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차 박자세 해외학습탐사 몽골 2, 201582

 

201582일 일지

 

학습탐사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몽골을 떠나는 날이니 탐사는 오늘로 끝이다. 여섯시가 넘어 일어났건만 아직 조용하다. 식사당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늦게 출발하려는 것 같다. 밤새 바람이 불어재끼더니 아침이 되어도 잠자지 않는다. 김현미 이사는 오늘 날이 맑을 거라던데라고 했지만 어떻게 되려는지 걱정스럽다. 얕은 산등성이 위로 붉은 기운이 도는 걸 보니 해가 아래서 올라오는 중인가보다. 바람이 너무 불어 텐트를 바람막이 삼아 앉아 글을 쓰다보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식사 중인 게 분명하다. 궁금해서 도와주러 가보니 7시가 넘었으나 아직 멀었다. 누룽지도 국도 금방 올려놓아 시간이 걸린다 해서 작은 오름에 올라갔다.

 

오름으로 가는 길은 보라색 들국화가 지천으로 널려 가을이 온 듯하다. 낮은 등성이지만 사방이 탁 트여 초원이 펼쳐져있다. 산 위에는 드문드문하게 나무들이 서있어 우리나라의 한가로운 시골을 연상시킨다. 이 지역은 다리강가의 스텝지역과는 기후가 다르다. 스텝지역보다 비도 많고 바람도 세며 추운 곳이다. 한국은 지금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데 이곳은 초겨울 날씨라 오리털잠바를 입고도 추위를 견디기 힘드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춥기는 해도 오르내리느라 땀이 나서 견딜만하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들국화와 함께 솜털이 달린 에델바이스가 많이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설악산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귀한 꽃이건만 이곳에선 눈 호강을 실컷 하였다. 책꽂이로 쓰려고 조금 꺾었다. 꽃에게는 미안하지만 말려서 코팅을 하면 책꽂이로 훌륭해 선물로 주면 다들 좋아했다. 재작년 탐사 때 말려서 나누어 주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산등성이에서 거의 다 내려오니 식사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누룽지, 미역국, 밑반찬을 대강 챙겨와 텐트 안에서 먹었다. 바람이 매우 세차게 불어서였다.

 

식사 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텐트를 걷고 마무리를 하였다. 익숙한 솜씨로 척척 해내어 대원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대단하다고 말이다. 아침강의가 855분에 시작되었다.

오늘은 페르시아역사와 로마역사를 집중적으로 외우라고 박사님이 말했다.


화신가문은 울루스파와 움마파가 있다. 알탄울루스파는 징기스칸제국을, 움마파는 이슬람제국을 세웠다.

울루스파는 유목민족으로 국민국가를 세웠다.

옛날에는 국가라는 것이 없어 세계사는 가족사라 말할 수 있다.

움마파는 하심가문과 이암가문이 있다.

하심가문의 형성은 이러하다.

처음에 무하마드와 하디지가 결혼해서 딸 파티마를 낳는다.

파티마는 무하마드의 사촌동생인 알리와 결혼하고 알리는 순수주의자들을 모아 1세가 된다. 2세는 핫산, 3세는 후세인으로 이어진다. 그 후로 4세부터 6대로 끝이 났다. 그러나 8세부터 12세까지는 잠적해 있었다.

632년 무하마드가 사망한다. 사망 후에 움마이야 가문이 이루어진다.

1대 아부바크르, 2대 우마르, 3대 우스만, 4대 알리로 632년부터 661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를 정통 칼리프시대, 혹은 움마시대라고 부른다.

3대 우스만은 움마이야 왕조(651750)를 세우고 다마스커스에서 선언한다.

움마이야 왕조가 망하자 아파스 왕조(7501258)가 생긴다.

움마이야 왕조 후예의 일부는 이베리아반도(현재 스페인)로 건너가 후 움마이야 왕조를 세운다.

알리의 분파를 시아파라 한다.

움마이야 왕조가 따른 것은 순나(Sunnas)이다. 순나는 관례와 법례를 따르는 관습법이며 순나를 따르는 파를 수니파라고 한다.

투르크 민족은 이슬람화 되어 수니파를 따르게 된다.

