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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돋이 속에 별들이 숨어 있어요.^^


7월 22일(수) 학습탐사 6일


전날 밤의 별 여운이 아직 맴돌아 하늘은 아직 어수선 한 것 같다. 벌써 불덩이가 떠올라 별은 꽁꽁 숨어버렸는데도 말이다.

 

시리얼과 계란으로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태웠다. 이젠 태우는 냄새로 하루가 시작함을 느낀다.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이젠 물티슈로 수저와 그릇을 닦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지막 우유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마시고 마무리로 물 컵까지 사용한 후 물티슈 한 장으로 설거지를 한다. 세수부터 볼일 처리용까지 모두 휴지나 물티슈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빠가 물티슈 사용 규칙을 정해주셨다. 먼저 얼굴과 얼굴 주변 옷이나 바지 털어주기 신발 한번 닦아주기 로 마무리한다. 정말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아빠 앞에서 물티슈를 뽑을 때 마다 자동 재생이 되어 괜스레 짜증이 났다. 아빠는 과연 규칙을 잘 지킬까 유심히 관찰해보았는데, 아빠는 신발까지 턴 물휴지를 버리지 않고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번에 신발을 털 때 한 번 더 사용하셨다. 아끼긴 하겠지만 너무 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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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강의를 마치고 버스는 출발했다. 덜컹거리는 차량 안에서도 아빠의 강의는 불타올랐다. 노트북으로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뒷자리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흔들거리는 버스에서도 기둥하나에 의지하여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보기도 했다.

버스가 흔들거려 노트북을 머리 위로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역방향으로 맨 앞에 탄 내가 대신 노트북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빠는 훨씬 설명하기 편하고 잘 보인다고 아주 좋다고 하셨다. 나는 무거워 죽겠는데..

 

강의가 끝나고 잠깐 휴식을 취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왠 난데없이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를 향해 왔다. 알고 보니, 이 곳 네메게트 벨리에 우리가 오기 전날 큰 비가 내려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길을 보다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길을 잘 아는 현지인을 부른 것이다. 길이 모두 모래로 뒤덮혀서 버스가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버스가 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걸어가고 버스는 위쪽 길로 이동한다고 했다. 이때까지 별로 오래 걸은 적이 없어서 그냥 몇 십분 걷겠지 생각하며 있었는데 최종 결론은 무시무시했다. 장장 3시간이나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도 거의 점심시간 때여서 결국 점심을 싸들고 간단한 마실 물을 챙겨 걸어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3시간 걸으면 된다는 말이 아빠의 강의시간 중 ‘10분 내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마법과 같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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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그림자를 부엌으로 잡고 급히 메트를 피고 샌드위치 만들 준비를 했다. 급히 칼을 찾는데, 워낙 짐이 많은지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다급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유정연선생님이 멕가이버 칼을 꺼내 주셨다. 생각보다 날카로운 멕가이버 칼 덕분에 식빵을 썰 수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몽골 기사아저씨가 어이, 어이 하며 우리를 부르더니 중간 사이즈 칼을 꺼내주셨다. 버스에 이런 칼이 있다니 깜짝 놀랐다.

 

빨리 출발해야 되기 때문에 식빵을 쓱쓱 대충 썰고 크림치즈를 발라 옆으로 넘겨주면 에너지바와 함께 지퍼백에 담는다. 한 사람당 각각 한 개씩 맞춰 챙겨들고 물과 같이 가방에 넣었다. 그늘이 없어 햇빛이 직방으로 오기 때문에 얼굴이 새하얘지도록 썬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목에 감는 스카프를 얼굴 반 까지 덮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땅은 바싹바싹 말라가고 쟈크 나무는 점점 딱딱해져 갔다. 흙이 온통 주황색을 띄고 있어 온 세상이 붉으스름 해 더욱 덥게만 느껴졌다. 햇빛은 짱짱한데 몇 걸음 써보지 못한 다리는 후들거렸다. 끝이 어디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끝이 있기는 한 것인지도 모른 체 걸음걸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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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포유류를 알기 위해서 공룡까지 배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 네메게트 벨리는 공룡이 많이 서식했던 곳이다. 특히 깃털 공룡인 자나바자르가 제일 많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직접 뼈를 찾아보고 만져보고 공룡이 살았던 곳을 눈으로 생생히 현장 공부하러 온 것이다. 듬성듬성 쟈크 나무가 퍼져있고 마른 풀들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땅은 갈라져 있기도 하고 진흙이 굳어 점점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돌이나 뼈 조각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가면서도 한 두명씩 저 멀리 떨어져 갔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으로 공룡뼈를 찾는 것 같았다.

