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곳에 든 것들: 우주, 원자, 사막 2010-09-23 23:23
문장렬 
  
딩~동~뎅~ 지난 여름~~
고비사막에서 함께 보았던 모든 것들
스쳐갔던 모든 생각들
아직 남은 느낌들

딩~동~뎅 너~무나 짧았던
우리들의 만남
우리들의 여정
우리들의 추억

딩동뎅 딩동뎅 말이나 해볼걸
또 가보자고

딩동뎅 딩동뎅 여름은 가버렸네
전갈자리 넘어로

딩동뎅 딩동뎅 그 날이 다시 올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안드로메다를 맨눈으로 헤아릴 그 밤.

<첨부: 오래된 숙제, 위 "우주원자사막.hwp">
 
 

빈 곳에 든 것들: 우주, 원자, 사막

문장렬

 

 

우주

 

몇 년 전 미국의 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소설을 기초로 만든 "콘택트(Contact)"라는 영화에서 주연 조디 포스터(Jodie Foster)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보내는 전파를 탐지하려는 SETI(Search for Extra Terrestial Intelligence)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로 나온다. 그의 대사 중 인상깊은 것은 만일 이 광막한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awful waste of space)일 것이라는 말이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이고 빛의 속도로 공간이 팽창해 왔다면 우주의 크기는 지구보다 대략 1018 (1018제곱) 배이고 부피로 따지면 그 세 제곱 (1054) 배쯤 될 터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의 낭비라는 그의 말은 우주의 크기뿐 아니라 거기에 얼마나 많은 천체들이 있는지를 같이 헤아려 보아야 실감이 난다. 우주에는 천억 개 이상의 은하(galaxy)가 있고 각 은하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다. 그렇게 많은 은하 중 하나가 우리 은하계(The Milky Way)이고 그렇게 많은 별들 중 하나가 우리 태양이며, 대부분의 별은 우리 태양계처럼 다수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만 있다면 정말 너무 외로울 것 같다.

좀 더 들여다보면 공간의 비어있음은 낭비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한다. 우주의 평균 물질 밀도는 대략 1 입방미터 당 수소 원자 1개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물질이 은하와 항성()과 행성에 뭉쳐 있으니 우주 공간은 그야말로 공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 거리는 4광년 (1 광년은 빛이 1년간 가는 거리) 이상이다. 초속 3,000km라는 엄청난 속도의 로켓을 타고 가더라도 400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까지의 거리는 250만 광년이고 그 사이는 더 지독히 비어있다.

어떤 행성이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확률은 매우 낮지만 워낙 별의 수가 많다보니 은하계마다 평균 두어 개 정도의 문명이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Drake Equation," wikipedia.org). 설사 그게 맞다 하더라도 별 사이의 거리는 두 외계 문명의 접촉을 극히 어렵게 만든다. 현재 우주의 공간이 이 정도로 비어있는 것은 팽창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최근 부분에 지구 생명 진화의 역사가 있다. 어쩌면 행성에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출현하기 위해 우주 공간의 공허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충분히 외계와 격리되어 있어야 혜성이나 대형 운석과의 충돌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행성에서의 진화가 긴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마침내 그런 멸종적 사건(ELE: Extinction Level Event)이나 공격적 외계인과의 조우 가능성까지 걱정하는 존재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원자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캘리포니아공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물리학 강의 시간에 한 가지 억지 질문을 했다. “만일 어떤 대사건으로 인류의 모든 과학적 지식이 일시에 소멸되고 오직 한 문장만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면 최소한의 단어들로 최대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한 문장은 무엇일까?” 그가 스스로 제시한 답은 결코 억지가 아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조금 떨어져 있으면 서로 끌어당기고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 미는, 원자라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Feynman, Leighton, Sanders,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1963, Vol. I, p. 1-2.)

이 문장은 숫자나 수학적 표현 없이 일상언어만을 사용한 좀 엉성한과학적 명제이지만 놀랄 만큼 다양한 물리, 화학, 생물학 현상들을 정성적(定性的)으로 꽤 정확히 설명해 준다. 또한 이 말이 수십 세대 전에 나왔던 데모크리투스(Democritus, ca. 460-370 B.C.)의 원자론과 다른 점은 원자의 가장 중요한 특성 한 가지를 운동과 힘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사실 20세기 과학혁명은 원자를 더 쪼개면서 그 구조를 더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거기에서 양자역학이 나왔고 거기에 상대성 이론이 합류하면서 소립자론과 우주론이 발전하고 나아가 만물의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을 궁구할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원자의 종류는 많지만 크기는 모두 비슷하게 약 천만 분의 일(10-7) mm이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원자가 더 작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거의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원자의 대부분의 질량을 차지하고 양(+) 전기를 띤 원자핵은 원자 크기의 십만 분의 일(10-12mm) 밖에 안된다. 그리고 음(-) 전기를 띤 일정한 수의 전자가 외곽을 바삐 돌며다른 원자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때문에 그 크기가 유지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원자를 서울시의 크기만큼 확대할 경우 원자핵은 서울시 청사 앞면에 박힌 시계판 정도의 크기가 될 것이다. 이 때 전자의 크기는 서울시 변두리를 날아다니는 모래알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사이에는? 그냥 아무 것도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도 그 크기의 천 분의 일보다 더 작은 쿼크라는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역시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원자의 비어있음은 인간의 몸을 포함하여 그것으로 구성된 모든 것이 얼마나 지독히 비어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의 비어있음처럼 문명의 진화에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자면, 원자핵의 크기가 원자의 크기에 비해 지금보다 훨씬 컸다면 원자 내부까지 자유롭게 뚫고 다니는 중성자와의 충돌 확률이 커질 것이고 충돌 때 일어나는 핵변환에 의해 원자는 고유한 화학적 성질을 충분한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위해서는 물리학의 다른 상수들의 값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변화의 가능성도 작아져 다양성이 생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적절한 공허함 덕분에여러 원자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분자를 만들고 그 중 특정한 분자들이 오랜 화학반응의 과정에서 생명체의 세포를 구성하게 되었다. 요컨대, 소립자들의 상대적 크기는 물질의 공허함 속에서 홀연히생명체가 나타나 진화하더니 마침내 그 공허함의 깊이를 헤아리는 일을 벌이게 된 연유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진정 위대한 반전은 우주이든 원자이든 그 비어있음이 무한한 잠재력으로 가득 차있다는 현대물리학적 세계관의 정립에서 이루어졌다. 거시적으로 우주 공간은 관측 가능한 물질-에너지와는 전혀 다른 어떤 암흑물질-에너지(dark matter-energy)가 약 96%로서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빈 공간에서는 소위 진공에너지(vacuum energy)가 끊임없이 요동하며 찰나적으로 입자들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심지어 빅뱅(Big Bang)도 그러한 현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 내부의 광대한허공 역시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전자의 시공간 상의 존재 확률과 관계되는 파동으로 가득 차있고 따라서 그것이 무한히 많은 자신의 분신과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사막

