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3

 

새벽까지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한 걸로 보아 그친 모양이었다. 이어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벌써 새벽 별자리를 보며 박사님이 강의를 하고 계셨다. 모기떼가 극성을 부렸지만, 쫓아내가며 들었다. 저녁엔 마른 말똥과 소똥을 불 피워서 쫓았는데, 아침엔 그게 안 되니 좀 괴로웠다.

행성과 별의 차이에 대해서, 행성은 태양의 주위를 도는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등이며, 그 외는 별이라고 했다. 비교하자면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눈과 눈썹사이이고, 지구와 별과의 거리는 여기에서 미국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는 에너지는 빅뱅이후의 에너지를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반짝이던 새벽별금성의 빛이 점점 스러지고 있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은 증명된 것으로 갤럭시와 갤럭시의 중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주의 경계는 관측의 경계로 대략 발견된 갤럭시가 1000억개이다 .빅뱅은 가설이 아니고 증명된 이론으로, 현재는 137억 년 전의 우주를 알아내려고 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 위성 챌린저호의 항해기록은 40권의 책으로 나왔는데, 지금까지 연구의 90%를 알아냈다.

별밤 12p, 황도(皇道)는 태양의 년주운동(年周運動)을 표시하는 천구상의 가상의 선이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이다.

박사님 설명을 들으니, 무심히 보아 넘겼던 일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이 생겨서 학습의 의욕을 더욱더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잘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다.

아침 7시경, 희부옇게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졌다.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넓디넓은 초원과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산들 뿐이다. 정말로 사방십리 안에 인간의 발자취가 없는 곳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도저히 맛볼 수없는 이런 시간을 갖게 되어서 너무 행복한 느낌을 가졌다. 들리는 것은 아침식사 당번의 소리, 보이는 것은 유로선생님과 운전기사들이 짐을 정리하는 바쁜 일손들, 그리고 대자연!

아침은 된장국 국밥과 계란찜, 그리고 밑반찬이었다. 짧은 시간에 계란찜까지 만들어내는 솜씨에 놀랄 따름이다. 공송심님 고맙습니다!

9시경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는 항상 박사님의 강의가 대략 1시간마다 있는데 꼭 지시가 따른다. 몇 페이지를 펴세요! 시작되는 10분 강의! 10분만 한다고 하지만 30분이 넘을 때도 있다. 버스에서 졸 틈도 없다. 외울 것이 너무 많아서이다.

오늘 외울 것은 916 요나라 건국, 926 발해 멸망, 936 연운 16국 정벌이다. 그리고, 흉노, 선비, 유연, 돌궐, 거란, 몽골은 몽골제국과 관련된 민족들이다.

울란바토르를 떠나 아직 아르항가이 지역에 있다.

버스 강의실, 동물의 진화는 릴리스톤 법칙에 의해 치아, 척추, 목뼈 등 연속상동기관이 변화하면서 다른 기관으로 변형한다. 포유동물은 4000종류나 되며 사람은 태반포유동물이다.

버스로 지나가면서 보면 게르마다 꼭 있는 것이 있다. 태양열 열판, 자기용 아니면 트럭, 오토바이, 검둥개 몇 마리이다.

버스 강의실에서 꼭 외울 것, 징기스칸 가계도이다.

제 1대 대칸인 징기스칸의 삼형제는 동방삼가로 불리어졌으며 위로부터 카사르, 카치온, 옷치킨이다. 옷치긴은 조선의 이성계와 관련이 깊은 왕가이다. 아들은 차례로 주치, 차카타이, 우구데이, 툴루이가 있으며, 제 2대 대칸은 우구데이로, 카리코움을 건설했다.

손자로 넘어가면 첫째 주치의 아들 바투는 킴착카 왕국을 건설했다.

둘째 차카타이는 기록이 없다.

셋째 우구데이의 아들 구육은 제 3대 대칸이 되었으나 제위기간은 3년이었다.

구육의 사촌에 카이두가 있는데, 1266년을 전후로 본격화된 카이두의 반란은 몽골제국을 분열시키고 대원제국의 성립을 일으키게 한 사건으로 30년간 지속된 장기전의 내전이었다.

