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차 몽골탐사는 초등부터 고등학생까지 10 명의 학생도 같이 참여를 했습니다.

박자세 학습탐사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교육의 장임을 이번에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진을 같이 했었던 학생들 중에서 박수미 선생님이 인솔하신 세 명의 고1 학생들의 탐사후기를 올립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잠자는 유전자를 깨울 수 있는' 박자세 학습탐사가 되길 희망해봅니다.

많이 힘들었을텐데도 끝까지 씩씩하게 탐사를 완수하고 이렇게 좋은 글까지 올려준 학생들이 너무 예쁩니다.




< 몽골탐사 2진 후기 1 - 민경윤 >


아침 6시 반 여전히 비가 내린다. 아침식사는 비가 오는 관계로 텐트 안에서 먹기로 한다.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바로 걷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더 쉬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밥을 먹고 짐을 정리한 후 짤막한 아침강의를 듣는다. 강의의 내용은 15~18세기 유럽의 주요 역사적 사건이다.

 15세기의 유럽은 대항해 시대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은 동양을 소개하는 책들이 유럽 대항해 시대의 시발점이 되었다. 16세기는 부패한 카톨릭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17세기 전제 군주와 귀족들에 대항하여 시민 혁명이 있었고, 과학 혁명도 이어진다. 이어서 18세기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산업혁명에 의해서 현재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탄생했다.  


  아침 강의가 끝나고 8시 반 버스에 올랐다. 두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광장 이었다. 굉장 중앙에는 징기스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 동상을 보러 온 것인가 아니면 지나가는 길에 동상이 있기에 잠시 들른 것인가 의아할 때쯤 박물관에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곳은 원래 세첸칸의 여름 별장이었는데 나중에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그 박물관에 몽골 칸들의 초상화를 모아둔 곳이 있었다. 설명을 들으니 이름을 아는 칸들도 꽤 있었다. 다른 전시관에는 종교 관련 물품들이 있었고, 또 다른 전시관은 무기나 갑옷 깃발 등 전쟁 관련 물품들이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청나라의 순치제나 ‘자삭’ 칭호, 투시에트, 세첸칸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이 부분은 거의 알아듣지 못 했다.

 그 후 첫 세첸칸이 만든 절, 군트 가르블랑에 갔다. 그 절 안쪽 구석에는 스님들이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서 주문을 외웠다. 가이드분께 물어보니 티베트어라서 못 알아듣는다고 하셨다. 절 안에는 정면의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그림들이 걸려 있고 가운데는 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어린 스님들이 앉아 있었다.

 

절에서 티베트 불교를 복습했다. 티벳 불교는 알탄칸 때에 몽골로 유입되었다. 또한 이때 달라이라마라는 말이 생기는데, 알탄칸이 스님 소남가초에게 준 호칭으로 바다같은 스승이라는 의미이다. 티벳 불교에서 뼈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죽음을 해탈로 가는 단계라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다음 생으로 가기 위한 ‘중유’의 상태가 된다. 이때 정보를 담고 있는 미세의식과 물질의 형태인 풍이 만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것이 환신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해탈하지 못하고 짐승으로 태어나는 ‘아귀축생’을 하거나 ‘육도윤회’를 반복한다. 수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중유 상태에서 광명이 투사 되었을 때 그 빛과 하나가 되어 우주 자체가 된다. 이것이 깨달음의 상태다. 고승 쫑카파는 살아서 중유의 몸을 만드는 것이 수행의 목표였다.

이번 탐사중 인상 깊었던 강의는 불교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데로 정리하면 이렇다.  


