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탐사여행기2_2(6월28일) 2008-07-1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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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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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아침에 눈을 뜬다. 발표 준비로 일찌감치 잠을 깬 김영이 대원의 말을 빌리면 비는 4시 30분쯤에 그쳤다. 해가 뜬다. 붉고 힘차게 떠오른다. 바다가 아닌 땅에서 떠오르는 태양. 이 또한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비경인 셈이다. 한참 동안 넋을 잃는다.

다시 아침 식사. 김홍섭 대원의 표현대로 ‘고비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식탁’이다. 매일 아침을 여는 주식은 신라면이지만 남부럽잖다. ‘왕인의 밥 걸인의 찬’인 들 어떠랴.
힘찬 일출도 잠시. 7시 탐사차량이 출발할 때 쯤 다시 비가 내린다. 하늘은 흐리다. 길을 달린다. 곳곳에 물웅덩이다. 간밤에 내린 강수량까지 더해져 제법 심각한 상황들이다.
탐사차량은 몇 차례나 길을 벗어나고 길을 만들어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출발한 지 채 1시간이 못돼 가이드 조로가 차를 멈춘다. 차에서 내려 길을 살핀다. 그는 금세 차에 오르지 않는다. 심각한 상황인 게다. 일행 모두가 차에서 내린다.

눈앞에 펼쳐진 건 물웅덩이가 아니다. 작은 호수다. 족히 20m는 됨직한 물웅덩이가 길을 막는다. 물이 고인 흔적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두가 막막하다. 가이드 졸로가 물웅덩이 주위로 땅의 상태를 확인한다. 질퍽하다. 돌아갈 길을 찾아 걷는다. 한참을 걷는다. 2km쯤 갔다가 돌아온다. 탐사차량은 바로 앞의 길을 돌아 우측 방면으로 2km쯤을 돌아서야 다시 길로 돌아온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차량이 물웅덩이에 빠지면 모든 일정을 수정해야 한다. 그 정도에 따라 사막에서 하루나 이틀쯤을 허비할 수도 있다. 도움의 손길이 닿기까지 어찌할 수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 이들을 만난다. 두 여인과 딸아이다. 세 사람이 몰던 승용차가 물웅덩이에 빠졌다. 한 여인이 삽을 들고 길을 내려 노력한다만 역부족이다.
탐사팀 일행은 그들을 돕기로 한다. 하지만 졸로가 먼저 길을 살핀다. 그 물웅덩이를 우리 일행도 지나가야 한다. 삽으로 물웅덩이 아래를 찔러본다. 그러더니 물웅덩이를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로지른다. 오랜 가이드 생활의 노하우인 셈이다. 때로는 길을 돌아가지만 때로는 물웅덩이 위를 달리기도 하는 게다.

탐사차량이 물웅덩이를 지나고 대원들은 방금 전의 승용차로 향한다. 촬영을 맡은 대원들이 장비를 내려두려는 사이 가이드 졸로와 문경수 대원, 박문호 탐사대장이 승용차를 뒤에서 힘껏 민다. 차는 단숨에 물웅덩이를 빠져나온다. 너무도 싱겁게 끝난 상황에 모두 허탈하다. 다만 바퀴가 공회전하면서 흙탕물을 튀긴 탓에 중심에 서 힘을 쓰던 문경수 회원의 옷이 흙 범벅이 됐다. 대원들은 농담처럼 문경수 대원의 ‘장딴지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몽골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길은 여전히 질다. 물웅덩이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다행히 비가 그친 탓에 더 심각한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달란 자드가드의 도심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달란 자드가드는 욜링암을 향하는 중간 거점이다. 드디어 목적지가 가까워 온 것이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달란자드가드를 바란다.

잠시 후 탐사팀의 뒤쪽에 두 대의 차량이 선다. 러시아 차량 푸르공이다. 우리식 다인승 봉고를 닮았다. 많은 여행객들이 푸르공을 이용한다. 부품을 구하기도 쉽기 때문에 즐겨 애용하는 차량이다. 다만 에어컨이 불가능하다는 불편함이 있다.
푸르공을 타고 온 일행은 네덜란드 사람들이다. 그들 일행과 박문호 탐사대장이 이야기를 나눈다. 사막에서 야영을 하기도 하고 게르에서 묵기도 한단다.
그들이 “히딩크를 아느냐?”고 묻는다. 히딩크를 모르는 한국 사람이 있을까. 축구는, 네덜란드 축구 감독 히딩크는 두 나라를 잇는 가교인 셈이다.
 
