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그 사람이 쉬거나 놀때 무엇을 하는지 보라고 합니다.

음악을 듣는지 영화를 보는지, 집에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있는지, 운동을 하고 있는지 등등 말입니다.

아니면 부족한 잠을 청하고 있는지, 술을 마시고 있는지, 컴퓨터 게임을 하기도 하겠고

그 도 아니면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책을 읽고 강연을 듣기도 하겠군요.

이렇게 쉬고 노는 시간을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중에서 어떻게 쉬고 노는게 가장 값지고 뜻깊다고

할 수 있을까요?


쉬고 노는데도 수준(level)이 있다고 하면 오만일까요?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목적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술을 마시는데도,  골프를 치는데도 목적이 있기때문에 합니다.

공부하는데도 목적이 있듯이 말입니다.

어떤 행위가 더 수준 높은 것일까요?

공부하는 것이 더 수준높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역시 오만일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직 다양성이 존재할뿐 다양성에 우열과 수준을 대입하는 것은 모순이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의 수준이 더 높다고 평가합니다.

왜?

공부에는 지속성과 연속성이 따라 붙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 공부하고 말면 그것은 공부가 아닙니다.

대오각성하여 견불성심할 수 도 있겠으나 범인들의 시선에서는 언감생심입니다.

지속하고 연속해서 시간을 투여해 공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관심과 열정입니다.

관심과 열정은 좋고 즐겁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논어 옹야편에 보면

知之者 不如好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好之者 不如樂之者(호지자 불여락지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표현만 다르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봅니다.


자연과학공부에 발을 들여놓으면 바로 공부를 즐기게 되는 마법에 빠집니다.

왜?

기원을 추적하여 우주의 현상과 분자와 생명현상까지도 들여다 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끝이 있는 공부를 하는데 끝없이 공부를 하게 됩니다.


주기율표를 통해 인간의 생각과 사랑까지도 들여다보고 포에니 전쟁을 건너다보며

달을 건너다 보고 강아지를 주시하게 합니다.

주기율표에서 생명의 원자를 끄집어내고 바위와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대리석을 만들어냅니다.

조물주가 한 일을 주기율표가 설명하고 대행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리고 지구기후 변화까지도 주기율표를 통해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연계해 이해를 하게 됩니다.


노는 물이 다르면 보이는 세상이 달라집니다.

놀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자연과학에서 노는 재미가 더 쏠쏠해집니다.

같이 놀아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