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주방장의 몽골 학습탐사 체험--안인희 2010-08-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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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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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 박사님께서 제게 메일을 보내셔서, 대신 올려드립니다.

  조폭 주방장의 몽골 학습탐사 체험

                                                                                            안인희

 

 

이번 몽골 여행에서 유목민의 생활을 체험했다. 말이나 낙타의 등은 아니라도 버스와 밴에 짐을 몽땅 싣고 너른 초원과 황량한 사막을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저녁에 도착하면 짐 풀고 텐트 치고 간단한 식사, 다음날 아침이면 텐트 해체와 간단한 식사 후 다시 출발. 낮이면 초원이나 사막이나 어디서나 상을 펼치고 점심.

 

물론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학습”이라는 키워드가 놓여 있었다. 새벽별과 일출을 보는 것도 학습, 낮이면 졸음이 덮치는 버스에서도 학습, 저녁식사 다음에는 텐트 안에서 학습, 그런 다음에도 사막이나 초원의 밤하늘 별자리 학습, 아침 등산도 학습, 내려오는 길도 학습, 산책도 학습, 박물관에서 학습, 유적지에서 학습, 앞으로 그럴 기회가 닥치면 아마 죽어 가면서도 학습........ 이거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 아닐까 싶긴 하다만 그래도 어쨌든 학습.

 

 

우리 ‘학습 유목민’ 생활이 기동성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 여행 도중에 나는 아무의 추천도 받지 않은 채로 유목민다운 기동성을 위해 스스로 주방장의 자리에 취임하였다. 이런, 세상에서 내게 가장 안 어울리는 자리이긴 하다만, 일상을 벗어난 자 용감하여라. 물론 김제수 대원 같은 뛰어난 창고지기가 없었다면 절대로 안 했을 일.

 

주방장의 원칙을 발표하자 뜻밖에도 대원들이 그것을 복창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래서 주방장의 선창에 따라 모든 대원이 다음의 3대 원칙을 복창하였다. [3이라는 숫자에 주목할 것. 3이란 인류의 원형적 사유(Archetypes)의 한 형태로서, 간결하고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것.]

 

첫째, 주문하지 마라

 

둘째, 그냥 먹어라

 

셋째,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

 

대원들은 낄낄거리며 즐겁게 이 원칙을 복창했고, 이렇게 해서 주방장 취임식을 무사히 치렀다. 짐을 꾸리고 모두 버스에 앉았을 때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 모든 대원이 주방장을 향해 “형님!” 하고 조폭 방식 인사를 올렸고, 덕분에 순식간에 조폭 주방장이 되고 말았다. “음, 그래, 사랑하는 아우들아!”

 

처음에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우리 ‘학습 유목민’의 기동성은 옛날 칭기스 칸 시대 몽골 군대에 견줄 만(?) 해졌다. 그러니까 조폭 방식 주방운영이 꽤 성공적이었다는 멋대로의 평가를 내리면서 다음번을 위해 아래에 몇 가지 사항을 요약하기로 한다.

 

1. 영양의 원천 치즈: 점심은 빵 + 치즈와 햄과 잼. 몽골 빵이 맛이 좋았고, 양질의 치즈, 햄, 잼을 구입한 덕분에 점심은 하루 중 가장 훌륭한 정찬이 되었다. 기온이 높아도 건조한 탓에 빵도 오래 보관할 수 있었고, 나머지도 모두 괜찮았다. 트래킹의 필수품 치즈를 학습탐사에서도 애용합시다.[빵과 치즈는 미안하지만 국산 말고 외제로]

 

2. 점심을 빼고 나머지는 햇반, 라면, 카레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충분.

좋은 반찬: 구운 김, 깻잎 캔, 볶음 김치[작은 포장 단위로 구입 가능], 멸치 다듬은 것, 고추장, 참치 캔.

 

3. 추운 밤을 지낸 다음의 아침식사는 누룽지 끓인 것: 누룽지를 끓이다가 햇반을 넣고 팔팔 끓여서 김과 함께 내놓으면 밤사이 꽁꽁 언 몸을 녹이기에 아주 좋은 아침식사. 물론 김치는 언제라도 최고의 반찬. 볶음 김치는 더 이상 발효하지 않아 이상적.

 

4. 간식은 말린 과일과 각종 견과류와 육포. 싱싱한 사과.

 

5. 마유주와 낙타 젖 요구르트: 배변을 도와주는 탁월한 식품.

탐사 마지막 날 아침식사 후 주방장은 소리 없이 퇴임했거니와, 위의 주방장 보고서로 이번 학습탐사 임무를 마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