11시를 조금 넘어 달란자드가드에 도착한다. 울란바토르를 떠나 만난 가장 큰 도시다. 탐사대장은 가장 먼저 박물관을 찾는다. 남고비박물관으로 간다. 하지만 박물관이 닫혔다. 마친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날이다.
가이드 졸로가 나선다. 문을 여는 게 가능할 거란다. 여행 내내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 쉬는 날이거나 박물관의 관람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박물관의 문은 열렸다. 한쪽 관람실의 열쇠가 없자 직원이 쇠톱을 구해온다. 문경수 대원이 쇠톱을 이용해 자물쇠를 자른다.
 
남고비박물관은 몽골 민족의 유물과 남고비사막의 탐사 결과를 전시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역시 우리네 해태상과 비슷한 석상이다. 박물관은 2층 규모다. 욜링암이 인근에 자리한 탓일까, 공룡 화석의 흔적이 두드러진다. 몽골의 공룡 유적을 표시한 지도도 눈에 들어온다.
칭기스칸의 초상도 있고, 우리네 생활 문화와 비슷한 화로나 맷돌 같은 유물도 있다. 2층에는 라마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재미난 건 방명록이다. 박물관을 다녀간 이들이 기록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는 한국 방문객도 있다. “몽골사람들이 전통을 중시하여 보존하고 후손들과 외국인들에게 알리려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라고 적혔다. 한국에서 온 의사란다. 문경수 대원이 방명록에 백북스의 흔적을 남긴다.
 
남고비박물관을 나와 환전을 하고 식료품을 보충한다. 환율 차이가 심하다. 울란바토르보다 심하다. 달러와 원화의 차이도 실감한다. 욜링암을 향한 본격적인 행로에 오른다. 욜링암은 공룡의 발원지라고 전한다. 특히 알타이 산맥 끝자락으로 해발 2800미터의 계곡 아래 ‘아이스밸리’는 욜링암을 유명하게 만드는 명물이다.
욜링암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능숙한 가이드 졸라도 몇 차례나 길을 묻는다. 정해진 길이 있다기보다는 사막을 가로질러 그 입구를 찾아가는 셈이다.
 
길게 늘어선 알타이산맥을 향해 차를 내달린다. 그러다 잠깐 차가 멈춰 선다. 가까이에 봉오리 하나가 솟았다. 사막 한가운데 뜬금없이 자리한 모양새가 마치 경주의 왕릉을 연상케 한다. 탐사대 일행은 왕릉 같은 봉우리를 오른다. 오르기에 어렵지 않을 만큼의 높이, 채 10분이면 족한 산행이다. 하지만 정상에 이르니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다.
 
뒤로는 알타이 산맥의 거대한 능선이요, 앞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다. 겹겹이 길을 낸 지평의 선들은 마치 거대한 바다 같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지평선이 아닌 수평선. 고비사막에서 찾아낸 최고의 보물이다. 대원들은 그곳을 ‘성지’로 명명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생애 최고의 풍경이라 탄복한다. 들뜬 감성을 주체할 길이 없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뛰어오르기도 하고 괴성도 질러본다. 모두가 흥에 겹다.
 
정상에는 돌을 쌓아 올린 어워도 있다. 우리네 서낭당과 꼭 닮았다. 돌탑의 꼭대기에는 반드시 하닥을 둘러둔다. 푸른 색깔의 천인 하닥은 몽골인들에게는 신령과 존경을 담은 성물이다.
몽골 사람들은 어워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빈다. 여행객들도 안녕을 기원하며 세 바퀴를 돈다. 어워가 있다는 것은 광활한 사막과 초원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언덕을 내려와 인근 게르에 들린다. 게르의 삶을 엿본다. 변발을 한 소년이 인상적이다. 소년이 끄는 말을 탄다. 짧은 시간 몽골사람들과 형제처럼 어울린다. 모두가 크게 웃는다.
 
