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매일 '자기 예언을 실행'하며 삽니다.
예측과 선택이 바로 행동을 이끌어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기에, 행동이 작동하는 기저를 침잠해 생각해보지 않기에 아무 생각없어도 행동이 나오고 동작이 나오는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과 동작은 목적의식이 있기에 발현됩니다.
숨쉬는 한 줌 숨소리 조차 호흡을 위한 목적이 있기에 그런 것이고 시선을 하늘로 대지로 두리번 거리는 것도 무언가 찾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심지어 화를 낼때조차도 나의 목적을 방해 받을때 였음을 들여다보면 목적이 아닌것이 없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목적없는 행동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본질입니다.


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인간은 언어라는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폭발적으로 표현을 늘리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로써 기억이 생기고 이 기억을 통과하여 범주화 된 지각이 형성되고 생각이 됩니다.
생각은 옛 기억의 거미줄에 걸리는 아침이슬 같은 것입니다.
옛 기억이 없으면 거미줄을 통과하는 바람처럼 생각은 걸려들지 않습니다.
기억과 생각의 확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바탕이 되는 기억의 그물을 쳐야 가능합니다,
그 그물은 바로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공부입니다.
새로운 도전과 공부는 새로운 시간을 투자하라는 의미의 확장까지는 아닙니다.
관점의 전환만 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일상에 감사하지 못했다면 매일 매일 눈뜸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함에 감사를 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하지 못했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바로 관점을 바꿈으로써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매일 매일에 감사합니다.
만인만색의 시각과 무한대의 자연환경속에서 지금 이렇게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고 출근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어디서 태어났는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카스트 신분의 굴레처럼 인간은 어느 대지에 발을 디디느냐에 따라 평생의 굴레를 가지게 됩니다.
허리케인으로 전국이 전기가 끊긴 카리브해 연안에 살았다면 지난 밤을 무시무시한 바람과 어둠속에서 개떨듯이 떨어야했을 것이며, 지진으로 흔들리는 터키에 살았다면 흔들리는 땅의 요동에 현기증을 넘어 쏟아지는 건물 잔해를 피해 다녔을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도 않는 민족과 국가, 종교의 경계를 긋느라 인종 청소가 자행되는 지역에 살았다면 하늘의 신을 저주하는 처절함을 이겨내야 했을 겁니다.


무엇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내는지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지금 이자리 이 현재"가 바로 나의 존재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땅에 태어나 지금과 같은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이 평화와 안정이 그냥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도 자명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지켜내고 이뤄내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같은 땅에 살면서도 누군가는 거리의 고독자로 살기도 하겠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 세상과 이별하기도 할 겁니다.
"지금 있는 이 존재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긍정의 힘으로, 즐거움의 여유로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그렇게 되리라' 가 정답입니다.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고개들어 시선을 청명한 가을 하늘로 던져넣어 청푸른 하늘빛을 눈으로 쏟아넣을 일입니다.
푸르름으로 채우고나면 소스라니 가을 바람 한 점 불어올 겁니다.
그렇게 자연으로 눈을 채우고 머리를 채우고 마음을 채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밀어내면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가벼워지고 마음이 상쾌해질 겁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되며, 느끼는 만큼 살 수 있습니다'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보냄의 아쉬움보다 새로움의 10월을 맞이함에 가슴 설레는 날입니다.
작은 사랑으로 갑갑한 가슴의 문을 열어 드립니다.
희망의 10월을 사랑으로 같이 설레이며 맞이해 보시죠.