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행* 3부 2009-03-04 09:15
dot_line.gif
신현숙
h_box_r.gif
h_box_lb.gif h_box_b.gif h_box_rb.gif

드디어 마우나케아다..

결국은 이곳 마우나케아를 오기 위하여 빅아일랜드에서의 밤을

언제나 또 공부 공부로 지낸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피곤한 하루라도 우리의 하루는 12시를 언제나 넘기는,

24명이 모두 모인 공부로 하루를 마감한다..

박사님과 탐사대원의 열정은 무지한 나마저도 몰두하게 하고 귀기울이게 한다..

허나, 모르는 용어들도 많고 받아쓸 수 없는 단어들도 태반이다..

문득, 여고 때 외국어 시험을 영어로 안보고 독일어로 시험 본 것이 후회스럽다는

유치한 생각마저 든다..

아무튼 해서, 세부적인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전체를 이해하려 애쓴다..

무얼 말씀 하시려는건지 요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일단은 느끼자.. 느껴보자..

 

 

마우나케아 방문자 센터..

표태수 박사님과 일행분이 벌써 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신다..

고산병 적응을 위해 우리는 이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 주환이가 16살부터 입장 가능이라는 규칙에 걸려

혼자서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의젓한 녀석이 한순간 눈물을 보인다..

마우나케아를 오르기 위해 엄마랑 집에서 고산병 예방 훈련도 했다고 했었는데..

기분이 짠하다.. 허나 어쩔 도리가 없다..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으므로 1차, 2차로 나뉘어 올라가기로 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1차로 가야한다니,

나는 당연히 2차로 밀릴 수 밖에..

선발은 먼저 출발하고 남은 우리들은 방문자 센터를 구경한다..

각종 기념품이며 별자리 성도 , 옷가지들..여러가지 구경거리가 제법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30분 후 우리 후발대도 마우나케아 정상으로 향한다..

그곳을 오르는 동안 마주한 장관에 대해서는 글로 표현하는 것조차 차마 불경스럽다..

내 아래로 구름이 깔려있고 하늘이 바다인양 펼쳐져 있다..

마우나케아를 마주보는 건너편 산 봉우리 하나가 바다속에 떠 있는 섬인 듯 보인다..

마치 머나먼 태고의 시작점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장엄하고 위대한 광경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난 모른다.. 난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표현도 그 것을 묘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아무런 말이 없다..

일행들은 저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고요한 정적..

허나 그 순간 우린 모두 하나의 생각임을 난 안다..

 

 

드디어 수바루 천문대..

먼저 간 일행이 나오질 않는다..

차에서 내려 산 아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니이체는 짜라투스투라에서 말했다..

산정의 공기는 맑지만 희박하다고..

진짜 산정의 공기야 말할 것도 없지마는 그가 말한 우리 의식의 고결함의 차원도

결국 마찬가지인거겠지 하는 생각에 왠지 숙연해진다..

조금은 숨 차다할지라도 얼마나 맑고 정화된 공기인가..

깊이 호흡한다..

조금이라도 이 산정의 공기를 오랫동안

가슴에, 내 폐에, 그리고 내 피에 머물게 하고 싶다..

드디어 교대..

우리가 천문대 안으로 들어선다..

앞의 선발팀의 과도한(?) 열정과 질문공세로

벌써 표박사님의 호흡이 흐트러지신 것 같다..

숨차 하시는것 같은데 괜찮으시냐 여쭤보니 애써 웃음을 지으시며

단련이 돼서 괜찮으시단다..

박사님의 설명, 설명들..

저렇게 친절한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 없다는게 죄송하다..

장소가 바뀌고 설명이 끝날 때마다 박사님은 질문없냐고 물어보신다..

1시간이나 늦게 나온 앞 팀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약간은 지쳐보이시는 표 박사님께 얼른 휴식을 드려야 할 것 만 같다..

일부러 "질문 없습니다"라고 크게 대답한다..

그러자 또 김 영이 총무의 명언이 작렬한다..

"저희 팀은 앞 팀과 달리 머리가 좋아서 한번에 다 알아듣기 때문에

질문할게 없습니다"

표박사님의 웃음..

어쩌면 우리가 아는게 없어서 물을게 없다는 것도 알아채신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산..

랜트카 반납시간에 쫒겨 정신없이 공항쪽을 향한다..

공항쪽 해변가에 빅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캠핑이 예정이다..

허나 예상외로 시간이 모자라고 갑자기 렌트카를 반납하고 셔틀버스로 공항으로 이동

공항대합실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순간..

난 쾌재를 부른다..

아! 지붕이 있고 화장실이 있으며 물이 있는 곳이다!!!

살면서 내가 공항 대합실에서 자는 순간을 너무 행복해 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

도대체가 상상이나 한 적이 있겠는가..

이번 탐사의 기대하지 않은 가르침 한가지..

사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아주 적은 것으로도 충분한것일진데,

너무나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생활'이라는 명목으로 허비하고 있다는 것!!

잊지말자.. 조심하자..

이곳에서 얼마나 작은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해할 수 있었는가를

언제나 잊지않고 가슴에 새길 일이다..

 

 

공항 대합실에서 박사님과 잠깐의 대화..

우리 앞쪽으로 젊은 총무진들의 웃음이 들린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연다..

"저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선남 선녀들이 모였어요..'