막내 툴루이는 제 4대 대칸이 된 뭉케, 이란을 세운 훌레구, 제5대 대칸이 된 구빌라이, 막내 아리부케가 있었다.

한 시간쯤 달려서 위구르의 수도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성벽이 사방으로 있고, 벽돌로 쌓은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아무르강을 중심으로 세워진 수도였다. 수도는 강을 주심으로 이루어 진 곳이 많은데, 예니세이강, 키르키즈강, 셀렌게강 등이다.

멀리서 보니 벽돌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흙과 잔 돌을 섞어서 만든 토성이었다. 성벽에 골이 져있는 곳도 있고, 구멍이 난 곳도 여기저기 있었다. 왜 구멍이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허만욱 교수님은 성터를 스케치하고 계신다. 어딜 가나 화선지를 펴고 스케치를 하는데 그 그림들은 몽골 책을 낼 때 실을 거라고 했다. 위구루의 성은 사방이 25km나 되는 넓은 초원이다. 위구르의수도의 방대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누군가 네게 물었다. “김제의 만경평야보다 넓으냐?”고. 어림이나 되는 소리냐고 ! 반박을 하고, 애들 말마따나 ‘게임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해주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를 해서 기가 막혔다.

위구르의 수도를 뒤로하고 달려서 몽골의 아르항가이 수도인 째째르렉에 내렸다. 물과 먹을 양식을 구입하려고 내린 곳이다. 마트 안은 제법 컸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칸칸마다 주인이 따로 있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 구멍가게를 떠올렸다. 채소, 과일, 치즈, 마유주와 요구르트, 잡화, 빵과 국수 등 가게마다 품목이 다른 곳도 있고 다른 곳도 있었다. 우리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었던 것은 말린 치즈로 만든 과자와 달콤하게 과자처럼 만든 치즈였다. 맛을 보고 하나씩 샀다. 나는 몽골 돈이 없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면서 맛만 보았다. 몽골 사람의 간식으로는 잣을 껍질 채 볶아서 파는데, 붉은 색으로 물들인 것 같았다. 땅콩처럼 종이에 담아서 파는데 많이 사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유주는 큰 드럼통 같이 큰 통에 넣어 팔았다. 돈을 주면 큰 국자로 큰 사발에 가득 주는데 그 자리에 서서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양이 막걸리 마시는 것과 똑 같았다. 물 대신으로 마신다고 했다. 우리의 칼국수 비슷한 젖은 국수도 팔았는데, 몽골사람들이 즐겨먹는 국수로 고릴테 슐이라는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유로 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음식으로는 당근 감자를 함께 얹은 말고기 수육과, 말고기를 넣은 보스라는 만두도 팔았다. 만두의 크기는 우리나라 통만두의 두 배였다. 모양은 길고 만두피를 예쁘게 접어서 찐 것이었다.

째째르렉이라는 도시는 제법 큰 도시였는데, 시장 주변은 쓰레기가 많았고, 신호등이 있을 정도로 차가 많이 다녔고, 주차난도 심했다. 어제 저녁 비로 곳곳에 물이 고여 다니기가 불편했다. 시장을 보는 사이에도 비가 질금질금 왔었다. 도시 중심에 돌산이 하나 보이는데 절로 올라가는 긴 층계가 보였다. 산 높이는 500m쯤 되어 보였다.

젊은이들은 현대식 복장이 많았고, 때론 머리를 염색한 사람도 보였으며 아가씨들은 지나치게 짧은 치마와 진한 화장을 한 이도 보였다. 현대화의 물결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두루마기와 같은 긴 전통복장을 한 사람은 거의가 다 긴 가죽장화를 신었고 모자를 꼭 쓰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자, 다 탔는데 이화종님이 보이지 않는다. 저기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전형적인 만연체 스타일이네”라고 박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늦은 이유는 밀가루 전병 속에 소고기를 넣고 기름에 튀겨낸 튀김 빵을 사오느라고 늦었단다. “좀 기다려서 많이 사오려고 했는데 적어서 미안합니다.” 하며 느린 어조로 할 말은 다했다. 반쪽씩 나눠 먹었는데 너무 맛이 좋았다.

