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목) 학습탐사 8일  


한국을 떠나 이곳 몽골에 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이 쯤 되면 한국 밥도 그립고 침대도 보고싶을 만도 하지만, 나는 벌써일주일이 지난 것이 너무나 싫었다. 아침이 밝을 때마다 한국 갈 날이 다가와 섭섭했다. 이 핫(Hot)한 태양을 또 언제보나...

 

꾸덕한 누룽지에 깻잎을 덮어 먹었다. 국물보다 밥알 위주여서 포만감도 높지만, 제일 소화가 잘되고 따끈한 진수성찬 아침식사이다. 마지막 종이 쓰레기까지 싹싹 모아 정인식 선생님이 항상 불에 태우신 덕분에 쓰레기 처리는 깔끔이 마무리됬다.

 

열기를 가득 실은 버스가 또 다시 달린다. 덜컹 흔들리는 수준이 마치 4D 체험관 같다.

하지만 흔들거림은 사치일 뿐. 우리는 그 속에서 글씨도 적고 깨같은 글자도 읽는다.

피곤할 땐 잠도 잔다. 대신 무한 끄덕임을 반복하는 목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큰 비에 길도 무너져 길을 찾으며 돌고 돌아 차강아고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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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구석기인들이 생활했던 수정동굴이 있는 곳이다. 차강은 하양을 뜻하고 아고이는 동굴을 뜻해 하얀 동굴(white cave)이라고 불린다.

동굴 앞에 서서 동굴을 바라봤는데, 내가 생각한 동굴 겉 모습이 아니였다. 그저 거대한 암석에 누가 일부로 구멍을 위로 뚫어 논 것 같다.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돌로 계단이 쌓아져있었다. 이곳이 입구이다. 한 칸 한 칸 올라갈수록 깊숙한 구멍들이 보였다. 계단을 다 오르자 구석기인 형태를 본 뜬 건지 동상 두 개가 있었다. 그 동상에게 사람들은 돈을 놓고 과일을 차리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작은 구멍으로 허리를 숙여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어두울 것을 대비해 이미 대원들중 절반은 헤드렌턴 또는 손전등을 준비해왔다. 첫 번째 동굴 방에 들어가니 마치 집채 만한 옹기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어찌 보면 거대한 땅 속 개미 집 같은 공간이 있었다. 40명 가까이 되는 대원들이 밀착하여 겨우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 반짝거리는 수정들이 빛이 나고 있다. 햇볓 쨍쨍한 몽골 기후 때문인지 하루종일 덥고 후끈했는데 동굴 속은 누가 에어컨을 틀은 것 보다 더욱 시원했다. 공기도 선선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곧이어 옆 동굴 방으로 이동했다. 역시나 들어갈 땐 공간이 비좁고 높이도 낮아 허리를 낮게 숙이며 입장했다.

이 곳은 그야말로 대박이였다. 갓 불을 끈 형광등 마냥 옅게 반짝이고 투명한 수정들이 다다다닥 붙어있다. 수정은 박물관에서나 봤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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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왔을 땐 위에 박쥐도 있었는데 오늘은 보이질 않았다. 박쥐라니, 말 그대로 정말 동굴이 맞구나. 왜 이름이 하양 동굴인지는 들어가 두 눈으로 보니 이해가 갔다. 별처럼 쟈글쟈글 빛을 내는 수정들로 눈빛 마저 초롱초롱 해져갔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얼마나 좁고 낮은지 또 다시 허리를 숙이며 두 번째, 첫 번째 방을 나오다 결국엔 머리와 등허리를 박고야 말았다.

 

아빠와 EBS팀은 마지막으로 남아 저 자세히 촬영을 했다. 그동안 우리는 밖으로 나와 돌에 앉아 쉬며 영어로 된 논문을 더듬거리며 읽었다. 박재이 선생님이 논문을 하나하나 짚으며 해석해주시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지친 나는 졸음이 밀려 오기 시작한다.

