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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윤님!!  기분좋게 하늘을 향해 점~~프~~^^


  7월 20일(월) 학습탐사 4일


알타이 산맥의 푸릇한 허브와 부추 향기들이 아침에게 풍부한 맛을 더해줬다. 따끈한 누룽지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만끽할 수 있도록 아침체조를 했다. 머리를 통통 두드리고 어깨도 팡팡 풀어주고 허리도 휭 돌려주었다.

 

아빠의 오전 강의를 끝으로 우리는 알타이 산맥 숙영지를 벗어났다. 하지만 우리가 저녁때 고비사막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 까지도 알타이 산맥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알타이 산맥이 우리를 아쉬워 해 따라오는 건지 우리가 못 헤어지고 있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 허브향기가 물씬 났다. 사람들이 목에 허브를 걸기도 하고 주머니에 간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모두 알타이 유행이 돌고 돌았다.

 

우리는 고비사막을 한 층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 있다. 이동도서관이랄까?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은 도서관처럼 무릎을 책상 삼아 공부를 하고 있다.

하은이네 가족은 나와 함께 버스 맨 앞자리, 그러니까 역방향으로 4일 정도 탔는데 그 덜컹거리는 의자에서도 아빠의 강의를 놓치지 않고 메모하고 정리하며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 하은이도 메모를 같이 하며 졸지 않고 암기하고 복습했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역방향으로 가면 멀미도 나고 힘들고 지치기 쉬운데 항상 밝은 모습으로 공부를 즐기는 것 같았다. 앞자리 뿐 만 아니라 롤러코스터처럼 덜컹거려 몸이 날아가기 일 수 인 뒷자리와 햇빛이 계속 타들어갈 것처럼 들어오고 끊임없이 흔들거리는 중간 자리에서도 공부 열풍은 미칠 정도로 대단했다.

 

이곳 몽골에 온 이상 자연과 공부를 함께 제대로 즐기셔야 해요 즐기는 동안은 한국을 깡그리 잊어 버리셔야 됩니다. 한국이 몇신지 무슨 일 있는지 상관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에만 집중하시면 더욱 효율적인 탐사여행이 될 것입니다

아빠의 말씀처럼 정말 사람들은 한국을 잊고 자연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공룡 얘기 밖에 하지 않았다. 뭐 가끔 다른 이야기는 혹시 물 있으신가요정도?

 

공부열기를 가득 담은 버스는 주유를 하기 위해 작은 마을에 들어가 주유소로 향했다.

아침밥 먹은 것이 잘못 소화되어 멀미를 느낀 나는 버스가 정지하자마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으아, 속이 울렁거리네

 

배를 쓰다듬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쫑긋 섰다

여기에 과일이 있어요~ 다들 와서 따 드셔보세요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내 손에는 작은 앵두 같은 빨간 열매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오랜 만에 섭취하는 귀한 비타민. 상큼하다 못해 입안에서 아우라가 터진다.

이야, 이거 보약이다, 보약. 상큼한 걸 먹으니 멀미가 확 없어졌어

방금 전까지 전쟁 나던 속이 이 앵두같은 열매를 먹으니 확 풀렸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것이 해장이라는 것인가!

맛있지. 몽골어로 하르마크래

앵두같은 이 열매의 정체는 보리수의 일종인 하르마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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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를 슥 보니 아빠도 작은 미소로 한 주먹 맛보고 계셨다. 아빠가 몽골에 오면 정말 즐겨 드시는 보리수라고 한다. 5년 전아빠가 맛보고 반해 씨앗을 휴지에 포옥 싸가지고 오셨다. 엄마가 식물 전문가이니 우리 집 뜰에다 키우면 어떠냐면서 가져오신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뜰에다 심은 씨앗이 언젠가 빨간 하르마크가 자라리라 하며 아직도 희망의 물을 주고 계신다.

 

이 하르마크가 주유소 옆에 그냥 자연적으로 난 것인지 일부로 키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은 언덕 같은 곳에 쫙 깔려있었다. 우리가 먹은 언덕위의 하르마크가 제일 달고 맛있었다. 어찌나 많은지 그냥 손을 한번 슥 스치면 후두두둑 떨어졌다. 사람들의 손 안에는 새콤달콤한 하르마크가 흘러 넘쳤다. 어제 다 먹고 남은 땅콩 통 안에 하르마크를 채워 저장했다. 이 귀한 하르마크를 두고두고 먹을 생각인가 보다.