"너무 예쁘죠.. 마음이 아름다운 애들만 모였어요.."

"어머, 아니예요.. 저 아이들도 분명 아름다운 애들만은 아닐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이중의 또다른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허나 우리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죠..

어떤 사람은 제 마음에 있는 가장 유치하고 천박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나를 분노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내 마음의 고결하고 고귀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나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 아이들이 저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건

박사님이 저아이들에게서 그 마음과 열정을 끌어내 주셨기 때문일거예요.."

그게 mentor죠.. 그게 mentor의 진정한 역할이죠"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인 아내를 가진 공항 보안요원의 친절로

공항 맞은편 주차장에서의 우리만의 마지막 밤..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나처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두사람..

문경수 총무와 박승현님..

끝까지 고생이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이 쏴하다..

책임이 있다는 것,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여행 내내 얼마나 힘든 마음의 계속이었을까..

고맙다..

그분들의 열정과 수고가..

 

 

드디어 빅아일랜드에서 호놀룰루,

호놀룰루에서 나리타,

나리타에서 인천, 인천에서 다시 대전..

새벽 1시 도착..

마중 나온 남편과 함께 집에 들어서니 왠지 낯설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집안을 둘러보던 나의 한마디

"여보.. 나 이상해..

왠지 침낭 갖고 밖으로 나가서 자야될 것만 같은 기분이야.."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그럼 오늘은 일단 베란다에서 자면서 적응해봐"

 

 

여기까지가 내 가벼운 비망록의 끝이다..

이젠 숙제를 다 마친 홀가분한 기분이다..

많은 분들이 공부에 관해 더 심도있고 깊이 있는 글들을 올리셨기에

난 가능한 가볍고 경쾌하게 탐사내용을 쓰려고 애썼다..

어짜피 나의 지식은 그분들게 비할 바가 되지 못하므로..

허나,

4박 6일의 여정동안 내가 평생 알아온 사실보다 더 많은 과학적 사실을

배워왔다는 사실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얼마나 이 별들과 우주가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오고

얼마나 내가 깊은 애정으로 그들을 마음에 품을 수 있을수 있게 되었는가를..

 

마지막으로 표태수 박사님께 보낸 답글로 이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박사님..

전 젇말 박사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답니다..

의아해 하시겠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사님의 글을 읽으며 좋아하시는 분이 칼 세이건이라는 말에

칼 세이건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딸아이와 함께 그에 관한 글을 읽다가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르시겠지만 저는 아름다운 비행이라는 제목으로 탐사 후기를 올린 신현숙입니다..

1부를 먼저 올리고 2부를 올렸다가 2부는 바로 삭제해 버렸습니다..

일단, 제가 삭제한 글 2부의 마지막 입니다..

 

 

"그날 밤에도 우리는 마우나케아의 13개 관측소의 이름을 외우고

적색편이와 흡수 스펙트럼을 배웠다..

너무나 무지했던 나마저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별빛-분광기를 통한 빛의 해체-스펙트럼

그 스펙트럼에 나타난 어두운 선들의 분석을 통해 별의 나이와 거리를,

심지어는 그 별빛이 이곳 지구에 도달하기 까지 있었던 모든 여정을 모두 알아낸다..

점점 놀라워진다..

언제나 아득하기만 했던 저 하늘의 별들이,

거대한 우주가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도 왜일까..

이 우주의 방대함을 알면 알수록 역설적으로 이 작은 존재인 인간의 위대함에

오히려 나는 감복한다..

거대 우주라는 모체에서 탄생한 하나의 먼지만도 못한 티끌만한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

그 안의 아들 딸들이 빚어내는, 역으로 그 모체를 투영하는 이 위대한 결과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아주 작디작은 인간들이 이제는 그 모체인 우주를 조영하고

탐험하고 그 근원을 향해 점점 나아간다..

지금의 이모든 것이 아무리 세월을 이어 점점 더 쌓여진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 처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몰두와 능력이 경이로울 정도이다..

눈물이 핑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인간임이 눈물겨울 정도로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런 자긍심이 내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던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생의 시간 내내

인간임을, 바로 내가 인간임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기를 얼마나 희구했던가.."

 

 

그리고 박사님.. 다음은 제가 찾아낸 칼 세이건의 기사입니다..

 

우주의 거대함을 설명하면서도 그에게 인간은 결코 왜소해지지 않는다.

그의 표현대로 “우주의 한구석에 있는 작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기원을 탐구하는 위치에 온 것이다.

별에서 만들어진 원소들에서 유래한 우리 인간이 이제는

그 별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있으며

10억의 10억배의 또 10억배의 그리고 거기에 10배나 더 되는 원자들이 모여 있는

우리 인간이 이제 원자 자체의 특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우주의 시작을 논하게 되었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우리 인간의 가치와 소중함도 따라서 커지며

동시에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더욱 큰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사님..

어떻습니까..

저의 눈물이 이해되시나요..

살다보니, 살아가다 보니,

이렇게 위대한 사상과 접점을 이루며 만나게 되는 날이 오는가봅니다..

왠지 이유는 알순 없었지만 순간그 글을 일단 삭제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놀라운 기적을 음미해야겠다 생각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칼 세이건을 만나게 해주신 박사님께,

제게 이런 기막힌 경험을 하게 해주신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