 

910분에 출발해서 955분에 흐허누르에 도착했다. 흐허누르 호수로 오는 도중에 노란꽃밭을 이룬 초원과 산에는 상록수림이 빽빽하게 서있어 이제까지의 경치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흐허누르에 가까워지자 빨강색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눈의 피로를 싹 가시게 만들었다. 호수에 내리니 바람이 차다. 대원들은 겨울옷차림으로 감싸고 내렸다.

 

호수주변은 통나무로 지은 펜션이 나란히 섰고 산 쪽으로는 별장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몽골인데도 알프스 같은 정취를 느끼게 한다. 우리가 보던 사막이나 초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숲속 곳곳에 텐트도 보이고 자가용도 대 놓은 것을 보아 유명한 관광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흐허노루는 징기스칸이 어릴 적 살았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징기스칸은 이곳에서 5년간 두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낸 곳이다. 힘들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두 번째 이곳에 오면서 점점 부각되기 시작했다. 숲속에 들어서니 넓은 잔디밭을 조성해 역대 칸들의 얼굴을 나무로 조각해 놓은 것이 36개나 된다. 징기스칸의 직계 우구데이로부터 릭덴칸까지이다. 중요한 칸을 차례로 들면 구육뭉케쿠빌라이성종테무루(몽골에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옴)토곤 테무루(기황후 남편으로 제주도로 원나라 수도를 옮기자고 한 적이 있다)아유시리다르(기황후 아들)만도룬칸바드문케칸다얀칸(징기스칸 직계로 몽골족의 중흥조)릭덴칸(청의 홍타이지와 평생의 라이벌로 청해도에서 최후를 마침. 아들이 옥쇄를 들고 홍타이지에게 감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이라 함)이다. 앞에는 각각 설명 판이 붙은 기둥이 있다. 나무장승이 꼭 우리나라의 장승을 닮았다. 한가운데는 징기스칸의 얼굴을 새긴 큰 석비가 있고 양옆에는 목에 구슬목거리를 세 겹이나 두른 여인상이 있다. 아마 둘 다 왕비가 아닌가 싶다. 흐허노르는 징기스칸이 칸의 칭호를 받은 곳이라 굉장히 의미가 있는 곳이다. 몽골에서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호수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징기스칸 태무진이 1206년 대칸에 올랐을 때도 돌론노루라는 호수에서 거행했다. 돌론노루(원나라 상도(上都))는 이외에도 16915월 몽골이 청나라 강희제에게 조공을 바치겠다고 서약한 곳이기도 하다. 호수주변을 한바퀴 도니 1110분이었다. 다음 코스는 몽골의 이동식 집인 게르 체험이라 이내 출발했다.

 

말목장이 있는 게르가 있는 곳에 내렸다. 1155분이었다. 게르의 문은 주황색으로 들어서니 EBS촬영 팀이 벌써 촬영을 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 치즈와 우유로 만든 먹을거리가 쟁반에 가득 담겨있다. 몽골어로 소우유로 만든 치즈는 바스톡, 소우유로 만든 과자는 아록이라고 한다. 불 피우는 난로는 초흐라고 하며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보통은 말똥이나 소똥 말린 것을 연료로 쓰나 여긴 넉넉한 집인지 나무를 땐다. 불 위의 솥에는 몽골인 들이 즐겨 마시는 수태차(우유와 보이차로 만듬)를 올려놓아 누구라도 떠서 마시도록 해놓았다. 게르의 안주인은 수태차를 조금 떠서 밖에 나가 고시래를 한 뒤 부처님 모신 곳에 올리고 나서 마시라고 권했다. 우리와 풍습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자연에서 얻어진 음식물을 자연에게 베푸는 의식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게르 내부는 비교적 깨끗하고 벽에는 카페트로 장식되어 있어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가운데가 동그랗게 뚫려져 있다. 뚫어진 구멍을 중심으로 큰 원형은 8개의 서까래나무로 나누어져 있고 다시 작은 원형으로 되어있다. 작은 원형의 구멍 사이로 연통이 연결되어 있어 연기가 이리로 나가는가 보다. 원형구멍은 열거나 닫을 수 있어 통풍이 되어 편리하게 되어있다. 그 밑으로 둥글게 깍은 가는 서까래가 둥근 지붕을 덮고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2개다. 서까래는 대충 100여개 정도다. 서까래는 무늬를 넣은 칠을 해놓아 보기 좋았다.