그 때 저 멀리 하얀 동그란 무언가 덩어리가 보였다. 혹시나 해서 얼른 뛰어가 보았다.

동그랗고 구멍도 있는 것이 얼핏 짐승의 두개골 같아 보였다.

우와! 뼈 찾았다!”

엄마부터 주변 사람들이 뼈를 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다.

어머, 정말이네. 이거 공룡뼈 아냐?”

엄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추측을 했다. 왠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고, 나는 팔랑귀였다.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빠에게 달려갔다. 앞뒤 짜르고 무턱대고 뼈를 건냈다.

아빠 이거 제가 찾았어요

설마 공룡뼈겟어? 근데 너무 두근거리고 이렇게 쉽게 찾아도 되나 싶었다.

뼈를 본 아빠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에헤이, 하하

아빠는 다른 말 보다 일단 웃었다. 내 육감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공룡뼈는 아닌 듯 했다.

자 모여보세요!”

아빠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 ! 아니면 그냥 아니라고 나한테만 그냥 얘기해주세요...

이걸 발견했는데, 헷갈려 하실까봐 비교할게요. 이건 지금 뼈는 뼈가 맞는데, 암석화가 전혀 되보이지 않고 딱딱하지도 않아요. 공룡 뼈는 시간이 오래지나 지금쯤 암석화가 되어 돌처럼 딱딱해져 있어요. 아마 이것은 최근의 뼈입니다.”

 

그렇구나. 공룡뼈라고 단단히 착각하면서 냅다 뛰어왔는데 내가 찾은 것은 최근 뼈, 즉 말이 될수 도 있고 양, 소 가 될 수도 있다. 얼굴이 빨개졌다.

너가 발견했니? 어디서 발견했니? 처음부터 발견한 척 다시 해줘

맙소사. EBS 촬영팀이 와서 내가 발견한 것이 공룡뼈가 아니라는 것을 찍으려는지 연출을 부탁하셨다. 전국에 내 착각이 방영된다니.

다시 아까 발견 했던 자리로 돌아가 뼈를 내려놓고 다섯 걸음 물러났다. 카메라가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처음 본 것처럼, 좀 더 과한 리액션으로 뼈를 찾았다.

, ? 저거, 저거 뼈 아냐? 이야! 내가 공룡뼈를 찾았다!”

그때 아빠가 등장해 부연 설명으로 다시 한번 공룡뼈가 아닌 이유를 설명하셨다.

이로써 민망함은 리플레이 되었고 한층 더 부끄러워졌다. 다음부터 찾으면 먼저 다른 선생님들한테 1차적으로 검사받고 아빠한테 보여줘야겠다.

 

조세민 선생님은 이미 공룡뼈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들었다. 정말 빠르다. 공룡뼈를 보니 새끼손가락 보다 조금 긴 길이에 구멍이 살짝 나 있고 결도 나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처럼 암석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공룡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공룡뼈가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했다.

