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베트남의 호치민은 아주 작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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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스치는 풍경에 오토바이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도로를 횡단하며 오토바이를 스쳐 지나간다.

여기 저기 가득한 소리에 치여 그 안에 맴 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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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마지막 날에 올라간 랜드마크 68층에서 바라본 호치민은 서울의 크기에 육박할 만큼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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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압도된 공간에서 공간은 수그러들고 좁아지며 가까이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시선에 머물고 시각에 머문 공간은 커지고, 소리에 압도되고 고막을 맴도는 오토바이 소리는

공간을 찌부려트리고 있었다.

 

소리에 착각이 만든 호치민의 거리는 좁아졌고, 랜드마크에서 본 호치민은 커져 있었다.

 

뇌과학 심포지움에서 희망을 감지한 뇌는 현재와 구분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미래에 있는 현상을 지금에 끌어와 쓰는 단어이다.

 

시인 박노해가 그의 시에서 '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누구보다 아름다운 시간을 가져다 사는 것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의 표현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뇌에서 미래가 지금 일어나는 행복이나 즐거움을 지금 가져다 주게 한다.

 

희망을 가지고 사는 뇌는 지금 당장 행복한 뇌가 된다.

 

우릉거리는 호치민의 거리는 그 소리에 작아지고, 랜드마크에 호치민은 내 시각에 의해 다시 확장된다.

 

놀라운 현상이다.

 

소리가 공간을 형성하는 장치임을 느끼고 왔다. 역사는 보이지 않는 시간에 놓여있고, 호치민의 거리는

우릉거리는 소리에 뭍혀있다. 그리고 여기에 진실이 무엇이며 사실이 무엇이냐의 질문은 조용히

우릉거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사라진다.

 

그게 뭐 중요한가.

 

새로운 사건에 노출된 나를 다시 재편성하는 시간이었다.

 

월남전을 겪은 나의 아버지가 경험한 사이공과 내가 경험한 사이공은 같은 공간임에도 다른 시간이 된다.

 

에펠이 디자인한 국공립 우체국의 둥근 천장의 격자 무늬를 보고 이은호 선생님은 에펠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어디에든 그 향기와 냄새가 나는 공간이 있다. 쩐응 한 장군이 명나라에서 지킨 베트남과 쩐흥 따오 장군이

원나라에 지킨 베트남, 호치민이 프랑스에서 찾은 베트남은 같은 것일까.

 

중요한 것은 그 우릉거리는 오토바이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그것이 그 우릉거림을 만들었을테니

말이다.

 

박자세가 탐방한 베트남은 깊은 소리를 가진 나라이다. 홍강 삼각지와 메콩강 삼각지, 열대 우림의 환경이 만든

여러가지 복합적 사건이 지금의 시간을 만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사건 너머에 있는 시간을 찾고 역사를 뒤지는 노력은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선물한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좋고 나쁘고의 가치가 달라지고, 옳고 그르고의 기준이 희미해지게 된다고 믿는다.

 

베트남은 베트공이라 칭하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넘어선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베트남은 전쟁의 나라, 고엽제에 고통받는 나라가

아니라 그 현상 하나로도 충분히 배울만한 공간이 된다.

 

우릉거리는 베트남을 다녀왔다. 한 동안 내내 가슴에 울리는 소리 담아온 그 공간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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