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행* 2부 2009-02-2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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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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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피오 계곡...

내려가는 경사가 거의 70도에 굽어지는 구비도 족히 예일곱은 되는 것 같다..

고개를 굽이돌아 내려가니 원주민들의 농가가 나타난다..

채 따주지 못한 오렌지들이 땅바닥에 떨어져있다..

비록 흙도 묻고 반쯤 썩어 있다한들 상관없었다.

이곳 탐사대에선 끼니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두 끼라도 챙겨먹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올 때는 꼭 맞았던 내 골반 청바지가 자꾸만 흘러내려

이러다가 끝내는 벗겨지지나 않을까 걱정할 정도이다..

그날도 아침부터 내내 빵조각 하나로 허기를 때운 우리는 환호하며

그것을 줍기 바쁘다..

육즙의 달콤함이 한국에서 먹는 오렌지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바나나 나무 꼭대기에 달려있는 한 무더기의 바나나를 발견한다..

너무 높이 있고 나무는 약간 썩어있는 상태라 위험해서 오르지도 못한다..

마치 이솝 우화에서 높이 달려있는 포도에 약올라 하는 여우처럼

하릴없이 올려다보며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합류한 정영옥님은 우리에게 바나나 따는 법을

알고 있다며 가르쳐주겠단다..

귀가 솔깃하다..모두의 시선이 정영옥님에게로 향한다.. 간절하다..

그리고 정영옥님의 아주 진지한 한마디..

한 사람이 바나나 나무에 올라가서 바나나를 따서 던지면 밑에 있는

사람이 바구니로 받으면 되는 것이란다..

갑자기 분노한 사람들이 모두 소리치며 야유한다..

"그래.. 우린 여태것 그 방법을 몰라서 못 따고 있다!!"

그리고는 모두 한바탕 맥없이 웃어댄다..

결국 문경수 총무의 흔들어대기 작전으로 바나나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제법 많다..  여우따위가 어찌 인간에 비하랴..

모두들 줍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친다..

"차다! 차가 온다.. 주인 차일지도 몰라. 바나나 감춰, 감춰 ."

드디어 차는 가까이 오고 우리들 모두는 바나나 든 손을 뒤 허리춤에 숨기고

다른 한손으로는 손을 흔들며 아무 일도 없음을 애써 가장하며

친근한 듯 "알로하"를 외쳐댄다..

얼핏 보니 모두가 한쪽 팔 밖에 없는 외팔이인 듯 보인다..

차에 탄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듯 쳐다보며 지나간다..

그래..이상하게 바라봐도 좋다 바나나를 뺏지만 말아다오..

그 생각 하나로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억지 웃음을 웃어댄다..

차가 지나가자마자 우리는 정신없이 바나나를 나눠주고 껍질을 까기 바쁜데

순간 김영이 총무가 소리친다..

"바보들.. 백미러로 다 보이잖아"

아차.. 거기까지는..

먹을 것에 눈이 먼 우리는 그렇게 눈 가리고 아옹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하하!! 어찌나 우습던지..

 

 

계곡속에 들어가니 마치 열대 정글에 온 느낌이다

나무들이 울창하고 계곡물도 만났다..

허나 다시 그 고개를 넘어 돌아올 길이 너무 멀다..아득하다

어디선가 작은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는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이 트럭 뒤에 올라탔다..

마치 아이들 장난감 리틀 타익스를 연상시키는 작고 귀여운 트럭이다.

고개에 다다르니 그 심한 경사에 우리 몸이 뒤로 제껴지기 시작한다..

그냥 뒤로 고꾸라져 떨어져 버릴 것 같다..

트럭 난간을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 다들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누군가가 말한다..

"이 트럭 뒷부분이 너무 약해 보여.. 우리가 너무 힘줘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순간 겁이 덜컹하면서도 설마 그러랴 하는 생각에 한편에선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반은 웃고 반은 겁내하면서 간신히 도착,

우린 반백의 백인 노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세상 어디에도 친절한 사람은 늘 있는 법이다..

 

 

다시 이동..

해발 거의 2000정도의 고지대에 저녁 늦게 도착..

살을 에이는 추위..

하와이에서 북극에서의 밤을 보내고 왔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허나 사실이다..

텐트 바깥에 벗어놓은 신발이 이내 얼어버릴 정도의,

무릎 반 높이까지 올라온 낮은 풀 위로 얼음이 덮어버릴 정도의 그런 추위다..

추워서 죽을 것 같다..

겨울옷은 입고 간 한 벌 밖에 없기 때문에 여름옷을 속에다 몇겹을 껴입어도

뼈속까지 추위가 밀려오는 것 같다..

텐트안, 우리는 모두 침낭을 펴고 마치 그 옛날 땨뜻한 아랫목에 모여 앉듯이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발을 모은다.. 어느샌가 우리는 그런게 자연스럽다..

각자의 이번 탐사소감을 말하는 시간이다..

누군가가 이번 탐사는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우리 24명 만이 누리는

특별한 선물이라 말한다.. 동감이다..

이 상황과 이 느낌을 생생히 체험하지 않고서야 절대 모를 일이다..

차례대로 돌아가며 모두 한마디씩..

그러다가 누군가가(전재영 총무라고는 죽어도 밝힐 수 없다) 자기 소감을 채 밝히기도 전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낸다..

너무나 오랫동안 무언가를 기다리던 사람이 쏟아내는 순수와 열정의 눈물이다..

아름답다..

사람의 눈물이..

우리 모두 함께 운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울지 않을 수가 없다..

기실, 우리도 무언가를 빙자해서 울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탐사 내내 만났던 벅찬 감동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

이제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선까지 올라 온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텐트 안 우리 모두는 함께 울어대고

어느 누구도 이 침묵과 이 눈물을 부러 깨려 하지 않았다..

 

 

여고시절,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난 후 언제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기를 꿈꿔왔다..

정말 별이 쏟아질 만큼의 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아로새겨진 밤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드디어 난 그 꿈을 이뤘다..

그 날의 밤하늘은 정말이지 어디선가 천상의 음악소리도 함께 흐르고 있다는

착각을 할 만큼의 신비하고 환상적인 별들의 축제였다..

사방 어디에도 지평선은 열려있고 탁 트인 화산지대 벌판에서의 청명한 밤하늘..

그 곳에서 난 어릴적 꿈을 만난다..

이런걸까.. 이런 역설도 있는걸까..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에서야 얼마나 내가 그것을 희망하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다니..

 

 

 

2부 끝..

답글 안올리시면 재미없다는 뜻으로 알고  3부는 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