 

왠지 한 층 풀이 죽은 체 다시 땡볕을 걸어갔다. 중간 중간 갈라진 흙에서 붉은 상추잎 같은 이파리 한 장이 나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햇볕이 쨍쨍하고 땅이 말라가는 이 환경에서 풀이 나온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고비라고 꼭 못 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계가 있어도 저마다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스카프를 코까지 덮었더니 입김, 콧김으로 너무 더웠다. 게다가 콧대도 낮아서 코에까지 스카프를 올려 걸쳐도 5초 후 스르륵 내려갔다. 왠지 처량했다. 콧대 높은 사람들은 스카프가 코에까지 딱 붙어있는데 말이다.

 

대략 한 두시간 걸었을까? 사람들 중 몇몇 사람들은 오래된 뼛조각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걸어가다 흰 돌만 나오면 곧장 달려가서 눈으로 확인했다. 혹시나 해서...

네메게트의 산맥들이 보이고 듬성듬성 큰 암석 언덕 같은 것이 보였다. 협곡처럼 언덕 사이 길이 있는 곳도 있고 구름 한 점 없는 탁 트인 넓은 공간. 최적의 장소였다.

다만, 구름 한 점 없어 그늘조차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 해결이 되질 않았다. 머릿속엔 얼음 동동 띄운 냉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아니, 냉커피까지 바라지도 않고 그냥 시원한, 목이 동상 걸릴 것 같은 차가운 물이 간절했다. 점심으로 받는 가방 속에 있는 초코에너지바라도 먹으면 기운이 회복될까 꺼내어 먹었다. 살짝 녹은 초코칩과 찐득한 얇은 꿀이 묻어있는 씨리얼 과자. 한 입 베어 물면 푹신푹신 이빨이 들어가 치즈가 늘어나듯 씨리얼 과자가 쭉쭉 뽑아졌다. 환상의 맛이였다. 사막의 오아시스, 사막의 비타민이였다.

입안에선 초코향기가 풍겼다. 덕분에 더욱 갈증이 났다. 맛있었던 만큼 갈증이 온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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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다 그늘이 있는 네메게트의 거대한 이암 언덕 산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돌을 만지며 툭툭 쳤는데 가루가 떨어졌다. 돌로 긁어보니 마치 칠판처럼 써졌다.

이암은 진흙이 굳어서 만들어진 건데, 그럼 이것도 진흙이 굳어서 된 것인가?

오랜만에 만난 그늘이 반가워, 시간도 그렇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면 딱 일듯했다. 언제쯤 도착하는 지도 모르고 이쯤에서 허기를 보충했으면 했는데, 아빠와 EBS팀은 이곳 말고 조금 더 걸어가면 좋은 곳이 나온다고 서두르자고 했다. 왠지 실망한 상태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제는 걷기가 싫어졌다. 3시간이면 된다더니, 벌써 3시간은 넘긴 것 같은데 거짓말.

 

햇볕은 점점 더 따가워졌다. 목도 마른데, 미적지근한 물로 갈증을 해소하려니 마셔도 마셔도 마신 것 같지 않다. 에너지바를 먹은 탓에 입도 점점 텁텁해져 갔다. 신경도 점점 예민해져 갔다. 경치 하나는 정말 예술인데, 예술인데..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철흥이 오빠가 청록색이 연하게 띄는, 어찌보면 에메랄드 빛깔인 돌덩이를 어디서 주워왔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색이 참 고았다. 왠지 예민했던 기분이 사르르 녹았다. 파이팅 하며 다시 뚜벅뚜벅 걸어 나아갔다. 처음엔 사람들이 속도가 비슷비슷했는데 점점 멀리 퍼지며 걸어가게 됐다. 저 멀리 저 앞에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체력이 대단하다.

 

이때까진 옆쪽에 산처럼 큰 암석 언덕들이 서 있었는데, 어떤 길로 빠져 들어간 후 부턴 그냥 평지에 쟈크와 마른 풀들만 있었다. 이렇게 넓게 더 보이니 걷기가 더 무서워졌다. 저 멀리 지평선이 끝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일단 지평선 넘어 까지 가는 것인데, 거리도 상당하고 계속 눈앞에 보이니 힘이 쭉쭉 빠졌다. 마치 전자렌지 55초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 듯이 말이다.