저 옆에도 하르마크가 많아. 여기보다 훨씬 빨개

유정연 선생님과 박형분 선생님이 내게 알려주셨다. 고정관념인지 사실인지는 몰라도 빨강색일수록 다 맛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제일 빨개보이는 것들만 골라 한 뭉치 땄다.

쩝쩝, 으잉, 아까 저쪽 것 보다 별로 맛은 없네요?”

색깔은 제일 빨간데 빨갈수록 더욱 시큼하지?”

제일 빨강색을 띄는 보리수는 의외로 단맛보다는 덜 익은 시큼한 맛을 냈다.

근데 나는 단맛보다는 시큼한 게 더 맛있어.”

유정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유정연 선생님 말씀에 머리에 돌이 쿵 하고 박힌 기분이였다. 꼭 단맛만 나는 것이 맛있다는 건 아닌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새큼한 맛이 훌륭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단맛이 최고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한 쪽 면만 생각했던 내게 무언가 알려준 하르마크 같아 기분이 묘했다.

 

간만에 미각이 살아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비사막 안 쪽으로 파고 들었다.

한 참 달린 후 어느새 버스가 심하게 덜컹 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비포장도로는 좀 심하네?’ 하며 창문을 바라보니 웬걸, 평평한 흙 땅에 누가 뿌려놓은 것 마냥 돌들이 어색하게 누워 퍼져있었다. 알고보니 우리가 오기 전날 큰비가 내려 길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비에 휩쓸려 온 돌들이 생긴 것이고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는 매일매일 기사님들이 직접 수리하고 점검하기 때문에 걱정은 없지만 펑크라도 날까 조마조마했다.

덜컹덜컹 부우우웅 덜덜덜 부우우우웅 덜컹! 부우우우욱!!!”

순간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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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이 버스에 내려 뒷바퀴 쪽으로 향했다. 제발 누가 아니라고 얘기해줘. 김현미 이사님이 상황을 보시고 얘기를 나누시더니 버스 바퀴가 빠져서 저 앞까지 걸어서 이동하겠습니다.” 맙소사, 이 허허벌판에 바퀴가 빠졌다니, 허허허허.

이미 전에 몽골탐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듯 버스에서 내렸다. 앞질러 가던 봉고차에서 몽골 기사분이 다가오셨다.

나 이 버스 끌건데, 내가 버스 끌어줄게요 남자는 저기로 가. 여자들은 뒤에서 버스 밀어요

한국에서 오래 사신 몽골 기사분이 말씀하셨다. 한국말을 정말 잘하시는데 남자 여자를 잘못 안건지 농담인지 몰라도 해맑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남자가 끌고 여자가 가는게 아니라요?”

남자 힘없어서 필요 없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이런 것이 몽골식 개그 인가, 한바탕 웃었다.

 

몇 걸음 걸어 정상같은 언덕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넓은 흙 평지가 나오고 알타이 산맥이 있었다. 떠나도 떠난 게 아닌 알타이 산맥이다. 알타이 산맥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B버스가 오고 있다. B버스가 올 동안 A버스 사람들과 알타이 산맥 기념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 그런데 아직도 B버스는 저 멀리 있었다.

“B버스 오고 있는 거야, 멈춰 있는 거야 멀어서 도무지 알 수가 없네.”

한 참을 유심히 보니 버스에서 조만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 ? 사람들이 내리는 것 같죠?”

그러네요, 혹시 저 버스도 바퀴가 빠졌거나 펑크가 났나?”

업친 데 덮친 격 버스 두 대 모두 문제가 생겼다. 정말 리얼 탐사이다. 사실 이렇게 버스 바퀴가 빠지거나 펑크가 나서 걸어가고 이런 것이 탐사이다. 뭐랄까, 인간미 있다.

 

난 탐사에 대해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탐사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에 분명 버스 바퀴 빠지기가 있을 거라 믿는다. 차량 한 대가 홀로 다니는 도중에 발생하면 무시무시하지만, 아마 우리탐사의 경우에는 차량이 한 대가 아니기 때문에 버스가 빠지면 봉고차에 연결하여 뺄 수 있어서 그나마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버스에 줄을 연결하고 봉고차가 끌었다. 버스가 굉음소리를 내며 탈출했다.

와아아! 짝짝짝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아직도 저 멀리 B버스 사람들은 걸어오고 있다.