 

집안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들어오는 오른쪽은 남자가 쓰는 공간이다. 먼저 작은 싱크대, 작은 냉장고가 놓여있다. 전기는 지붕에 올려둔 태양유리판의 태양열을 이용해 쓰는 것 같다. 그 다음은 옷장, 침대, 뒤주 비슷한 농의 순이다. 침대에는 이불이 깔려있고 침대벽면은 카페트로 장식되어 있다. 침대는 나무로 만들었고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다. 옷장과 뒤주 농, 탁자도 같은 주황색이며 우리나라 단청문양 비슷한 무늬를 그려서 장식해놓았다. 장식용으로 말 그림을 넣어 짠 카페트는 뒤주 농 위에 걸려있고 앞에 작은 탁자도 놓여있다.

 

왼쪽은 여자가 주로 쓰는 공간이다. 먼저 5단 높이로 된 칸에 각종 조리기구가 걸려있고 그 옆의 찬장에는 각종그릇이 들어있다. 그 다음에 침대, 뒤주 농이 있다. 농 위에는 가족사진이 든 액자가 두 개, 마두금을 작게 만든 모형, 불교문양을 모아 액자로 만든 것을 모셔놓았다. 그 앞에 우유로 만든 과자를 올려놓았고 왼쪽에는 포도주, 오른쪽에는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과자와 사탕을 넣어 올려놓았다. 제일 앞에는 동으로 만든 향로, 촛대, 물그릇 등이 놓여있다. 농 옆으로는 벽에 밧줄, 쇠로 만든 마구, 솔, 털로 만든 먼지 털이 등이 걸려있다. 지붕서까래도 채색이 되어있어 아름다운데 서까래 사이로 조각을 한 나무칼이 네 개 끼워져 있다. 천정의 작은 원형구멍에 끈을 달아 동물의 기다란 털들을 달아놓았고 녹색주머니도 하나 걸려있는데 뭐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다.

 

주인은 전통말달리기인 나담대회에서 10살 난 아들이 일등을 했다고 자랑이 늘어졌다. 상장과 함께 상금을 받은 기념사진도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삼사학년 정도로 보이는 또록또록한 눈망울을 한 다부진 소년이다. 손님이 온다고 말 타는 복장을 갈아입고 부츠까지 신고 있다. EBS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달고 초원을 달리게 하니 신나게 달렸다. 모두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내며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게르 바깥 풍경은 사방이 훤히 트인 곳으로 멀리 높고 낮은 산들이 빙 둘러서 있다. 산에는 나무가 빽빽하고 산중턱부터는 풀들이 자라고 있어 가축이 살기에 최적인 듯하다. 가축을 가두는 울타리는 세로로 일정한 간격을 두어 기둥을 치고, 가는 통나무를 가로로 두룬 형태다. 서부활극에서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목장스타일이다. , 염소, , 소 등 등은 사방으로 흩어져 풀을 뜯고 있어 목장 주변에는 말 몇 마리만 보일 뿐이다. 울타리 주변은 가축 똥이 겹겹이 쌓여있어 밟으면 푹신푹신한 느낌이 든다. 여러 가축들의 똥이 쌓여 폭신한 카페트를 밟는 느낌이 전해지는가 보다. 어제 비로 푹 젖은 은박지 깔개를 울타리에 널었다. 나중에 걷으러 가보니 바람에 날려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 울타리 안쪽은 더 많은 똥들이  깔려 있었으나 냄새는 전연 나지 않았다. 청정한 초원의 풀만 먹고 자라서 그런지 정말로 신기했다. 멀리 풀을 먹으러 갔던 소떼와 말떼가 보이자 목장에서 키우는 검둥개 네 마리가 반갑게 짖으며 그쪽을 향해 달린다. 가축몰이용 개인 듯하다. 검둥개는 어찌나 순한지 곁에 가서 만져도 눈만 껌벅이며 가만히 있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제몫을 톡톡히 하는 개들인 것 같았다. 달리던 개들이 도로 돌아온다. 별일이 없었는가 보다.