 

사람이 없으면 빈 것이다. 빈 방, 빈 집, 빈 거리, 빈 도시. 사막에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이 비울 그 무엇도 없다. 먼 옛날, 멀어도 아주 까마득히 먼 옛날, 사람보다 사막이 먼저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우리 선조들의 일부는 이러저러한 사연 때문에 처음으로 고향 대륙을 떠났을 것이고, 그 중 일부는 사막을 돌아서 또는 목숨 걸고 지나서 다른 대륙의 살 만한 곳을 찾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넘을 수 있었던 이 장벽은 가도가도 끝없는 초원, 험준한 산맥, 거친 대양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소수의 적자(適者)’들을 선택하여 그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게 해 준 자연의 장치였다. 그렇게 실크로드의 전사(前史)는 길고도 비참하고도 위대했을 것이다.

생명 진화의 역사가 개체의 먹이와 배우자를 향한 이동의 효율성을 증대해 온 과정이었다면 문명의 역사 역시 근본적으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과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정복과 지배, 교역과 교류 따위의 문명어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내적 동인만으로 발달하던 문명들의 팽창 압력이 마침내 사막에 다다른 초기에 그 에너지 장벽을 넘기 위해 준비된 것은 기껏해야 인간과 짐을 실을 길들여진 동물 두어 종, 그리고 그 때까지 알게 된 자연에 대한 초보적인 과학 지식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간의 호기심, 모험심, 탐욕과 결합함으로써 사막의 비어있음은 우주와 원자의 그것처럼 때때로 뭔가의 생성과 소멸을 위한 역동적인 공간이 되었다.

사막을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하는 영겁의 허적(虛寂)”이라 부르는 것은 시인의 감수성이 빚어낸 깊고도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비어있음과 그 속에 든 것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인간의 모든 감각과 정신을 뒤흔드는 새로운 울림이 다가온다. 사실 사막이란 그 구체적 자연환경이 매우 다양하여 기후와 식생, 지형,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의 정주 여건의 공통점 몇 가지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여 사막은 일체가 모래인 것도 아니요, 억조의 창생이 끊임없이 태어나 살다가 죽어가는 곳이요, 허적은 하나의 배경으로만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사막 한 가운데, 사방 온 땅이 오직 하나의 직선 위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그 곳에서 실로 영겁의 세월 동안 태양의 교향악이 천지에 울려 퍼진다. 여명의 서곡은 얼마나 조용하고 신령한가? 태양이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잠시나마 그 찬란한 광휘를 맨 눈으로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경험인가? 이윽고 대지 위로 오른 태양이 풀잎 끝마다 맺힌 작은 이슬에 비추어 방울마다 태양을 오롯이 머금게 되니 그 무수한 영롱함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 한낮에 태양이 천궁들을 지나며 작열할 때 이슬은 증발하고 태양은 다시 하나가 되어 빛과 열로 땅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태양다울 때에도 땅 어디선가에는 가시 달린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무 향기 나는 향초들이 드넓은 초원을 이루고, 바람에 실려 온 그 향내를 맡으며 전갈과 도마뱀이 다니고, 두더지들이 땅굴 사이를 오가고, 아직 마르지 않은 얕은 웅덩이에서 개구리가 헤엄치고, 메뚜기가 떼 지어 날아다니고, 매와 독수리가 그 위를 선회한다. 태양 교향악의 피날레 황혼은 또한 얼마나 장엄하고도 그윽한가? 밤이 되면 하늘과 땅의 경계도 사라지고 황금빛 달이 뜨고 문명의 빛에 방해 받지 않은 아득히 먼 곳의 무수한 태양에서 날아온 은빛 광선들이 땅 위에 쏟아져 내린다.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다시 맺히기 시작하는 이슬방울들 속으로 알알이 들어가 박힐 것이다. 그 중의 한 줄기 희미한 빛은 인간이 아직 사막을 보지 못했을 먼 과거에 지구를 향한 여행을 시작하여 이제야 인간의 눈에 들어왔다. 그 빛이 출발한 그 은하에서도 누군가가 우주와 원자와 사막의 비어있음을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