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의 강연에 앞서,

최소한 그가 쓴 글은 읽고 가야겠기에, 주문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미리 고백하자면 저에게 '시문학'은 참으로 낯선 장르입니다.

이제까지 제 손으로 산 시집은 1998년 박노해 시인의 <참된 시작>과 1999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전부입니다. 그것도 학부 프로젝트 관련 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책장을 뒤져보니, 고등학교 때 불문학도가 꿈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 2006년 같이 작품 하던 연출가가 쥐어준 이성복 시인의 <아, 입이 없는 것들> 뿐이더군요.

 

 

얼마나 책 편식이 심했는지, 한심함에 말문이 다 막혔습니다.

명색이 공연계에서 밥 벌어먹고 살아왔는데 말입니다. 희로애락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한다는 사람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름 감정의 섬세함을 아는 사람이라고 치부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동안 가까이 품고 있던 책은 희곡, 소설 그리고 간간히 읽는 수필과 평론이 전부였습니다.

'시'만 쏘옥 빼고 살아왔네요, '시'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응축된 단어로 표현된 시 읽기가 어색했고, 몹쓸 선입관으로 '시는 너무 어려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나 봅니다.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공연을 보면서 배우가 하는 대사에 씨익 웃고 때론 뭉클하기도 했고,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안으로 쑤욱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스스로를, 한편 대견해하며 '그래 이정도면 모...' 라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그러던 제게 문태준 시인의 시는 그간의 망상을 왕창 깨 주었습니다.

그는 일상의 언어로 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시절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 왔고, 초등학교 시절 한두 번 정도 방문한게 전부인 시골 외가댁 풍경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저 쉽게 지나치는 작은 일상을 예민한 언어로 풀어내는 글에 감탄을 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감정이 풍만해집니다.

 

 

장면의 개연성과 상황 설명을 중요시 하던 제겐 신선한 충격입니다.

응축된 언어의 표현이 오히려 상상력을 불러옵니다. 여백의 미라고 할까요. 시를 읽으면서 제 머릿속은 더욱 빨라지고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제가 올린 글에 대해 박사님께서는 '건조하고, 글을 많이 접한 느낌이 아니다' 이었습니다.

빙고! 얼굴이 빨개집니다.

 

 

더불어 박사님께서 '간을 많이 하지 않은 글이 좋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글 재료가 좋으면 요란한 미사여구를 곁들이지 않아도 글쓴이의 진심이 묻어나고 읽는 이가 감동하는 글이라는 뜻이겠지요.

 

 

'감수성은 인간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 중 하나다'라는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베스트북 리스트에 있는 시집과 시와 관련된 책을 서둘러 주문합니다.

밥솥에서 올라오는 폴폴 나는 밥 냄새처럼, 감수성도 폴폴 피어오르길……

 

 

 

          장님 / 문태준

 

    찔레나무에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그 곁에

    오금이 저리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의 의혹이 생겨났습니다

    그대의 가슴은 어디에 있습니까

    찔레 덤불 속 같은 곳

    헝클어진 곳보다 보다 안쪽

    막 눈물이 돌기 시작하는 곳

    그곳으로

    날아오는 새와 날아오는 구름

    그곳으로부터

    날아가는 새와 날아가는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