 삼라만상은 내부의 원인인 인과 바깥의 조건인 연이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인연소기 혹은 시절인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연(연기)은 결국 공이다. 이런 사실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 반야, 즉 지혜다. 우리는 모든 인연의 집합일 뿐 고정불변의 ‘나’라는 것은 없다. 인간도 세포들의 결합일 뿐이다. 불교용어로 모든 것은 마야(허깨비)이다. 이것에 매이다 보니 카르마()가 생긴다. 업을 없애는 행위가 요가이다. 요가는 유식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는 현장법사가 전파해서 의상대사가 완성했다. 요가를 통해서 니르바나 즉 해탈에 이른다. 최고의 유가라 불리는 무상유가의 대가인 쫑카파는 수행의 방식으로 생기차제와 구경차제를 제시했다. 생기차제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한 멘탈 훈련인데 관상법과 성취법이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반복해 떠올려서 스스로 그것이 되는 것이다. 구경차제에 이르는 것은 죽어야 가능한데 쫑카파는 입적의 순간 16살 소년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이 되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잠시 달리다가 주유소에 들렀다. 기름을 넣고 출발하나 싶었는데 정비까지 마치고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서야 차는 출발했다. 잠깐 잠도 자고 쉬었는데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이번 강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이다. 처음 다섯 개의 나라인 아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리디아를 시작으로 고대 페르시아 왕국인 아키메네스조가 세워지고 이를 알렉산더 제국이 점령했다. 알렉산더가 제국이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로 나뉘고 박트리아와 쿠산이 이어진다. 그 후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이슬람 제국이 세워진다. 이슬람제국의 왕조는 정통칼리프-우마이야-압바스의 순서다. 그 후 몽골인들의 일한국과 티무르제국, 오스만 투르크가 세워졌다.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은 이스라엘, 사우디, 이라크, 터키, 이집트로 나누어지고 같은 시기에 페르시아제국은 이란의 사파비왕조-카자르왕조-팔레비왕조로 1970년대 까지 이어진다. 세부 내용들 까지 외우려니 상당히 힘들겠다 싶었다.

 

벌써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외운 듯 하고 하나둘 시험에 통과하기도 했다. 나도 얼른 통과해서 편하게 양고기 잔치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외웠지만  7시 야영지에 도착했다. 일단은 더 급한 텐트를 치고 짐을 푼 다음, 텐트에 박혀서 세계사 도표에 코를 박고 몇 번을 더 중얼거렸다. 그렇게 고생을 한 끝에 시험에 통과했다. 그것도 이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앞서 통과한 사람들은 여유있게 모닥불을 쪼이며 요리를 구경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식사뿐이다. 상을 차리고 다른 음식들을 준비하고 나니 양고기가 금세 완성되었다. 허르헉이라 부르는 찜요리인데 구운돌을 고기에 얹어 요리한다. 검고 중근돌인데 기름이 묻어 있었지만 몇 분이라도 손난로의 역할을 해 주어 사람들이 기름묻은 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박사님이 오늘은 술을 허락 하셔서 어른들은 술을 마셨다. 추워서 텐트에서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텐트보다 모닥불 주변이 더 따뜻했다. 고기는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질겼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 몽골탐사 2진 후기 2- 이한이 >


박자세 해외학습탐사 몽골 일지 2015년 7월 30일  목요일

 

 

새벽과 아침 사이에 두터운 안개가 끼었다. 어제 올랐던 오름이 야영지에서 가까운데도 보이지 않았다.

 

   4 30, 나는 아직 자고 있던 시간에 남자들은 논란의 실링 복드를 등반했다. 나중에 올라갔던 인원

   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추웠다고 했던가. 7 40 거센 풍파에 반쯤 쓰러진 화장실의 보수공사를 했다. 다행

   히 꺼려지는 참사는 없었다. 8 안개 속에서 아침을 먹었다. 채소감자 스프, 빵과 러드가 나왔다. 실링

   드 소감보다는 확실 것이다. 일지에 있다.    906분에서 9 32분까지 공지 정도만 하는 아침 모임인줄

   알았는데 화이트 보드가 있었다. 아침 강의였다.