 

버스로 돌아가며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역시나 샌드위치다. 샌드위치에 정말 질릴 때 쯤 미묘한 차이지만 색다른 맛을 냈다. 햄의 상태가 그리 신선하지가 않아 더욱 늦기 전에 해치우기로 하여 구워먹기로 결정했다. 작은 냄비 같은 것에 그냥 구웠지만 약간 불 맛이 나기도 하고 진한 베이컨 같은 맛이였다. 햄 하나로 기분 좋은 샌드위치로 마무리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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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수정동굴을 떠났다. 이제 고비사막으로 계속 파고드는게 아니라 수도 울란바토르 부근으로 향한다.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부터 슬슬 가야 한다. 땅이 쩍쩍 갈라지고 푹푹 찌고 로션을 발라도 건조한 사막이 아닌 첫날 본 초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붉은 사막보단 푸근한 초원이 좋지. 말들이 뛰어놀고 양떼들이 풀을 뜯어먹고, 파릇한 풀들과 쌔한 부추향기 속 솜방망이 같은 엉겅퀴. 몽골의 첫 인상이다. 듬성듬성 꽃 뭉치들이 보이고, 그걸 하나하나 찍는 대원들. 하늘은 물감으로도 표현 할 수 없는 몽골 색이고, 구름은 땅땅하게 뭉쳐 두리뭉실 떠내려간다. 윈도우 배경화면과 똑닮은 초원 사이로 두 줄 속살이 보이는 바퀴길.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을 자동으로 흥얼거리며 몽골 역사를 암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빠는 항상 암기를 강조하신다. 스파르타식 서당으로 불리는 건명원이라는 공부 모임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암기만이 공부법이라고 한다. 과연 정말일까?

항상 나는 이해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이해하다 지쳐 중간에 포기한 적도 수두룩 하다.

 

그런데 지금 몽골에 와서 몽골역사를 그냥 외웠다. 사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일단 글자만이라도 외우고 아빠의 강의를 들으니, 가끔가다 소름이 돋는다. 내가 뜻 모르는 단어를 외운 지식들이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가 아빠의 강의를 들으니 차츰차츰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서 온 몸으로 파고든다. 그러면서 모르지만 암기했던 내용들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내 지식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일단 처음 시작을 암기로 해서인지 헷갈리지가 않는다. 초로스, 토르구트 ,호쇼트, 투르베드. 이것들은 4만 몽골 즉 오이라트인데, 아마 전부터 흐릿하게 알았더라면 암기하기 더 헷갈리고 받아들이기가 난해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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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조차 생소한 이 단어들을 처음 딱 본 순간 강한 인상을 주며 깡그리 암기해보니, 훨씬 더 수월했다. 올해 초 3월에 중국에 4일 동안 학습탐사를 갔었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중국역사를 외웠는데, 사실 중국역사하면 뭐가 있는지 가물가물 알지만 잘은 몰랐다.

생각나는 건 하. , 주 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정도였지만 중국역사 순서를 외우다 보니 자꾸 원래 알았던 게 머리에 맴돌아 더욱 헷갈렸다. 아예 처음부터 딱 제대로 알았더라면 아리송하지도 않고 확실하게 알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역사는 연도까지 매끄럽게 암기하는데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려워도 암기방식으로 몽골역사를 공부하니 몇일만에 몽골 역사를 많이 외웠다. 단어조차도 생소한데 말이다.

몽골 역사를 외우니 연도도 외우게 되고, 연도를 외우니 전에 외웠던 중국 역사하고도 비교가 가능했다. 내친김에 세계사도 암기해버려?

 

이동도서관 버스는 냇물이 흐르는 야영지에 도착했다. 제법 풀들이 종아리까지 자라있다. 오랜만에 물을 만나 두근거리며 냇물로 향했지만, 완전히 흙탕물이였다. 몽골에서 맑은 물을 보기가 참 힘든 것 같다. 흙탕물도 물인지, 날파리나 모기 같은게 자꾸만 날아다녔다. 심지어 물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다.