탐사에서는 시간을 금같이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쉴 겸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기로했다. 워낙 시간이 귀한지라, 땡볕이지만 그냥 바닥에서 식빵에 쨈을 발라 공급했다.

한 참이 지나서야 B버스 사람들이 속속히 도착했다. 보기엔 그냥 멀어보였는데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멀었다고 한다. 그 먼 거리를 걸어오시느라 진땀이 뚝뚝 흐르셨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을 것이다.

“B버스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식빵을 먹으면서 옆을 보니 벌써 B버스는 봉고차에 끌려 온 것인지 기사분들이 수리를 하고 있었다. 이 땡볕에 수리하시느라 힘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엄마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아빠를 찾는데 보이질 않았다. 아빠는 버스 뒤에서 계속 인터뷰 촬영을 하시고 있었다. 쉬지도 못하고 촬영하는 아빠와 EBS팀을 위해 식사당번과 내가 샌드위치를 그릇에 담아 따로 챙겼다. 샌드위치는 손에 흘리고 묻어서 질색하는 아빠를 위해 휴지까지 챙겼다. 아빠는 부스러기 흘리고 잼이 흐르는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 참 숩지않은가보다.

 

아빠와 EBS팀까지 모두 빵을 다 먹었지만 B버스 수리가 끝나지 않아 계속 휴식시간이 이어졌다. 돌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 재미난 걸 하시는 한선빈 , 정종실, 조세민 선생님이 계셨다.

자세히 보니 저 멀리에 돌을 세워놓고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하고 계셨다.

~ ! 맞췄다! 자 두분 뽀뽀하세요~.”

정종실 선생님이 이겼다. 내기로 한선빈 선생님과 조세민 선생님이 뽀뽀하기로 약속했었다고 하신다. 정종실 선생님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무척 신이 나보였다. 항상 카리스마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런 해맑은 매력이 있으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디선가 단체로 배꼽 잡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 가보니 구름하늘을 배경으로 점프 샷을 찍고 있었다. 어디서 점프샷 잘 찍는 노하우를 알아 와서는 응용하며 찍고 계셨다.

윤아~ 너도 여기와서 찍자

엄마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몽골 와서 점프샷 백번은 찍은 것 같은데 또 찍나?

자자 어서 코치해줘, 쟤도 하하하하

엄마도 매우 신이나 보였다. 임석종 선생님과 진광자 선생님이 내게 점프샷 코치를 해주셨다.

봐봐, 이게 노하우가 있더라고. 아예 점프할 때 대자로 벌린 상태에서 점프를 해!”

, 이렇게요?”

그렇지, 좀 다리를 더 벌리고 그 상태에서 점프해!”

하나 둘 셋, 찰칵.

과연 한번에 잘 찍혔을지 궁금해 하며 현장스케치를 리얼하게 담아주는 엄마에게 갔다.

오오~ 윤아, 너 최고다. 제일 높게 날았어

그러네, 그러네. 역시 젊은 피라 달라 우리랑 하하하

 

사진을 보니 나는 먹구름 밑에서 대자로 점프를 한 사진이 나왔다. 생각보다 높게 잘나와 덩달아 신이 났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전에 사진을 보는데 지승재, 임석종, 진광자, 송찬옥 선생님들도 슈퍼맨처럼 사진이 하늘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내 다음으로 박형분 선생님이 사진을 찍었다. 시원시원하게 살포시 점프를 하는데 엄청난 높이로 올라갔다. 사진에서도 시원시원한 여유의 포스가 느껴졌다.

엄마, 엄마도 찍어줄게 가서 서봐

사진을 찍던 엄마 차례이다.

여기 서면 되나?”

그래그래, 돌 앞 거기가 정상처럼 보여요~.”

찍는 장소가 따로 지정 되있나 보다. 진광자 선생님이 엄마 자리를 조정해주셨다.

엄마, 찍을게 하나 둘 셋 하면 찍을거야

그래그래, 하나 둘 으얏!! !”

푸하하하하

엄마의 흥이 넘쳐났는지 엄마는 엉덩이로 온 몸을 착지해버려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졌는데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엄마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으하하하, 어떡해 어떡해, 아프다

엄마, 민망해서 웃는 거지!”

엄마가 몸을 날리며 사진을 찍은 덕분인지 사진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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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소리 덕분인지 홍경화 선생님도 동참하셨다.