욜링암에 도착한다. 입구에는 자연사박물관이다. 박물관보다는 박물관 주변에 있는 욜링암의 체취에 주목해야 한다. 박물관을 둘러 안은 둥근 돌덩어리는 돌이 아니라 공룡 알이다.
주변에서 발견하는 철광석 또한 각별하다. 철기, 청동기 문화의 흔적이다. 동아시아의 세력 지형은 크게 농경사회를 중심으로 한 한족(중국)과 유목 생활을 중심으로 한 쥬신(<대쥬신을 찾아서> 김운회 저 참고)으로 나뉜다.
두 문화권은 끊임없이 반목한다. 농경지를 지키려는 한족과 농경지를 제거해 가축을 위한 유목의 장으로 만들려는 쥬신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었다. 특히 농기구를 만드는 농경 문화권보다는 무기를 만드는 유목 문화권의 철 문화가 발달했다. 고대 중국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치우천황(붉은 악마를 상징하는)이 대표적이다.
 
또한 한족은 쥬신을 예(濊), 맥(貊) 또는 예맥(濊貊)이라 했다. ‘똥고양이’라고 멸시해 부르는 말인데, 예맥은 그저 중국식 발음을 차용했을 뿐이다. 그 발음의 근원을 살피면 '사ㅏㅣ'나 ‘쉬’등으로 불린다. ‘쇠’를 뜻하기도 하고 ‘해’를 뜻하기도 한다. 쥬신족에 속하는 고구려, 몽골, 거란 등의 어원이 모두 ‘쇠’와 연결되는 것도 철기문화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을 뜻하는 사ㅏㅣ벌, 사ㅏㅣ라벌, 서라벌 역시 그러하다.
 
욜링암은 입구에서도 한참 동안 차를 타고 들어간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거대한 계곡의 품으로 안겨드는데 길 따라 들고나는 풍경이 장관이다.
그 산줄기는 사막의 장대함 못지않다. 탐사차량 안에서도 바깥의 풍경을 탐하기 위해 앞뒤 좌우 할 것 없이 몸을 뒤척인다. 그리고 길목을 막아선 얼음 계곡의 위용은 뜻밖이다. 그 뜻밖의 상황, 우리의 사고와 경험의 영역을 넘어선 상황의 충격은 말해 무엇 할까.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얼음의 계곡이라니. 욜링암이 몽골 사람들에게도 각별한 이유를 알 법도 하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그 끝쯤으로 여겨지는 중도에서 걸음을 멈춘다. 더 이상 들어갔다가는 되돌아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까닭이다.
 
욜링암을 돌아나오는 길, 무수한 아쉬움을 차례차례 떨치며 걷는다. 문경수 대원은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며, 알타이의 정령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박문호 탐사대장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도 함께 쓰레기를 줍는다. 이 또한 성스런 의식이다.
 
탐사팀은 다시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이번에는 특급 가이드 졸로와 문경수 대원이 꺼낸 한권의 책이 안내자다. 야생마의 출몰지와 울란바토르의 박물관이 큰 줄기다.
어느새 해가 기운다. 사막의 낙조다. 연이어 늘어선 전봇대를 따라 밤의 그림자가 내린다. 하늘은 붉고 푸르다. 보랏빛의 성스러움도 깃들어 있다. 빛의 스펙트럼은 제멋대로 휘감겨 있는 듯하다.
 
차를 세운다. 마른 땅을 찾아 다시 야영을 준비한다. 태양의 붉은 기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한참 동안의 비경을 안긴다. 가이드 졸로가 한국에 있다는 남동생 이야기를 꺼낸다. 졸로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자수성가형이다. 그가 한국의 기업이‘김우중’을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나 싶다.
 
10시가 넘자 별들이 뜬다. 별 촬영을 한다. 테스트 촬영이다. 간신히 사람과 하늘을 하나의 앵글에 담는 방법을 찾는다. 자정이 넘어선다. 별이 가득하다. 실재하는 환상이다. 그 아래 우리가 있다. 푸른 별 지구에 사는 작은 생명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