 

아침엔 흐리더니 해가 나와 따갑다. 몽골의 태양은 공해가 없어 그런지 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실 뿐만 아니라 살에 땋으면 따갑게 느껴진다. 비타민 D는 먹지 않아도 저절로 생기게 하는 볕이다. 그늘에 깔개를 깔고 앉았다. 햇살을 받으니 초원에 피어 있는 꽃들이 하늘거리며 눈앞에 보인다. 봄에 피는 보라색 할미꽃이 보여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 외에 이름 모르는 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야생화 꽃밭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어제는 비에 젖어 눅눅한 운동화를 맨발에 신고 다녔으나 오늘은 햇볕에 바짝 말려 신고 있으니 상쾌하다. 신창까지 보송보송해진 신을.

 

몽골 학습탐사를 와서 역사공부를 하게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를 잘 알려면 세계역사를 잘 알아야 우리역사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학교 때 단편적인 역사공부만 한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역사를 통 털어 손바닥 위에 놓고 훤히 꿸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전체를 모르면 바다의 물거품 하나만 놓고 바다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번 학습탐사에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박사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같이 동고동락한 대원들도 공부할 수 있도록 자극제 역할을 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몽골은 저장음식이 많다. 말린 치즈나 버터로 만든 말린 빵, 또는 과자, 말린 육포 등 고칼로리 음식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량식품을 나르는 말의 수레가 1만대 이상이라니 엄청난 숫자다. 이때 나르기 편하고 먹기 좋은 저장식품은 고칼로리에다 무게도 가벼워 체력을 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나르기도 편했을 게다. 이런 음식들은 징기스칸의 대륙정벌에도 한 몫을 했으리라. 예를 들면 한 마리의 소를 육포로 떠서 가루로 만들면 말려 둔 소 방광 속에 다 들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편리한가.


점심에는 양고기요리의 하나인 버덕을 먹을 예정이다. 버덕은 양을 통째로 굽는 요리로 내장을 꺼내고 속에는 불에 달군 돌을 넣고 바비큐처럼 불 위에 올려 두 시간 정도 천천히 구워서 만든다. 12시부터 시작해 지금 오후 1시가 넘었으니 2시가 넘어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BS 촬영팀이 양을 사고 요리는 몽골 운전기사 분들이  한다. 그동안 초원에 앉아 명상에 잠겨 나를 돌아보아야겠다. 두 시간정도 걸린다더니 두시가 넘어도 감감소식이다. 산허리에는 아까는 안 보이더니 양떼 한 무리가 몰려있다. 적어도 천 마리는 넘을 듯싶다. 정확히 오후 355분에 버덕이 완성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버덕은 허르헉하고는 좀 달랐다. 오래 구워서 그런지 깊은 맛이 있다고 할까. 너무 배가 고파서 급히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조금만 먹었다. 맛은 있으나 기름기가 많아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게르에서 네 시 40분에 출발했다. 다섯시 반부터 박사님의 버스강의가 시작되었다. 유럽역사에 대한 것이었다. 세계역사 프린트를 보며 찬찬히 설명하였다. 저녁 8시경 테를지(Terelj) 국립공원에서 내렸다. 울란바토르에서 70km 떨어진 곳이다. 크게 만든 징기스칸 동상이 서있고 주변은 초원으로 숙박할 수 있는 게르가 많이 있다. 또한 이곳은 자우모드(Jau Modo)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준가르의 갈단과 청나라 강희제와 싸움을 한 곳이다.

 

저녁 아홉시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는 동안 휴식을 취했다. 건너편 산에 무덤이 밀집해 있는 걸 보니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폐허처럼 보였다. 다시 출발해서 가다보니 강이 보였다. 톨강이라고 한다. 아홉시 반이 넘으니 조금 어두워진다. 톨강을 따라 철로가 이어져 있고 가끔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강을 따라 오다보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번쩍거리는 불빛이 생소하다. 버스 안에서 러시아 전승 탑, 한국 절에서 세웠다는 큰 입불상을 지나 화려한 빌딩숲과 볼거리 먹을거리 입을 거리가 나란히 진열된 곳을 지나니 왼쪽으로 초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른쪽은 시내의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조금 한적한 곳에 도착했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숙영지이다. 11시를 넘긴 시각이다. 울란바토르 부근에서 텐트를 펼쳤다. 12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하고 1250분에 자리에 들었다. 조금 전까지 내일 떠나야 하니까 미리 짐을 싸느라 텐트마다 부산했지만 이젠 조용하다. 근처에 몽골사람들이 사니 행여 올지도 모르니 문단속을 잘하라는 주의가 있었으나 미리 잠들어서 텐트의 지퍼가 열린 줄도 모르고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