, 코치코치!”

진광자 선생님이 홍경화 선생님에게 코치해드렸다.

대자로 벌리고 그대로 점프하면 되요!”

, . 이렇게 하면 됩니까? 한번 뛰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홍경화 선생님 표정은 비장했다.

하나, , 으야야약!”

팔을 쭉 벌린 체 뛰었지만 사진에는 타이밍이 안 맞았다.

자 다시 찍을 게요~.”

역시 파파라치 우리 엄마.

하나, , 세에에에엣!!”

홍경화 선생님은 세상을 다 이끌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살포시 뛰었다. 사진은 완벽했다.

어머나, 세에상에~.”

홍경화 선생님은 사진을 보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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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젊은 피, 진경샘~”

우리는 사람들을 더욱 영입했다. 손진경 선생님은 점프샷이 익숙한 듯 가볍게 높이 점프했다.

, 역시 젊은 피인가 보다. 멋지다

그러네, 다리가 시원시원 뻗었다

다음 순서는 서지미 선생님 차례였다.

하나, , !”

서지미 선생님의 작품은 센스 있는 포즈였다. 이때까지는 대자로 뛰었지만, 이번 포즈는 흡사 팔 벌린 비상구 표시 모양이였다. 그리고 높이도 정말 높이 점프하셨다.

 

이때 철흥이 오빠가 뒤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흥이도 여기 와서 찍어!”

사진을 찍던 엄마가 새로이 불러들었다. 철흥이 오빠도 정말 하늘을 나는 것처럼 높이 날았다. 마지막으로 서지미 선생님과 흥이가 장풍 샷을 찍었다. 흥이가 장풍을 쏘면 서지미 선생님이 날아가는 포즈였다.

하은이랑 윤이도 저거 찍자

엄마의 파격적인 명령이였다.

내가 하은이에게 장풍을 쏘자 하은이는 유연한 허리를 뒤로 꺽어 정말 날아가듯이 표현했다.

덕분에 사진은 정말 내 장풍으로 하은이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장풍으로 사진찍기를 마무리하며 정리하는데 저 멀리서 말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말의 정체는 게르에 사는 아이들이 양을 몰려고 타고 가는 것이였다. 처음 보는 풍경에 나는 달려갔다.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고 고맙다는 답례로 웨하스 과자를 쥐어줬다. 그러자 주머니에 꾹꾹 쑤셔넣고 다시 말을 타고 달려갔다.

몽골 아이들은 볼이 빨갛고 얼굴이 정말 순수했다. 남매같아 보였는데, 말 타는 솜씨가 선수같이 능숙했다. 우리를 경계하지 않고 사진을 찍게 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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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고쳐지자마자 우리는 이제 네메게트를 통과하여 알타이 산맥의 최고 모래언덕인 Hongoryn els(홍고르 엘스)‘에 도착했다. 홍고르 엘스에 거의 다달았을 때부터 땅이 거의 칙칙해 다죽어가는 색이였다. 파릇하던 허브는 잊혀진지 오래다.

여기가 어디지라는 의문을 품고 창밖을 바라봤는데, 저 멀리 연한 황금색이 쌓여 있었다.

그곳이 홍고르 엘스였다. 185km길이에 폭은 20km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약 150km인데 이곳은 185km이다.

모래바람이 심하니 선글라스와 스카프 같은 것을 꼭 챙기세요. 물도 꼭 소지하시길 바랍니다.”

스카프로 얼굴을 두르고 모자를 최대한 푹 눌러썼다. 한국에서부터 올 때, 선글라스를 미쳐 챙기지 못해 눈을 최대한 가려야했다. 버스에서 무장으로 방어하며 내리는 순간 움찔했다.

바람도 바람이지만, 바람속에 딸려오는 이 모래들. 나온지 1초 만에 비명이 나온다.

모래사막 바로 앞까지 버스가 태워주면 좋겠지만, 모래사막 근처도 모두 푹푹 빠지는 모래여서 버스 진입이 불가능했다.

 

모래사막까지 나오는 지형들이 있는데 마치 게임 단계를 통과하는 기분이였다.

처음 1단계에서는 모래바닥의 가시를 피하며 2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모래가 해변 모래보다 곱고 얇지만, 중간 중간 가시 풀들이 박혀있어서 맨발로 걸을 수가 없었다. 모래가 섞인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걸었을까? 저 멀리서 물이 보인다는 외침이 들렸다. 두근두근 거리며 뛰어가 보니, 진흙 위에 종아리와 발목 사이정도까지 오는 물이 차 있었다. 물론 맑은 물은 아니였으나 흐르는 물은 오랜만이였다. 그럼 이곳이 2단계라고 해야 하나?