 

강의 내용

(1)몽골과 제주의 유사성에 대하여: 화산지과 돌하르방

(2)다리강가지역의 화산활동과 지형적 특성에 관해서

(3)신생대 6 사건 복습 : 북대서양 해저 산맥 확장, 인도판과 아시아판의 충돌, 테티스해의 소멸과 지중해 탄생, 안데스산과 티벳 고원의 융기, 호주와 남미로부터 남극대륙의 분리, 파나마해협의 폐쇄로 남미와 북미대륙의 연결

 

마그마 범람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함인지 마그마 범람을 설사에 비유하셨는데 범람하는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묽기까지도 상상이 되는 했다. 실제로 범람을 보진 못했지만 정도의 상상을 끌어내니 탁월한 비유아이었을까. 박사님은 그날도 9 22분에 5분만에 강의를 끝내시겠다는, 대체로 지켜지는, 그렇다고 없으면 서운할 같은, 그런 약속을 하셨다. 강의는 9 32분에 끝났다. 양호하다. 안개는 걷혀있었다.

 

   954, 근처 오름으로 슬슬 출발했다. 오름들의 이름을 몰라 일정을 알려주시는 선생님 어제 올랐던 오름을 '이쪽 오름', 오름의 오름 , 그날 오를 오름을 '저쪽 오름'이라 하셨다. 오름은 보이는 것보다 멀었고 예상한 것보다 가팔랐다. 나는 1045분에 '저쪽 오름' 꼭대기에 도착했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있었고 이내 저쪽오름의 맞은편 오름으로 출발했다. 새로운 오름이다. 오름을 오르는 중간에  김삿갓과 노승의 시짓기 일화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그들의 시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되짚어보니 그들의 내기도 못지 않았다. 내기의 대가로 사람의 앞니를 걸다. 옛날에는 내기의 가로 가볍게는 신체의 일부, 무겁게는 목숨을 주고 받은 것일까. 11 17분에 다시 오름 올랐다. 맞은편 오름에는 타고 싶은 바위들이 있었다. 올라보니 시원하고 좋았다.

 

月白雪白 天地白 (월백설백 천지)

달빛도 희고 눈빛도 희며 천지마저 흰데

山深水深 客愁深 (산심야심객수심)

깊고 깊어 나그네의 근심 또한 깊구나.

 

박사님이 예로 들어주신 부분이다.

 

   1230분에서 1시까지 '맞은편 오름' 봉우리에서 박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마그마와 현무암, 신생대 6 사건을 자세히 복습했다. 강의가 끝난 바위에 앉아 제비와 닮은 작은 새들을 봤다. 조랭이 떡처럼 단순한 생김새, 날개는 끝이 뾰족한 부메랑이나 날렵한 초승달과 닮았다. 어두운 남색을 띄고 는데 작고 빠르고 단순해서 마음에 들었다

  

   새들을 구경한 분이 내려가시길래 나도 슬슬 일어섰다. 맞은편 오름에서 야영지까지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있어서 러시아산 최고급 버스를 기다리려 했다. 하지만 분이 그냥 걸어서 가자시길래 함께 걸었다. 걷기는 나름 좋았다. 풀들이 무릎 정도까지 와서 조금 힘이 같았지만 걷는 자체에 집중이 돼서 미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게 되었. 좋았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2 즈음 야영지에 도착했다. 김치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와서 개별적으로 식사를 했다.

 

   355, 오름에서 러시아산 최고급 버스를 타고 알탄 오보로 출발했다. 20km거리다. 가는 버스에서 443분부터  505분까지 갈단과 준가르제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준가르 제국의 칸인 셍게 갈단은 사람이 아니라 셍게와 갈단이라는 형제의 이름이었다.

 

   5 45분에 우리의 하르방과 같은 몽골의 돌상을 관찰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원래 7개였는데 최근 2 사이 2 밖에 남지 않았다. 돌상들은 생김새가 독특했다. 의자에 앉아있는 옷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신발을 신고 모자를 쓴 채 술잔을 들고 있었다. 내가 아는 돌하르방들보다 개방적이. 이쯤에서 일지의 날짜를 착각했다는 알게 됐다. 나는 내일 써야 일지를 오늘 쓰고 있었던 거. 일지를 총괄하시는 김연옥 선생님께서 원래 내가 써야 일지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죄송했지만 다행스러웠다.

