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의 시학

 

1

좋은 시인을 만났을 때 나는 지도를 펼쳐보는 버릇이 있는데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그의 시를 하나 둘 접할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지도를 펼쳐 생면부지의 '김천'이란 동네를 짚어보곤 했다. 한 시인이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살림을 차리고, 혹은 유랑하는 그 모든 공간에 별표를 치다보면 어느덧 그 사람의 행로는 하나의 커다란 천체 지도가 된다.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쳐다보듯 그 천체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삶이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소월이, 백석이 특히 그러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젊은 시인의 시를 접하고 지도를 펼쳐보게 된 것은 참으로 드문 경험이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돌올하고, 동년배의 시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을 향한, 삶을 향한 무량한 연민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일찍이 현대시의 본격적인 출발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은 그의 유일한 론<시혼(詩魂)>(1925)에서 시인을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에 비유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롭게도 기운 있게도 몸을

떨쳐 영원(永遠)을 속삭입니다.(...)도회(都會)의 밝음과 짓거림이 그의 문명(文明)으로서

광휘(光輝)와 세력(勢力)을 다투며 자랑할 때에도, 저 깊고 어두운 산과 그늘진 곳에서는 외로

운 버러지 한마리가 그 무슨 설움에 겨웠는지 쉼 없이 울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현대시의 출발이 소월의 이 '버러지 시론'에서 시작 되었다는 게 그리 좋을 수 없다. 서구 현대시의 아버지는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보다 훨씬 소박하지만, 그 소박함이, 절절함이 좋다. 소월은 이 글에서 덧붙이길, 영원한 진리의 세계는 영혼(靈魂)의 세계이며, 영혼은 적막. 고독. 슬픔. 어두움 등과 대면할 때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림자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있지만 낮의 세계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월은 그것을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 에 설 때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태준 시인의 시는 대부분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우리가 애써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김소월이 말한 영혼의 소리를 듣게 만든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존재의 실상이란 환한 빛 속에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늘 속에서, 적막 속에서, 슬픔 속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최근의 작품들은 김소월이 말한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 를 시인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 또한 보여주고 있어 여간 미덥지 않다.

문태준은 그런 면에서 소월이 그토록 간절하게 전해준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 의 시론,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 에 서자는 권유에 충실한 제자라 할 수 있다. 소월은 비록 젊어서 '불귀(不歸),불귀(不歸)' 의 세계로 나아가고 말았지만, 문태준은 오고 감이 넉넉할 정도로 아직 젊고 건강하여 그 진폭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 시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난 곳은 10여 년 전 춘천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춘천에서 시보다 밥이 먼저라는 일념하에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장석남 시인이 처음 보는 젊은 시인 하나를 데리고 내려왔다. 당시 장석남 시인은 내가 생업에 치여 시를 잊어버릴까봐 이따금 내려와 잠자는 시심의 콧털을 뽑아놓고 가곤 했었다. 선우(善友)란, 도반(道伴)이란 그런 것이리라. 

 

젊은 시인은 영락없는 '중송아지' 같았다. 눈은 송아지처럼 맑았고, 몸은 어른 소처럼 튼실해 보였다. 나는 단박에 그가 어렸을 때 소꼴 좀 베고 다녔겠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예상대로 말없이 눈을 꿈벅거리며 주로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날 밤, 우리들은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그냥 뜻 없이 새벽까지 잘 놀았다. 미끄럼을 타던 결빙의 길과 초승달 아래 서성였던 절 마당이 떠오른다.

 

뜻 없이 잘 놀던 시절은 그 이후에도 간간히 이어졌다. 그는 그가 형이라 부르는 우리 연배 시인들의 술자리에 늘 참석하는 멤버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꿈벅거리며 얘기를 듣는 쪽이었으나, 이따금 곰살맞은 이야기를 툭 던져 가라앉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업시키는 재주도 보여주곤 했다.

 

한번은 예의 '뜻 없는 모임' 의 술자리에서 그의 춤을 본 적도 있다. 어쩌다 분위기가 업 되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게 되었는데 그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 어깨춤이라니! 그는 몸은 가만히 있고, 어깨만으로 음악을 타는 곰살맞은 춤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이성복 시인의 표현대로 그는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았다.

 

3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통로를 지나야 한다. '수런거리는 뒤란' 으로 상징되는 고향의 정경과 그 속에서 살아온 가족사적 내력, 그리고 그가 시의 안팎에 저며 넣는 불교적 사유가 그것이다.