DSC02018.JPG : 몽골 해외학습탐사 사진 (7/18~21)

DSC02025.JPG : 몽골 해외학습탐사 사진 (7/18~21)


신발 신고 들어가지 말고 양발 까지 벗고 건너면 되요~.”

열이 후끈거리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구겨 넣고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갔다.

으아 느낌 이상해. 느낌 이상한데 중독성이 있어서 좋다.”

나랑 하은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질퍽거리는 진흙을 즐겼다, 생긴거는 보면 도토리묵 위에 물을 뿌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갯벌 모습과는 또 다른 진흙이였다. 발가락 사이 사이로 물과 진흙이 들어오고 발은 푹신푹신해졌다. 심하게 발이 빠진다 해도 아랫종아리 정도였다.

강 아닌 강을 건너고 다시 올라왔는데 마른 모래도 너무 부드럽고 따뜻했다.

발도 말릴 겸 신발 벗고 갈까? 어차피 모래사막가면 신발 벗을 것 같은데

안 돼. 모래 사이에 가시들이 많이 박혀 있어서 따가 울 걸?”

진흙으로 젖은 발 위에 양말을 신어야 한다니, 그냥 가시 밟고 말까?

가시 박힌다는 위협들도 무시한 체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가시들이 밟히지만 요령껏 피해 다녔다. 결국 나중에는 너무 따가워서 신발을 다시 신었지만...

 

모래 길을 통과하니 사람 키 만한 풀들이 있었다. 자칫하면 손 베일것만 같다.

팔로 휙휙 풀을 저으며 통과하니 그림 같은 곳이 나왔다.

풀로 된 미니 언덕들이 올록볼록 있는데, 움푹 패인 부분에는 물이 찰랑찰랑 담겨있었다.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물이 있는 줄도 모르게, 마치 물을 머금은 솜처럼 있었다.

그 물은 진흙물이 아닌 순수 맑은 물이였다. 물을 피해 언덕을 징검다리 삼아 통통 뛰어 넘었다. 그리고 모래사막과 드디어 만났다. 최대 높이가 72m인 홍고르 엘스.

 

모래언덕을 만나자마자 신발부터 벗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모래언덕에 약한부분에 밟으면 발이 푹푹 들어가서 걸어 올라가기 힘들지만 강한부분을 요령껏 걸으면 패이지 않고 걸어 올라갈 수 있다. 모래 언덕 하나를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밟으면 발등 위로 두꺼비집이 자동으로 완성됬다. 정상의 반쯤 올라왔을 쯤 한계에 도달했다. 보통 땅이 아닌 발이 푹푹 꺼지며 올라가기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벌써 위에 도착한 사람들이 응원해줬다.

 

잠시 숨 돌릴 겸 아래를 봤는데, 식겁 할 뻔했다. 너무 높았다. 나 같은 겁쟁이는 앞만 보고 가야한다. 옆에를 살짝 봤는데 바로 절벽이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떨어져도 다치진 안을 것 같다. 전부 모래니까 조금 굴러다가 모래를 왕창 먹거나 모래에 살이 쓸릴 뿐?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도 거세졌다. 주변 사방팔방이 모두 모래니 바람이 불어서 모래가 날아오는지 모래가 불어서 바람이 날아오는지 헷갈릴 정도다. 긴 바지를 입었지만 모래알들이 다리에 부딪히는데 칼날 인 줄 알았다. 바지가 찢어지지 않은 게 다행인 정도다. 모래가 사사사삭 파바바바박 하며 다가오는데 너무 무서웠다. 다리가 찢어질까봐.

숨을 헐떡거리며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종실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정상 기념사진!

 

하은이가 1인용 EBS카메라를 들며 인터뷰해주었다.

언니, 언니! 지금 기분이 어때!”

좋아~. 기분 최고야!”

모래언덕의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그냥 너무 좋아요! 기분이 최고에요. 모래가 너무 따끈따끈해요!”

흥분 된 감정을 자제하며 정상을 걸어 다녔다. 정상에서 쉬고 싶었는데 강렬한 햇빛과 거센 모래바람으로 다른 언덕으로 피신해 갔다. 그곳에서 송찬옥 선생님과 지승재 선생님, 그리고 손민아 선생님을 만났다.