 

   6 20분즈음 알탄오보로 다시 출발했다. 653분부터 711 사이에 몽골 지역 오보신앙의 형성과 전개에 대한 강의가 있었. 오보는 원래는 경계의 이정표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마을 공동체를 결속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몽골해외학습탐사 자료집 396쪽을 살피면 같다. 726분에 알탄 오보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알탄 오보는 실링 복드와 마찬가지로 남자만 들어 있었다. 그래서 EBS감독님들과 박사님만 가셨다. 남은 일행들은 743분부터 몽골 울루스 슈바타르 아이막 다리강가 자힌 하르 운두르에서(몽골의 행정 구역) 버스에 기름을 넣고 장을 보는 동안 화장실 자유시간을 가졌다. 몽골과자들을 미리 사둘 , 면세점에서는 과자들을 찾을 없었다.

 

   850, 버스에 올라 야영지로 출발, 8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풀이 짧고 매우 탄했으며 시야가 사방으로 틔어있었다. 장애물도 없었고 달빛도 환했다. 그래서 그동안 간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으셨던 분들도 이곳에서 우리가 만든 간이 화장실을 쓰시지 않을까 싶었다. 858분에서 1140분사이 저녁식사와 야영 준비 정리를 했다. 그후 1212분까지 별자리와 초기 우주에 관한 천문학 강의를 들었다.

 

하루를 마치고 일지에서 해방되어  드디어 잠자리에 들었다. 꿈에 오름이 나올 같다. 이쪽 오름 혹은 저쪽 오름.



< 몽골탐사 2진 후기 3 - 정여령 >


8월 2일 일지

아침에 눈을 떠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초원이 보였다. 그 사이로 나, 이한이, 민경윤, 박수미 선생님, EBS 카메라 감독님이 만든 화장실이 보였다. 보통의 하루와 같이 오늘 저녁에도 땅을 파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과 함께 시작했다. 7시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가 꽤나 쌀쌀해 텐트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밥을 넘겨야했다. 식사 후 우리는 짐정리를 하고 텐트를 걷었다. 9시부터는 아침강의를 시작했다. 이슬람교를 창건한 하심가문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이였다.


 무하마드와 하디지가 결혼을 해 낳은 딸이 파티마이고 그녀와 결혼한 사람이 알리이다. 또  알 리가 낳은 분들이 하산, 후세인이다. 하심가문은 8대부터 12대까지는 잠적했고 632년부터 1대 아부바크르 2대 우마르 3대 우스만 4대 알리로 661년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통칼리프 시대라 부른다. 또 징키스칸 세계제국을 만들기위한 공동체는 울루스이고 움마는 이슬람제국을 만들기 위해 모인 공동체다. 이땐 정말 박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몰랐다. 그냥 일지를 써야 해서 열심히 메모만 했다.


  우리는 허름한 버스를 타고 호흐 호수로 이동했다. 이동 중 도시를 벗어나 처음으로 전봇대를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있지만 몽골에서는 정말 드문 경험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는 9:55분쯤 호흐 호수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전 매표소에 들려서 뭐 볼게 많나보다 했지만 정말 없었다. 호흐 호수에서는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화려한 시설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텐트도 있었고 통나무로 만든 집과 팬션 그리고 꽃들이 많이 있었다. 산책하는 현지인들이 종종 보였다. 호흐 호수에서도 강의는 이어졌다. 이때 EBS아저씨들이 촬영을 위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하니 집중이 안됬다. 호수 옆 공원에는 31개의 칸의 조각상이 나무로 만들어져있는데 높이가 약 2.5m정도 됬다. 이 호수는 징키스칸이 나와 같은 나이에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며 멀리 떨어져 살다 다시 돌아온 1206년에는 세력을 모아 호수에서 ‘대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물가라 조금 추웠지만 통나무집과 꽃들이 어울어져 멋있었다.