 

이 세 개의 통로는 각각 개별 시편을 낳기도 하고, 두 개가 모여, 혹은 세 개가 모여 한 편의 시를 낳기도 한다. 그가 고향의 정경과 그 속의 살림살이를 그리는 데 집중할 경우 그의 시편은 평화롭기까지 하지만, 가족사적 내력이 스며들 때는 슬프고, 고달픈 정경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정경 속에 불교적 사유가 저며질 때는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면서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서늘한 적막의 진경을 보여준다. 먼저 뒤란으로 가보자.

 

 

산죽(山竹)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은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도 사람처럼 둥글게 등이 굽어질까요

어둠이 흔들리는 댓잎 뒤꿈치에 별을 하나 박아주었습니다

 

-<수런거리는 뒤란> 전문

 

 

그가 그려낸 뒤란에는 산죽이 있고, 장닭이 있고, 묵은 독이 있다. 전형적인 농촌의 뒤란 풍경이다. 시인은 이 뒤란 풍경을 행갈이 없이 한 행 한 행 담아낸다. 초기 시를 장식하는 이러한 시편들은 맑고 투명하고 섬세한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세계는 그가 지닌 감수성의 근원을 이룬다.

 

시인은 뒤란을 그린 위의 작품을 첫 시집의 표제작으로 삼더니 두 번째 시집에서도 같은 뒤란을 노래한 시 <대나무숲이 있는 뒤란> 을 실었다. "처음 이곳에 대나무숲을 가꾼 이 누구였을까" 로 시작되는 뒤의 작품은 "아, 그 먼 곳서 오는 반가운 이의 소식을 기다려/ 누군가 공중에 이처럼 푸른 여울을 올려놓은 것이다" 로 끝난다. 앞의 작품이 '바람'과 '산죽'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세월을 격해 발표한 뒤의 작품은 대나무숲을 처음 가꾼 '누군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뒤란은 이처럼 문태준 시의 출발점이자 원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앞마당이 아니라 뒤란이 그의 시의 원형적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뒤란은 퇴색한 잡동사니들이 모여있는 풍물적 공간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이며, 밝음보다는 어둠과 그늘이 지배하는, 존재의 실상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리고 앞마당보다는 무언가 할 이야기가 많은 '수런대는 공간' 이다.

거칠게 분석한다면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차이는 이 뒤란에서 무엇을 보려 했는가에서 빚어지는 차이다. 뒤란을 처음 만든 이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은 뒤란이 오롯하게 시인의 품속에 들어왔을 때나 가능한 질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가족, 특히 아버지, 어머니, 큰어머니, 고모, 누이들을 통해 이 고적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 하나를 더 만든다.

 

 

세상 한곳 한곳 하나 하나가 저녁에 대해 말하다

까마귀는 하늘이 길을 꾹꾹 눌러 대밭에 앉는다고 운다

노란 감꽃 핀 감잎은 등이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암내 난 들고양이는 우는 아가 소리를 업고 집채의 그늘을 짚으며 돌아 나간다

나는 대청에 소 눈망울만한 알전구를 켜 어둠의 귀를 터준다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찬물에 발을 씻으며 검게 입을 다물었다

 

-<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 전문

 

 

 

이 작품에서도 시를 지배하는 것은 '뒤란적 시간'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뒤란적 시간' 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들에서 돌아와 검게 입을 다무는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문태준 시의 특질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시선은 그의 시를 동년배의 다른 시인들과 구별 짓는 개성적 세계로 승화 시킨다. 그의 시에서 아버지는 관념적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 삶을 꾸려가는 구체적 존재이며, 떠도는 존재로서의 남성 상징이 아니라 도리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꾸준한 삶을 지속하는 정주(定住)적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는 일찍이 서정주가 <자화상>에서 보여준 남성/여성 상징과는 차별되는 세계이고, 도회의 젊은 시인들이 만신창이로 만드는 상징과는 구별되는 상징이다.

 

그의 시에서 아버지는 늘 검게 입을 다문다. 아버지는 가난의 세계이고, 침묵의 세계이고, 자연에 순종하는 세계이다. 시인은 아버지를 통해 시간의 육체를 본다.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한 호흡> 전문

 

 

아버지의 삶,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인은 만물이 피고 지는 것, 오고 가는 것들의 육체를 만진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우주적 원리에 대한 '통 이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사유가 지극히 동양적이고, 전통적인 사유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도가와 불가에서는 늘 '한 호흡' 을 삶의 전체와 등가(等價)로 놓는다. 그것은 시간적 단위를 넘어서는 생명의 실존이자, 구체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생애를 철학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예순 갑자' 라는 시간적 단위로 축약해 냄으로써, 삶의 유구함을 성취해 내고야 만다.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이다. 반면 그의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 큰어머니, 외할머니, 누나 등 여성들은 연민과 그리움의 존재들로 보다 살갑게 그려진다. 시인은 아버지를 통해 이 세계의 침묵을 읽어내려 애쓰고, 여성들을 통해 나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을 확장시켜 나가려 한다.