“자! 잊어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복습합시다! 52p와 53p의 지도를 자세히 보세요! 몽골제국의영역과 주요 피정복국, 칸국과의 경계, 몽골군의 원정로, 바투의 원정로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지도를 보고 몽골제국의 영역은 깡그리 외우세요!” 버스 강의에서 박사님의 말씀이었다.

바깥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평평한 초원이 아니고 언덕도 있고 야트막한 산에는 나무도 있었다. 하얀 구절초와 보라색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을 지나갔다. 자작나무가 보였지만, 어인일인지 잎은 다 떨어지고 나무둥치만 남아 있었다. 버스는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가는데 양쪽에 나무가 제법 빽빽했다.

목초지처럼 푸른 초원이 펼쳐져있는 곳에 내려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다. 한국에선 이런 곳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할 것 같았다.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신발을 벗고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가까운 곳에 게르가 몇 채 있는데, 몽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둥개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개를 보더니 박사님이 한 말씀 했다 “여러분! 진돗개가 우리나라 토종인 줄 알지요. 몽고군이 삼별초(三別抄)의 난 때 진도에 두고 간 것입니다. 제주도 말도 그렇고요. 소도 몽고에서 왔지요.”라고 했다. 뭐든 보면 학습모드로 나가는 박 박사님!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쌀쌀해지더니 금방 비를 술술 뿌린다. 하필이면 식사시간에 비가 올게 뭐람! 툴툴거리며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마유로 만든 요구르트와 샌드위치, 그리고 컵라면이었다.

풀밭 속에는 에델바이스라 불리는 솜다리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몇 개 꺾어서 책속에 끼워 넣었다. 마르면 한국 가서 코팅을 해가지고 책갈피로 쓸려고 마음먹었다.

가다가 큰 바위가 있는 곳에 내렸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인지 사람이 북적거렸다. 말을 태워주고 돈 받는 곳도 있는데, 어린 소년들이 주로 하고 있었다. 그 중에 말 타고 있는 한 소년을 허만욱 교수님이 스케치하고 있으니까, 주위에 사람들이 우 몰려와서 구경하였다.

큰 바위에는 동물의 형상과 70개 이상의 문자로 여러 나라의 말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그중 150여개 이상이 튜랙 왕조 때 것이며, 룬문자(고대문자)로 되어있는 비석, 튜랙 왕조의 컬처 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적혀 있다고 했다. 14세기 것이 제일 오래 된 것이고 내용으로는 서사시와 종교적인 내용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보니, 글씨나 그림은 마멸되었는지 잘 보이지 않고, 요즘 사람들이 울긋불긋한 색으로 낙서를 한 것만 보여서 너무 보기 싫었다. 주변에는 소변을 본 사람이 많았는지 지독한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신성한 곳이라고 푸른 천으로 둘러서 장식도 했건만, 깨끗하게 보존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오면서 보니 잡다한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노전도 보였다. 양쪽으로 접혀있는 물고기 모양의 장식품이 있어 펼쳐보니, 물고기 안으로 남녀의 야릇한 형상이 새겨져있어 얼른 내려놓았다.

밖으로 나오니 구미에서 왔다는 남녀대학생 20여명이 보였는데, 몽골로 기독교를 선교하러 왔다고 했다. 묘한 감정이었다.

다시 버스로, 박사님 10분간 강의에서 꼭 외우라고 한 것은, 몽골은 인도를 400년간, 러시아를 240년간, 페르시아를 100여 년간 지배했다는 것과, 원나라는 위구르어를 썼다는 것이었다. 버스는 양쪽으로 구릉이 있는 초원을 지나가는데, 가는 도중에 많은 꽃들이 눈에 띠었다. 보라색 엉겅퀴 무더기, 키가 낮은 진 보라색 용담, 진분홍색 패랭이꽃, 솜다리, 구절초 등 들꽃이 피어서 꽃 들판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가다가 들꽃이 많이 핀 초원에 내렸다. 그 옆에는 얼마 전에 비가 와선지 흙탕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었다. 계곡은 양쪽이 절벽처럼 되어 있고, 절벽의 돌들은 울퉁불퉁한데 갖가지 색깔의 지의류가 피어서 정말로 보기드믄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지의류의 빛깔 빛깔들! 특히 연녹색과 주홍색이 제일 신기했다. 돌들은 화산 돌로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화산폭발이 있었던 곳이라 화산재가 많아서인지 내가 아는 꽃들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예쁜 꽃들도 많이 있었다. 꽃에 눈이 팔려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익우님은 ‘유럽의 꽃밭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솔다렐라님은 보라색 두건에 보라색 꽃을 꽂고 있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부끄러운지 손으로 얼굴을 가려서 모두들 보고 웃었다.