헥헥, 여기 너무 좋은데 그만큼 참 힘드네요

너 엄청 신나 보인다

내 입은 힘들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행복해보였나 보다.

 

사실 몽골 탐사 중 제일 흥미로웠던 곳이 홍고르 엘스였다. 아기들이 정서발달에 좋다는 모래 놀이를 하는 것을 볼 때 항상 부러워했었다. 왜 아기들만 저런 재밌는 걸 하지?

그랫던 것을 이곳에서, 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한 참 뛰어가도 모래였다. 그것도 아주 고운 모래. 언덕 정상에서 모래를 발로 밀면 모래가 흘러 내려가는데 얼마나 고우면 마치 물처럼 줄줄 흘러내려간다.

엄마, 우리 여기 살자!”

살기에 적합하진 않지만 놀기에는 적합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파격적인 말을 던져버렸다.

선글라스도 안 쓰고 썬크림도 대충 발랐지만 얼굴이 타던 말던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걱정해도 충분히 걱정되니까.

 

정상에 올라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소리도 질렀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다. 노래방에서 소리지르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였다.

흥이와 아래쪽 언덕에 앉아 있는데 흥이가 말했다.

, 그냥 여기 구르고 싶다.”

굴러!”

그래, 이런 모래에서 언제 굴러보겠어. 집 앞 놀이터? 그건 아닐테고.

흥이가 만만의 준비를 했다. 모자를 둘러쓰고 지퍼를 채우고.

자 하나, , !”

으파파파파파팍

흥이는 마치 두루마리 휴지를 땅에 떨어뜨렸을 때 굴러가는 것 같이 잘 굴러 갔다.

헥헥거리며 다시 올라 온 흥이가 소감을 얘기 해줬다.

이야, 이거 진짜 재밌다. 스릴 대박이다. 고모도 해봐

진짜? 어떤데?”

해봐라 진짜 재밌다.”

겁이 많지만 한번쯤 해보고 싶어 나도 머리를 다시 쫑 메고 모자를 눌러쓰고 도전했다.

무서워서 굴러가다 한번 멈추고 내려갔는데, 모래 샤워한 것 빼고 스릴 넘치는 재미였다.

굴러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하는 힘듦이 있지만 모래사막에 와서 이 정도는 해줘야 제대로 즐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흥이도 같은 마음인지 연속 2번 구르더니 마지막 1번 더 굴러 3번이나 굴렀다.

 

모래를 털며 언덕을 내려왔다. 아쉽지만 모래언덕에서 해 볼 건 다 해봐서 후회는 없었다.

버스로 지친 몸을 이끌며 돌아와 머리를 털었다. 물티슈로 얼굴, 콧구멍, 눈구멍 다 닦았는데 닦을 때 마다 어디에서든 모래가 나왔다. 그렇게 굴렀으니 당연할 법도 하다.

이때부터 물티슈를 나눠주면 무한 감동과 사랑이 나온다. 귀하디 귀한 이 물티슈는 치킨 닭다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물티슈 한 장 받으면 이 사람 참 베풀 줄 아는 사람이구나 가 된다.

 

홍고린 엘스 주변에 숙영지로 잡았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머리를 밑으로 숙이고 박박 털기 시작했다. 모래가 엄청 꼬였을 것이다. 물티슈로 또 한번 얼굴을 닦았다. 물티슈는 너무 귀해 얼굴 닦고 목도 닦고 귀도 닦고 마지막으로 옷도 털고 신발까지 턴다. 오로지 한 장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귓구멍에서도 모래가 나왔다. 내가 참 모래언덕이 좋았나 보다.

 

이 날 저녁은 김병장에 미역국이였다. 마침 그 날 박재이 선생님 생신날이여서 생일축하 노래와 함께 저녁식사를 마무리했다. 모래사막을 그야말로 등반하여 온 몸이 뻐근한 채로 몽골의 별 하늘과 파릇한 공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무한의 매력을 자랑하는 몽골에 온 것이 이제야 차츰차츰 현실감이 느껴진다.

 

같은 몽골 속 다른 몽골들이 결합된 이곳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불순물 없이 생생함을 내 느낌대로 마음속에 담아, 별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DSC02064.JPG : 몽골 해외학습탐사 사진 (7/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