 

가난과 쇄락의 농촌공동체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간 가족과 친척들의 삶을 그려내는 그의 이러한 시들은 그것 자체만으로 독보적이다. 시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체험과 세계관 속에 불교적 사유를 저며 넣으며 시의 밀도를 한층 두텁게 한다.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맨발> 전문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그가 지나온 시적 세계가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시 속에는 그늘진 뒤란이 있고, 늘 캄캄하게 입을 다물던 가난한 아버지가 있고, 큰 자비와 큰 슬픔을 보여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가 있다. 시인은 이 세계를 반죽해 묽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어 딱딱해져버리지도 않은, '울음이 목젖에 걸린 세계'를 보여준다. 좋은 시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리라.

 

그가 저며 넣는 불교적 사유는 폭넓다. 이 작품에서처럼 사랑과 연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적막과 극빈을 향한 선적(禪的) 세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의 시들은 <극빈(極貧)> 연작에서 볼 수 있듯 후자의 세계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

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

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극빈 2 - 독방(獨房)>마지막 부분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나는 이르렀네

귀 떨어진 밥그릇 하나 들고

빛을 걸식하였네

 

-<극빈 3 - 저 들판에>첫 부분

 

 

뭐라 할까,<극빈> 연작이 보여주는 세계는 말 그대로 차, 포 다 떼내고 존재의 실상으로 바로 돌입하고자하는 열망이 숨죽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빈>이란 그곳으로 가기 위한 태도, 혹은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4

시인 문태준의 출현은 좀 돌연한 데가 있다. 도대체 이 남다른 개성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작가론'이란 그런 비밀을 밝혀주는 것인데, 그가 젊고, 말이 드물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난감한 청탁이 올 줄 내 미리 알았더라면 그 많은 술자리에서 앞에 앉혀놓고 시시콜콜 물어볼 걸 그랬지 싶다. 하지만 그나, 나나 별 말이 없는 것으로 말을 삼는 체질이라 길 위에 찍힌 발자국 보며 그냥 방금 소가 지나갔겠거니 생각할 도리밖에 없다.

 

추측컨대 그가 시를 만난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인 것 같다. 그의 시가 지닌 순도는 그가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시를 만났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그의 시에는 일찍 시를 만났던 사람이 갖지 못하는 맑음과 순결함같은 것이 배어 있다. 고향을 오롯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고향을 처음 떠났을 때,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그의 두 번째 행운은 그가 시골에서 '서당적 사유'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한 신문에서 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은사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가 든 은사가 다름 아닌 '저승꽃이 잔뜩 피어오른' 한문 교사였다. 시인은 그 은사가 소개한 소동파의 시 한 구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신기해 보였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소동파의 시구절을 기억하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덧붙인다는 게 요즘 시절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다. 이 '서당적 사유'와 한시에 대한 이해도 그의 시를 이해하는 한가지 좋은 접근법이 될 것이다.

 

그가 영향 받음직한 시인도 거론해야겠다. 아마도 가장 첫머리에 꼽을 수 있는 시인이 백석이 아닐까 싶다. 백석은 그의 시에 담긴 세계관의 시의 형식에서 안팎으로 영향을 미친 거의 유일한 시인으로 여겨진다. 그는 보다 담백한 백석에 비해 시의 대상을 좀 더 오래 우물거려 꾸불텅꾸불텅 뽑아내는 편이다. 백석이 당나귀과라면 문태준은 소과이고, 백석이 흰 가재미과라면 문태준은 고둥과에 가깝다. 이 외에 한시와 선시를 꼼꼼하게 읽은 흔적들과 서정주, 신경림, 그리고 가깝게는 장석남의 영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문태준 시의 근간을 이루는 직유에 대해서도 말해야 겠다. 흔히 현대시는 직유보다 은유의 힘이 강하여, 은유를 잘 쓰는 시인이 높이 평가받는다고 말한다. 거칠게 비유하면 은유는'바로가는 세계'이고, 직유는 '에둘러가는 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문태준의 시는 이러한 경직된 시론을 훌쩍 뛰어넘어 '에둘러가는 세계'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에둘러가는 것은 옆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그 존재의 실상을 그려내는 시작법이다. 그의 시는 에둘러 가되 끊임없이 인간화(의인화)를 통해 실상에 접근한다.

 

이는 우리 시가 너무 일찍 잃어버린, 가치절하시켜버린 부분이다. 문태준의 시는 이의 복원을 통해 시의 품격과 가치를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먼저 시인들로부터 술 한잔 받을 자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