 

걸어가도, 뛰어가도 지평선에 보이는 곳이 커지지 않았다. 실제 거리는 얼마나 될까? 지금 시간은 얼마나 흘렀고 몇시일까?

몇몇 사람들은 언덕 아래 그늘에 쉬고 있었다.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였다. 하지만 그 곳까지 가는 거리나, 사람들이 넘어간 지평선 거리나 똑같았다. 내적갈등이 심각해졌다.

귀찮음을 참고 달콤한 휴식이냐, 고통을 참으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느냐.

저 곳에 가면 점심 먹나보다

엄마가 한마디 툭 던지셨다. 점심유혹에 넘어갔다. 결국 쉬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설상가상으로 화장실도 보고 싶었다. 옛말에 여자는 꽃 따러 다녀 올게요하며 화장실을 갔다는데, 이곳에 꽃은 무슨. 싱싱한 풀조차 없다. 이 넓은 허허벌판에 사람들은 여러 각도에서 불쑥불쑥 오고 있는데 택도 없다.

 

앞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산맥 뒤로 가더니 없어졌다. 왠지 저곳이 최종 장소일 것 같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체력이 방전되어 바닥도 아닌 지하로 파고든다.

조금 앞서 가시던 이경 선생님과 문순표 선생님이 검정색, 파란색 스카프를 둘러 메시고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며 하시고 계셨다. 이경 선생님과 문순표 선생님은 자매보다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학창시절 친구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사회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이셨다. 노래를 부르며 가는 모습이 마치 맑은 어린아이처럼,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노래를 들으며 가다보니 어느새 산맥 아래 까지 왔다. 산맥 코너를 딱 돌아가니 차카운 그늘 아래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거짓말 한 스푼 더해 말하자면 정말 눈물 날 뻔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사암 언덕 두 개가 가깝게 붙어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전쟁 같던 시간은 이제 끝난 건가 생각하며 버스 위치를 여쭈어보았다.

 

버스는 조금만 걸어가면 있다고 한다. 이제 걷는 것은 끝이구나 안심하며 푹푹 온기가 가득한 지퍼백을 열어 빵을 꺼내 먹었다. 솔직히 빵은 건조한 탓에 뻑뻑하고 크림치즈는 무슨 맛인지도 몰랐지만 그런 것을 따져 먹지 않았다. 빵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 해야 했다. 게다가 삶은 계란까지 있는데 몽골 사막에서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아닌가.

식사를 마치고 EBS팀은 또 다른 촬영을 하러 어딘가로 바삐 움직였다.

 

그동안 우리는 자기 소개할 시간이 따로 없었기에 이 시간에 자기소개 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뒤 쪽에 있는 꽤 높게 솟은 돌 언덕을 올라갔다. 체력이 방전돼 가지말까 고민하다 후회할 것 같아 무거운 엉덩이를 번쩍 들어 올려 일어섰다.

 

올라가는 길에 모래가 쌓여 있어 올라가는데 10배는 더 힘들었다. 몇 일 전 갔던 홍그리 엘스 모래언덕이 생각날 정도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언덕에 도착했다. 가파른 돌을 타고 올라가야 되는데, 고소공포증이 있어 내려올 때 못 내려 올까봐 포기하고 돌아서야했다. 내가 죽기 전 해야 할 일(버킷리스트)을 쓰게 된다면 이놈의 고소공포증을 없애는 것을 1순위로 작성해야겠다.

 

사람들이 모두 내려오고 이제 버스로 돌아갈 시간이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니 많이 안 걷겠지 생각했다. 이때까진 몰랐다. 거대한 재앙이 들이 닥칠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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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이와 흥이와 만나 같이 걸어갔다. 뒤처지면 걷는 것이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번엔 선두로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앞에 어른 몇 분이 걸어가고 계셔 그냥 뒤 따라 갔다. 뒤에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라고 말씀도 해주셔 당연히 맞는 길이라 생각하고 직진했다. 처음 이곳에 오던 길과 같았다. 하은이와 흥이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오다보니 대략 10분은 지난 것 같았다.