  그 후 우리는 게르를 보러 갔다. 게르 안에서도 강의는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사님이 아니라 버스 기사님 중 한 분이 강의를 해주셨다. 게르는 만드는데 30, 해체하는데 30분이 걸리고 게르 안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주로 여자이므로 여자 집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리고 게르에 사는 여자 분이 주신 수테차와 요구르트 그리고 과자처럼 생긴 몽골전통간식을 먹었다. 몽골에서는 우유로 만든 요리가 많다. 수테차를 한국에서도 먹고싶어서 만드는 법을 열심히 봤다. 거기에는 물, 우유, 소금, 찻잎을 넣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만들어 먹어보니 이상한 맛이났다. 알고보니 소젖이 아닌 말젖이였다고 한다. 학교에 있는 말 ‘칸트’에게 조금 젖을 빌려 만들어 보고싶다.


  게르에서는 태양열을 사용했다. 게르의 구조는 입구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동그랗게 주방기구-침대-서랍-장신구함-침대-옷장-발전기-싱크대 순으로 놓여있다. 이동을 고려해서 간단하게 꼭 필요한 살림살이만 있었다. 그 게르의 아들은 조금 장난이 많이 보였다. 승마경주로 150만원되는 상금을 받았다. 점심식사는 양고기였다. 요리 과정은 굉장히 길고 복잡했다. 왜냐하면 우선 양을 잡아야 했고 그 양을 손질해 몸 속에 달궈진 돌을 넣고 요리했는데 잔인했다. 전 날 먹었던 양보단 맛있었다. 양을 먹는데 잡는 걸 직접 봐서 그런지 조금은 거북했다.


  다 먹은 후 자우모드로 출발했다. 초원과는 달리 눈에 띄게 길이 막혔다. 박사님은 가는 동안 오후강의를 진행했다. 솔직히 이땐 조금 졸았다. 정말 조금. 히타이트와 이집트는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었고 BC450년 알렉산더와 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였을 때 다리우스3세가 알렉산더를 피해 도망간 곳이 ‘박트리아’이다. 또 알렉산더는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동하는 동안 로마사를 암기했다. 탐사 중 공부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박사님은 정말 아는게 많으셨다. 자우모드까지 이동하는 약 3시간 동안 나는 로마사를 다 외웠다. 천재가 된 기분이었다. 자우모드에 와보니 할께없어서 다시 차를 타고 울람바토르 쪽으로 향했다.


   김현미 선생님께서 ‘5년 전 몽골에 왔을 때는 비가 한번도 오지않았고 3년 전 몽골에 왔을 때는 비가 2번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왔을 때 계속 내린다는 이야기였다. 평소에 지구 온난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실감해본적도 없었는데 이 말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1030분경 울람바토르 부근 초원에서 마지막 캠핑을 했다. 다른 초원과는 달리 말 울음소리가 무척 가까이에서 들렸다. 내리자마자 우리는 텐트를 쳤다. 화장실은 물론이었다. 화장실을 만드려고 땅을 파는데 처음에 정말 시멘트인줄 알았다.

돌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박사님한테 가서 말씀드렸더니 ‘거~ 대충 파’라고 하셨다. 대충 파고 있는데 또 EBS카메라 감독님이 오셔서 같이 파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엄청난 오기가 생기서 정말 깊이 팠다. 우리는 비로소 몽골학습탐사 마지막 날 화장실 만드는법과 정리하는법을 숙지했다. 이제 ‘몽골’하면 화장실이 떠오를만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1115분경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소위 ‘김병장’이라 불리는 비빔밥을 먹었다. 땅을 파서 배가 무척 고팠기에 더 맛있었다. 각자 잘 준비를 마치고 텐트로 들어가 꿀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