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지.잃 = 미치면 이루고, 지치면 잃는다.         

 

 

이 사자성어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박문호 박사님이 말씀해주셨다. 위의 문장 안에 내가 설악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느낀 점과 그로부터 하고 싶은 말들이 담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훈련'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자세 회원분들 중 등산 꽤나 하신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왜 그런지 먼저 등산 코스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자료에 따르면 일단 올라가는 편도만 해도 산행거리 11km, 산행시간 7시간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그리고 그 길을 다시 내려온다. 그러면 보통은 왕복 14시간은 걸린다. 그 길을 누군가는 3시간 반만에 올라갔고 가장 늦게 돌아온 사람도 왕복으로 12시간만에 다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박문호 박사님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 '미치면 이룬다.' 우리는 '등산'으로서가 아닌 '훈련'으로 임했고, 그럼으로써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해낸 결과가 보여주는 것 말고도 '훈련밖에 없다'라고 느꼈던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한 것이라 더욱 생생한 이야기이다.

  박자세에는 전설이 있다. '산에 오를 때에는 아무도 박문호 박사님의 뒤를 따른 자가 없더라.'는 것인데, 나는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이번 산행의 목표를 '박문호 박사님 따라가기'로 정했다. 새벽 6시 반 설악산 공원입구에서부터 박사님 뒤만 밟았다. 앞서지도 않았고 옆으로 나란히 가지도 않았다. 오직, 박사님의 발 뒤꿈치만 보면서 따라갔다. 산 깊은 곳으로 갈수록 험한 지형들이 등장하였고, 숨이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생각했다. '지금 놓치면 끝장이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박사님 뒤에 내가 있었고, 그 뒤를 형민이 형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그 사이에 있으려니까 마치 형민이 형이 나를 밀어주는 듯한 느낌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나는 주춤하다 뒤로 물러졌고 나는 지쳐버렸다. 박문호 박사님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 '지치면 잃는다.'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 '내 몸에 가까운 물'을 마시고 있었고, 그러다 이번 산행을 위해 여러번 훈련을 했다는 동수형이 지나간다. 한참을 쉬고나서 다시 걸음을 시작하다가 가파른 산 속에서 또 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그 동안에 빗방울이 툭. 툭. 떨어지다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쉬고 있으니, 등산화대신 군화를 신고 한 손에는 카메라가 담긴 비닐가방을 든 지용이형이 지나간다. 좀 더 쉬다가 생각난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나는 그 옛말에 동감하면서, 다음에 오는 사람과 함께 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등산스틱을 쓰면서 차츰 올라오시는 이원구 선생님을 만나 함께 오르게 되었다. 희운각 대피소에 오르니 비도 오고 해서 그런지 비를 피하려고 천막 아래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그 사이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서 김밥을 먹고 있으니,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우형이 형이 나타났다. 이렇게 셋이서 대청봉까지 올라갔고, 비바람을 뚫고 인증샷을 찍은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내려오다가 중청대피소 앞에서 종아리에 쥐가 나고 말았다. 순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육상선수가 출발준비를 하듯이 가만히 있었다. 종아리 근육을 꽉 붙잡고 얼마간 있다가 중청대피소로 들어갔다. 그러다 마침, 대청봉을 찍고 내려오시는 용마산의 역장이신 오정헌 선생님과 사모님이신 서청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상황을 들으시더니 서청은 선생님께서 마사지를 해주셨다. 복지관에서 스포츠 마사지를 배워 종종 봉사활동을 하셨다면서 종아리를 주물러 주시는데, 그 때마다 근육들이 뇌로 짜릿한 비명을 전달한다. 간신히 쥐난 데가 풀리고 산을 내려오면서도 또 쥐가 날까봐 조심조심 내려왔다. 

  내려오고나서 나중에 박사님을 따라 올라갔었던 형민이 형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예전부터 산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당연한 결과였다. 나로서는 북한산 한 번 다녀온 후로는 등산 훈련은 하지 않았고, 평소 하던 앉았다 일어나기나 계단 오르기로는 부족했던 거였다.  '아, 역시 훈련 밖에는 없구나' 를 종아리 근육으로 강하게 느낀 산행이었다.

 

 

 

 

6:30 설악동 출발

11:00 대청봉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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