이 근처에 버스가 있다는데 아직 안보이네?”

곧 보이겠지?”

앞 뒤로 사람들이 많이 있어 잘못된 길은 아닌 것 같았지만 왠지 불안했다.

한 참을 걸어가다 이제 사람들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위에 우리 대원팀들이 몇몇 있어 안심하고 있었다.

 

하은이와 흥이랑 걸어가면서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를 했다.

지금 너무 목마르다. 냉커피, 냉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

나는, 나는 아이스크림

나도나도!”

냉커피, 아이스크림, 떡볶이, 와플, 빙수부터 김치찌개, 부대찌개 등등 먹고 싶은 음식은 한 두 가지가 아니였다. 음식 얘기로 물들어갈쯤 낙타가 보였다. 낙타를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은 처음이였다. 큰 혹이 나있고 긴 속눈썹을 가진 똘망똘망한 눈과 귀엽게 다문 입. 동물원에서나 봤지, 실제로 살고 있는 낙타는 처음이였다.

낙타를 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박재이 선생님과 조성연 선생님과 다른 대원들도 계셨다.

그래, 이 길로 쭉 가다보면 나오겠지.

흥이와 하은이와 음식얘기부터 음식 끝말잇기, 영어 첫말잇기 까지 온갖 말로 하는 놀이는 다 해봤다.

, 너무 덥다. 버스가 증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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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타들어가 정말 버스가 증발해 버렸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점점 사람들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마실 물도 점심 먹으며 다 마셨고, 이놈의 가방은 무겁게만 느껴졌다.

피부는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쟈크나무가 될까 두려웠다.

3시간만 걸으면 된다더니, 다 거짓말쟁이였다. 사막에선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더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봐도 봐도 똑같은 사막의 풍경. 몇일 전 보던 파릇한 초원은 온데 간데 없고 입술이 쩍쩍 말라 갈라진다. 배고픔조차 기억에서 지워졌고 반쯤 걷어 올린 소매에 손목까지 까맣게 탄 내 손을 보고 있자니 자나바자르가 왠지 미워진다.

시계가 없어 시간 감각은 잃어버렸지만 내 체력상 아마 5시간은 넘게 걸은 느낌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어른들마저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처음 와본 곳이지만, 그래도 마음 상 어른을 믿고 따르는 것이 제일 안전하기 때문이다.

후라이팬 위를 걷고 또 걷다 이젠 아예 처음 출발한 장소로 와버렸다. ?

여기, 아까 출발했던 곳 아냐?”

버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니 출발장소까지 올 필요는 없는데, 버스가 어디로 간 거지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설마 조난 당한 건 아니겠지? 물도 없고 빵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큰일 났다. 별 생각이 다 났다. 그냥 자나바자르가 환생하여 짠 하고 나타나서 깃털을 휘날리며 자나바자르를 타고 버스를 찾으러 가는 생각.

 

위로 한 번 올라가서 보자

김종광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모두 언덕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모래언덕이여서 발이 푹푹 들어갔다.

, 저 멀리 버스가 보인다!”

드디어! 버스가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쁜 맘에 모래를 튀기며 전속력으로 올라왔다. 올라와보니 정상인지, 울퉁불퉁 하던 땅이 아닌 흙 평지가 보였다.

 

하은이와 흥이랑 나는 함성을 지르며 뛰어갔다. 문제는 뛰어가도 도착할 거리가 아니였다. 어마무시하게 멀리 떨어진 버스에 쉽게 도착할 거리가 아니였던 것이다.

우리는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최신곡 노래 5곡 정도를 생목으로 부르면서 걸어가고 뛰어갔다. 자세히 버스를 들여 다 보니, 버스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들거리는 다리로 버스로 전력질주 했다. 버스 안에는 조성연 선생님이 계셨다.

