실수 투성이인 빨간머리 앤은 그 날도 너무나 많은 실수에 눈이퉁퉁

부울 정도로 울고 난 뒤 마띨드 아주머니에게 말한다..

"아주머니! 내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아직 실수하지 않은 내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건가요."

물론 앤은 어김없이 그 내일에도 실수를 했을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앤의 내일은 여전히 찾아올테니까..

우리의 내일도 여전히 우리를 찾아올테니까.. 힘을 내자 파이팅!!

 

너무나 길어진다..

아직도 이틀의 이야기가 남았는데..

조금 쉬고 싶다..

어제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했기 때문에 아직 여독도 채 풀리지 않았음으로..

계속 쓰기엔 무리인 것 같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쳐야겠다..

컨디션이 좋아지면 2부를 계속 쓸 참이다..

마지막 이틀이 정말 하이라이트임으로 피곤에 겨워 글을 대충 쓰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 이틀의 장엄하고 황홀한 기억만큼은 정말이지 모두에게 생생히 전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