 

야생 개 인지, 게르에서 키우는 개인지 털이 많이 자라 뒤엉킨 검은 개 한 마리가 주변을 서성거렸다. 위험할 줄 알았는데 우리 주위를 몇 번 돌아다니다 어느샌가 가벼렸다.

이곳엔 파리가 너무 많아 야영하기에 힘들 것 같아 사람들이 상의를 했다. ‘파리여서 괜찮다 이곳에서 야영하자파와 파리인지 무언가에게 자꾸 물린다 이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자파로 나뉘어졌다. 아빠와 유로아저씨가 상의한 끝에 좀더 안락한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물에서 한 참을 떨어진 곳에 야영하기로 했다. 버스에 딱 내려 짐을 내리는데,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타이밍 한 번 끝내준다. 급하게 비옷을 꺼내 입고 남자 대원들은 서둘러서 천막을 쳤다. 그리고 식품 담당팀과 나는 트렁크 뚜껑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날씨가 점점 써늘해졌다. 더운 것을 대비 해 얇은 옷을 입은 탓에 물이 잘 스며들었고 그 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오들오들 떨며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데, 몽골 기사분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두꺼운 담요 같은 겉옷을 건네주셨다. 어찌나 따뜻하던지, 덕분에 감기가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천막을 다 치고 나니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하늘이 우리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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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서 식량을 내리고 저녁준비에 돌입했다. 오늘은 특식이다. 김병장 밥알에 햄을 추가하여 볶음밥과 미소된장국이다. 하은이와 내가 저녁 준비를 돕겠다며 햄을 썰었다. 나보다 2살 어린 하은이가 훨씬 정교하게 햄을 잘 썰었다. 반듯반듯하게 얼마나 잘 써는지...

그에 반에 나는 들쑥날쑥 개성 넘치는 모양이였다. 보다 못한 엄마가 나는 사진을 잘 찍으니 그만 썰으라며 제지했다. , 그래 나는 사진이나 찍을게요.

 

나름 부엌 냄새가 풍기는 곳도 찍고, 저마다 분주히 텐트를 치는 것도 카메라에 담았다.

저 멀리서는 흥이와 승수가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었다. 막내라고 화장실을 맡었는데, 화장실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빼먹지 않고 잘 설치해 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부끄럼 없이 편히 해결할 수 있었다.

 

정인식 선생님과 조세민 선생님, 그리고 임석종 선생님, 마지막으로 정종실 선생님이 텐트치는 것을 항상 도와주셨다. 아빠는 강의내용 준비하느라 바쁘고, 엄마는 항상 사진을 찍거나 식사당번이라 바빠 내가 쳐야하는데 어려우니 도와주셨다. 그래서 어려움 없이 착착 잘 진행되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텐트를 혼자 친다면 너무나 까마득 했을 것이다.

 

완성된 텐트에 캐리어와 배낭들을 넣어놓고 침낭을 찾아 텐트에 펼쳐놓았다. 그래야 나중에 잘 때 좀더 빵빵한 침낭이 되기 때문이다.

짐정리가 어느덧 마무리 됬을 무렵 저녁 준비도 완성이 되어갔다.

따끈한 볶음밥에 향긋한 미소 된장국. 그야말로 일품이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먹는 된장국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 아빠도 된장국이 좋으셨는지, 원샷을 하시고 한 그릇 더 떠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워낙 인기 있었던 된장국이였는지 냄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구름 사이로 번진 달이 점점 밝아왔다. 하루가 또 가는구나. 이제 한국 갈 날이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음속에는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이 달은 집에 가서도 볼 수 있는 똑같은 달일 테지만, 끝없는 초원에서 텐트치며 보는 날은 이 순간 뿐일 것 같다.


달을 고이고이 마음 속에 묻어 별을 바라보며 안개같은 구름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이 장면을 암기했다. 평생 간직해서 내 장면으로 만들어 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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