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박종환 선생님과 임지용 선생님의 작품을 빌려왔습니다.

미리 양해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1.  야단스럽다.


_됣뀿__꼷_녁꼨_⒰꼦__DSC_3851.JPG

 

[ 병마용갱 ]

 

 

  실크로드에서 돌아온 지 두 주가 지났다. 족히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달력을 보고도 날짜가 믿기지 않아 손가락으로 다시 헤아려 보았다. 잠시 다녀온 게 아니라 한참을 지내다 돌아온 기분이다. 여행의 기억이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같은 학습 탐사인데도 서호주와는 너무 달랐다. 우선 야단스러웠다. 실크로드 탐사는 대도시답게 눈에 보이는 사람도 많았고, 사람이 드문 곳을 가더라도 가는 족족 사람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서호주는 흙과 잔돌과 큰 돌, 그 옆에 가시풀과 드문드문 개미집, 그리고 별 뿐이었다. 표면상 단순명료했다. 무엇을 보아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보이는대로 보고, 밟고 만지는대로 이름과 그 연원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실크로드는 달랐다.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컸으며 보이는 풍경마다 소리내어 말을 걸어오고 사물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 놓으니 어지러웠다. 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러하였다. 첫날 진시황의 무덤 가는 길 상인들의 호객행위, 서안 병마용 구덩이 속에서 만난 병사들의 낮은 웅성거림과 전차 옆에서 푸르르 갈기를 털어대는 말울음 소리에, 그걸 보고 듣겠다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의 소리까지 얹혀졌다. 섬서성 박물관에서 만난 옛사람들은 전시실 유리창 안쪽에서 소곤대며 천 년도 지난 이야기를 했고, 탐사대 일행이 천수, 난주를 거쳐 가욕관에 들렀을때는 건축공이 남겨둔 성루 위의 벽돌 한 장마저 말을 건네 왔다. 맥적산과 돈황의 석굴은 그 자체가 듣기를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스토리를 지녔고, 돈황의 서진묘 가는 길에 이어진 공동묘지와 투루판의 아스타나 고분군에 누운 사람들 역시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심지어 고비 사막 옆 명사산을 거니는 쌍봉 낙타는 소그드 상인들처럼 어지간히 수다스러웠다. 반면 고창고성으로 향하는 나귀는 오랜만에 손님들을 맞이했는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쑥스러워했다. 이쯤되니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을 둘러볼 즈음 우리는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찾아간 친한 이웃처럼 골목과 집안 여기저기를 거리낌 없이 기웃거렸다. 형편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비슷했다. 버스 안에서 중국의 역사와 불교사, 문화의 전파 경로를 소리내어 암기했다. 법성게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암송하고, 선재 동자와 함께 53명의 선지식을 만나는데 동행하여 문수보살과 미륵보살의 말씀을 함께 새겨 들었다. 드물게 조선족 가이드의 현지 설명을 듣기도 했는데, 그들은 소수 민족으로서 중국에서 살아가는 소회를 덧붙이기도 했다.

 

 

 IMG_7488.JPG

 [ 황하강 유역에서 만난  할아버지 ] 

 


 

  이렇게 사람과 그 흔적을 만나야하는 인문학 탐사는 좀 양가적이다. 타향살이에서 만난 고향 사람 같아 친근하고 반갑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나를 모르고 전의 나만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 집안의 내력과 들추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도 공유하고 있다. 인간 역사를 안다는 것의 불편함이다. 자연을 주로 만나는 탐사는 마음에 편안함이 있다. 자연 현상이 아무리 엄하거나 이상해도 그러니 자연이지 하고 수용을 하며 어찌되었건 어머니 자연으로서 그에 기대는 심정이 있어서다. 그런데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탐사는 자연을 보더라도 인간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순응이냐 활용이냐 극복이냐와 같이 해석이 달라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설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둘 이상이 모이면 정치가 발생하고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세워 전쟁을 불사하는 인간의 역사와,  깨달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모래바람을 가르며 몇 년의 길을 걷는 인간의 역사가 공존한다. 인문학 탐사는 고향 사람을 만날 때와 같은 이 불편한 공존을 감수해야 한다. 돌이나 시아노박테리아를 만날 때보다 동종끼리의 만남은 나누는 대화가 많고 편해졌으나, 오가는 말이 너무 많고 서로 좀 안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잘못 알아듣거나 경이로움이 부족할 수 있다. 그래도 고비 사막 입구의 월아천을 거닐 때나 투르판 쿠무타크 사막의 새벽 일출을 맞이하러 가는 길은 누구의 말소리에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하서주랑 실크로드의 관문 가욕관 전경 ]IMG_765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