오늘은 꽃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초원에 야영지를 잡았다. 야영지가 맘에 들었는지 박사님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홍총무님 왈 “득의에 찬 의기양양한 모습”이라고 평했다. 삼면이 산으로 가려져 있는 초원! 최적의 야영지이다.

어제는 비가 질금거리며 제법 왔고, 오늘 오전에도 가끔 뿌렸는데, 지금은 바람이 솔솔 불고 날씨도 맑아져서 오늘 저녁은 밝은 별을 볼 것 같아서 마음이 설레었다.

허만욱 교수님이 쪼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기에, 은박지 매트를 깔아드리고 나는 d옆에 앉아서 일지를 썼다. 이런 한가함을 어디서 맛볼 것인가!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초록, 초록, 초록빛의 향연, 눈이 시원해져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징기스칸 가계도를 외우려고 수첩에 다시 정리하면서 외웠다. 외워야 자기 것이 된다고, 여행이 끝나면 공부한 것만 남는다고 한 박사님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을 하면서도 실천에 옮기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늘 머무를 야영지는 타리아트(TARIAT)라는 곳이다. 해가 넘어가려고 하는 석양을 보며 노란 잠바를 입은 박사님이 멀리까지 산책을 나가서 서 있다. 이화종님은 가스버너를 잘 다루어서 부주방장 소임을 착실히 하고 있고, 이원구님은 텐트에는 척척박사이고, 주방장 공송심님은 요리라면 뭐든 해낸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박자세는 척척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다 치우고 나서 모닥불을 피웠다. 가까운 산에 나무가 있어서 기사님들을 따라서  남자대원들이 길고 가느다란 마른나무를 많이 끌고 왔다. 전날 비가 와서 젖었지만, 통나무는 굴리고 긴 나무는 끌어오고 잔 나무들은 안고 오기도 했다. 불을 피우자, 버스기사 아들인 마그네가 긴 나무들을 삼각형으로 세우니 불길이 밖으로 나오면서 나무껍질이 타닥거리며 불꽃처럼 날린다. ‘환상의 모닥불’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느 불꽃놀이가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으랴! 밤하늘의 별과 함께 지상에서는 불꽃이 튀어 오르고, 가느다란 실처럼 타오르는 놈, 반딧불이가 되어 공중을 날아다니는 놈, 불길은 활활 타올라서 모두를 즐겁게 했다.

신나서 지르는 기쁨의 환호성!

남영진님은 아이패드로 동영상을 찍으며 “죽인다 죽여!”라고 한마디!

안채순님의 경기민요 꽃타령, 창부타령이 이어지고, 이익우 회장님의 한오백년도 이어졌다. 8월이 생일인 이익우님, 김철원님, 김현미님 등 여러분들을 위해 박순천님의 선창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박자세가 놀기만 하느냐! 아니다. 때는 이때다 싶어서 징기스칸 가계를 외우기로 했다. 이익우님이 징기스칸이 되어 삼형제 이름을 부르며 건장한 대원을 세명 먼저 뽑고, 아들 넷도 차례로 이름을 부르고 손자들도 뽑았다. 막내아들 툴루이로는 남영진님이 뽑혀서 모두 웃었다. 이익우님이 “막내는 잘난 아들을 많이 낳았으니 잘 뽑아야 하는데” 라고 해서 더 더욱 많이 웃었다. 이렇게 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박사님의 지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날의 캠프파이어는 모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