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학습탐사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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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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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


비행기 이륙하는 게, 꼭 공룡이 뛰는 것 같습니다.

공룡이 살던 중생대, 고생대, 원생이언, 시생이언... 마음은 오랜 과거를 향해 뛰어 갑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륙에 가니까요.

과거, 과거에 과거로 수십억 년 전 우주의 숨결을 느끼며 자유롭고 싶습니다.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을 만나고 싶습니다.


호주 사막을 가로질러 백 마일, 통쾌히 달렸습니다. 창밖은 무한입니다.

무한한 지평선, 외줄기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길, 그 길 모퉁이로 접어들어

잠자리를 살피고 무한한 밤하늘 별들을 봅니다.

땅에 누워 사방을 보면 시야를 가릴 것 없이 온통 별투성이,

소마젤란, 대마젤란, 시리우스, 카노푸스를 한 하늘에 봅니다. 


매일 밤새워 오로지 별만을 보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이야기가 생깁니다.

어느 날은 차 안에서, 어느 날은 침낭 속에서, 추운 벌레마냥 웅크리며

당신의 절망을 듣고 나의 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별똥별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명에 작은 소망마저 군더더기 같아
다만 바라보았습니다. 좋은 마음 그대로 가득합니다.


밤에 이어 새벽녘에도 박사님의 ‘별 강의’를 들으며 하루를 엽니다.
아침을 먹고 사막으로 산보를 나갑니다.
호주의 나무와 꽃, 풀들은 70%이상이 호주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솜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보랏빛 꽃, 유채꽃과 비슷한 노란꽃, 별꽃같은 하얀꽃,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건조한 날씨를 견뎌서 그런가 꽃들이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명랑한 새소리도 신비롭게 들려옵니다.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홀로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과 새들과 개미와 개미집....
이들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습니다. 사막에서는 더구나 낮고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작은 것 중에 작은 것, 빛을 향해 자라는 시아노박테리아, 그 미세한 녀석이 산소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지 못했을 거라 합니다. 아직도 그 시아노박테리아가 번식하고 있어
‘스토마톨라이트’를 만들고 있는 현장, Shark Bay Hamelin Pool에 갔습니다.
산소를 만드느라 거품이 뽀글뽀글,  아! 사랑스런 시아노박테리아여, 너를 닮고 싶다.
나도 잘 쓰일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사진을 찰칵, 두고 두고 기억하렵니다.


‘백북스’는 길입니다. 

우리가 텅 비어 충만한 우주임을, 세상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확인하는 학습탐사, 그 길 위에서 스승을 만났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라는 조언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명석함과 현명함, 차분한 카리스마, 박학다식, 열정, 따뜻한 애정을 배우고 싶습니다.

듣기의 중요성과 음악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즐거워” 라고 외치는 아이의 음성에서

삶의 기쁨이 이런 거구나,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호주학술탐사를 통해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했고, 다양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내내 한 구석은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35억 년 전  지구의 숨결이 느껴지는 대자연,

수십억 년을 날아와 그 빛을 보여주는  수 많은 별빛, 
현재에 과거의 시간을 마주하는 그 기적 앞에서도

자꾸만 부족함에 눈길이 가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느끼는 사람들과 공명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슬펐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느끼는 사람 또한 그 느낌을 나누지 못해 고독했으리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돌아 보니 부족했어도 부족한 대로 좋았습니다.

오랫동안 미워하던 ‘운명’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