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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Paul Gauguin)은 타히티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그림으로 물었습니다. 관념을 이차원적 캔버스에 표현해 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한 고갱의 행적 속에서 어떻게 이런 그림의 관념이 표상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던지는 질문에 대한 고갱만의 화법과 은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술적 작품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며 볼 일은 아닙니다. 고갱이 이 작품을 그린 때는 현대 과학이 스며들기도 전인 1897년이기 때문이며 원시 자연 상태를 동경해 찾아간 타히티에서 그려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갱의 역할은 그림으로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나에 대한 자아의 존재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갱이 그림으로 인간 존재를 물었다면, 감정과 두려움, 불안 등 인간 의식의 신경과학적 기제를 연구해온 미국 뉴욕대(NYU)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2019년,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 우리가 의식 있는 두뇌를 얻는 방법에 관한 40억 년의 이야기(The Deep History of Ourselves: The Four-Billion-Year Story of How We Got Conscious Brains)’책을 통해 40억 년 생명의 역사를 풀어냅니다. 국내에는 지난달 말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관념과 과학이 어떻게 다른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어제저녁 이 르두의 책을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이라는 자연과학 공부 단체를 이끄시는 박문호 박사께서 강독하는 온라인 강의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30년 넘게 자연과학을 섭렵하신 박문호 박사의 통섭이 르두의 책에 담긴 행간을 넘어 강독의 진가를 발휘하는 엄청난 시간이었습니다. 8시 반에 시작한 온라인 강독이 11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어제 강독에서 집중한 내용은 책의 전반부 40억 년의 역사보다는 후반부 감정에 집중해서 들여다봤습니다. 생명이 어떻게 40억 년 동안 진화해왔는지, 인간의 뇌는 어떻게 더 영리해지는 길을 택해 왔는지에 대한 르두의 혜안적 통찰도 대단하지만 책의 초반부 내용은 이미 '박자세' 단체에서 오랫동안 숙지하고 공부해온 내용의 중첩이라 건너뛰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감정'에 집중한 것입니다.


감정은 가치를 개인화하는 능력으로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감정은 유전적, 생리적 현상이 아니고 언어와 자기 주지적 의식에 의해 벌어진 현상이라 다른 동물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은 물론 식물도 감정이 있고 반응을 한다고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고 있는데?"라고 반문하지만 저자는 착각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도 의식적 경험을 하지만 인간의 의식과는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있고 동물에게는 언어가 없기에 이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다윈이 인간과 동물의 행동 유사성을 들어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주장한 이래로 인간중심주의와 의인화 경향이 학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지만 인간이 생존 행동을 할 때 의식적 경험을 한다고 해서 다른 동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을 다른 개체에 투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인 구달과 같은 의인화 옹호자들은 "다른 종들이 인간과 똑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그 밑바탕에 있는 심적 과정도 동일할 것이다"는 주장을 하지만 행동의 관찰만으로 행동과 의식을 연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행동은 의식적으로만 제어되지 않으며 비의식적, 무의식으로도 제어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인간과 동물은 정교한 비의식적 인지 행동능력 절반을 공유하고 있기에 동물도 감정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문호 박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인 자아, 감정에 자살까지 들여다봐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독을 추가합니다. 특히 자살은 인간만이 행하는 독특한 행위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대부분 일어난다고 합니다. 바로 박테리아 무생물 세포에서 다세포 생물 개체가 되고 종으로 되는 과정에서 모든 세포는 생식능력이 있는 체세포였지만 생식능력을 생식세포에 위임하고 상호의존성을 획득함으로써 생존의 효율성을 높였는데 같이 살기를 거부한 세포들이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으로 존속해야만 개체로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르두의 주장에 방점을 찍습니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생존 회로에 관여하는 지각, 동기, 인지, 기억, 뇌 각성 시스템을 비롯하여 브레인 안에서 기능하는 여러 부위의 상호 작용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감정이기에 이 감정의 변화무쌍한 순간순간의 상황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정신작용 정점이 바로 감정입니다. 감정은 타인과는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감정은 인과관계가 아닙니다. 감정에는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서도 감정이 같지 않기에 티격태격 사랑싸움이 벌어집니다. 감정이 인과관계라면 전후좌우가 명확하니 싸우지 못합니다. 감정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천차만별의 표현으로 인간 군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은 '양날의 칼'이라고 합니다. 이기심과 질투, 분노, 욕심과 같이 우리 종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심적 특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랑, 이타심, 자비심과 같이 오늘날 인류의 위대한 성취도 바로 이 감정이 가능케 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가 바로 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정을 살피고 들여다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