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동 대청봉 설악동   (총시간)

박문호    6:20        9:36          12:22   (6시간 02)

김형민    6:20        9:36          12:33   (6시간 13)

 

620분 막 출발한 무렵에는 단란한 담소가 곁들어졌다. 주로 설악산에 얽힌 기억들이 설악산이라는 키워드를 타고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대원들 간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설악산 대불상이랑 임지용 선생님이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 등을 하며 앞서서 걷고 있었는데 박사님이 곁을 앞질러 가신다. 따라나선다. 목표는 대청봉이었다.

길을 잘 아는 사람의 뒤를 따라 가는 건 매우 편하다. 박사님이 지금 어느 정도 왔고 또 어느 정도 남았는지 말씀해주신다. 어디서 힘을 안배해야 할지도 말씀해 주신다. 그냥 따라 가면 되었다.

올라가다 보니 박사님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은 양겸이와 나밖에 없다. 다리가 많다. 계곡의 풍경이 펼쳐진다. 감탄하다가 배경화 훈련을 생각한다. 나눠받은 프린트를 꺼내서 잠시 보다가 운동영역과 소뇌에 대해서 생각한다. 짧은 지식으로 운동과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소뇌인데 둘은 어떻게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조금 숨이 차면 곧 잊어버린다.

 

함께 가던 양겸이가 두어 번 쳐진다. 좀 지친 것 같았다. 약간 넓은 곳이 나왔을 때 앞질러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쉬지 않고 가다가 소청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박사님께서 전에 왔을 때 이쯤에서 힘이 빠져서 고생하신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박사님은 여기서 쪼꼴렛을 먹고 가자고 말씀하시는데 호주머니에서 꺼내시는 건 영양갱 두 개다.

 

포카리스웨트도 나누어 마시고 잠깐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출발한다.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드디어 대청봉에 도착한다. 박사님이 시간을 물으신다. 936분이다. 박사님이 좋은 기록이라며 좋아하신다. 나도 덩달아 좋다. 아마 혼자 갔으면 936분이라는 시간이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박사님이랑 함께 가서 좋았다.

 

화질이 좋지 않은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최근 들어서 스마트폰을 사야하나?’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이번 탐사 훈련의 난이도에 대해서 걱정해주시는 대원분들이 많았는데 추위에 대한 의견은 옳았던 것 같다. 원래는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나중에 도착한 대원들을 기다렸다가 같이 사진을 찍을 예정이었지만 손이 시렸다. 아마 오래 있었으면 감기에 걸렸을 지도 모르겠다.

내려가면서 올라오는 대원들을 만난다.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들 반갑다.

박사님이 대원들에게 거리가 어느 정도 남았는지 그리고 우리 대원들을 몇 명 만났는지 계속 이야기 하면서 가신다. 이렇게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가는 것이 산행에서는 중요하다고 하신다. 또 배운다.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올라갈 때는 박사님이 낼 수 있는 속도의 폭이 크지가 않았다. 한데 내려갈 때는 폭이 크다. 지형이 좀 괜찮은 곳이 나오면 박사님이 막 달려가신다. 나름 열심히 따라 가지만 거리가 벌어졌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날이 밝으면서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을 비껴서 지나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가다가 박사님이 안 보일 때까지 거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 잡으려면 또 한참 속도를 내야한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갑자기 피곤해진다. 좋았던 등산이 갑자기 미워지는 것 같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공간은 같았지만 시간이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박사님이 낼 수 있는 속도의 폭이 달라졌고 사람들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빗길이고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좀 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올라갈 때는 박사님의 템포에 맞추어 가는 것이 매우 좋은 방법이었지만 시간이 달라지니 박사님의 템포에 맞추어 가는 것은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방법이 되었다.

몇 번 박사님을 따라잡고 놓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려갈 때는 박사님의 템포에 맞추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속도를 내야 할 곳과 내지 말아야 할 곳이 있었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곳은 철로 된 계단이나 다리였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굉장히 미끄러웠다. 거기서는 무조건 서행해야 했다. 하지만 계단이나 다리 위가 고무로 덥혀 있을 때는 오히려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 된다. 평평한 곳도 역시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가파른 내리막은 역시 속도를 내기 어려운 곳이다.

 

내 템포에 맞추어 가다가 다시 힐끗힐끗 보이는 박사님의 뒷모습을 본다. 다시 한 번 열심히 박사님의 템포를 따라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실패한 방법이다. 에러로부터 배워야 한다.

 

남은 길을 열심히 걸어서 설악동에 도착하자 파라솔 밑 의자에 박사님이 발을 말리며 앉아 계신다. 다른 분들은 안 보인다. 아직 다들 산에 계시다고 한다. 박사님이 설악동에 다시 도착한 것은 1222분 내가 설악동에 다시 도착한 것은 1233분이었다. 박사님은 6시간 2분만에 대청봉까지 다녀오신 것이고 나는 6시간 13분 만에 다녀왔다.

 

이 기록은 박사님이 10년 전 대청봉에 다녀올 때랑 거의 같다고 하신다. 10년 동안 같은 체력을 유지하고 계신다. 아마 앞으로도 20년 이상은 끄떡없으실 것 같다.

이 수치를 기록해 놓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10년 뒤에 다시 같은 코스에 도전하자고 말씀하신다. 그 때 그 기록과 지금의 기록을 비교하면 자신의 체력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고 하신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하나의 기록이 쓰여 졌다. 앞으로의 국내 학습 탐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기록들을 남길 것이다.

 

 

<부록: 영업비밀 공개>

 

내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사실 별로 우아하지 못해서 공개하고 싶지 않았지만 혹여 궁금해하실 분을 위해서 공개한다.

 

우선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파른 곳을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놀았던 것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가파른 한국 지형에는 익숙한 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매일 남산에 오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르는 방법은 걷기이다. 그냥 걸으면 운동효과가 별로다. 그래서 양팔을 열심히 흔들면서 파워워킹을 한다. 그렇게 하다가 좀 더 운동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팔을 앞뒤로 흔들 뿐만 아니라 손을 쥐었다 폈다까지 함께 하면 효과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남산에서 손을 앞뒤로 흔들고 반짝반짝 작은 별 하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걷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아마 나일 것이다.

 

 

지난 수요일에는 3번 남산에 올라갔다왔고 목요일에는 2번 남산에 올라갔다 왔다. 이때는 페이스를 올려서 좀 힘들게 오르내렸다.

 

훈련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