, 살았다. 말할 힘도 없다. 나중에서야 들었는데 3시간 걸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7시간을 걸었다고 한다. 정말 상상도 못 할 숫자이다. 7시간을 걷는다니, 그럼 몇 km를 걸은 거지...

 

흥이와 하은이와 나는 일단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도, 물이 위속에 들어가기 전 증발되는지 갈증해소가 되질 않았다.

조난 당했나 생각했을 정도로 무서웠던 긴장감이 풀리자 이제야 사르르 피곤이 몰아쳤다.

 

박형분 선생님, 박경숙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 몇 분이 이미 도착해 계셨다.

선생님은 언제 도착하셨어요?”

버스에 계시던 조성연 선생님께 여쭈었다.

나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너네들 오는 거 보고 일부러 힘들까봐 버스로 데려다 주러 가달라고 부탁한 거야

조성연 선생님의 말씀 한 글자 한글자 마다 에너지가 넘쳐 흘르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는 길을 잘 못 들어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이였다. 처음부터 위로 올라오던가, 낙타가 보였을 때 바로 올라 왔었으면 버스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계속 직진해서 결국 처음 출발 장소까지 걸어 와 한번 더 돌아 걸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지름길 놔두고 시계가 돌아가듯 빙빙 멀리 돌아 유턴해 온 것이였다.

너무나 허탈했다. 땡볕에 다리 화상 입으신 분도 계시고 얼굴이 시뻘게 달아 올라 드러누운 분도 계셨다.

 

점점 오후가 깊어졌다. 사람들도 속속히 도착해왔다. 버스 앞에 버스 의자 바닥과 메트를 꺼내 누웠다. 수분보충을 위해 오이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그늘에 쉬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짱짱한 햇볕에 그늘 없이 물도 없이 7시간을 걸었어도 안전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떄문이다.

 

날씨도 따뜻하고 하늘도 맑은 것이 별을 보기 딱 좋은 날이다. 결국 아빠와 EBS팀을 설득 끝에 이곳에서 숙영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원하는 사람은 비박까지 한다고 한다.

이때까지 날도 춥고 별도 그리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텐트에서 잠들었는데, 비박이야 말로 정말 별을 즐기는 방법이라 내겐 꿀 같은 소식이였다. 비박, 폭신한 침낭 속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덮어 함께 꿈을 꾼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입이 아플 정도다.

 

9살 때 서호주에 가서 쏟아지는 별을 본 기억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앞을 바라봐도 별투성, 멍하니 바라보다 별똥별이 뚝뚝 떨어져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까만 도화지에 야광 물감을 떨어뜨린 것 마냥, 과장하자면 검은 도화지가 보이질 않을 정도로 빼꼭했던 점들. 마치 물감을 엎은 것 같은 은하수.

 

몽골은 여름이고 해가 늦게 떨어져 9살때 만큼은 아니였지만 흔히 우리가 시골 산골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별들의 2배 정도였다.

오히려 이렇게 보일 듯 말 듯 애간장 타듯이 보여주는 점들도 좋다. 여백에 내 상상을 그려넣을 수 있을 것 같아 더 자유분방한 기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소름끼칠 정도로 싫어하는 벌레와 미칠 정도로 열광하는 별을 덮고 누워있는데 흔히 표현하는 힐링이란 말이 생각났다. 평소 잠자리에 들기 전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 본 적이 별로 없다. 답답한 천장아래 폐쇄된 공기들, 일상의 짜잘한 걱정들로 내 몸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 생에 첫 비박은 짜릿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가끔은 이렇게 자유를 느끼며 일상탈출해도 된다는 교훈도 덤으로 주었다.

  

하루하루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설렌다. 같은 몽골 다른 몽골을 보는 것도, 처음 밟아보는 땅도 바라보는 구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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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그트 공룡화석 발굴지역. 초생달 아래서 공룡의 역사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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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그트 공룡화석 벨리에서 첫 비박 하던 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